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3.05 국민을 바보로 만드는 '바보국회'
  2. 2008.09.09 리더십
2인의 누군가가 '손도장'을 찍고 있다. 저 손은 연인의 손도 아니고 우정을 나누자는 사나이의 손도 아니다. 앞으로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겠다며 다짐하는 어른들의 '손'이다. 그것도 국민을 대표하는 '민의의 전당' 국회의원의 '손'이다. 얼마나 싸워대는지 국민들이 '손가락질'을 하자 자기들이 '손가락' 도장을 찍으며 잘 지내보자고 하는 것이다. 참으로 가관이다. 아이들 흉내를 내는 것인지, 국민들 앞에 귀염을 떠는 것인지 도통 알 길이 없다. 다만 이런 말은 있다. "약속 안 지키는 사람은 버릇처럼 손도장을 찍고 항상 약속타령만 한다"  

 ▶밀양시 단장면 표충사엔 효봉스님 사리탑이 있다. 효봉스님은 우리나라 최초의 판사였다. 그가 세속의 번뇌를 씻고 스스로 머리를 깎은 것은 고결한 ‘양심’때문이었다. 어느 피고인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나서 ‘인간이 인간을 벌하고 죽이는 것’에 회의를 느껴 법모를 벗고 38살에 늦깎이 중이 된 것이다. 스님은 한 평짜리 흙집을 짓고 들어가 면벽수행 뒤 2년 4개월 만에 깨달음을 얻었다. 어찌나 엄격하게 정진했는지, 한번 앉으면 절구통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해서 '절구통 수좌'라 불렸다. 스님은 바보였기 때문에 판사직을 버린 것이 아니라,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 화려한 입신(立身)의 길을 버린 것이다.


 ▶붓을 든 선비가 칼을 든 무반들을 500년 동안이나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상소’라는 소통의 방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통치자의 오만과 우매함을 깨우치기 위해서 조선의 신하들은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 한 예가 지부복궐상소(指斧伏闕上疏)인데 도끼를 몸에 품고 궐문 앞에 꿇어앉아 자신의 상소를 듣지 않겠다면 도끼로 죽여 달라고 한 것이다. 상소문 한 장과 목숨을 바꾸겠다는 장렬함의 극치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조헌과, 구한말의 최익현이 '도끼상소'를 한 위인이다. 율곡 이이 또한 550편의 상소를 올렸는데 모두가 나라를 걱정하는 내용이었다. 연산군 때 내시(內侍) 김처선은 “이 늙은 신하는 네 명의 임금을 섬겼지만 이토록 문란한 군왕은 없었다”며 쓴소리를 했다. 격노한 연산군은 직접 그의 다리와 혀를 잘랐지만 김처선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상소한 이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오히려 바보는 그들을 말리며 간언한 무리들이다.

 ▶‘알파맘’은 자녀교육에 극성인 어머니를 말한다. 잘나가는 학원이나 전문가 섭외는 기본이고, 아이들을 차로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열성파다. 이에 반해 ‘베타맘’은 아이를 직접 가르치거나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히는 것으로 교육을 대신한다. 대한민국에서 ‘엄마’로 산다는 것은 ‘학생’으로 사는 것보다 힘들다. 알파맘과 베타맘은 욕심이라는 한 끗발 차이에서 온다. 아이가 공부를 잘해서 ‘천재’ 소리를 들을 수는 있지만 인성적으론 ‘바보’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원어민에게 과외를 받으며 오렌지를 ‘어륀지’라고 말해야 했다면 세계대통령 반기문은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인성이 메말라가는 현대사회에 공부를 못하는 아이가 바보는 아니다. 인성은 가르치지 않고 공부만 강요하는 엄마가 진짜 바보일 수 있다.

 ▶멍텅구리는 바닷물고기 이름이다. 굼뜨고 동작이 느려서 아무리 위급한 때라도 벗어나려는 노력조차 안한다. 멍텅구리는 걸음이 느려도 남 탓을 하고 게으른 것도 남 탓을 한다. ‘네 탓’은 바보들의 전형이다. 이는 ‘헛똑똑이’ 패러독스인데 국회가 요즘 그렇다. 민심은 아랑곳하지 않고 허구한 날 네 탓만 하고 있다. 당리당략에 맞지 않으면 깽판을 부리고, 입맛에 맞지 않으면 주먹질을 하는 깡패국회. 미디어법을 둘러싸고 연일 삿대질을 하더니만 91개 민생법안은 몇시간 만에 처리했다. 밀린 숙제를 하듯 뚝딱 해치운 ‘날림치 법안’에 무슨 민심이 배어 있겠는가. 살다보면 태풍도 불고 먼지도 흩날린다. 그러나 먼지를 뒤집어쓰는 것은 ‘힘없는’ 국민들이다. 국회가 ‘멍텅구리’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선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닌 민심을 대변하는 ‘진정한 반대’를 할 줄 알아야 한다.
Posted by 나재필

