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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2.25 칼의노래, 그리고 2008년

 ▶칼의 노래
 명량해협 울돌목으로 133척의 배가 몰려들었다. 그들은 조선 수군의 코를 잘라 소금에 절여 상부에 바치던 왜놈들이었다. 이순신에게는 13척의 배가 전부였다. 그의 검(劍)에는 ‘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라고 쓰여 있었다. 197.5㎝, 5.3㎏의 장검은 징징징 울며 비탄에 빠진 조선을 구했다. 그러나 임금이란 작자는 칼의 반대편으로 도망 다니며 수군통제사가 역모를 꾸미지 않을까 내내 마음을 졸였다. 당시 이순신의 아들 ‘면’은 고향 아산에서 적의 칼날에 어깨가 잘려 죽어갔다. ‘인간 이순신’은 병영 숙사에서 견딜 수 없이 무섭고 외로워 숨죽여 울었다. 400년이 지난 대한민국에 다시 칼의 노래가 들린다. 칼의 노래는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이곳저곳서 칼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정치계파 간 피바람, 구조조정, 혈루를 삼키는 민생경제가 그러하다. ‘장군 이순신’의 칼은 조선을 구했지만 지금 대한민국을 휘젓는 ‘칼’은 징징징 눈물만 난다.


 ▶불의 노래
 
‘경제’ 하나 만큼은 춤출 줄 알았다. 그러나 꽃불이 아니라 촛불이 켜졌다. 영어몰입교육 등 설익은 정책을 발표했다가 취소하고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출신), ‘강부자’(강남 땅부자) 내각 논란이 거세지면서 장관 내정자들은 옷도 입어보기도 전에 낙마했다. 일본이 독도를 두고 건방을 떨어도 큰소리 한번 못냈고,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사건을 두고도 큰소리 치다 말았다. 가만히 있는 불교를 건드려 산사의 스님들이 거리로 몰려나오게도 했다. 여기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까지 빚어지자 성난 촛불은 150일 간 들불처럼 타올랐다. 물대포를 쏘고 쓰러지고 초등학생까지 거리로 나서는 촌극이 빚어지자, 북악산 망루에서 눈물 흘리던 대통령이 끝내 사과했다. 이 와중에 600년 간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지켜 온 국보1호 숭례문도 불에 타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갔다. 불은 물대포로 껐지만 국민 가슴엔 씻을 수 없는 상흔이 남았다.


 ▶물의 노래
 
국민의 80% 이상이 반대한 대운하 문제로 한반도가 시끄러웠다. 물길이 흐르는 지역에선 땅값이 요동치고, 대기업 건설사는 앞장서서 ‘삽질’을 해댔다. 그러나 반대의 목소리가 급물살을 타자 ‘국민이 반대하면 추진하지 않겠다’며 꼬리를 내렸다. 하지만 대운하는 아직 끝이 아닌 듯하다. 최근 들어 ‘4대강 하천정비사업’이라는 이름으로 14조 원의 예산이 편성되는 등 이름만 바꾸어 재추진한다는 의혹이 일기 때문이다. 그런가하면 지난해 12월 7일 태안 기름유출사고가 터지면서 서해안 사람들은 ‘눈물바다’를 이뤘고 1년 간 큰 ‘수난’을 겪었다. 123만 명의 자원봉사자가 검은 재앙을 걷기 위해 그 곳을 찾았지만 바다를 살리고 위로해야 할 ‘정치’는 없고 쇼맨십 강한 ‘정치인’만 눈에 띄였다.


 ▶이별의 노래
 
2008년이 저물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지구 반 바퀴를 돌아 한국 경제를 마비시키고 주가는 반 토막, 부동산은 풍비박산이 났다. 금융·실물경제는 힘 한번 쓰지 못하고 고꾸라졌다. 못 살겠다고 외치는 민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국회는 대형 해머와 빠루(노루발), 전기톱을 동원해 연일 전쟁 중이다. 송년(送年)은 묵은 한 해를 잘 마무리하는 것이다. 온갖 수고로웠던 일들을 잊어버리고 반성해야 하지만 국민들은 2008년 12월이 고통스러울 뿐이다. 아무튼 잘 가거라 2008년. 넌 너무 지독했다.
Posted by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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