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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1.25 개 사료 값만도 못한 쌀값
쌀값하락으로 농민들의 투쟁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쌀값보장 대책마련 기자회견이 3일 충남도청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 충남도연맹이 쌀값하락에 따라 개 사료값에 비교하며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전우용 기자 yongdsc@cctoday.co.kr


 ▶1998년 충북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에서 탄화된 볍씨 59톨이 발견됐다. 이 볍씨는 1만 5000년 전 것으로 세계 최고(最古)로 공인받았다. 때문에 기원전 2000년께 중국에서 벼가 들어왔을 것이라는 가설도 바뀌었다. 한민족이 벼농사를 지은 지 3000년은 너끈히 된다는 얘기다. 1975년 이전까진 쌀이 귀해 죽을 쑤어 먹거나 고구마·감자 등으로 끼니를 때웠다. 그것마저 없을 때는 풀뿌리나 나무껍질로 보릿고개를 넘겼다. 그래서 박정희 정권 때 일본·대만 벼를 교배해 만든 통일벼는 그야말로 ‘기적의 볍씨’였다. 보통 벼는 이삭 당 낱알이 80~90개였지만 통일벼는 120~130개나 됐다. 석 섬 나던 논에서 닷 섬이 났다. 생산량이 40%나 늘어난 것이다. 덕분에 쌀 자급 달성(76년), 쌀 막걸리 탄생(77년), 대북 쌀 지원(77년)이 가능했다.

 ▶“막걸리야 너를 누가 만들었더냐. 너로 인해 천 가지 근심을 잊는다.” 생모인 폐비 윤 씨의 한을 풀어주려 갑자사화를 일으킨 연산군은 막걸리로 시름을 달랬다. 강화도에서 농사를 짓다 임금이 된 철종도 궁중에는 왜 막걸리가 없느냐고 타박을 했다. ‘서민의 술’이자 ‘임금의 술’이었던 막걸리가 요즘엔 ‘대통령의 술’이 됐다. 박정희·노무현 전 대통령은 시시때때로 농민들과 마주 앉아 막걸리잔을 기울였고 이명박 대통령도 오바마 대통령과 막걸리를 기울이며 '농주(農酒) 외교'를 했다. 중국 국주(國酒) 마오타이가 세계적 명주가 된 것도 1972년 마오쩌둥과 닉슨의 미·중 수교 정상회담 때 건배주로 쓰이면서였다. 막걸리는 술이자 밥이요, 친구를 만드는 화합주다.


 ▶일제강점기부터 시행된 ‘주세법’ 때문에 일반 가정에서는 술을 빚지 못했다. 때문에 세무서의 눈을 피해 누룩과 술을 숨기는 일이 잦았다. ‘술조사 떴다’는 소문이 돌면 술항아리를 들고 산으로 줄행랑 치거나, 독을 깨서 증거를 없앴다. 그러나 용케도 고을마다 술 익는 냄새가 그윽했고, 누룩의 ‘발정’이 끊이질 않았다. 막걸리 한 사발이면 시름이 녹았다. 단내 나는 노동의 고단함이 사라졌다. 주막에 앉아 다들 거나하게 몇 순배씩 하다보면 노을도 익고 사람도 익었다. 배고픈 이는 술 찌게미를 먹어 몸도 취하고 맘도 취하게 했다. 논두렁 새참 때는 농부의 갈증과 허기를 달래주었다. 어린 시절 술도가에서 막걸리를 받아오다 주전자 부리에 입을 대고 시금털털한 맛을 보지 않은 이가 어디 있는가. 막걸리는 고향이다. 한국인의 몸과 마음에 깊이 육화(肉化)된 쌀의 취선(醉仙)이다.


 ▶가뭄도 없었고 태풍도 없었다. 들녘은 풍년으로 들썩였다. 그러나 추수의 기쁨을 누릴 농부들의 가슴엔 서리가 내린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풍년이 든 것이다. 없어서 못 먹던 귀하신 ‘쌀밥’이 불과 20여년 만에 ‘찬밥’ 신세가 된 것이다. 쌀 풍년은 역설적으로 쌀값 폭락을 의미한다. 쌀값은 10년 전 14만 원 선(80㎏ 기준)에서 지금은 12만~13만 원으로 오히려 떨어졌다. 농약값, 인건비 등을 빼고 나면 농협 빚만 남는다. 하지만 ‘자식농사’ 때문에 농사를 접을 수도 없다. 농부의 발소리를 천 번을 들어야 쌀이 된다고 했다. 농부들이 야적시위를 벌이며 힘겨운 삶에 몸부림칠 때, 정치인들은 넥타이 매고 구두 신고 막걸리를 맛나게 마시고 있다. 3000세(歲)가 넘는 농부의 굳은살에 피눈물이 맺힌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농부의 눈물을 닦아줄 ‘정치’가 있는가. 그런 사람이 있는가.
Posted by 나재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