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손'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3.18 법정스님 무소유와 중생의 소유욕
  2. 2009.05.27 누가 盧를 죽음으로 몰았는가?

▶평생 ‘무소유(無所有)’의 정신으로 산 법정스님이 ‘연꽃’이 됐다. 편백나무의 헛헛한 바람 곁에 피어난 ‘무소유’의 불길은 아름다운 향기를 남겼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게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이다. 법정스님이 '무소유'를 강조한 것은 '가난'을 강조한 거와 같다. 절이나 교회에서 호사스러운 장례를 치르는 것에 죽비를 내리친 것도 가난한 도량이 되기를 소망했기 때문이다. 스님은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데 사용해 달라”고 했다.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겠다”고도 했다. 스님이 가지고 간 것은 일체의 번뇌와 육신이 아닌 바람 한 점, 가르침 한 줄이었다. 소유를 하지 못해 안달하는 중생들의 가슴을 ‘무소유’로 깨우친 것이다.


▶대한민국 인구의 18%인 300만 가구가 빈곤층이다. 이들은 가난해서 운다. 가난하기 때문에 울 일도 많다. ‘사회의 허리’인 중산층이 빈곤층으로 몰락하며 범죄도 증가했다. 형법범(刑法犯)의 경우 상류층이 0.6%, 중류층이 21.4%인데 비해 하류층은 43.9%나 된다. 소년 범죄자의 경우 하류층 자녀가 62%를 차지한다. 가난한 사람은 '소유'하지 못해 가난을 저주한다. 그들은 정신적으로도 가난하다. 10대에는 사교육, 20대에는 취업, 30, 40대에는 내 집 마련, 50대와 60대는 노후 불안에 시달린다. 이 모든 것에는 '소유'의 욕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아프고 시린 것이다.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말이 있다. 내가 못사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남이 잘사는 것은 차마 두 눈 뜨고 못 보는 게 사람이다. 그래서 가난한 자가 갈구하는 ‘희망’은 가난하다. 가난과 고난이 병립(竝立)하기 때문이다. 법정스님의 무소유는 그래서 중생들에게 '죽비'이자 ‘단비’인 것이다.


▶진시황과 측천무후는 권력을 소유하기 위해 피를 뿌렸다. 중국 황실은 성(性)을 소유하기 위해 여인을 농락했다. '누가 황제와 잤느냐'는 성의 문제만이 아닌, 권력에 대한 담론이었다. 황제는 어린 시절부터 성교육을 받았고 명 희종처럼 유모와 성관계를 가진 경우도 있었다. 황후는 스스로 예쁜 여성을 골라 황제에게 바쳐야했으며, 당 현종 때는 후궁이 4만 명에 달했다. 수양제는 사람 하나 들어갈 수 있는 칸막이 방을 만들고, 그 방에 거울을 붙여 성관계를 가졌고 결국 자신의 나라를 멸망케 했다. 중국 최초의 여황제인 측천무후는 후궁 시절 자신의 딸을 죽이고 그 죄를 황후에게 뒤집어씌워 폐위시켰다. 그녀는 황제가 좋아하는 궁녀의 손발을 잘랐고, 후궁을 빛 한 줄기 없는 독방에 가둔 후, 백 대씩 치고 술독에 넣었다. 이처럼 성(性)은 권력과 육신을 갖기 위한 ‘음란한 역사’이자 소유욕이었다.


▶사람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 또한 무소유로 왔다가 무소유로 간다. 한 걸음, 한 걸음 죽음을 향해 발을 내딛지만 발자국은 남지 않는다. 그러나 흔적도 없는 삶을 살면서도 '소유'를 위해 전쟁을 치른다. 여자를 소유하기 위해 악을 쓰고, 돈과 권력을 소유하기 위해 발버둥 친다. 보다 많은 자기 몫을 위해 끊임없이 싸운다. 그래서 인간의 역사는 ‘소유사(所有史)’다. 법정은 우리에게 '무소유'의 가르침을 주었다. 그러나 스님만큼 많은 걸 ‘소유’한 사람도 드물다. 남아있는 사람들의 소중한 마음을 ‘소유’했으니 말이다.

