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9.17 부자 정치인들의 가증스런 서민행보
  2. 2008.12.30 새해 희망을 노래하자

추운날씨와 어려운 경제로 서민들이 이중고를 겪고 있는 가운데 23일 한 상인이 거리의 가판대에서 추위와 싸우며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충투 이성희 기자 lsh77@cctoday.co.kr  


▶왜 가난하면 ‘X구멍’이 찢어지는가. X구멍은 눈물과 콧물을 배설하는 통로가 아니라, 가난과 부자의 끼니가 ‘양극화’를 거쳐 빠지는 수채통이기 때문이다. 쌀이 없어 시래기나 거친 풀을 많이 먹으니 찢어지는 것이다. 풀떼기와 한숨으로 버무린 피죽이기에 피가 나는 것이다. 가난은 속살을 들킨 양 부끄러워 남들 모르게 땀 흘리는 세상의 ‘겨드랑이’ 같은 것이다. 가난한 자가 부자 되기도 어려운 세상이고, 부자가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빈자(貧者)를 위로한다 해도 감질 나는 세상이다. 희망은 내일을 담보로 한 작위적인 화해법이다. 오늘은 빌어먹을지언정 내일이 오면 달라질 거라는 자기 위로다. 그러나 희망이란 씹으면 씹을수록 점점 더 삶에서 멀어지는 게 이치다. 아름다운 꿈일수록 흙탕물을 뒤집어쓰는 법이니까.

▶대통령(MB)이 변했다. 친(親)서민, 중도실용이 곳곳에서 발현되고 있는 것이다. 113년 만에 최고지도자로는 처음으로 강원도 홍천을 방문했고 이곳에서 고추도 땄다. 마을사람들은 다슬기와 고랭지 배추로 국을 끓이고, 찰옥수수와 단호박 튀김, 식혜, 막걸리를 내놓으며 대통령을 환대했다. 남대문시장에 가서는 손녀에게 줄 한복, 무화과, 꿀타래를 사고 상인들과 설렁탕도 먹었다. 이제 재래시장은 기본 투어가 됐고, 농촌과 군부대는 민생행보의 코스가 됐다. 그런데 ‘서민과 복지’는 노무현 정권이 원조다. 입만 열면 서민, 눈만 뜨면 복지를 외친 그 때와 닮아있다. 그러나 진정성 없이 ‘서민’을 부르짖은 결과는 어땠을까. 서민을 챙겨 지지도는 올라갔지만 ‘살만 했던’ 중산층만 몰락하는 역조현상이 벌어졌다.


▶일본의 수탈로 조선의 식량난이 극에 달하자 총독부는 쌀밥을 많이 먹으면 머리가 나빠지고 건강을 해친다고 헛소문을 냈다. 이승만 정부는 1950년 쌀 파동 때 밀수출범을 사형시키기까지 했다. 어머니들은 밥밑에 물에 불린 통보리와 감자를 깔고 그 위에 흰 쌀을 얹은 ‘삼층밥’을 지었다. 이에 박정희 정부는 1976년 통일벼를 개발해 지긋지긋한 보릿고개의 고통을 걷어냈다. MB와 정운찬 총리 후보자는 학창 시절 끼니 굶기를 밥 먹듯 했던 극빈체험자로 빈곤의 통증을 온몸의 DNA로 각인시킨 사람이다. 그러나 서민정치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모두들 부자다. 이런 ‘부자 정치인’들이 서민들을 챙긴들, 폐부 깊숙이 저며 오는 슬픔까지 알 턱이 없다.


▶가난한 1인가구가 늘고 있다. 다섯 집 중 한 집 꼴, 341만여 가구가 혼자 살림을 꾸리고 있다. 두 평(6.6㎡)이 채 안 되는 단칸방에서 라면과 간장 종지를 놓고 끼니를 때운다. 이들 중 절반은 한 달 수입이 100만 원에 못 미치는 저소득층인데 싱글벙글 웃을 일 없는 싱글들이다. 청년 실업자, 알바근로자, 영세자영업자 등 고용보험에서 소외돼 있는 '신빈곤층'만 823만 명. 1인당 빚 1679만 원, 국가채무 366조 원인 세상에 ‘서민 위로’는 특효약이 아니다.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빈곤에서 구제한다’는 경세제민(經世濟民)은 서민을 진정으로 품을 때 비로소 열린다. MB는 “상황이 너무 딱하면 거절 못한다”며 서민행보를 하고, 참모들은 “대통령 만나는 게 로또 잡는다”는 말이 있다며 “민원인들에게 약속을 너무 쉽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뜯어말린다. 북 치고 장구 치는 것은 여기까지다. 대선 때 공언한 ‘세종시 약속’을 20개월 넘도록 방치하는 것은 해도 해도 너무한 민심이반이다. 세종시도 국가적 ‘민원’이기에 하는 말이다.
Posted by 나재필