댓글을 달아 주세요

리더십

충청로 2008. 9. 9. 21:51
  ▶우리가 서재필을 기억하는 것은 그가 독립협회를 만들고 독립신문을 창간했다는 사실 정도다. 그 뒤에 숨겨진 가슴 아픈 얘기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는 13세 때 장원급제한 수재였지만 개화파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쓰라린 역정을 살게 된다. 척화(斥和)의 시대에 개화를 외쳤으니 구한말 정부의 미움을 살 수밖에 없었다. 역적으로 몰린 그는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했고 집안은 순식간에 줄초상으로 이어졌다. 아버지, 어머니, 형은 자살했고 동생은 관리의 칼에 맞아 죽었다. 부인 또한 자살의 길을 택했고 두 살배기 아들은 굶어 죽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고 미국에서 의사로 성공, 독립투사들의 '숨은 리더'가 됐다. 조국을 두고도 조국 땅에 있을 수 없었고, 조국의 미래를 생각했지만 조국에 버림받았으며, 심지어 조국에게 일가족까지 잃었지만 그는 조국의 자주독립과 민주주의 계몽에 투신한 사람이다.


 ▶1971년 4월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박사의 유언장이 공개됐다. 일제시대 병마에 시달리던 헐벗은 동포들을 위해 제약회사를 세웠던 그가 남긴 것은 돈도 명예도 아니었다. 종이쪽지 하나였다. 모든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사회에 되돌려주겠다는 것. 당시 일곱 살이던 손녀 유일링에게 남겨준 돈은 고작 1000만 원이었다. 물론 아들과 그의 아내에겐 한 푼도 주지 않았다. 그런 유일한 박사지만 누구보다도 독립운동을 뒤에서 조력한 애국자였다. 서재필이 독립운동에 투신했을 때 '뒷배'를 봐준 사람도 유일한 박사다. 타국에서 열심히 쌈짓돈을 모아 뭉칫돈을 만들고 그 돈은 독립자금의 종자돈으로 사용됐다. 빈손으로 떠난 위대한 기업가. 그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애국정신을 보여준 기업가의 리더이자 표본이다.


 ▶칭기스칸은 워싱턴포스트가 천년의 인류사 중 가장 위대한 인물로 꼽은 인물이다. 몽골의 유목민들은 칭기스칸에 대한 믿음 하나만으로 사막과 강을 넘어 광활한 몽골제국을 건설했다. 그의 손자 쿠빌라이는 중국에 원나라까지 세웠다. 그는 별 볼일 없는 유목민들을 가장 용맹한 장수로 만든 '뜨거운 심장을 지닌 리더'였다. 그는 자신의 원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 적과 동지로, 주인과 노예로 갈려서 싸웠던 몽골인들을 하나로 단합시켰다. 복종자를 만들기보다는 추종자가 몰려들게 했다. 키 작고 볼품없는 몽골인을 조랑말에 태워 세계를 정복한 '칸의 리더십'은 바로 열정이었다. '나를 따르라'가 아니라 '나와 함께 가자'며 용기를 북돋고 피바람 몰아치는 초원을 함께 달렸다. 그것은 동행이자 상생의 리더십이었다.


 ▶36번 국도를 따라가다보면 음성군 원남면이 나오고 그 인동에 윗행치마을이 있다. 그곳이 바로 192개국 대표들의 수장이 된 반기문 UN사무총장의 고향이다. 돈도 빽도 없는 시골출신 수재가 세계 최고의 외교관이 된 것은 좋은 인간성과 조용한 카리스마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고속승진이 미안해 '죄송하다'는 백여 통의 편지를 일일이 손으로 써서 보냈다. 해직 위기에 놓인 부하를 살리기 위해 대통령을 설득했는가하면, 외교통상부 장관 땐 사석에서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과의 만찬을 거절하기도 했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솔선수범의 리더십이 그의 자산이다. 그는 충청인의 자랑이자 대한민국의 자랑이다. 특히나 요즘같은 '리더십 부재'의 시대에 그가 보여주는 리더십은 대한민국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한다.

Posted by 나재필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