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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아, 여왕 되다

충청로 2010.03.04 17:39


▶아직도 가슴이 저릿하다. 한국인임을 행복하게 만들고, 가슴 속에 태극기가 펄럭이게 한 올림픽의 영웅들이 귀환했다. 아마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드라마로도 쓸 수 없는 이 감동적인 서사시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올림픽 챔피언은 하늘에서 내려준 사람만이 된다고 했다. 밴쿠버올림픽 금메달 제작비는 약 58만 원이다. 태평양의 파도와 눈 덮인 산봉우리를 본떠 만든 메달로 500g중 6g정도만 금이다. 이 '가벼운 질량'의 메달을 따기 위해 대한 영웅들은 매일 10시간씩 마라톤(42.195㎞)급 빙판을 돌며 땀을 흘렸다. '스피드 퀸' 이상화의 경우 170㎏짜리 역기를 어깨에 메고 훈련했다. 헝그리 정신이 악바리 근성으로 바뀌었기에 가능한 영광이었다.

▶이번 밴쿠버 올림픽은 김연아의 것이었다. 조지 거쉰의 피아노협주곡 F장조가 울린 4분 9초 동안 김연아는 한 마리 백조가 됐다. 4분 9초는 14년간의 눈물과 땀이 한꺼번에 발산된 예술이고 마법(魔法)이었다. 경기를 지켜보던 전 세계 피겨 팬들은 감동했다. 외신들은 찬사가 모자라 한편의 '시'를 읊었다. 김연아의 국가브랜드 가치는 자그마치 6조 원에 이른다. 이쯤 되면 김연아는 단순한 스포츠 스타가 아닌 국가적인 자산이고 명품 브랜드다. 밴쿠버의 전설이 된 그녀는 행복전도사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역사상 최초의 금메달을 선물했던 모태범은 울지 않았다. 오히려 덩실덩실 춤을 췄다. 그는 이규혁의 그늘에 가려 얼굴도,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무명인이었다. 올림픽 출정 전 태릉에서 기자회견을 할 때도 아무도 그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그는 무명(無名)이었기에 더욱 유명해졌다. 400m 빙상을 스물다섯 바퀴 도는 극한의 경기에서 금빛 드라마를 쓴 이승훈. 그의 삶도 '입에서 단내 나는' 끈기의 인생드라마였다. 한때 그의 부모는 스케이트 비용을 대기 어려워 운동을 그만두라고 했다. 그러나 이승훈은 스케이트를 빌려 타며 링크를 떠나지 않았다. 대표 중에서도 '주전'이 아니라 '주전자'였다. 고난을 이겼기에, 가난을 이겼기에 이들의 금메달이 더욱 빛나는 것이다.

▶13세에 태극마크를 달고 20년째 한국 빙상의 간판으로 살아온 이규혁이지만 밴쿠버는 금메달을 허락하지 않았다. ‘4전5기’의 꿈은 사라졌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그에게 박수를 쳤다. 성과주의에 물든 세상에 진정한 용기를 주고, 성공한 자와 실패한 자를 가르는 ‘루저 문화’에 경종을 울렸기 때문이다. 모태범과 이상화는 '이규혁 키즈(kids)'들이다. 이규혁 키즈들은 선배가 간 길을 따르고 배웠다. 한 세대를 접고 새 세대를 열어주며 돌아서는 이규혁. 그는 금메달은 못 땄지만, 금메달을 따게 한 챔피언들의 영웅이다.

▶'바보 광대' 배삼룡 선생이 별세했다.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 살살이 서영춘, 땅딸이 이기동, 막둥이 구봉서와 함께 개다리춤을 추던 '비실이' 배삼룡. 그는 76세가 될 때까지 무대에서 넘어지고 깨지고 구르며 ‘서민의 웃음’으로 살았다. 그러나 80년대 신군부의 사회정화 조치에 따라 '저질 코미디언'으로 낙인찍혀 미국으로 떠났다. 한때 그를 스카우트하느라 백지수표가 난무했지만, 떠난 자리에 남은 것은 체납 병원비뿐이었다. 요즘 세상의 코미디는 온 가족이 웃지 않는다. 그냥 젊은 사람만 웃을 뿐이다. 중·장년층을 웃기고 울리는 코미디는 없다. TV에 ‘광대’가 사라졌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바보’가 없다. 그저 고액의 돈과 헤픈 웃음을 맞바꾸는 ‘거래’만 있을 뿐이다. 배삼룡은 대한민국을 웃긴 진정한 챔피언이다.


Posted by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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