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8.27 의자왕이 남의 나라 사람인가?
  2. 2009.03.19 안면도 꽃박람회에 오세요 (4)

▶삼국사기를 쓴 고려 문신 김부식은 신라 왕실의 후예다. 때문에 삼국사기에는 신라중심의 사관(史觀)이 고리타분하게 박혀있다. 사기에는 고구려의 멸망이 수·당나라에 대한 불순한 태도 때문이라며 중국 역성을 든다. 또한 백제가 전쟁을 일삼고 대국에 거짓말을 하는 죄를 지었다고 기록했다. 강대국의 비위를 거스를 염려가 있는 부분은 본기(本紀)에 적지 않거나 은유법으로 슬쩍 피했다. 광개토대왕이 대마도와 일본의 왜를 복속시키고 중국 요서지방으로 진출한 사실도 적지 않았다. 백제가 중국 동부지방으로 진출하고 대마도를 복속시킨 사실도 빼먹었다. 백제의 본기가 신라본기의 35%, 고구려 본기가 신라본기의 약 60%밖에 되지 않는다. 결국 김부식은 신라의 눈으로, 승자의 눈으로 역사서를 썼다. 어찌 보면 ‘왜곡’이었다.


▶660년 7월 13일 밤. 의자왕은 사비성을 빠져나와 웅진으로 몸을 피했다. 휘영청 밝은 달이 뜬 낙화암벽 백마강은 ‘눈물’로 출렁였다. 궁녀 3000여 명은 바위에서 ‘꽃처럼’ 떨어졌다. 끝내 포로가 된 의자왕은 태자 등 1만 2000여 명과 함께 당나라로 압송됐다. 그러나 나라 잃은 왕으로서의 번민과 슬픔, 자책 때문에 얼마 가지 않아 병사했고 이역만리 낙양 북망산에 묻혔다. 김부식은 백제의 멸망을 소홀히 취급했다. 백제와 고구려를 ‘적국’처럼 그리는가하면 김유신을 용장으로, 계백을 적장으로 은유했다. 당나라와 손잡은 문무왕은 통일을 완성한 ‘우리 편’으로, 의자왕은 사치와 향락에 빠진 ‘난봉’으로 기록했다. 그러나 신라의 삼국통일은 당나라 외세를 불러들여 이룩한 ‘불구의 합체’다. ‘충청·호남대통령’ 의자왕의 멸절(滅絶)과, 황산벌에서 계백이 대패했을 때 역사는 박수를 쳤다. 역사는 승자의 것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화해와 통합의 메시지를 남기고 영면했다. 그는 빈털터리 정치 낭인에서 대통령까지 지내며 굴곡 많은 생을 살았다. 민주화와 민족통일을 향한 의지는 투옥과 연금, 망명의 고통을 딛고 인동초(忍冬草)처럼 피어올라 헌정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와 해방 후 첫 남북정상회담이란 열매를 맺었다. 최대 국난이었던 외환위기를 극복했고 지역주의 타파에 헌신했다. DJ는 “훌륭한 대통령을 했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혼신의 노력을 다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했다. DJ의 정치역정은 승자로서가 아니라 ‘시대의 양심’을 지킨 의로운 자의 기록이다.


▶역사는 패자를 위해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역사는 절대다수 백성을 대변하기 보다는 1% 특권층 위주로 기록됐다. 지금 우리가 DJ를 기억하며 광주를 떠올리는 것은 ‘빛고을’에 대한 ‘빚’ 때문이다. 폭도로 몰고, 폭력을 행사한 유혈의 책임 때문이다. 그동안 역사는 승자에 의해 기록되고, 승자에 의해 변질됐다. 그러나 이제 역사는 승자의 것이 아니라 의로운 자들의 기록이다. 정부의 눈엔 여전히 ‘신라’가 아군처럼 보일지 모른다. 전라도, 경상도가 ‘화개장터’서 손을 잡지만 아직도 ‘친구’ 같아 보이진 않는다. 대통령이 ‘중도론’을 내세우며 서민의 손을 잡지만 어쩐지 ‘친근’해 보이진 않는다. 어설픈 절충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DJ가 숙제로 남긴 화해와 통합. 입만 살아서 친한 척 하는 이 시대 짧은 눈과 경박한 시대정서를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Posted by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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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투데이 사진부 자료사진

