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풍'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9.10 행복하지 않은 '행복도시'와 정운찬의 실수 (1)
  2. 2008.09.18 충청도 (1)

 ▶일본 총선은 변화의 물결로 가득했다. 여성 54명이 당선되는 신기록을 세웠고, 세습 정치인들이 대거 몰락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여당의 거물들을 제거하기 위해 발탁된 ‘미녀 자객’들의 활약도 눈부셨다. 초선의원이 전체 480석 중 158석이나 되고, 중의원 의석의 45%(214석)가 물갈이됐다. 부모나 친척의 지역구를 승계하거나 의원직을 이어받은 ‘백(back)’ 좋은 세습후보도 83명이나 물먹었다. 62년 만에 정권교체를 실현한 민주당의 약진은 ‘신(新)일본’, 약자(弱者)를 대변하는 공약 때문이었다. 일본 국민들은 변화를 갈망했고, 그 변화를 민주당이 해낼 거라고 믿었다. 이는 정치 명문가든, 거물이든 변화를 원하는 민심 앞에선 결코 승리할 수 없음을 방증한 것이다. 자민당에 길들여졌던 일본 국민의 ‘변심’이 사뭇 신명지다.


 ▶일본 민주당이 62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루자 한국 민주당이 덩달아 흥분했다. 이들은 내년 한국 지방선거에서 일어날 일이 일본에서 먼저 일어난 것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같은 당명(黨名)이라고 흥분할 일은 아닌 듯하다. 일본 민주당의 노선은 ‘생활제일(生活第一)’주의다. 그들은 자민당 파벌정치에 실망하고 나온 보수파와 이념의 갑옷을 벗어던진 '혁신파'가 연합했다. 이념과 선동 대신, 대안과 정책을 발굴하고 이를 99개 매니페스토(정책공약)로 정리했다. 하지만 한국의 민주당이 현재의 리더십, 현재의 투쟁방식, 현재의 소영웅주의를 고집한다면 국민의 포괄적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야당이 야성(野性)을 잃으면 그냥 야수일 뿐이고, 타성에 젖어 과거에 얽매인다면 그 또한 맹수일 뿐이다. 민주당이 변화를 위한 ‘변심’을 꾀해야 하는 이유다.


 ▶세계 제패의 야망을 꿈꾸던 징기스칸은 1231년 고려를 침공했다. 몽고는 30년에 걸쳐 6차례의 전쟁을 치르고서야 고려에게 항복을 받았다. 원나라 쿠빌라이 칸은 고려와 연합함대를 결성해 일본까지 공격했다. 그러나 2차례 모두 태풍을 만나 군함 4000여 척, 2만여 명만 잃었다. 일본은 이 태풍을 가리켜 자신들을 지켜준 ‘신의 바람(가미카제·神風)’이라 불렀다. 가미카제는 인간폭탄이 되어 불나방처럼 죽음 속으로 뛰어드는 자살특공대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이처럼 일본인들은 끝까지 싸우면 반드시 하늘(神)이 지켜준다는 ‘가미카제’의 신념과 사무라이의 할복을 명예롭게 생각한다. 전쟁광을 떠받드는 야스쿠니 참배도 패배를 인정치 않으려는 비열한 양패(佯敗)인 것이다. 정치적으로 변신을 택한 일본인들의 ‘변심’이 독도와 역사를 오도하려는 의식까지 깨우쳐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욕심일까.


 ▶‘교수 정운찬’은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과 철학에 대해 사뭇 비판적이었다. 대운하와 감세·환율정책을 반대했고, 미국산 소고기 수입, 교육정책에 대해서도 반기를 들었다. 그러나 감투를 던져주자 싹 달라졌다. 4대강도 괜찮고, MB의 경제철학도 자신과 닮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충청인의 염원인 세종시에 대해선 손을 좀 봐야 한다고 했다. ‘충청권 기대주’가 충청 민심의 역린(逆鱗)을 건드린 것이다. ‘소신 교수’에서 ‘예스 총리’로 돌변한 듯한 행보는 그를 ‘서생(書生)’급으로 낮추고 있다. 반대자서 동반자로 갈아타고, 야성(野性)을 벗은 그를 두고 일각에서는 ‘민주당과 연애하고 한나라당과 결혼했다’고 말한다. 가뜩이나 충청홀대에 화가 난 사람들에게 돌을 던지는 그의 ‘변심’에 충청 민심은 하루하루 눈물 같은 분노를 한 움큼씩 쏟아내고 있다. 

