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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08 어제 급벙했는데 깜놀했잖아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세종은 덕이 높고 높아 '해동의 요순(堯舜)'이라 불렸다. 요순시대란 동양에서 최고의 정치를 이룬 시대를 뜻한다. 32년 재위기간에 보여준 실용적 애민정신은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까지도 추종을 불허한다. 그는 단순히 한글을 창제하고 용비어천가를 지은 언어지도자에 그치지 않았다. 육진 개척과 사군 설치로 국방을 키웠고 토지와 세제개혁, 과학기술 육성 등으로 국태민안의 위상을 높였다. 나아가 뛰어난 '문화대왕'이기도 했다. 사역원의 외국어과목에 여진족어를 추가하고, 신하들을 중국에 보내 남방언어를 연구하게 할 만큼 실용적이고 개방적이었다. 만백성에 성은을 베푼 세종, 그가 남긴 불후의 명작 '한글'이 563세를 맞았다.

▶"어제 급벙했는데 깜놀했잖아. 미자들만 잔뜩 있더라." 이는 '어제 갑자기 모임을 가졌는데 깜짝 놀랐다. 미성년자들만 잔뜩 있더라'는 뜻이다. 알타이어도, 구라파 언어도 아닌 것이 국적불명, 해독불가 상태로 대한민국을 떠돌고 있다. 누리꾼이나 '엄지족'들은 버카(버스카드), 참김(참치 김밥), 미자(미성년자), 열폭(열등감 폭발), ㄱㅅㄱㅅ(굽신굽신), ㅎㄷㄷ(후덜덜)이라며 말줄임말을 습관처럼 사용한다. 어른이 알아듣지 못하는 은어를 사용하는 것이 마치 '신세대'의 표상인양 당당하다. 그러나 이같은 '언어 파괴'는 급기야 10대들의 욕으로까지 '번식'했다. 비속어 ‘존나’는 말과 말을 연결해주는 하나의 접사가 된지 그 오래다. 1시간 대화에 50번 이상 사용한다는 통계도 있다.

▶현존하는 6900개 언어 가운데 6600개가 문자가 없는 언어이며, 이 중 5800개가 소멸될 위기다. '무형의 말을 담는 그릇' 언어는 문자 없이는 결코 살아남기 어렵다. 작가 펄 벅은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하고 단순한 글자이며 자모음을 조합하면 어떤 언어와 음성도 표기할 수 있다"고 했다. 얼마 전 인도네시아의 소수민족 찌아찌아족이 토착어를 표기할 공식 문자로 한글을 채택했다. 인구 6만 명인 찌아찌아족은 고유어를 갖고 있지만 그것을 표기할 문자가 없어 언어가 소멸될 위기에 처해있었다. 그들은 한국 전래동화인 ‘토끼전’을 포함한 교과서도 발행했다. 한국서 3500마일이나 떨어진 소수민족이 한글을 배우고, 문자를 쓰면서 한국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위대한 한글의 힘이다.

▶500년 전 문맹의 백성들을 위해 창제한 훈민정음은 한국의 자존이다. 영어가 만국공용어가 되어 세상을 지배하는 와중에 러시아는 영어단어를 무절제하게 끼어 넣는 러스글러시(Russglish)를 근절하기 위해 언어순화법안을 마련했다. 프랑스는 자국어 보호를 위해 정부주도의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청나라를 세워 중국 대륙을 250여년 간 통치한 만주족 후예들은 요즘 모국어 학습열기가 거세다. 청년층을 중심으로 민족 정체성을 되찾으려는 움직임이다. 그러나 한국에선 '문자 붕괴'를 말리는 사람도 없고, 위기의식을 느끼는 사람도 없다. 100년 전 일본이 한국을 도륙했을 때 제일 먼저 자행한 것이 언어말살정책이었다. 이는 정신의 약탈을 위한 폭력이었다. 우리의 언어 3할은 이미 문화 사생아처럼 내팽개쳐져 있다. 몸에서 가출한 혼들은 제자리로 돌아오기 힘들다. 주소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심약한 영혼을 가진 자가 고약한 언어를 쓴다. 지구상 6900개의 언어 가운데 가장 찬란한 문자 한글, 지금부터라도 '문안인사'를 여쭈며 그 위대한 유산을 받들어야 하지 않을까.

Posted by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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