Posted by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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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충청투데이 이성희 김상용 기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대한민국이 옷깃을 여미고 있다. 62년 9개월의 짧은 삶을 살다간 노무현 전 대통령. 그는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운명이다”며 14줄의 글을 벼랑 끝에 날렸다. 그러나 그가 남긴 것은 몇 줄의 글이 아니라 몇 톤의 질량으로 뭉쳐진 아픔이었다. 1976년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고향을 떠난 지 32년, 낙향 후 15개월 만에 파란만장한 삶을 끝낸 것이다. 그는 하야(下野)하며 "좀 잘했으면 어떻고, 못했으면 어떻습니까. 야, 기분좋다”며 웃었다. 2002년 대선서 승리했을 땐 형님 무릎을 베면서 "저, 대통령 됐습니다"라고 응석을 부렸던 그다. “시장이나 밥집, 극장에 가고 싶다. 대통령 하는 동안 그런 곳에 못 가서 답답했다”고 말했던 그다. 그는 비범했지만 평범하지 못한 '바보 노무현'으로 살았고 비애에 젖은 국민들을 뒤로 머나먼 ‘소풍’을 떠났다.


 ▶봉하마을은 '까마귀도 먹을 것이 없어 울고 돌아간다'던 빈촌이었다. 그의 사법고시 도전도 가난 탈출의 승부수였다. 봉화산은 그가 칡을 캐고, 진달래를 따고, 소몰이를 했던 곳이다. 더불어 토굴로 들어가 고시공부를 했던 곳이기도 하다. 봉화산은 자신의 꿈이 시작된 곳이자 세상과 이별한 장소가 됐다. 서거 전 그는 끊었던 담배를 다시 물었다. “내가 괜히 정치하고 대통령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다들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2007년 12월 28일로 돌아가보자) 당시 이명박 당선인은 노 전 대통령과의 첫 회동에서 "전임자를 잘 모시는 전통을 반드시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는 국정기록유출을 문제삼았고, 그 뒤로 불편한 사이가 됐다. 일각에서는 그의 죽음이 ‘정치적 타살’이라고 주장한다. 국민이 바보 같아서 훌륭한 지도자를 죽였다며 울분을 터뜨리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진짜 ‘바보’일지도 모른다.


 ▶대법원은 최근 국내 최초로 존엄사(死)를 인정했다. 말기 환자가 임종단계로 들어갔을 때 생명연장의 의료행위를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게 하는 것이다. ‘죽음의 병동’ 호스피스(hospice)는 라틴어 ‘손님(hospes)’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말이다. 호스피스에 있는 사람들은 비관 속에서 하루를 소비하지 않는다. 죽음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죽고 싶다가도 맨발로 작두에 올라서면 살고 싶어지는 게 인생이다. 때문에 죽음은 어떠한 경우라도 억울한 구석이 있어서는 안 된다. '아름다운 마무리' 웰다잉(well-dying)이 화두가 되는 것도 '품위 있는 죽음'을 원하기 때문이다. ‘사람답게 살 권리’ 못지않게 ‘사람답게 죽을 권리’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렵게 온 소풍길에 죽음마저 억울하다면 그게 무슨 삶인가,


 ▶시인 천상병은 목 놓아 외쳤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노라고 말하리라' 우리는 어쩌면 짧디 짧은 소풍을 온 것인지도 모른다. 희로애락이 뒤범벅이 된 소풍길에서 ‘손님’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떠나는 객(客)인지도 모른다. 다만 어떤 이는 맛있는 도시락을 들고, 어떤 이는 초라한 수저를 들고 있을 뿐이다. 노 전 대통령은 지상에서 한 많은 ‘소풍’을 살다갔다. 그러나 천상에선 푸른 하늘, 맑은 바람과 벗삼으며 아름다운 ‘소풍의 삶’을 사시길 옷깃 여미며 소망한다.
Posted by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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