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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2.19 노숙자는 시대가 낳은 인디언들이다
  2. 2008.09.18 충청도 (1)
노숙자들이 골판지로 집 짓는 것을 그들 용어로 '난장친다'고 한다. 저 어둠의 긴 터널은 언제 걷힐지 모르는 삶의 기나긴 냉골이다.             사진제공=신현종님 shj0000@cctoday.co.kr

 ▶노숙자는 시대가 낳은 ‘인디언’들이다. 고향을 떠나 냉기 가득한 제3지대에 갇혀 버린 사람들. 그래서 그들은 ‘종착역’일지도 모르는 역사(驛舍)를 거처로 삼는지도 모른다. 도시가 소등을 하면 그들은 하늘을 지붕 삼아 ‘난장(골판지 집)’을 치는데 냉골에 누워있는 모습이 절망을 부화하고 있는 듯하다. ‘꼬지(구걸)’로 번 돈이나 ‘짤짤이(단체서 거저 나눠주는 200~500원)’로 받은 돈은 체온을 데울 술값도 안 된다. 최소 5000원은 있어야 찜질방서 잘 수 있고, 박스를 20만 원어치 팔아야 3.3㎡(한 평)짜리 쪽방서 한 달을 살 수 있다. 이들 중에는 잘나가던 사장님도 있고 인텔리 노숙자도 있다. 이들은 국과 반찬을 한데 섞어 나눠주는 이른바 ‘개밥’을 먹으며 막노동 시장으로 팔려간다. 그들의 삶은 냉골서 시작해 냉골서 끝난다.


 ▶노숙자의 평균수명은 48.3세로 한해 평균 200여 명이 사망한다. 실직·파산·가정불화로 거리에 나앉은 전국의 노숙자는 5000여 명. 이들은 룸펜(부랑자)이 아니다. IMF 경제체제 이후 노숙자는 사회의 밑바닥 수치를 대변하는 바로미터가 됐다. 경제혹한기를 버티지 못하면 누구나 노숙자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얼마 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연설을 듣던 60대 흑인 여성은 “아들이 직장을 잃어 집이 없어요. 우리는 픽업트럭에서 노숙을 하고 있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라며 울먹였다. 오바마는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며 “당신을 도울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다”고 위로했고, 백악관은 즉각 그녀의 집을 주선하는 조치를 취했다. 풍찬노숙(風餐露宿)에 떨고 있는 국민을 챙겨야 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다. 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공권력도, 죽음도 아니다. 가슴을 얼게 하는 새벽바람과 사회의 냉소가 그들에겐 공포다.


 ▶IMF 때 대우그룹을 공중분해시킨 김우중 전 회장은 단돈 12만 원으로 힐튼호텔 23층 펜트하우스를 1년 내내 이용했다. 하루 호텔숙박비 328원에 25년 독점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특급호텔의 로열스위트 방값은 하루에 1000만 원쯤 한다. 그는 병이 들자 하룻밤 77만 원짜리 호텔급 병실을 이용했다. 학력위조와 변양균 러브스토리로 파문을 일으킨 신정아는 뉴욕 도피 생활 40일간 호텔비만 1000만 원을 썼다. 한강과 남산타워 등이 훤히 보이는 서울 모병원의 VIP 병실은 279㎡(84평)짜리 하루 이용료가 400만 원이다. 서민들이 사용하는 6인실 사용료(보험적용가 1만 원)보다 400배가량 비싼 것으로 1개월 이용료가 1억 2000만 원이다. 병들어도 쪽방과 스위트룸으로 나뉘는 게 세상사다.


 ▶정신적 큰어른이자 ‘시대의 양심’이었던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善終)했다. 그는 명동성당을 약자와 병자의 성역으로 만들었다. “경찰이 성당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다음 신부들을 보게 될 것이고, 그 신부들 뒤에는 수녀들이 있습니다. 당신들이 연행하려는 학생들은 수녀들 뒤에 있습니다. 학생들을 체포하려거든 나를 밟고, 신부와 수녀들을 밟고 지나가십시오"라고 했다. 또한 “병자와 나 자신을 하나로 생각하고 옆에 있는 병자를 사랑하고 또 사랑하라”고 강조했다. 약자들에게 그는 따뜻한 체온이었고 든든한 ‘울타리’였다. 지금 우리가 찬서리를 피해 노숙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성자(聖者)는 일깨워주고 있다. 겨울이 두터운 외투를 벗고 봄을 영접하고 있는 요즘, 노숙하는 이들의 삶에도 한바탕 봄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나재필

