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9.10 행복하지 않은 '행복도시'와 정운찬의 실수 (1)
  2. 2009.07.30 전부 다 도둑놈들입니다

 ▶일본 총선은 변화의 물결로 가득했다. 여성 54명이 당선되는 신기록을 세웠고, 세습 정치인들이 대거 몰락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여당의 거물들을 제거하기 위해 발탁된 ‘미녀 자객’들의 활약도 눈부셨다. 초선의원이 전체 480석 중 158석이나 되고, 중의원 의석의 45%(214석)가 물갈이됐다. 부모나 친척의 지역구를 승계하거나 의원직을 이어받은 ‘백(back)’ 좋은 세습후보도 83명이나 물먹었다. 62년 만에 정권교체를 실현한 민주당의 약진은 ‘신(新)일본’, 약자(弱者)를 대변하는 공약 때문이었다. 일본 국민들은 변화를 갈망했고, 그 변화를 민주당이 해낼 거라고 믿었다. 이는 정치 명문가든, 거물이든 변화를 원하는 민심 앞에선 결코 승리할 수 없음을 방증한 것이다. 자민당에 길들여졌던 일본 국민의 ‘변심’이 사뭇 신명지다.


 ▶일본 민주당이 62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루자 한국 민주당이 덩달아 흥분했다. 이들은 내년 한국 지방선거에서 일어날 일이 일본에서 먼저 일어난 것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같은 당명(黨名)이라고 흥분할 일은 아닌 듯하다. 일본 민주당의 노선은 ‘생활제일(生活第一)’주의다. 그들은 자민당 파벌정치에 실망하고 나온 보수파와 이념의 갑옷을 벗어던진 '혁신파'가 연합했다. 이념과 선동 대신, 대안과 정책을 발굴하고 이를 99개 매니페스토(정책공약)로 정리했다. 하지만 한국의 민주당이 현재의 리더십, 현재의 투쟁방식, 현재의 소영웅주의를 고집한다면 국민의 포괄적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야당이 야성(野性)을 잃으면 그냥 야수일 뿐이고, 타성에 젖어 과거에 얽매인다면 그 또한 맹수일 뿐이다. 민주당이 변화를 위한 ‘변심’을 꾀해야 하는 이유다.


 ▶세계 제패의 야망을 꿈꾸던 징기스칸은 1231년 고려를 침공했다. 몽고는 30년에 걸쳐 6차례의 전쟁을 치르고서야 고려에게 항복을 받았다. 원나라 쿠빌라이 칸은 고려와 연합함대를 결성해 일본까지 공격했다. 그러나 2차례 모두 태풍을 만나 군함 4000여 척, 2만여 명만 잃었다. 일본은 이 태풍을 가리켜 자신들을 지켜준 ‘신의 바람(가미카제·神風)’이라 불렀다. 가미카제는 인간폭탄이 되어 불나방처럼 죽음 속으로 뛰어드는 자살특공대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이처럼 일본인들은 끝까지 싸우면 반드시 하늘(神)이 지켜준다는 ‘가미카제’의 신념과 사무라이의 할복을 명예롭게 생각한다. 전쟁광을 떠받드는 야스쿠니 참배도 패배를 인정치 않으려는 비열한 양패(佯敗)인 것이다. 정치적으로 변신을 택한 일본인들의 ‘변심’이 독도와 역사를 오도하려는 의식까지 깨우쳐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욕심일까.


 ▶‘교수 정운찬’은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과 철학에 대해 사뭇 비판적이었다. 대운하와 감세·환율정책을 반대했고, 미국산 소고기 수입, 교육정책에 대해서도 반기를 들었다. 그러나 감투를 던져주자 싹 달라졌다. 4대강도 괜찮고, MB의 경제철학도 자신과 닮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충청인의 염원인 세종시에 대해선 손을 좀 봐야 한다고 했다. ‘충청권 기대주’가 충청 민심의 역린(逆鱗)을 건드린 것이다. ‘소신 교수’에서 ‘예스 총리’로 돌변한 듯한 행보는 그를 ‘서생(書生)’급으로 낮추고 있다. 반대자서 동반자로 갈아타고, 야성(野性)을 벗은 그를 두고 일각에서는 ‘민주당과 연애하고 한나라당과 결혼했다’고 말한다. 가뜩이나 충청홀대에 화가 난 사람들에게 돌을 던지는 그의 ‘변심’에 충청 민심은 하루하루 눈물 같은 분노를 한 움큼씩 쏟아내고 있다. 

