▶87년 6월 항쟁 때 대학생이었던 나도 데모 무리 속에 끼여 있었다. 그러나 심약한 이데올로기의 패잔병이었기에 첨병에 서진 못했다. 피 흘리며 투쟁한 민주화의 물결은 끝내 신군부로부터 '대국민 항복'을 받아내고야 말았다. 국민의 요구는 간결했다. 대한민국 헌법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거였다. 그러나 일부 언론은 여전히 이데올로기의 저 편에서 냉소적인 시선을 보냈다. 그로부터 10년 후 행운의 인연이 내게 찾아왔다. 사상의 은사, 지식인의 사표로 불리는 리영희 선생과의 만남이었다. 96년 강연 차 청주에 온 그를 1박2일간 모신 것이다. 그의 '고물같은' 엘란트라 승용차를 직접 모는 영광까지 안았다.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던 그는 진실을 추구했다는 이유로 아홉 번이나 연행되어 구치소에 다섯 번 가고 기자직과 교수직에서 각각 두 차례나 쫓겨났다. 그가 쓴 책들은 87년 운동권 학생들의 사상 이념서로 통했다. 때문에 정권은 그를 '빨갱이'로 취급했다. 그러나 지근에서 바라본 그는 부조리와 억압에 맞선 논객이었으며, 보수니 진보니 따지며 거들먹거리는 한심한 정객보다 백배는 나아보였다. 그는 '빨갱이'가 아니었다.
▶그로부터 21년이 흘렀다. 리영희 교수는 최근 쇠고기 협상을 두고 "MB정부가 자신을 뽑아준 국민들의 건강과 이익을 생각하기보다는 미국의 체면을 먼저 생각하고 아첨하기 위해 준비한 선물"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촛불민심'이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자 정부는 내각 총사태를 표명하며 불끄기에 나섰다. MB정부 출범 107일 만에, 국민적 저항이 시작된 지 한달 여 만에 `성난 촛불'에 백기를 든 것이다. 그런가하면 MB정부에 맞장구를 치며 용비어천가를 부르던 일부 언론도 '거친 매'를 들기 시작했다. '촛불'의 힘을 보고 참으로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반성하는 자가 이긴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 진정한 용기다. 항상 민심의 변두리서 아웃사이더처럼 서성거리는 정부와 보수언론, 반성해야 한다. 국민을 자신의 종업원 대하듯 하는 'CEO 대통령'도 반성해야 하고, 뽑아놓고 발등 찍는 국민도 자성해야 한다. 차고 시린 유월을 보내며 마치 5·18과 6·10의 혼령이 되살아나는 듯 가슴이 먹먹하다. '빨갱이'는 진짜 아닐진대 요즘 같으면 정말 '돌'을 던지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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