 ▶내 탓이오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1위에 오바마가 뽑혔다. 대통령 당선인 자격으로 1위에 오르기는 1948년 아이젠하워에 이어 50년 만의 일이다. 오바마는 당선 직후 정적(政敵)이었던 힐러리를 국무장관에 신속하게 내정했다. 그것은 화합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힐러리는 16년간 무려 13차례나 존경받는 여성 1위에 올랐다. ‘내 탓이오’를 선언하고 아름다운 승복을 통해 신선한 감동을 주었던 매케인은 3위를 차지했다. 매케인은 최근 오바마의 통합정치에 적극 협력하겠다고 공언했다. 경제위기와 이라크전 등 안팎으로 힘든 시기에 ‘내편 네편’을 따질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대선 때의 앙금보다는 ‘나라가 먼저(Country first)’라며 국익을 선택했다. 진정한 승자는 2등에게 손 내미는 자이고, 1등에게 다가서는 자이다. 1등은 2등을 겸허히 품고, 2등은 1등에게 질투하지 않는 것이 ‘통 큰 정치’다. 입으론 국익을 말하면서, 행동으로는 ‘이익’을 따지는 정치인은 그야말로 삼류다.


 ▶네 탓이오
 
집안이 시끄러운 것도 내력이 있는 법이다. 선조 때부터 시작된 당파싸움은 임진왜란, 병자호란 속에서도 계속됐다. 당파싸움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왕을 자신의 편에 서도록 비호(庇護)하는 거였다. 숙종은 이를 이용해 한쪽 당파가 너무 커졌다 싶으면 그 당파를 몰아내고, 다른 당파로 조정을 채웠다. 서인과 남인 ‘양당 체제’는 어느 날 남인과 북인, 노론과 소론의 ‘4색당파’로 변했다. 관리와 유생들은 나라걱정은 차치하고 날마다 ‘네 탓 타령’만 했다. 300여 년이 흐른 지금의 한국 정치도 ‘네 탓’ 때문에 죽어가고 있다. 정당 간에는 당파, 정당 안에선 파벌 싸움으로 허구한 날 멱살잡이를 하고 있다. 좌로 나는 것은 좌로만 날고, 우로 나는 것은 우로만 난다. 그 날개는 ‘보수와 진보’라는 허울 좋은 명패를 달고 있지만 둘 다 보수도, 진보도 아닌 듯하다. 그들에게 2등은 두 번째 승자가 아니라 첫 번째 패자다. 생각과 행동은 아류(亞流)이면서 일류인척 하는 것은 ‘쌈마이’ 짓이다.


 ▶덕분에

 ‘덕분에’가 아닌 것은 이 세상에 없다. 모두가 ‘덕분에’ 이루어지고 있다. 실패한 덕분에, 비틀거리고 넘어진 덕분에 조금씩이나마 진전되는 것이다. 네 탓을 하지 않은 덕분에 내 자신이 용서받는다. 조금은 억울해도, 조금은 밑져도 ‘덕분에’로 살아야 한다. 겨울이면 저마다 바다를 찾는다. ‘바다 덕분에’ 상처받은 영혼들은 위로받는다. 낙조를 보며 지난날을 반성하고 일출을 보며 새 출발을 기약한다. 바다는 모성을 가지고 있어 모두를 품는다. 하물며 프랑스 사람들은 바다(la mer)를 어머니(la mere)라 하지 않던가. 조용히, 바다를 보면 사람의 가슴 한복판에도 섬이 있음을 절감하게 된다. 땅의 끝이 바다가 아니라 땅의 시작이 바다임을 알게 된다. ‘덕분에’를 몸으로 느끼려면 바다로 가라. 그곳에 가면 누구나 ‘내 탓, 네 탓’ 안하고 바다에 안길 수 있다.


 ▶지금의 끝은 과거다. 지금 이순간은 1초 후 과거가 되고 미래를 위한 시작이 된다. 2008년은 이제 ‘어제’가 됐다. 부푼 꿈을 안고 출발했지만 슬픈 가슴을 쓸어내려야했던 2008년은 잊어버리자. 망각은 새로운 출발을 위한 각성제다. 오늘을 살기도 버거운데 어제를 잡고 있는다면 내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2009년 슬로건은 ‘네 탓’이 아니고 ‘내 탓’이다. ‘내 덕택’에가 아니라 ‘네 덕분’이다.
Posted by 나재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