충청도

충청로 2008.09.18 12:13
 ▶핫바지는 솜을 두어 지은 바지를 뜻하는데, 시골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을 낮잡아 이를 때 쓰이기도 한다. JP는 95년 2월 민자당 총재였던 YS와 결별하고 민자당을 탈당했다. 3당 합당 이후 5년 만에 갈라선 것이다. JP는 '노병(老兵)에게도 애국의 권리는 있다'며 자민련을 창당했고 6·27 지방선거에서 '충청도 핫바지론'으로 돌풍을 일으켰다. 핫바지론은 "다른 지역은 자기지역 사람을 밀어주어 정치 세력화하는데 왜 충청도는 자기지역을 팽개치느냐, 충청도는 핫바지냐"는 것이다. 수십 년간 지역의 인물을 몰표로 밀어주던 영·호남에 대한 역정(逆情)이기도 했다. JP의 '핫바지론'은 홀대론과 맞물려 근래에도 통했다. 지난 4·9총선에서 이심전심(李沈傳心)으로 통한 '이회창-심대평 브라더스'가 자유선진당 신풍(新風)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핫바지'는 심약한 충청도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두터운 충정의 '갑옷'을 입지 못하고 스스로 '핫바지'를 입어 승리하는 것은 비애(悲哀)다. 핫바지는 '충청의 인디언'이면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충청 토착민의 울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 달라졌다. 충청도가 무서워졌다. '충청도 양반'이라는 닉네임을 털고 한반도 중심의 거대한 촛불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조선에서는 역모를 저지르면 죄인의 집을 부수고 그 자리를 파내 연못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잔혹한 형벌이 읍호(邑號) 강등이었다. 행정구역의 서열을 낮추고 이름까지 바꾸는 것. 여기에는 모함과 모략에 의한 것이 많았다. 조선은 개국과 함께 충주·청주·공주·홍주(지금의 홍성)를 따로 묶어 충청도(忠淸道)라고 불렀다. 그러나 충주나 청주에서 정치범이 나올 경우 도(道)의 이름이 바뀌었다. 연산군 땐 청주가 빠지고 공주가 그 자리를 차지해 충공도(忠公道)가 됐다. 중종 때는 청공도, 명종 때는 청홍도, 광해군 땐 공청도로 바뀌었다. 인조 때는 공청도·홍충도·충홍도로 개칭을 거듭했고 효종·현종 때는 공홍도와 충홍도로, 숙종 때는 공청도·공홍도·충청도로 이름을 바꿔 탔다. 충청도는 '충·청·공·홍'을 섞어가며 12가지로 불렸다. 조선8도 중에서 도 이름이 가장 많이 바뀐 곳이 충청도다. 이는 역사의 소용돌이에 가장 많이 휘둘리고, 가장 많이 상처받았던 증거로 보아도 무방할 듯싶다. 그야말로 충청의 홀대는 조선 500년의 상처이기도 하다.


 ▶양반은 얼어 죽어도 곁불은 쬐지 않는다며 체통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충청도 사람이다. 겉은 샌님 같아도 속은 야물딱진 게 충청도 사람들이다. 남에게 상처 될만한 말은 곱씹은 후 조용히 말하는 이 또한 충청도 사람이다. 자기 주관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 의뭉스럽다는 오해를 받지만, 이는 삼국시대부터 지리멸렬한 각축장으로 이용된 탓이다. 자기 의사를 빨리 밝히기보다 신중하게 행동하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할 말을 해야 할 때,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가장 먼저 분기탱천한 사람도 충청인들이다. 구한말 전국 의병의 발화점도 충청도 제천이었다. 지금 대한민국 정국은 수도권 규제완화 등 충청권 발전과는 딴길로 새고 있다. 이러한 때 비수도권 10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잇따라 전국회의를 준비하고 있단다. 이는 '상소문(上疏文)'이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만큼은 그들의 목마른 외침이 충청도 민심을 아우르는 '신문고'가 되어 귀막은 정부의 가슴속에 메아리치길 기대한다. 

Posted by 나재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