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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09 절망이여 파이팅
충청투데이 김상용기자

 ▶밥만 먹고 어떻게 사는가. ‘밥’만을 위해서 어떻게 사는가. 때로는 진눈깨비 같은 여행길에 소나기도 맞고, 그럴싸한 레스토랑에 앉아 ‘칼질’도 해야 하지 않는가. 탕탕한 세상길에 말동무라도 만들어 질탕하게 마셔 봐야 하지 않는가. 별빛도 차가운 유곽 같은 방안에 처박혀 노동의 핏빛 영가(詠歌) 부르며 진한 사랑한번 해봐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가난은 어찌 이리 진드기처럼 몸에 달라붙어 비루먹을 유충을 낳고, 허구한 날 몸속을 짐승처럼 유영하는가. 겨울엔 더 춥고, 여름엔 더 더운 날을 언제까지 맞아야 하는가. ‘가난이 죄’임을 일찍이 알았지만, 가난을 떨칠 수 없음을 어찌 이리 일찍 깨달았을까. 지금 대한민국에서 ‘밥’을 벌어먹고 산다는 것은 하나의 고행이다.

 ▶워킹푸어(Working Poor)는 절대빈곤층을 말한다. 밤낮없이 부지런히 일해도 소득이 최저생계비(4인 가족 기준 월 132만 6609원)에 못 미친다. 저축은 상상도 못하거니와 일자리를 잃거나 몸이 아프면 곧바로 절대빈곤으로 떨어지는 계층을 뜻한다. 알뜰살뜰 아껴봤자 식비, 방세, 자녀들 학비를 내고 나면 통장 잔고는 ‘0원’ 내지 ‘마이너스’가 된다. 억척스레 일하면 잘살 수 있다는 믿음, 없는 집 자식도 본인만 똑똑하면 명문대에 간다던 희망도 없다. 중산층으로 간신히 살고 있지만, 가족 중 한 사람이 실직하면 언제든지 워킹푸어로 추락하는 ‘빈곤층 예비군’도 있다. ‘인생역전’ 보다는 ‘인생유전(遺傳)’이 바로 이들이다. 대한민국 워킹푸어는 300만 명에 이른다.


 ▶전국에서 한 해 7만 5000명(2008년)의 학생들이 학교를 중퇴한다. 이들 대부분은 ‘가난’이라는 공통의 아픔을 갖고 있다. 소득의 차이가 성적의 차이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은 과외 받아 좋은 대학 가는 시대를 끝내고, 대학을 굳이 가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는 시대를 만들겠다고 했다. 이는 잘사는 동네의 과외 받은 학생들이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직장을 다니게 되는 ‘부의 세습’ 고리를 끊겠다는 얘기다. 나아가 미국도 100년이나 걸렸다는 입학사정관제를 임기 내 달성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사교육 공화국’에선 공허한 얘기로 들린다. 요즘엔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 공부 잘하는 학생 뒤에는 사교육비를 댈 수 있는 ‘부자 아빠’가 있고, 끼니를 걱정하는 ‘가난한 아빠’ 뒤엔 눈물만 있다. 공부로 인생역전 하는 세상은 갔다. 고용불안과 박봉에 시달리는 워킹푸어 시대에 고달픈 밑바닥 인생은 대물림마저 된다. 가난은 가난을 낳는다.


 ▶다산 정약용도 벼슬을 그만두고 산골짝에 들어가 사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며 ‘낙향 예찬론’을 폈다. 일정한 수입 없이 비참하게 사는 딸깍발이의 삶이 별로라는 것이다. 연암 박지원도 사흘을 굶다가 도저히 굶어 죽을 것 같자, 다락방에 처박아 둔 경대(鏡臺)를 전당포에 팔려고 했다. 현감 벼슬에 있었음에도 생계를 꾸려가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빈부의 격차가 인격의 격차가 된 세상에 가난은 웃음까지도 갉아먹는다. ‘가난’은 벗어나려고 발버둥칠 때 더 큰 ‘고난’으로 다가온다. 그 고난이 힘에 겨울 때 ‘가난한 아빠’는 세상을 경멸하기 시작한다. 열심히 일해도 탈출하기 힘든 가난의 대물림. 오늘을 살면서 내일의 희망을 꿈꿀 수 없는 절망의 대물림. 그래도 마음만은 가난해지지 않기를 소망한다. 옷의 가난, 음식의 가난은 견딜 수 있지만 마음까지 가난해지면 무엇에 기대어 살 것인가. 절망이여, 파이팅.
Posted by 나재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