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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27 의자왕이 남의 나라 사람인가?
  2. 2009.06.18 1900년간 독재하에 살았다

▶삼국사기를 쓴 고려 문신 김부식은 신라 왕실의 후예다. 때문에 삼국사기에는 신라중심의 사관(史觀)이 고리타분하게 박혀있다. 사기에는 고구려의 멸망이 수·당나라에 대한 불순한 태도 때문이라며 중국 역성을 든다. 또한 백제가 전쟁을 일삼고 대국에 거짓말을 하는 죄를 지었다고 기록했다. 강대국의 비위를 거스를 염려가 있는 부분은 본기(本紀)에 적지 않거나 은유법으로 슬쩍 피했다. 광개토대왕이 대마도와 일본의 왜를 복속시키고 중국 요서지방으로 진출한 사실도 적지 않았다. 백제가 중국 동부지방으로 진출하고 대마도를 복속시킨 사실도 빼먹었다. 백제의 본기가 신라본기의 35%, 고구려 본기가 신라본기의 약 60%밖에 되지 않는다. 결국 김부식은 신라의 눈으로, 승자의 눈으로 역사서를 썼다. 어찌 보면 ‘왜곡’이었다.


▶660년 7월 13일 밤. 의자왕은 사비성을 빠져나와 웅진으로 몸을 피했다. 휘영청 밝은 달이 뜬 낙화암벽 백마강은 ‘눈물’로 출렁였다. 궁녀 3000여 명은 바위에서 ‘꽃처럼’ 떨어졌다. 끝내 포로가 된 의자왕은 태자 등 1만 2000여 명과 함께 당나라로 압송됐다. 그러나 나라 잃은 왕으로서의 번민과 슬픔, 자책 때문에 얼마 가지 않아 병사했고 이역만리 낙양 북망산에 묻혔다. 김부식은 백제의 멸망을 소홀히 취급했다. 백제와 고구려를 ‘적국’처럼 그리는가하면 김유신을 용장으로, 계백을 적장으로 은유했다. 당나라와 손잡은 문무왕은 통일을 완성한 ‘우리 편’으로, 의자왕은 사치와 향락에 빠진 ‘난봉’으로 기록했다. 그러나 신라의 삼국통일은 당나라 외세를 불러들여 이룩한 ‘불구의 합체’다. ‘충청·호남대통령’ 의자왕의 멸절(滅絶)과, 황산벌에서 계백이 대패했을 때 역사는 박수를 쳤다. 역사는 승자의 것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화해와 통합의 메시지를 남기고 영면했다. 그는 빈털터리 정치 낭인에서 대통령까지 지내며 굴곡 많은 생을 살았다. 민주화와 민족통일을 향한 의지는 투옥과 연금, 망명의 고통을 딛고 인동초(忍冬草)처럼 피어올라 헌정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와 해방 후 첫 남북정상회담이란 열매를 맺었다. 최대 국난이었던 외환위기를 극복했고 지역주의 타파에 헌신했다. DJ는 “훌륭한 대통령을 했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혼신의 노력을 다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했다. DJ의 정치역정은 승자로서가 아니라 ‘시대의 양심’을 지킨 의로운 자의 기록이다.


▶역사는 패자를 위해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역사는 절대다수 백성을 대변하기 보다는 1% 특권층 위주로 기록됐다. 지금 우리가 DJ를 기억하며 광주를 떠올리는 것은 ‘빛고을’에 대한 ‘빚’ 때문이다. 폭도로 몰고, 폭력을 행사한 유혈의 책임 때문이다. 그동안 역사는 승자에 의해 기록되고, 승자에 의해 변질됐다. 그러나 이제 역사는 승자의 것이 아니라 의로운 자들의 기록이다. 정부의 눈엔 여전히 ‘신라’가 아군처럼 보일지 모른다. 전라도, 경상도가 ‘화개장터’서 손을 잡지만 아직도 ‘친구’ 같아 보이진 않는다. 대통령이 ‘중도론’을 내세우며 서민의 손을 잡지만 어쩐지 ‘친근’해 보이진 않는다. 어설픈 절충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DJ가 숙제로 남긴 화해와 통합. 입만 살아서 친한 척 하는 이 시대 짧은 눈과 경박한 시대정서를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Posted by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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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충청투데이 홍성후기자

