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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자린고비

충청로 2008.12.11 09:03


  ▶세계 최고의 쿵푸 배우인 성룡(成龍·청룽)은 1954년 홍콩의 빈가(貧家)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출산 병원비 26달러가 없어 성룡을 의사에게 팔려고까지 했다. 성룡은 곡예와 무술, 연기를 가르치는 오페라단에 들어가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비를 피할 수 있는 잠자리와 풀떼기를 얻기 위해서였다. 그는 이소룡의 '정무문'에 스턴트맨으로 참여했고 이소룡이 갑자기 죽자 주연 대타로 떴다. 코미디와 정극을 결합한 '취권'으로 스타덤에 오른 그는 몸 사리지 않는 연기를 통해 감독과 제작자로 성장했고 세계 액션계를 평정했다. 최근 성룡은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다'며 30여 년간 모은 20억 위안(약 4000억 원)을 사회에 환원키로 했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죽기 전 통장을 깨끗이 비우겠다는 그의 거룩한 뜻이 세계를 감동시키고 있다. 


 ▶깍정이(깍쟁이)란 조선시대 구걸하던 사람들을 일컫는데 현대 들어 인색한 사람이란 뜻으로 통칭된다. 서울깍쟁이는 도·농이 혼재하던 60~80년 격동기에 탄생한 '서울 똑순이'의 상징적인 이름표다. 장삼이사들이 '공순이·공돌이'라며 폄훼할 때 그들은 공장 굴뚝의 매캐한 그을음을 마시며 돈을 벌었다. 힘들게 번 돈을 고향의 동생에게 부치고, 부뚜막에 앉아 외로움을 곱씹던 '누님'들이 바로 첨단 서울을 일궈낸 화수분이다. 서울은 그야말로 생선처럼 뛴다. 한쪽은 프라다, 샤넬, 루이비통, 버버리, 구찌의 명품 부티크가 요란하지만 한쪽에선 땀으로 얼룩진 티셔츠를 입고 거리에서 토스트로 끼니를 때우는 곳이다. 부자와 노동자가 지하철에서 머리를 맞대고 조는 '인간정글'이 바로 서울이다. 뛰지 않으면 버텨낼 수 없는 인조인간 도시이기에 그들은 수많은 세월을 '자린고비'로 살 수밖에 없었다.

 ▶장독에 빠진 파리 다리에 묻은 간장이 아까워 십 리를 쫓아가고, 며느리의 생선 만진 손을 씻어 국을 끓이게 하고, 천장에 굴비를 달아놓고 밥 한 그릇 비웠다는 얘기는 구두쇠의 얘기가 아니다. 평생을 부지런하게 일하고 절약해 만석꾼이 된 '자린고비' 조륵 선생의 얘기다. 그는 충북 음성 삼봉리 사람인데 전라·경상도에 심한 가뭄이 들자 그동안 모은 재산을 아낌없이 베풀었다. 뭐 하나 허투루 쓰는 법이 없고 마른 수건도 다시 쥐어짜는 그였지만 불우이웃을 위해선 곡간을 풀고 재물을 털었다. 선생의 도움을 받은 백성들은 그 고마운 뜻을 기려 자인고비(慈仁考碑)라는 송덕비를 세웠다. 자린고비는 구두쇠와 다르다. 자린고비는 인색하지만 남에게 베풀고, 구두쇠는 남에게 무조건 인색한 사람을 가리킨다. 애옥살이 살림에 몸부림치는 세상, 조륵 선생의 자린고비 정신이 새삼 돈의 노예(수전노·守錢奴)가 된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신(新)자린고비'가 탄생했다. 80년대 풍요롭게 자란 20~30대 젊은이들이 아낄 땐 아끼고, 쓸 땐 현명하게 쓴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그들은 우수리라도 모으고 절약해 자신을 경영하고, 그 돈을 봉사하는 데 쓴다. 자판기 커피 값은 300원, 연탄 값은 대략 400원이다. 커피는 마시는 5분간 행복하고 연탄은 5시간 동안 행복하다. 한 잔의 커피 값이면 서민들의 구들장이 5시간 동안 행복해진다. 한 잔의 커피는 아깝지 않게 사지만 한 장의 연탄 값은 아까워하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초상화를 보며 '아름다운 신종족' 신(新) 자린고비들에게 경의의 박수를 보낸다.
Posted by 나재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