Posted by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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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13 15: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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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충청로 2008.09.18 12:13
 ▶핫바지는 솜을 두어 지은 바지를 뜻하는데, 시골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을 낮잡아 이를 때 쓰이기도 한다. JP는 95년 2월 민자당 총재였던 YS와 결별하고 민자당을 탈당했다. 3당 합당 이후 5년 만에 갈라선 것이다. JP는 '노병(老兵)에게도 애국의 권리는 있다'며 자민련을 창당했고 6·27 지방선거에서 '충청도 핫바지론'으로 돌풍을 일으켰다. 핫바지론은 "다른 지역은 자기지역 사람을 밀어주어 정치 세력화하는데 왜 충청도는 자기지역을 팽개치느냐, 충청도는 핫바지냐"는 것이다. 수십 년간 지역의 인물을 몰표로 밀어주던 영·호남에 대한 역정(逆情)이기도 했다. JP의 '핫바지론'은 홀대론과 맞물려 근래에도 통했다. 지난 4·9총선에서 이심전심(李沈傳心)으로 통한 '이회창-심대평 브라더스'가 자유선진당 신풍(新風)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핫바지'는 심약한 충청도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두터운 충정의 '갑옷'을 입지 못하고 스스로 '핫바지'를 입어 승리하는 것은 비애(悲哀)다. 핫바지는 '충청의 인디언'이면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충청 토착민의 울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 달라졌다. 충청도가 무서워졌다. '충청도 양반'이라는 닉네임을 털고 한반도 중심의 거대한 촛불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조선에서는 역모를 저지르면 죄인의 집을 부수고 그 자리를 파내 연못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잔혹한 형벌이 읍호(邑號) 강등이었다. 행정구역의 서열을 낮추고 이름까지 바꾸는 것. 여기에는 모함과 모략에 의한 것이 많았다. 조선은 개국과 함께 충주·청주·공주·홍주(지금의 홍성)를 따로 묶어 충청도(忠淸道)라고 불렀다. 그러나 충주나 청주에서 정치범이 나올 경우 도(道)의 이름이 바뀌었다. 연산군 땐 청주가 빠지고 공주가 그 자리를 차지해 충공도(忠公道)가 됐다. 중종 때는 청공도, 명종 때는 청홍도, 광해군 땐 공청도로 바뀌었다. 인조 때는 공청도·홍충도·충홍도로 개칭을 거듭했고 효종·현종 때는 공홍도와 충홍도로, 숙종 때는 공청도·공홍도·충청도로 이름을 바꿔 탔다. 충청도는 '충·청·공·홍'을 섞어가며 12가지로 불렸다. 조선8도 중에서 도 이름이 가장 많이 바뀐 곳이 충청도다. 이는 역사의 소용돌이에 가장 많이 휘둘리고, 가장 많이 상처받았던 증거로 보아도 무방할 듯싶다. 그야말로 충청의 홀대는 조선 500년의 상처이기도 하다.


 ▶양반은 얼어 죽어도 곁불은 쬐지 않는다며 체통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충청도 사람이다. 겉은 샌님 같아도 속은 야물딱진 게 충청도 사람들이다. 남에게 상처 될만한 말은 곱씹은 후 조용히 말하는 이 또한 충청도 사람이다. 자기 주관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 의뭉스럽다는 오해를 받지만, 이는 삼국시대부터 지리멸렬한 각축장으로 이용된 탓이다. 자기 의사를 빨리 밝히기보다 신중하게 행동하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할 말을 해야 할 때,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가장 먼저 분기탱천한 사람도 충청인들이다. 구한말 전국 의병의 발화점도 충청도 제천이었다. 지금 대한민국 정국은 수도권 규제완화 등 충청권 발전과는 딴길로 새고 있다. 이러한 때 비수도권 10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잇따라 전국회의를 준비하고 있단다. 이는 '상소문(上疏文)'이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만큼은 그들의 목마른 외침이 충청도 민심을 아우르는 '신문고'가 되어 귀막은 정부의 가슴속에 메아리치길 기대한다. 

Posted by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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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재 2008.11.19 22: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청도, 충공도, 청홍도, 공홍도 얘기는 처음 들었네. 정말 처음 들었어. 왜 지금껏 아무도(국사교사들 포함) 내게 그런 얘기를 해주지 않았지.난 충청도에 정말 관심이 많은 사람인데. 백과사전에서조차 들어보지 못한 얘기다. 나차장님, 새로운 사실을 알게 해줘서 정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