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11.13 세종시와 4대강 삽질
  2. 2009.10.15 촛불, 횃불, 숯불, 등불
                                                      사진=충청투데이 전우용 기자

 낙엽이 떨어진다. ‘낙엽’이 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엽록소 잔뜩 머금은 초록을 꿈꾸며 가지에 매달리고 싶어도 때가 되면 낙엽이 된다. 그러나 낙엽은 주검이 아니다. 봄과 여름이 바람과 햇빛으로 살갗을 태우고 추해지기 전에 자신을 버리는 성스러운 의식(儀式)이다. 낙엽이 떨어진다는 것은 무거워서가 아니라 가벼워졌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가을을 타는 것’은 남성 DNA에 고독과 상처라는 인자가 각인돼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과학으로도 증명 못한 쓸쓸함의 잔상, 그것이 찬바람에 실려 가슴을 울리는 것이다. 그래서 상처 받은 영혼들은 강으로, 산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병약하고 외돌토리 같은 삶을 위로받는다. 강(江)은 그래서 어머니의 품을 닮았다.


 4대강 사업을 두고 민주당은 ‘5대 거짓말’이라고 했다. 민주당 백서에 따르면 5대 거짓말은 홍수 예방, 물 확보, 수질 개선, 일자리 창출, 강 살리기다. 예컨대 국가하천의 홍수 피해액은 전체 홍수 피해액의 3.6%에 불과하다. 낙동강에서 부족한 물을 확보할 계획이지만 정작 물이 부족한 곳은 섬진강이다. 66개 구간 중 51개 구간이 이미 2급수인데 4대강을 2급수 이상으로 끌어올린다고 설레발이다. 죽은 강을 살린다고 하지만 4대강 내 640곳의 수질은 70%가 양호판정을 받았다. 여기에 4대강 예산의 반만 돌려도 등록금 5조 원 지원, 고교 무상교육(2조 4000억), 무상급식(3조), 장애연금(2조) 등을 지원할 수 있다. 또한 정규직 20만 명 전환(1조 2000억), 경로당 지원(2800억), 결식아동 16만 명(600억)을 도울 수 있다. 이런 판국에 4대강 예산은 1년도 안 돼 8배나 뛰었다.

 풍수(風水)에서는 물을 길로 본다. 그래서 물길이다. 물길은 유통과 소통의 길이다. 수나라 양제는 북경에서 항주까지 1800㎞에 이르는 ‘경항운하’를 팠지만 조선 태종은 ‘남대문 운하’를 파자는 건의에 대해 “우리나라는 모래와 돌이 많아 물이 머물지 못하므로 중국을 본떠 운하를 팔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치수(治水)의 본보기다. 두 도시 모두 100여 개의 섬과 섬 사이를 500여 개의 다리로 이었다. 또한 물길을 따라 집을 지었다. 맨땅을 파서 없던 물길을 낸 것이 아니라 물 위에 친환경 물길을 낸 것이다. 여기에 낙동강 공구 컨소시엄에 선정된 기업 여러 곳이 MB의 모교출신이라는 점과 4대강 사업이 낙동강에 집중돼 있는 것도 마뜩찮다. 잘난 체 하는 인간들이 녹색, 녹색, 녹색성장을 외치며 보, 댐을 만들고 산야를 파헤치는 것도 발상 자체가 모순이다.

 MB는 4대강 사업을 말하면서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강산(江山) 개조론’을 역설했다. “강과 산을 뜯어고쳐 산에는 나무가 가득하고 강에는 물이 풍만하게 흘러간다면 그것이 민족의 행복이다.” 한강의 기적과 청계천 기적 중심에 있던 MB가 4대강 사업을 서두르는 것엔 정책적 편향이 있다. 세종시가 21개월간 ‘수심’에 잠길 동안 4대강 사업은 5개월 만에 ‘물 흐르듯’ 일사천리다. ‘삽질’의 대명사 토목공사가 아니라지만 ‘불도저’는 자연과 풍광을 내시경 하기 위해 이미 시동을 켰다. 4대강 사업의 화끈한 추진을 보면서 느려터진 ‘세종시’ 추진이 오버랩 되는 것은 왜일까. 강변에 사는 촌부들이 습담(濕痰)과 우울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걸망을 싸는 것은 강을 하늘의 뜻대로 내버려두지 않고, 입맛대로 성형(成形)하기 때문이다.


