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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15 촛불, 횃불, 숯불, 등불
충청투데이 자료사진

▶촛불=미국산 쇠고기를 마구잡이로 가져오려 하자 촛불이 켜졌다. 촛불은 무동 탄 아이들, 여중생, 유모차 부대, 하이힐 신은 처녀, 지팡이
짚은 노인을 광장으로 불러냈다. MB정부의 비정(秕政)을 개탄하는 촛불은 그렇게 점화됐다. 그 촛불은 안전한 식탁주권을 찾기 위한 ‘신선한’ 항쟁이었다. 촛불은 민주주의 제도가 작동하지 않고, 정당이 제 기능을 못할 때 피어오른다. 수없이 모인 촛불은 횃불보다 밝았다. 촛불은 비폭력을 외칠 때 춤과 노래가 된다. 촛불은 아무리 공권력을 투입해도 ‘불나방’이 되지 않는다. 자식의 안위가 걱정될 때 어머니들은 개다리소반과 정화수 한 그릇을 놓고 촛불 앞에서 빌고 또 빌었다. 촛불은 자신을 태워 남을 밝히는 기도이기에 ‘흰 그늘’이다. 컴컴함 속에서도 하얗게 빛나기 때문이다.

▶횃불=시인 김지하가 반골이 된 것은 대학생 때다. 그는 굴욕적인 한·일회담 반대운동을 하다 수배를 당해 숨어 지내야만 했다. 그때 중앙정보부가 자신의 아버지를 잡아다가 반신불구로 만들었다. 김지하는 새벽녘 산에 올라 떠오르는 태양 앞에서 눈물로 맹세했다. 이 세상에서 일체의 압제와 거짓이 사라질 때까지 목숨을 바쳐 싸우겠다고. 이후 그의 시는 만인의 ‘타는 목마름’을 해갈하는 ‘횃불’이 됐다. 횃불은 민심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때 타오르는 시뻘건 불이다. 올해 집회는 9400건이나 열렸다. 시위에 참가한 221만 8710명 가운데 3624명이 입건됐다. 전국에서 하루 평균 39.2건의 집회·시위가 열리고 15명이 사법처리 됐다는 얘기다. ‘대한민국=시위 공화국’이란 등식이 나올 법하다. 왜 집회가 늘어날까. 왜 횃불을 들까. 횃불은 참을 수 없는 분노이기 때문이다.

▶숯불=대폿집에 쭈그리고 앉아 힐끗힐끗 여염집 규수의 종아리를 훔쳐보며 삼겹살을 굽는 게 ‘숯불’이다. 배때기가 부르면 숯불이 되지 않는다. 숯불엔 이 땅을 힘겹게 살아가는 노동자·서민의 상처와 고통이 오롯이 배어 있다. 요즘 화두가 된 ‘죄악세’는 ‘세금덩어리’인 술·담배에 세금을 더 얹겠다는 것이다. 먹고 살기 힘든 판국에 술 한 잔, 담배 한 개비 사줄 요량은 없으면서 죄악으로 간주한다니 서민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발상이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4대강 사업비를 13조 9000억 원으로 잡았다. 그러나 반년 만에 22조 2000억 원으로 불었다. 불도저로 강산을 파헤치며 사업 앞에다 ‘녹색’과 ‘뉴딜’을 붙인다. MB정부의 ‘부자감세’ 정책으로 고소득층의 1인당 감세액이 중산·서민층의 33배에 이르고, 대기업에 혜택이 돌아가는 감세액도 중소기업의 11배에 달한다. 신용불량 1000만 명, 비정규직 1000만 명인 시대에 수심에 잠긴 민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부는 ‘물타령’만 하고 있다.

▶등불=등불은 움직이지 않는 촛불인데, 성난 촛불이 켜졌다면 당연히 그 이유를 밝혀서 해명해야 된다. G20 정상회의를 유치한 뒤 국격(國格)이 높아졌다고 만세삼창을 부를 일이 아니라 나라꼴을 돌아봐야 한다. 국회선 싸움질이나 하고, 어린이를 성폭행해도 ‘그저 그런’ 처벌을 하는 나라에서 국격을 논하는 것은 사치다.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앞서 ‘세종시 문제는 질문하지 말아 달라’며 골치 아픈 문제는 피해가는 것은 민주주의 등불, 즉 국격을 훼손하는 일이다. 이럴 땐 촛불을 들어야 하나, 횃불을 들어야 하나. 촛불이 화나면 횃불이 된다.
Posted by 나재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