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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24 5만원, 너무나 큰 서민들의 고액권 (3)
5만원권 지폐가 시중에 유통되기 시작한 23일 한국은행 충북본부에서 직원들이 5만원권 지폐를 들어보이고 있다. 충청투데이 이성희 기자 lsh77@cctoday.co.kr

 ▶1973년 1만 원권이 발행된 이후 36년 만에 5만 원권이 발행됐다. 5000원 권의 주인공인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이 5만 원권의 초상인물에 선정돼 ‘모자 화폐’의 효시가 됐다. 1962년 ‘모자상(母子像)’ 초상이 그려졌던 100환권 지폐가 한 달도 못돼 폐기된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우리 화폐에 처음 등장하는 여주인공이다. 이는 대한민국의 고리타분한 여성 비하의식에 종지부를 찍는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하지만 적황색 계열의 동색(同色)이기 때문에 식별이 만만찮은 단점이 있다. 자칫 잘못하다간 택시비를 10배나 더 물게 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5만 원권을 5000원 권으로 착각하면 4만 5000원의 손실을 보게 된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고액권 등장으로 ‘차떼기(뇌물수수)’가 쉬워질 수 있다. 2002년 대통령 선거 때 사용된 사과상자에는 현금 5억 원이 들어갔지만 5만 원권을 사용하면 사과상자에 25억 원이 들어간다. 과거 1억 원을 전달하려면 007가방 1개가 필요했지만 5만 원권을 사용하면 양주상자 1개로 가능하다는 얘기다. 용돈과 세뱃돈, 팁 문화도 그야말로 거나해지고 택시기사와 구멍가게의 거스름돈도 불콰해진다. 500원짜리 껌 한 통을 사면서 5만원 권을 불쑥 내밀면 어쩌랴. 가게 주인은 황당할 수밖에 없다. 길에 떨어진 10원도 줍지 않는 시대. 10원짜리 제조비용은 평균 40원(현재 20원)으로 한 해 제조비용만 400~500억 원이다. 저금통이나 서랍 밑바닥에 버려진 10원의 운명은 이제 5만 원권의 등장으로 더더욱 찬밥신세가 됐다. 아, 1960년대만 해도 동전 두 닢이면 자장면 한 그릇을 사먹을 수 있었는데 말이다.


 ▶달이 떠오르는 동네가 문 빌리지(moon village)다. 집들이 살갗을 부비며 골목길 사이로 극빈을 안고 사는 곳이다. ‘한국의 마추픽추’ 달동네엔 막다른 길이 없다. 가짐보다 더함이 중요하고, 더함보다는 나눔이 중요하며, 채움보다는 비움이 중요하다는 걸 깨우치는 곳이 달동네다. 내 영역을 적당히 내주고 적당히 침범하는 곳. 아랫집의 지붕이 윗집의 마당이 되는 곳. 마음의 빗장을 걸고 철옹성처럼 자신의 영역을 지키는 현대사회에 달동네의 넉넉한 마음은 하나의 보루다. 돈은 없어도, 불도저식 재개발에 담이 헐려도 그들에겐 돈보다 더한 가치가 있다. 그들의 골목길은 가난이 낳은 곡선이다. 가난이란 과속방지턱처럼 항상 덜컥거린다. 배고픈 사람에겐 5만 원이 한 달 일용할 양식이고, 배부른 사람에겐 한낱 팁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턱밑까지 차오른 가난의 행불행에서 5만 원이 주는 의미는 그래서 더더욱 애잔하고 색다른 것이다.


 ▶70년대 주력 수출품은 가발과 오줌이었다. 이쑤시개도 수출했다. 부모 약값, 동생 월사금, 남편 술값으로 머리카락을 잘라 팔았다. 집 전화 한 대를 사려면 서울의 50평 아파트를 팔아야 했다. 78년 백색전화 한 대 값은 260만 원까지 치솟았다. 당시 50평짜리 집값이 230만 원 안팎이던 시절이다. 돈의 가치가 이렇게 달라졌고, 이제는 돈의 ‘노예’가 된 세상에서 5만 원은 있는 자의 ‘베팅’이다. 자고로 지갑의 두께만큼 자존심의 두께도 커진다 했다. 5만 원이 바꾸는 세상. 이제 10원, 50원, 1000원, 5000원, 10,000원은 50,000원의 뒤켠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5만 원은 겉으로 드러난 ‘자존’보다는 내실을 기하는 화폐여야 한다. 허투루 생각하다간 내 지갑의 불행을 맞을 수 있다. 오~만 원.

Posted by 나재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