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법'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7.30 전부 다 도둑놈들입니다
  2. 2009.07.23 국회 원정대의 한심한 정복
미디어법 통과 원천무효 대전시민 촛불문화제가 대전역에서 비가 내리는데도 열렸다.
충청투데이 홍성후 기자 hippo@cctoday.co.kr

"우리 모두 광장으로 뛰쳐나갑시다. 그리고 정권의 오만을 깨부십시다"
"어서들 국회안으로 들어오세요. 그게 뭡니까. 뭔일만 있으면 집밖으로 나가는 그런 퍼포먼스도 이제 질립니다. 레퍼토리좀 바꾸세요"

 ▶광장은 소통의 장소다. ‘어울림’이 춤추는 대의정치의 표상이다. 2002월드컵에서 보았듯이 광장은 다수를 리드미컬한 공동체로 만든다. 같은 밥을 먹지 않았어도, 같은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하나가 되는 통로다.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가 똑같이 굿판을 벌이는 드넓은 마당이기도 하다. 그러나 광장이 죽어가고 있다. 광장에 나부끼던 정의의 횃불은 사라지고, 구호와 시뻘건 깃발만이 펄럭이고 있다. 관심과 무관심의 공허한 촛불을 켠채 광장은 뙤약볕에 그을리고 있을 뿐이다. 민주당이 100일 장외투쟁을 선언했다. 그러나 그 힘겨운 ‘100일 전쟁’을 바라보는 시선은 냉정하다. ‘백일몽(白日夢)’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와, 광장이 ‘선동의 장소’로 이용되는 것 아니냐는 눈총도 있기 때문이다. 정치는 광장이 아닌, 국회 안마당에서 해야 한다.


 ▶옛 자유당 시절 영국의 더 타임스는 ‘쓰레기통에서는 장미가 피지 않는다’며 한국 민주주의 가능성을 폄훼했다. 군사정부에서는 결코 민주주의를 일궈낼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광장에 뜬 검은 깃발은 핏빛으로 물들며 민주주의를 탄생시켰다. 정권 고위층에 대한 로비와 부정부패가 만연했던 1980년대에 ‘전부 도둑놈들’이란 말이 유행했다. 탐욕과 탐관의 시대에 어느 놈 하나 제대로 된 놈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치만 있고, 민심을 챙기지 않았으니 당연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정치는 진화하지 않고 있다. ‘반대 목소리를 듣지 않는’ 여당이나, ‘반대를 위한 반대’만 외치는 야당이나 오십보백보다. 기득권의 야만을 즐기며 독불장군처럼 구는 여당이나, 뒷북치며 광장으로 뛰쳐나온 야당이나 거기서 거기다.


 ▶“나도 나카소네가 싫지만 오야붕이 오른쪽이라면 오른쪽, 왼쪽이라면 왼쪽이다. 그게 싫으면 떠나라.” 1982년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의원 총회서 나온 말이다. 일본의 뿌리깊은 ‘오야붕(親分·보스)·꼬붕(子分·계보원) 정치’의 대표적 사건이다. 대한민국 정치도 예외는 아니어서 오야붕·꼬붕정치가 버젓이 판치고 있다. 친박계와 친이(親李)계, 주류와 비주류, 계보와 철새. 이들에게 있어서 보스의 뜻을 거스르는 발언은 별로 없다. ‘꼬붕’만 있고 진정한 ‘보스’도 없다. 얼마 전 미국 연방 하원의원 5명이 인권탄압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체포됐다. 경찰은 의원들이 폴리스라인을 넘자 가차없이 수갑을 채웠고 의원들은 이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원내 서열 10위 안에 드는 여당 실세도 포함돼 있었다. 법을 지켜야 할 사람들이 법을 어기면 그 누구도 예외가 아니라는 본보기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법을 만드는 ‘입법자’가 민생법안을 방기하고 국회와 광장에서 따로 노는 것은 ‘무법자’의 행보다.


 ▶밑동이 잘린 나무는 이듬해 잘린 그루터기에서 많은 곁가지들이 나온다. 그러나 그 곁가지는 다시 나무가 되지 않는다. 그냥 곁가지 일뿐이다. 곁가지는 눈엣가시여서 싹을 잘라줘야 가지가 더 굵고 튼튼하게 자란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도 눈엣가시다. 미디어법을 가지고 죽을둥 살둥 피터지게 싸우지만 그건 ‘민생법안’이 아니다. 정권들의 전리품이었던 ‘공룡 방송’을 국민에게 돌려주려는 의도는 알지만 민생을 방기하니 곁가지일 뿐이다. 요즘 우울증약(藥)의 소비가 5년 새 50% 이상 늘었다고 한다. 먹고 살기 힘든 국민들은 정치와 경제 스트레스 때문에 돌아버릴 지경이다. 480일간 단 하루도 바람 잘날 없이 싸워대는 18대 국회를 보면 그들보다 국민들이 광장으로 뛰쳐나가고 싶을 것이다.
Posted by 나재필

 ‘산 앞에서는 겸손해야 하고 산과 겨뤄서는 안 된다’
 “바람소리에 외로움을 느끼고, 밤새 그리운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다”
  고미영씨의 비망록 내용입니다.

