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구멍'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9.17 부자 정치인들의 가증스런 서민행보
  2. 2008.10.01 청어의 꿈

추운날씨와 어려운 경제로 서민들이 이중고를 겪고 있는 가운데 23일 한 상인이 거리의 가판대에서 추위와 싸우며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충투 이성희 기자 lsh77@cctoday.co.kr  


▶왜 가난하면 ‘X구멍’이 찢어지는가. X구멍은 눈물과 콧물을 배설하는 통로가 아니라, 가난과 부자의 끼니가 ‘양극화’를 거쳐 빠지는 수채통이기 때문이다. 쌀이 없어 시래기나 거친 풀을 많이 먹으니 찢어지는 것이다. 풀떼기와 한숨으로 버무린 피죽이기에 피가 나는 것이다. 가난은 속살을 들킨 양 부끄러워 남들 모르게 땀 흘리는 세상의 ‘겨드랑이’ 같은 것이다. 가난한 자가 부자 되기도 어려운 세상이고, 부자가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빈자(貧者)를 위로한다 해도 감질 나는 세상이다. 희망은 내일을 담보로 한 작위적인 화해법이다. 오늘은 빌어먹을지언정 내일이 오면 달라질 거라는 자기 위로다. 그러나 희망이란 씹으면 씹을수록 점점 더 삶에서 멀어지는 게 이치다. 아름다운 꿈일수록 흙탕물을 뒤집어쓰는 법이니까.

▶대통령(MB)이 변했다. 친(親)서민, 중도실용이 곳곳에서 발현되고 있는 것이다. 113년 만에 최고지도자로는 처음으로 강원도 홍천을 방문했고 이곳에서 고추도 땄다. 마을사람들은 다슬기와 고랭지 배추로 국을 끓이고, 찰옥수수와 단호박 튀김, 식혜, 막걸리를 내놓으며 대통령을 환대했다. 남대문시장에 가서는 손녀에게 줄 한복, 무화과, 꿀타래를 사고 상인들과 설렁탕도 먹었다. 이제 재래시장은 기본 투어가 됐고, 농촌과 군부대는 민생행보의 코스가 됐다. 그런데 ‘서민과 복지’는 노무현 정권이 원조다. 입만 열면 서민, 눈만 뜨면 복지를 외친 그 때와 닮아있다. 그러나 진정성 없이 ‘서민’을 부르짖은 결과는 어땠을까. 서민을 챙겨 지지도는 올라갔지만 ‘살만 했던’ 중산층만 몰락하는 역조현상이 벌어졌다.


▶일본의 수탈로 조선의 식량난이 극에 달하자 총독부는 쌀밥을 많이 먹으면 머리가 나빠지고 건강을 해친다고 헛소문을 냈다. 이승만 정부는 1950년 쌀 파동 때 밀수출범을 사형시키기까지 했다. 어머니들은 밥밑에 물에 불린 통보리와 감자를 깔고 그 위에 흰 쌀을 얹은 ‘삼층밥’을 지었다. 이에 박정희 정부는 1976년 통일벼를 개발해 지긋지긋한 보릿고개의 고통을 걷어냈다. MB와 정운찬 총리 후보자는 학창 시절 끼니 굶기를 밥 먹듯 했던 극빈체험자로 빈곤의 통증을 온몸의 DNA로 각인시킨 사람이다. 그러나 서민정치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모두들 부자다. 이런 ‘부자 정치인’들이 서민들을 챙긴들, 폐부 깊숙이 저며 오는 슬픔까지 알 턱이 없다.


