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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1.18 친일파와 친이파

▶“어머니, 저는 사쿠라 잎이 산화하듯 스러질 것이며, 일본 왕을 위해 꽃처럼 웃으며 죽겠습니다.” 군국주의 광풍 속에 죽어간 일본인들의 처절한 이별가다. A급 전범 도조 히데키는 “포로가 돼 수모를 겪지 말고 사무라이답게 자살하라”고 특명을 내렸다. 실제로 이 명령에 따라 수십만 명의 일본인이 자진해서 죽었다. 하지만 정작 도조 자신은 패전 후 죽음을 두려워해 자살을 선택하지 않고 연합군 포로가 됐다. 도조는 재판정에서 일왕의 전쟁 책임론을 번복하는 등 변심을 되풀이하다 교수형에 처해졌다. ‘깡다구’ 좋다는 그들도 죽음 앞에선 목숨을 구걸할 수밖에 없는 3류 사무라이였던 것이다.


▶일왕 히로히토는 63년 간 ‘살아있는 신’으로 불린 특A급 전범이다. 히로히토는 잔혹한 방법을 동원해 인간이 어떻게 죽어 가는지를 실험한 ‘악마의 소굴’ 731부대를 만들었다. 패망 후에는 기소를 면하기 위해 731부대 연구물을 미국에 넘겨주는 추악한 거래도 했다. 또한 꽃다운 10대 여성들 20여만 명을 성노예(위안부)로 만들어 영혼을 짓밟기도 했다. 이 같은 만행으로 무고한 아시아인 2000만 명, 일본인 300만여 명, 미·영 연합군 6만 명이 희생됐다. 거슬러 올라가 임진왜란 땐 12만 명에 달하는 조선 양민의 코와 귀가 ‘쪽발이’들의 전리품(戰利品)이 됐다. 일본의 원죄가 400년을 넘어가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파’ 4400명을 발표했다. 독립운동을 방해한 자, 국권침탈에 협력한 자, 경찰 간부로 재직한 자, 친일작품 활동을 한 자, 판·검사로 재직한 자, 민족 구성원을 감금·고문·학대한 자가 망라돼있다. 그러나 어디 친일(親日)한 자가 4400명뿐이겠는가. 4만 명, 아니 400만 명에 이를지도 모른다. 국가가 없었을 때 ‘친일’은 살기 위한 수단이었다. 총부리를 들이대고, 살점을 뜯어내고, 서슬을 들이대는 것에 대한 ‘두려운 굴복’이었다. 비굴한 자는 앞잡이가 됐고, 굴욕에 항거한 자는 주검이 됐다. 친일파들은 쪽발이들의 사주를 받고 끄나풀 노릇을 하며 같은 민족을 암굴(暗窟)에 밀어넣었다. 밤에는 이슬의 잔영(殘影)에 숨어 감시하고, 낮에는 완장과 죽창에 기대어 양민을 이간질했다. 이들 앞잡이들의 비열함은 6·25전쟁 때 ‘낮엔 태극기, 밤엔 인공기’를 흔들며 세습됐다. 근래 친일파의 명수(名數)를 놓고 누가 빠졌다, 왜 넣었느냐 말들이 많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이미 ‘죽고 없어진’ 친일1세대의 단죄가 아니라, 아직도 대한민국 전반에 뿌리박혀 있는 ‘앞잡이’ 사고방식의 청산이다.


▶1994년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이회창을 총리로 발탁했다. 그러나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자 ‘총리 이회창’을 4개월 만에 경질했다. 요즘 정운찬 총리의 행보를 두고 일각에선 ‘YS-이회창 궁합’과 닮았다고 한다. 두 사람 모두 총리 발탁 시 ‘중도 개혁성향’으로 지명도를 쌓았고, 잠재적인 대선주자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할 말은 하겠다던 정 총리는 친이(親李) 노선에서 ‘예스총리’처럼 앞장서 걷고 있다. 대선 전부터 MB의 감세정책과 대운하사업을 강하게 반대했던 정 총리가 정권의 ‘영의정’이 된 후 ‘총대’를 멘 형국인 것이다. 세종시는 ‘탁상머리’에 앉아 계산기나 두드리며 ‘효율성 타령’을 할 문제가 아니다. ‘행정’이 세종시에 내려오면 나라가 절단 나는가. 기업·혁신도시도 부족한 판국에 ‘기업’ 몇 개를 세종시에 툭 던져주면 끝날 일인가. MB정부의 완장을 찬 ‘고향 총리’가 고향을 울리고 있다.

Posted by 나재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