 이역만리 밖 설산을 오르던 대한민국 여성이 산의 품에서 끝내 잠들었습니다. 히말라야 낭가파르바트를 정복하고 숨진 고미영(청주대 중문과 졸업·상명대학원 석사과정) 씨. 그녀는 8000m 이상 고봉 11좌 등정에 성공하고, 박영석 씨가 보유하고 있던 14좌 최단기간 완등 기록에 도전했었습니다. 12년간 농림부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서른 살에 산에 입문한 그녀는 고산(高山)을 휘젓던 ‘철녀(鐵女)’였지만 연약한 여자이기도 했습니다. 이제 그녀의 꿈은 눈 속에 묻히고, 사랑은 눈꽃으로 남았습니다. 영원히 늙지 않고 기쁨이 넘친다는 지상낙원, 샹그릴라는 티베트와 가까운 히말라야 어딘가에 있다고 합니다. 꽃잎처럼 떨어졌을 고미영 씨, 이제는 그 곳에서 자신의 못다핀 이상향을 찾아 오르고 또 오를 것입니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는 하늘 아래 첫 동네, 지구의 등마루이기에 아무에게나 허락하지 않는 영산입니다. 그래서 티베트에서는 세계의 모신(母神), 네팔에서는 바람의 여신이라고 부릅니다. 에베레스트는 1953년 영국의 제9차 원정대에 의해 최초로 등정됐습니다. 이후 30개국 150여 개의 원정대가 깃발을 꽂았고, 한국은 1977년 고상돈 대원이 첫 등정에 성공했습니다. 이 중 세계 아홉 번째로 높은 낭가파르바트(8126m)는 산악인들에게 ‘비극의 산’으로 불립니다. 1930년대 독일 원정대는 폭풍설(雪)과 눈사태로 이곳에서 30여 명이 몰사했습니다. 역시나, 산은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산에 의해 정복당하는 것입니다.


 ▶넓고 높은 아파트를 선망하는 ‘소유의 시대’에 수목장(樹木葬)이 뜨고 있습니다. 육신을 화장해 나무 옆에 뿌리겠다는 것인데, 죽어서 나무가 되고 싶은 윤회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묘지의 평균 넓이는 19평. 한 사람 주거 면적이 4.3평이라니 죽어서 차지하는 땅이 살아서의 4배를 넘는거죠. ‘현대판 쪽방’으로 불리는 고시원도 뜨고 있는데 이곳은 약 2~3평(6~10㎡) 규모입니다. 전국 6000여 곳에서 25만여 명이 고시원서 칼잠을 잡니다. 쪽방인구는 불황 탓에 3년 새 50%가 늘었습니다. 평수의 넓이만큼 행복의 평수도 늘어난다는 세상, ‘나무그늘’의 수목장과 ‘어둠의 그늘’ 고시원이 뜨는 것은 무한한 넓이에 대한 역설적인 사회현상입니다. 대한민국 민초들은 삶의 최정상을 위해 뛰는 게 아닙니다. 부자 0.1%와 기득권 1%를 위해 힘 없는 99%가 피땀을 흘리는 것입니다. 단지, 오르지는 못해도 간신히 절벽의 굳은살을 집고 힘겹게 사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회의 모습입니다. 아~ 대단하군요!!!

 ▶국회는 '미디어 관련 3법'을 속전속결로 통과시켰습니다. 법을 만들고 법을 지켜야 할 사람들이, 법을 기만하고 법을 ‘날치기’ 했습니다. 날치기는 도둑놈을 말합니다. TV로 지켜보던 국민들은 탄식했습니다. 하나는 무법자처럼 법을 몰아붙이는 여당에 대한 분노이고, 또 하나는 악다구니 쓰며 ‘뒷북치는 야당’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그들의 해묵은 싸움에 민생은 저멀리 악산(惡山) 벼랑끝에 놓여있습니다. 반대를 위한 반대, 반대를 품지 못하는 도량으로 험산(險山)을 넘으려니 안 되는 것입니다. 산 앞에 겸손하지 않고 산과 겨루려고 하니 산울림(동감)이 일지 않는 것이고, 당리당략을 위한 ‘꼼수’이기에 감동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최상’을 향한 상생은 애초에 글러먹었습니다. 다만, 미디어정국에 묻힌 민생법안에 대한 최소한의 ‘매조지’를 당부합니다.
Posted by 나재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