 ▶2007년 12월 7일 태안반도의 달력은 검게 칠해졌다. 바다는 숨을 멎었고 수중 생태계는 생장을 멈추었다. 기름 1만 2000㎘는 태평하고 안락했던 태안(泰安)과, 편한 잠을 자며 고요한 수평선을 한없이 품어주던 안면도(安眠島)를 깊은 진혼곡에 빠지게 했다. 어민들은 터전을 잃고 눈물의 뻘에서 망연자실했고, 먹빛 절망을 품고 침잠하던 바다엔 ‘사망선고’가 내려질 위기였다. 기적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3개월 간 123만 명의 자원봉사자가 인간띠를 만들어 기름띠를 닦고 또 닦았다. 바윗돌, 몽돌, 모래톱 사이의 기름때는 그들 손에 의해 세안을 하고 다시 청초한 맨얼굴이 됐다. 이제 검은 절망으로 뒤덮였던 뻘에는 꽃이 피었다. 국민의 거룩한 손들이 희망의 꽃을 틔워 나비를 불러들인 것이다. 오는 4월 24일부터 5월 20일까지 열리는 안면도 꽃박람회는 바로 123만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결초보은’의 꽃밭이다.

 ▶1960~70년대 경제개발에 필요한 막대한 돈이 필요하자 광부와 간호사들이 나섰다. 독일로 간 광부들은 지하 막장에서 검은 빵을 먹었고, 간호사들은 파란 눈의 이방인들을 돌보며 연간 1000만 달러를 한국에 부쳤다. 73년 세계 오일쇼크가 일어났을 땐 14만 명의 노동자가 중동에서 땀을 흘려 5년간 205억 달러를 벌었다. 기름 파는 나라서 기름값을 번 것이다. 98년 외환위기 때는 2개월간 350만 명이 장롱 속 금을 꺼내 225t(21억 7000만 달러 상당)을 모았다. 1년 뒤 신용평가회사 S&P는 '금모으기 운동'에 감명 받아 한국의 신용등급을 ‘투자적격’으로 상향했다. 2002년 태풍 ‘루사’가 강릉을 강타했을 땐 100만 명의 자원봉사자가 나섰고, 800여만 명이 1300억 원의 성금을 모았다. 대한민국의 저력은 이런 것이다.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하나가 되는 운명공동체의식. 그것은 누가 시켜서는 절대로 이룰 수 없는 위대한 휴머니즘이다.


 ▶‘나비효과’란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선 태풍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카오스 이론이다. 이는 작은 변화가 예측할 수 없는 엄청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태안(안면도)의 기적도 ‘천사 같은 나비’ 자원봉사자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들의 작은 날갯짓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준 ‘위대한 몸짓’이었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으나 ‘나비’들은 꽃밭이 아닌 죽은 뻘을 찾아 태안에 향기를 불어넣었다. 그 날갯짓이 ‘나비효과’가 되어 방방곡곡의 123만 명에게 ‘봉사 토네이도’를 이끌어낸 것이다. 안면도 꽃박람회는 바로 ‘나비’들을 위한 축제다. 고마운 나비들이 태안반도에 꿈과 희망을 심어주었듯 이번엔 안면도가 그들을 위해 기꺼이 ‘나비’가 된 것이다.


 ▶삶에 지쳤을 때 바다를 찾아 하룻밤 내내 파도소리를 듣고 나면 삶으로 회귀할 힘이 생긴다. 상처 입은 영혼들을 달래주지 않는 바다는 없다. 상처를 달래주지 않을 꽃도 없다. 꽃은 진흙 속에서도 피어난다. 그 꽃은 진주보다도 곱고 물빛보다도 맑다. 지금 안면도는 꽃멀미가 날 정도로 꽃천지, 꽃세상이다. 유채꽃동산은 120㎞에 걸쳐 만개했고, 길섶엔 하늘매발톱꽃, 구름국화, 각시투구꽃, 두메양귀비, 백리향, 설앵초, 한라돌창포, 시로미눈양나무, 족도리풀이 백두에서 한라, 독도에서 안면도까지 먼 길을 달려와 피었다. ‘꽃비’ 내리는 안면도로 오시라. 여러분들을 위한 ‘달콤한 봄’이 활짝 피어있다.

                                                                                               충청투데이 사진부DB
Posted by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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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까칠 2009.03.23 17: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올해는 함 가보고 싶은데...
    차 막힐테고... 사람 많을테고....
    갈수 있을까요?ㅜㅜ

  2. 안면도 2009.03.23 20: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간차 공격을 잘하셔야죵...
    님도 보고 뽕도 따고 꽃도 보고...ㅋㅋ...

  3. BlogIcon montreal florist 2009.11.26 13: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꽃과 바닷가군여 모두 구경하기 딱 좋네여

  4. BlogIcon chota bheem game 2011.12.14 05: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끝에서 원시의 두개골처럼 새벽이 밝아올 때
    사나이는 불발탄의 뇌관을 해머로 내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