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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1.18 친일파와 친이파
  2. 2009.09.24 세종시 두고 구라 까는 정치인들

▶“어머니, 저는 사쿠라 잎이 산화하듯 스러질 것이며, 일본 왕을 위해 꽃처럼 웃으며 죽겠습니다.” 군국주의 광풍 속에 죽어간 일본인들의 처절한 이별가다. A급 전범 도조 히데키는 “포로가 돼 수모를 겪지 말고 사무라이답게 자살하라”고 특명을 내렸다. 실제로 이 명령에 따라 수십만 명의 일본인이 자진해서 죽었다. 하지만 정작 도조 자신은 패전 후 죽음을 두려워해 자살을 선택하지 않고 연합군 포로가 됐다. 도조는 재판정에서 일왕의 전쟁 책임론을 번복하는 등 변심을 되풀이하다 교수형에 처해졌다. ‘깡다구’ 좋다는 그들도 죽음 앞에선 목숨을 구걸할 수밖에 없는 3류 사무라이였던 것이다.


▶일왕 히로히토는 63년 간 ‘살아있는 신’으로 불린 특A급 전범이다. 히로히토는 잔혹한 방법을 동원해 인간이 어떻게 죽어 가는지를 실험한 ‘악마의 소굴’ 731부대를 만들었다. 패망 후에는 기소를 면하기 위해 731부대 연구물을 미국에 넘겨주는 추악한 거래도 했다. 또한 꽃다운 10대 여성들 20여만 명을 성노예(위안부)로 만들어 영혼을 짓밟기도 했다. 이 같은 만행으로 무고한 아시아인 2000만 명, 일본인 300만여 명, 미·영 연합군 6만 명이 희생됐다. 거슬러 올라가 임진왜란 땐 12만 명에 달하는 조선 양민의 코와 귀가 ‘쪽발이’들의 전리품(戰利品)이 됐다. 일본의 원죄가 400년을 넘어가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파’ 4400명을 발표했다. 독립운동을 방해한 자, 국권침탈에 협력한 자, 경찰 간부로 재직한 자, 친일작품 활동을 한 자, 판·검사로 재직한 자, 민족 구성원을 감금·고문·학대한 자가 망라돼있다. 그러나 어디 친일(親日)한 자가 4400명뿐이겠는가. 4만 명, 아니 400만 명에 이를지도 모른다. 국가가 없었을 때 ‘친일’은 살기 위한 수단이었다. 총부리를 들이대고, 살점을 뜯어내고, 서슬을 들이대는 것에 대한 ‘두려운 굴복’이었다. 비굴한 자는 앞잡이가 됐고, 굴욕에 항거한 자는 주검이 됐다. 친일파들은 쪽발이들의 사주를 받고 끄나풀 노릇을 하며 같은 민족을 암굴(暗窟)에 밀어넣었다. 밤에는 이슬의 잔영(殘影)에 숨어 감시하고, 낮에는 완장과 죽창에 기대어 양민을 이간질했다. 이들 앞잡이들의 비열함은 6·25전쟁 때 ‘낮엔 태극기, 밤엔 인공기’를 흔들며 세습됐다. 근래 친일파의 명수(名數)를 놓고 누가 빠졌다, 왜 넣었느냐 말들이 많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이미 ‘죽고 없어진’ 친일1세대의 단죄가 아니라, 아직도 대한민국 전반에 뿌리박혀 있는 ‘앞잡이’ 사고방식의 청산이다.


▶1994년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이회창을 총리로 발탁했다. 그러나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자 ‘총리 이회창’을 4개월 만에 경질했다. 요즘 정운찬 총리의 행보를 두고 일각에선 ‘YS-이회창 궁합’과 닮았다고 한다. 두 사람 모두 총리 발탁 시 ‘중도 개혁성향’으로 지명도를 쌓았고, 잠재적인 대선주자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할 말은 하겠다던 정 총리는 친이(親李) 노선에서 ‘예스총리’처럼 앞장서 걷고 있다. 대선 전부터 MB의 감세정책과 대운하사업을 강하게 반대했던 정 총리가 정권의 ‘영의정’이 된 후 ‘총대’를 멘 형국인 것이다. 세종시는 ‘탁상머리’에 앉아 계산기나 두드리며 ‘효율성 타령’을 할 문제가 아니다. ‘행정’이 세종시에 내려오면 나라가 절단 나는가. 기업·혁신도시도 부족한 판국에 ‘기업’ 몇 개를 세종시에 툭 던져주면 끝날 일인가. MB정부의 완장을 찬 ‘고향 총리’가 고향을 울리고 있다.