▶가난한 1인가구가 늘고 있다. 다섯 집 중 한 집 꼴, 341만여 가구가 혼자 살림을 꾸리고 있다. 두 평(6.6㎡)이 채 안 되는 단칸방에서 라면과 간장 종지를 놓고 끼니를 때운다. 이들 중 절반은 한 달 수입이 100만 원에 못 미치는 저소득층인데 싱글벙글 웃을 일 없는 싱글들이다. 청년 실업자, 알바근로자, 영세자영업자 등 고용보험에서 소외돼 있는 '신빈곤층'만 823만 명. 1인당 빚 1679만 원, 국가채무 366조 원인 세상에 ‘서민 위로’는 특효약이 아니다.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빈곤에서 구제한다’는 경세제민(經世濟民)은 서민을 진정으로 품을 때 비로소 열린다. MB는 “상황이 너무 딱하면 거절 못한다”며 서민행보를 하고, 참모들은 “대통령 만나는 게 로또 잡는다”는 말이 있다며 “민원인들에게 약속을 너무 쉽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뜯어말린다. 북 치고 장구 치는 것은 여기까지다. 대선 때 공언한 ‘세종시 약속’을 20개월 넘도록 방치하는 것은 해도 해도 너무한 민심이반이다. 세종시도 국가적 ‘민원’이기에 하는 말이다.
Posted by 나재필

청어의 꿈

忙中日記 2008.10.01 13:23

비늘이 꿈틀거리고 심장박동소리가 둥둥둥.

고삐 풀린 어죽처럼 서성대는 발걸음.

생선가게 들러 청어(靑魚) 한 마리 사다.

청어는 문병 가는 사람 마냥 힘이 없다.

황인종에 잡힌 등 푸른 魚선생.

36.5도의 인간을 위해 희생한 365일의 여정.

집어등에 잡혀 내내 눈물만 흘렸으리.

희망보다 더 큰 꿈의 지느러미 파닥거리며

미지의 대양을 헤엄쳐 온 수고가 물거품 되었으리.

해풍 잔뜩 머금은 생선 한 마리 세상의 입안에서 파닥거린다.

부러진 돛은 절망으로 나풀대고 물컹한 살집은 피비린내로 그득하다.
물 고 기….

인간의 아가미서 살육된다.

그물코에 까무러친 바다의 꿈.

해풍이 그리울 청어.

그 청어의 바다를 생각하니

혈관 속에서 파도가 일렁인다.

멀미가 난다.


동물인 인간은 말한다. “우리는 양떼를 미워하지 않고 사랑한다. 양고기는 무지하게 맛있다”고. 요즘 사람들은 다 잘 먹고 잘산다. 예전에는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해 못 먹고 못살았다. 아니 쌀이 없어 시래기나 풀을 많이 먹으니 똥구멍이 찢어질 수밖에.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해 변비가 걸렸지만 지금은 기름진 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 똥구멍이 찢어진다.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이제 못 먹고 못사는 것만큼이나 아프다. 화려한 가난, 화려한 문명이다.


인천 월미도에서 영종도로 가는 유람선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 있다. 바로 괭이갈매기의 새우깡 받아먹기 서커스. 괭
이갈매기는 부역을 하지 않는다. 고기 잡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에 그들은 앵벌이를 한다. 새우깡과 건빵이 그들의 먹이다. 그들의 입은 철저히 인스턴트에 길들여져 있다. 그들의 어미와 아비도 여객선 뱃머리서 던져주는 건빵과 새우깡으로 배를 채운다. 때문에 어린 새에게 고기를 잡는 방법을 전수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 자식들은 배꼬리를 따라 날며 앵벌이를 한다. 몇 번을 찾아 유람했는데 그들은 늘 앵벌이를 했다. 배고픈 아이에게 물고기를 주지 말고 낚시하는 법을 가르치라는 탈무드의 근로지침은 그 곳에 없었다. 고기를 잡으면 투망을 잊는다. 한 두 번 볼 때는 상당한 개인기라고 생각했는데 보면 볼수록 슬펐다. 그들은 왜 어미에게서 고기 잡는 법을 배우지 않았을까. 대대손손 그들은 새우깡 받아먹는 법, 건빵을 놓치지 않고 낚아채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새우깡도 먹어보니 새우 맛이 난다던 어미의 가르침을 배웠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물고기는 바지런하다. 물고기는 잠을 자면서도 눈을 뜨고 있다. 풍경(風磬)은 부지런한 그 물고기 형상을 단순화 한 것이다. 물고기처럼 언제나 깨어있으라는 ‘소리 없는 법문’이다.

Posted by 나재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