 ▶독재타령이 요란하다. 화살은 DJ(김대중)와 MB(이명박) 전·현직 대통령에게로 쏠린다. DJ는 최근 현 정권을 ‘독재’라고 비난하면서 행동하는 양심으로 분기탱천하라고 주문했다. 이에 청와대와 여당은 “전직 국가원수가 노욕(老慾)에 가득 차 국민들을 분열시키고 있다”고 맞받아쳤다. YS는 “틈만 나면 요설(饒舌)을 하는 DJ는 제발 입 좀 다물라”고 거들었고, 모 정치인 지지모임 회장도 “차라리 주소지를 북한으로 옮기고, 노 전대통령처럼 자살하라”고 했다. 이 얼마나 무서운 독설과 독선인가. 독재는 남의 말을 무시하는 것이다. 경청하지 않는 것이다. 독재가 욕을 먹는 것은 민심이 떠들어도 ‘모르쇠’로 일관하며 ‘혼자 잘났다’고 설쳐대기 때문이다.
 독재자가 설치면 국민이 ‘개고생’이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최근 워싱턴포스트 여론조사에서 ‘세계 최악의 독재자’ 3위에 올랐다. 북한은 3남 김정운(26)의 세습을 기정사실화하며 ‘100년 독재’를 선언했다. 악질 독재자 1위는 29년간 철권정치를 하며 163명을 살해한 짐바브웨의 무가베다. 다르푸르 대학살을 주도한 수단 대통령이 2위. 사이클론으로 14만 명이 숨졌는데도 태평했던 미얀마의 탄 슈웨가 4위에 뽑혔다. 카스트로 쿠바 대통령은 49년간, 리비아 대통령과 최근 사망한 가봉대통령은 40여 년간 독재했다. 공포정치로 악명 높았던 러시아 이반4세는 성바실리 대성당이 완성되던 날, 건축가들의 눈을 뽑아버렸다. 보석보다 아름다운 무덤 ‘타지마할’을 만든 건축가들도 왕에 의해 손목이 잘렸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건축물을 다시는 못만들도록 한 것이다. 독재란 이처럼 눈알이 뽑히고 손목이 잘리며 마지막 남은 가슴까지 찢어놓는다.


 ▶고구려는 동명왕을 시작으로 보장왕에 이르기까지 705년간 존립했고, 백제는 온조왕을 시작으로 의자왕까지 678년을 생존했다. 박혁거세가 시조인 신라는 박·석·김 씨가 992년간 56명의 왕위을 나눠먹었다. 박 씨가 10명, 석 씨가 8명, 김 씨가 38명이었다. 발해는 15명, 고려는 34명, 조선은 27명의 왕이 518년간 피를 섞어가며 세습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1967년여 동안 191명의 왕이 한반도를 지배한 셈이다. 그러나 ‘역사’에게 묻고 싶다. 세습왕조도 ‘독재’ 아니냐고. 부모 잘 만난 덕에, 못나도 왕이 되고 난봉꾼도 왕이 되는 게 세습이다. 외세를 불러들여 민족을 말살한 것이 삼국통일이 아니던가. 모든 역사는 승자에 의한, 승자를 위한,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우리는 '정통'이라는 번지르르한 허울 아래 1900년 넘게 ‘세습 독재’하에 살았는지도 모른다.


 ▶사실 ‘독재자 타령’을 하기 전에 제 가슴부터 열어봐야 한다. 사랑과 결혼, 돈과 출세, 권력과 편익을 위해서 누구나 ‘독재자’처럼 살고 있다. 가정도, 직장도 남의 의견은 무시하면서 비민주적인 행태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독재는 아집과 트집, 독선과 위선 사이에서 묘하게 뛰논다. “박정희 독재를 규탄하면서도 북한 독재에는 왜 침묵하느냐”고 질타한 두레공동체 김진홍 목사의 말이 떠오른다. 57년간 핵 주권을 말살해온 미국을 두고 ‘영원한 우방’이라고 하는 것이 옳은지도 되묻고 싶다. 우리는 언제까지 북한의 ‘핵타령’에 놀아나면서 미국의 핵우산을 뒤집어쓰고 있어야 하나. 우리도 ‘독재’를 벗고 ‘독자적’인 핵을 가져야하는 건 아닌지 ‘위험한 상상’을 해본다. 세상의 독재자들은 우리의 뒤편에서 못난 우리를 비웃고 있다.
Posted by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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