Posted by 나재필
화창한 날씨를 보인 가운데 대전 중구 문창초 가을운동회에서 어린이들이 힘차게 달리기 시합을 하고 있다. 어른들의 거짓말 세상, 이 맑은 동심들이 몰랐으면 좋겠다.
사진=충청투데이 전우용 기자
yongdsc@cctoday.co.kr

▶정치적 거짓말의 역사는 40년에 가깝다. 박정희 정권의 3선 개헌에서 시작된 ‘거짓말’은 현재까지 진행형이다. 노태우 씨는 대선 때 약속한 ‘중간평가’를 하지 않았고, 김영삼(YS) 씨는 3당 통합 때 합의한 내각제개헌을 까먹었다. ‘역사의 심판에 맡기겠다’던 전두환·노태우 씨도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지난 92년 김대중(DJ) 씨는 정계은퇴를 선언한 뒤 ‘약속 파기’라는 눈총을 무릅쓰고 복귀해 대통령까지 지냈다. 정몽준(MJ) 씨는 2002년 노무현 지지선언을 한 후 하루 만에 번복해 ‘말 바꾸는 정치인’이라는 닉네임을 얻었다. 법과 원칙을 고수해 ‘대쪽’으로 불린 이회창 씨도 은퇴와 복귀를 반복, ‘제2의 DJ, 제2의 이인제’라는 비난을 받았다. 목표를 쟁취하기 위해 공약을 ‘밥’ 먹듯 하고 대권을 잡고선 ‘입’을 싹 닦는 파렴치한의 정치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괴짜’ 허경영 민주공화당 총재가 최근 디지털 싱글 ‘콜미’를 발표하며 가수 전업을 선언했다. 단독 콘서트도 열었다. ‘환갑’의 나이에 아이돌 가수처럼 랩을 불렀다. 그는 “내 뒤에 선녀 12명이 있다. 2012년 지구와 행성의 충돌을 막기 위해 왔다. 눈빛으로 병을 고친다. 잠들기 전에 허경영을 부르면 젊어진다. 암도, 신종플루도 자신 때문에 못 들어온다. 내 아이큐는 430이다. 축지법·공중부양을 한다”고 허구한 날 허풍을 치고 있다. 자신을 아시아연방의 대통령, 돌아온 광개토대왕이라고 떠들며 거의 ‘사이비 종교’ 수준의 발언도 한다. ‘허풍’ 허경영의 허무맹랑한 공약과 언동을 보며 대한민국의 ‘뻥짜’ 공약이 오버랩 되는 것은 왜일까. 거짓말의 강도는 확연히 다르지만 다 같은 ‘구라’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빙빙 맴돈다.


▶역대 대선을 보면 ‘중원(충청)’을 장악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DJ, 노무현, 이명박(MB) 당선은 ‘캐스팅보트’라는 충청권 표심이 이뤄낸 결과물이다. MB는 지난 2007년 3월 한나라당 대선주자로 지지율이 기대이상으로 높자 “국민들이 나를 보면서 약속을 하면 꼭 지킬 사람이라고 기대하는 것 같다”면서 “말보다는 실천으로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2009년 9월 충청도는 7번 이상 ‘세종시’ 공언을 했던 MB에게 뒤통수를 맞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여기에 정운찬 총리후보자의 헤아릴 수 없는 깜냥에 또 한번 놀라고 있다. 그는 충청도 출신이라는 것을 항상 자랑스럽게 여기며 살았다고 공언했지만, 충청도를 대하는 말본새도 그렇고, 세종시를 다루는 품새도 영 마뜩찮다. 천재지변이 없는 한 그는 ‘여당의 배후’ 아래 총리가 될 것이다. 그러나 충청인은 암울하다. 그가 총리로 내정되자 북 치고 장구 치며 좋아했던 충청인은 이제 세종시가 ‘동네북’이 되지 않을까 개탄스럽다.


▶충청권은 세종시를 요구한 적이 없다. 두 차례의 대선과정에서 대통령 공약으로 제시됐고 '그들만' 재미를 보았을 뿐이다. 대통령의 공약만 믿고 따라온 500만 충청인, 고향의 상처를 바라보며 이제나저제나 애타게 원안추진을 기다리는 700만 출향인들은 참담한 심경을 지울 길이 없다. 그래서인지 요즘엔 ‘수박’보다 ‘호박’에 더 끌린다. 왜냐하면 달콤하지 않아도 솔직담백하기 때문이다. 세종시 건설은 국익의 논란을 떠나 민심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더더욱 지켜야 한다. 그저 표심을 얻기 위해 대수롭지 않게 던진 ‘공수표’였다면 차라리 고개 숙여 속죄하라. 그리고 ‘다시는 뻥치지 않겠다’고 각서를 쓸지어다.

Posted by 나재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