Posted by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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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13 15: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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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법 통과 원천무효 대전시민 촛불문화제가 대전역에서 비가 내리는데도 열렸다.
충청투데이 홍성후 기자 hippo@cctoday.co.kr

"우리 모두 광장으로 뛰쳐나갑시다. 그리고 정권의 오만을 깨부십시다"
"어서들 국회안으로 들어오세요. 그게 뭡니까. 뭔일만 있으면 집밖으로 나가는 그런 퍼포먼스도 이제 질립니다. 레퍼토리좀 바꾸세요"

 ▶광장은 소통의 장소다. ‘어울림’이 춤추는 대의정치의 표상이다. 2002월드컵에서 보았듯이 광장은 다수를 리드미컬한 공동체로 만든다. 같은 밥을 먹지 않았어도, 같은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하나가 되는 통로다.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가 똑같이 굿판을 벌이는 드넓은 마당이기도 하다. 그러나 광장이 죽어가고 있다. 광장에 나부끼던 정의의 횃불은 사라지고, 구호와 시뻘건 깃발만이 펄럭이고 있다. 관심과 무관심의 공허한 촛불을 켠채 광장은 뙤약볕에 그을리고 있을 뿐이다. 민주당이 100일 장외투쟁을 선언했다. 그러나 그 힘겨운 ‘100일 전쟁’을 바라보는 시선은 냉정하다. ‘백일몽(白日夢)’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와, 광장이 ‘선동의 장소’로 이용되는 것 아니냐는 눈총도 있기 때문이다. 정치는 광장이 아닌, 국회 안마당에서 해야 한다.


 ▶옛 자유당 시절 영국의 더 타임스는 ‘쓰레기통에서는 장미가 피지 않는다’며 한국 민주주의 가능성을 폄훼했다. 군사정부에서는 결코 민주주의를 일궈낼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광장에 뜬 검은 깃발은 핏빛으로 물들며 민주주의를 탄생시켰다. 정권 고위층에 대한 로비와 부정부패가 만연했던 1980년대에 ‘전부 도둑놈들’이란 말이 유행했다. 탐욕과 탐관의 시대에 어느 놈 하나 제대로 된 놈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치만 있고, 민심을 챙기지 않았으니 당연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정치는 진화하지 않고 있다. ‘반대 목소리를 듣지 않는’ 여당이나, ‘반대를 위한 반대’만 외치는 야당이나 오십보백보다. 기득권의 야만을 즐기며 독불장군처럼 구는 여당이나, 뒷북치며 광장으로 뛰쳐나온 야당이나 거기서 거기다.


 ▶“나도 나카소네가 싫지만 오야붕이 오른쪽이라면 오른쪽, 왼쪽이라면 왼쪽이다. 그게 싫으면 떠나라.” 1982년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의원 총회서 나온 말이다. 일본의 뿌리깊은 ‘오야붕(親分·보스)·꼬붕(子分·계보원) 정치’의 대표적 사건이다. 대한민국 정치도 예외는 아니어서 오야붕·꼬붕정치가 버젓이 판치고 있다. 친박계와 친이(親李)계, 주류와 비주류, 계보와 철새. 이들에게 있어서 보스의 뜻을 거스르는 발언은 별로 없다. ‘꼬붕’만 있고 진정한 ‘보스’도 없다. 얼마 전 미국 연방 하원의원 5명이 인권탄압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체포됐다. 경찰은 의원들이 폴리스라인을 넘자 가차없이 수갑을 채웠고 의원들은 이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원내 서열 10위 안에 드는 여당 실세도 포함돼 있었다. 법을 지켜야 할 사람들이 법을 어기면 그 누구도 예외가 아니라는 본보기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법을 만드는 ‘입법자’가 민생법안을 방기하고 국회와 광장에서 따로 노는 것은 ‘무법자’의 행보다.


 ▶밑동이 잘린 나무는 이듬해 잘린 그루터기에서 많은 곁가지들이 나온다. 그러나 그 곁가지는 다시 나무가 되지 않는다. 그냥 곁가지 일뿐이다. 곁가지는 눈엣가시여서 싹을 잘라줘야 가지가 더 굵고 튼튼하게 자란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도 눈엣가시다. 미디어법을 가지고 죽을둥 살둥 피터지게 싸우지만 그건 ‘민생법안’이 아니다. 정권들의 전리품이었던 ‘공룡 방송’을 국민에게 돌려주려는 의도는 알지만 민생을 방기하니 곁가지일 뿐이다. 요즘 우울증약(藥)의 소비가 5년 새 50% 이상 늘었다고 한다. 먹고 살기 힘든 국민들은 정치와 경제 스트레스 때문에 돌아버릴 지경이다. 480일간 단 하루도 바람 잘날 없이 싸워대는 18대 국회를 보면 그들보다 국민들이 광장으로 뛰쳐나가고 싶을 것이다.
Posted by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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