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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30 행정도시의 눈물


 ▶정조는 세계문화유산이자 군사 성곽의 결정체라 불리는 수원 화성을 만들었다. 화성은 수도 서울의 남쪽을 막아주는 방어선 기능뿐 아니라, 정조가 상왕이 된 후 내려와 정사(政事)를 돌볼 ‘제2의 행정도시’였다. 10년 정도 예견한 공사는 단 3년 만에 마무리됐다. 정약용의 발명품 거중기로 무거운 돌을 쉽게 옮겼고, 유형거(遊衡車)는 보통의 수레 100대로 324일 걸릴 일을 154일 만에 날랐기 때문이다. 또한 화성은 소통을 강조한 경제도시, 합리적인 신도시 건설을 목표로 두었다. 게다가 만석거(萬石渠)라는 저수지와 대규모 농장을 만들어 먹고 살기 힘든 백성을 위무했다. 서울 아래 수원이라는 ‘행정도시’는 태종과 세종 때처럼 신하들의 권력을 분산해 제2의 중흥을 꿈꾼 ‘창업’이었다.

 ▶결국 ‘死月(사월) 국회’가 돼버렸다. 충청인의 염원이었던 세종시법이 4월을 넘기고 6월로 넘어간 것이다. 지난 2007년 8월 2일 한나라당 대권후보였던 MB는 “행정도시 계획을 바꾸는 것은 옳지 않다”며 “행정·과학·산업·문화 등 자족능력을 갖춘 도시로 육성하겠다”고 했다. 같은 해 12월엔 두 차례에 걸쳐 “공무원 모든 가족이 이사해 그 지역서 초·중·고를 다니는 것이 행정도시의 취지”라며 확대론까지 거론했다. 2008년 초 충남도청을 방문한 자리에서는 “누가 행정도시를 추진하지 않는다고 했는가. 행정도시는 계획대로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당선이 되자 속도와 질(質)이 뚝 떨어졌다. 국회에 던져진 법안은 정파싸움에 밀려 세월의 더께에 묻혀있다. 대한민국 정치, 언제까지 민심을 표심으로만 보고 ‘뻥’만 칠 것인가.


 ▶MB정부에서 ‘전봇대’는 규제철폐의 상징이 됐다. 목포 대불산단의 전봇대는 5년간 끊임없는 민원에도 꿈쩍 않던 ‘말뚝’이었다. 그러나 MB가 ‘전봇대 발언’을 한 지 5일 만에 전봇대는 뽑혀나갔다. 5년 걸릴 일을 5일 만에, 그것도 5시간 만에 뽑은 것이다. 당시 인수위원장은 “국가선진화의 장애물은 길가의 전봇대가 아니라 공직사회에 만연한 마음의 전봇대”라며 거들었다. 그러나 정작 뽑아야 할 것은 탁상정부와 탁상국회다. 당선되기 위해서 수많은 ‘말풍선’을 띄우고 당선돼서는 국민들의 아이큐를 시험하는 불신의 정치. 전봇대를 뽑을 줄만 알았지, 민심에 대못질을 하는 정치. 지금 잘 나가는 정부와 여당도 4년이라는 유효기간이 남아있을 뿐이다. ‘전봇대’만 뽑지 말고 많은 이에게 빛이 되는 ‘전깃줄’을 생각하는 것도 정치다.


 ▶‘행복도시’는 처음만 행복했고 지금은 행복하지 않다. 여의도의 25배나 되는 거대한 땅에 원주민은 사라지고 ‘원성’만 남아있다. 정든 고향을 등지며 뜨거운 눈물을 훔치던 원주민은 오늘도 고향의 안녕을 걱정하고 있다. 행정도시는 노무현 정부가 박아놓은 대못이 아니라, MB정권이 심어 놓은 약속의 팻말이다. 낄 때 안 낄 때를 구분 못하고, 물 전체를 흐려놓는 몇 마리 피라미를 보며 ‘묵언의 피’가 흐르는 것은 아직도 약속을 믿기 때문이다. 칡나무의 갈(葛)과 등나무의 등(藤)이 합쳐져 갈등(葛藤)이 생겼다. 두 나무는 항상 다른 나무를 타고 기생하는 ‘폭군’들이다. 행정도시 건설을 놓고 허송세월을 보내는 정부와 국회가 바로 그 ‘갈등’의 뿌리다. 근래에 ‘전봇대 뽑듯’ 밀어붙이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을 보며 참혹한 비애를 느끼는 것은 행정도시에 ‘말뚝’만 박아놓고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정치현실 때문이다.

Posted by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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