Posted by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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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투데이 자료사진

▶촛불=미국산 쇠고기를 마구잡이로 가져오려 하자 촛불이 켜졌다. 촛불은 무동 탄 아이들, 여중생, 유모차 부대, 하이힐 신은 처녀, 지팡이
짚은 노인을 광장으로 불러냈다. MB정부의 비정(秕政)을 개탄하는 촛불은 그렇게 점화됐다. 그 촛불은 안전한 식탁주권을 찾기 위한 ‘신선한’ 항쟁이었다. 촛불은 민주주의 제도가 작동하지 않고, 정당이 제 기능을 못할 때 피어오른다. 수없이 모인 촛불은 횃불보다 밝았다. 촛불은 비폭력을 외칠 때 춤과 노래가 된다. 촛불은 아무리 공권력을 투입해도 ‘불나방’이 되지 않는다. 자식의 안위가 걱정될 때 어머니들은 개다리소반과 정화수 한 그릇을 놓고 촛불 앞에서 빌고 또 빌었다. 촛불은 자신을 태워 남을 밝히는 기도이기에 ‘흰 그늘’이다. 컴컴함 속에서도 하얗게 빛나기 때문이다.

▶횃불=시인 김지하가 반골이 된 것은 대학생 때다. 그는 굴욕적인 한·일회담 반대운동을 하다 수배를 당해 숨어 지내야만 했다. 그때 중앙정보부가 자신의 아버지를 잡아다가 반신불구로 만들었다. 김지하는 새벽녘 산에 올라 떠오르는 태양 앞에서 눈물로 맹세했다. 이 세상에서 일체의 압제와 거짓이 사라질 때까지 목숨을 바쳐 싸우겠다고. 이후 그의 시는 만인의 ‘타는 목마름’을 해갈하는 ‘횃불’이 됐다. 횃불은 민심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때 타오르는 시뻘건 불이다. 올해 집회는 9400건이나 열렸다. 시위에 참가한 221만 8710명 가운데 3624명이 입건됐다. 전국에서 하루 평균 39.2건의 집회·시위가 열리고 15명이 사법처리 됐다는 얘기다. ‘대한민국=시위 공화국’이란 등식이 나올 법하다. 왜 집회가 늘어날까. 왜 횃불을 들까. 횃불은 참을 수 없는 분노이기 때문이다.

▶숯불=대폿집에 쭈그리고 앉아 힐끗힐끗 여염집 규수의 종아리를 훔쳐보며 삼겹살을 굽는 게 ‘숯불’이다. 배때기가 부르면 숯불이 되지 않는다. 숯불엔 이 땅을 힘겹게 살아가는 노동자·서민의 상처와 고통이 오롯이 배어 있다. 요즘 화두가 된 ‘죄악세’는 ‘세금덩어리’인 술·담배에 세금을 더 얹겠다는 것이다. 먹고 살기 힘든 판국에 술 한 잔, 담배 한 개비 사줄 요량은 없으면서 죄악으로 간주한다니 서민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발상이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4대강 사업비를 13조 9000억 원으로 잡았다. 그러나 반년 만에 22조 2000억 원으로 불었다. 불도저로 강산을 파헤치며 사업 앞에다 ‘녹색’과 ‘뉴딜’을 붙인다. MB정부의 ‘부자감세’ 정책으로 고소득층의 1인당 감세액이 중산·서민층의 33배에 이르고, 대기업에 혜택이 돌아가는 감세액도 중소기업의 11배에 달한다. 신용불량 1000만 명, 비정규직 1000만 명인 시대에 수심에 잠긴 민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부는 ‘물타령’만 하고 있다.

▶등불=등불은 움직이지 않는 촛불인데, 성난 촛불이 켜졌다면 당연히 그 이유를 밝혀서 해명해야 된다. G20 정상회의를 유치한 뒤 국격(國格)이 높아졌다고 만세삼창을 부를 일이 아니라 나라꼴을 돌아봐야 한다. 국회선 싸움질이나 하고, 어린이를 성폭행해도 ‘그저 그런’ 처벌을 하는 나라에서 국격을 논하는 것은 사치다.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앞서 ‘세종시 문제는 질문하지 말아 달라’며 골치 아픈 문제는 피해가는 것은 민주주의 등불, 즉 국격을 훼손하는 일이다. 이럴 땐 촛불을 들어야 하나, 횃불을 들어야 하나. 촛불이 화나면 횃불이 된다.
Posted by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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