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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충청로 2008.09.18 12:13
 ▶핫바지는 솜을 두어 지은 바지를 뜻하는데, 시골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을 낮잡아 이를 때 쓰이기도 한다. JP는 95년 2월 민자당 총재였던 YS와 결별하고 민자당을 탈당했다. 3당 합당 이후 5년 만에 갈라선 것이다. JP는 '노병(老兵)에게도 애국의 권리는 있다'며 자민련을 창당했고 6·27 지방선거에서 '충청도 핫바지론'으로 돌풍을 일으켰다. 핫바지론은 "다른 지역은 자기지역 사람을 밀어주어 정치 세력화하는데 왜 충청도는 자기지역을 팽개치느냐, 충청도는 핫바지냐"는 것이다. 수십 년간 지역의 인물을 몰표로 밀어주던 영·호남에 대한 역정(逆情)이기도 했다. JP의 '핫바지론'은 홀대론과 맞물려 근래에도 통했다. 지난 4·9총선에서 이심전심(李沈傳心)으로 통한 '이회창-심대평 브라더스'가 자유선진당 신풍(新風)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핫바지'는 심약한 충청도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두터운 충정의 '갑옷'을 입지 못하고 스스로 '핫바지'를 입어 승리하는 것은 비애(悲哀)다. 핫바지는 '충청의 인디언'이면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충청 토착민의 울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 달라졌다. 충청도가 무서워졌다. '충청도 양반'이라는 닉네임을 털고 한반도 중심의 거대한 촛불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조선에서는 역모를 저지르면 죄인의 집을 부수고 그 자리를 파내 연못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잔혹한 형벌이 읍호(邑號) 강등이었다. 행정구역의 서열을 낮추고 이름까지 바꾸는 것. 여기에는 모함과 모략에 의한 것이 많았다. 조선은 개국과 함께 충주·청주·공주·홍주(지금의 홍성)를 따로 묶어 충청도(忠淸道)라고 불렀다. 그러나 충주나 청주에서 정치범이 나올 경우 도(道)의 이름이 바뀌었다. 연산군 땐 청주가 빠지고 공주가 그 자리를 차지해 충공도(忠公道)가 됐다. 중종 때는 청공도, 명종 때는 청홍도, 광해군 땐 공청도로 바뀌었다. 인조 때는 공청도·홍충도·충홍도로 개칭을 거듭했고 효종·현종 때는 공홍도와 충홍도로, 숙종 때는 공청도·공홍도·충청도로 이름을 바꿔 탔다. 충청도는 '충·청·공·홍'을 섞어가며 12가지로 불렸다. 조선8도 중에서 도 이름이 가장 많이 바뀐 곳이 충청도다. 이는 역사의 소용돌이에 가장 많이 휘둘리고, 가장 많이 상처받았던 증거로 보아도 무방할 듯싶다. 그야말로 충청의 홀대는 조선 500년의 상처이기도 하다.


 ▶양반은 얼어 죽어도 곁불은 쬐지 않는다며 체통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충청도 사람이다. 겉은 샌님 같아도 속은 야물딱진 게 충청도 사람들이다. 남에게 상처 될만한 말은 곱씹은 후 조용히 말하는 이 또한 충청도 사람이다. 자기 주관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 의뭉스럽다는 오해를 받지만, 이는 삼국시대부터 지리멸렬한 각축장으로 이용된 탓이다. 자기 의사를 빨리 밝히기보다 신중하게 행동하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할 말을 해야 할 때,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가장 먼저 분기탱천한 사람도 충청인들이다. 구한말 전국 의병의 발화점도 충청도 제천이었다. 지금 대한민국 정국은 수도권 규제완화 등 충청권 발전과는 딴길로 새고 있다. 이러한 때 비수도권 10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잇따라 전국회의를 준비하고 있단다. 이는 '상소문(上疏文)'이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만큼은 그들의 목마른 외침이 충청도 민심을 아우르는 '신문고'가 되어 귀막은 정부의 가슴속에 메아리치길 기대한다. 

Posted by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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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재 2008.11.19 22: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청도, 충공도, 청홍도, 공홍도 얘기는 처음 들었네. 정말 처음 들었어. 왜 지금껏 아무도(국사교사들 포함) 내게 그런 얘기를 해주지 않았지.난 충청도에 정말 관심이 많은 사람인데. 백과사전에서조차 들어보지 못한 얘기다. 나차장님, 새로운 사실을 알게 해줘서 정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