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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27 의자왕이 남의 나라 사람인가?

▶삼국사기를 쓴 고려 문신 김부식은 신라 왕실의 후예다. 때문에 삼국사기에는 신라중심의 사관(史觀)이 고리타분하게 박혀있다. 사기에는 고구려의 멸망이 수·당나라에 대한 불순한 태도 때문이라며 중국 역성을 든다. 또한 백제가 전쟁을 일삼고 대국에 거짓말을 하는 죄를 지었다고 기록했다. 강대국의 비위를 거스를 염려가 있는 부분은 본기(本紀)에 적지 않거나 은유법으로 슬쩍 피했다. 광개토대왕이 대마도와 일본의 왜를 복속시키고 중국 요서지방으로 진출한 사실도 적지 않았다. 백제가 중국 동부지방으로 진출하고 대마도를 복속시킨 사실도 빼먹었다. 백제의 본기가 신라본기의 35%, 고구려 본기가 신라본기의 약 60%밖에 되지 않는다. 결국 김부식은 신라의 눈으로, 승자의 눈으로 역사서를 썼다. 어찌 보면 ‘왜곡’이었다.


▶660년 7월 13일 밤. 의자왕은 사비성을 빠져나와 웅진으로 몸을 피했다. 휘영청 밝은 달이 뜬 낙화암벽 백마강은 ‘눈물’로 출렁였다. 궁녀 3000여 명은 바위에서 ‘꽃처럼’ 떨어졌다. 끝내 포로가 된 의자왕은 태자 등 1만 2000여 명과 함께 당나라로 압송됐다. 그러나 나라 잃은 왕으로서의 번민과 슬픔, 자책 때문에 얼마 가지 않아 병사했고 이역만리 낙양 북망산에 묻혔다. 김부식은 백제의 멸망을 소홀히 취급했다. 백제와 고구려를 ‘적국’처럼 그리는가하면 김유신을 용장으로, 계백을 적장으로 은유했다. 당나라와 손잡은 문무왕은 통일을 완성한 ‘우리 편’으로, 의자왕은 사치와 향락에 빠진 ‘난봉’으로 기록했다. 그러나 신라의 삼국통일은 당나라 외세를 불러들여 이룩한 ‘불구의 합체’다. ‘충청·호남대통령’ 의자왕의 멸절(滅絶)과, 황산벌에서 계백이 대패했을 때 역사는 박수를 쳤다. 역사는 승자의 것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화해와 통합의 메시지를 남기고 영면했다. 그는 빈털터리 정치 낭인에서 대통령까지 지내며 굴곡 많은 생을 살았다. 민주화와 민족통일을 향한 의지는 투옥과 연금, 망명의 고통을 딛고 인동초(忍冬草)처럼 피어올라 헌정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와 해방 후 첫 남북정상회담이란 열매를 맺었다. 최대 국난이었던 외환위기를 극복했고 지역주의 타파에 헌신했다. DJ는 “훌륭한 대통령을 했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혼신의 노력을 다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했다. DJ의 정치역정은 승자로서가 아니라 ‘시대의 양심’을 지킨 의로운 자의 기록이다.


▶역사는 패자를 위해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역사는 절대다수 백성을 대변하기 보다는 1% 특권층 위주로 기록됐다. 지금 우리가 DJ를 기억하며 광주를 떠올리는 것은 ‘빛고을’에 대한 ‘빚’ 때문이다. 폭도로 몰고, 폭력을 행사한 유혈의 책임 때문이다. 그동안 역사는 승자에 의해 기록되고, 승자에 의해 변질됐다. 그러나 이제 역사는 승자의 것이 아니라 의로운 자들의 기록이다. 정부의 눈엔 여전히 ‘신라’가 아군처럼 보일지 모른다. 전라도, 경상도가 ‘화개장터’서 손을 잡지만 아직도 ‘친구’ 같아 보이진 않는다. 대통령이 ‘중도론’을 내세우며 서민의 손을 잡지만 어쩐지 ‘친근’해 보이진 않는다. 어설픈 절충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DJ가 숙제로 남긴 화해와 통합. 입만 살아서 친한 척 하는 이 시대 짧은 눈과 경박한 시대정서를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Posted by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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