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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2.10 성깔있는 정조의 욕쓴 편지 공개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비밀편지 '어찰'의 일부.

 “젖비린내나는 호로자식”
 
정조가 신하에게 사용한 용어다. 
 정조(正祖)가 편지를 통한 막후정치를 치밀하게 펼쳤음을 생생하게 증명하는 비밀편지 299통이 무더기로 공개됐다.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과 한국고전번역원은 우의정을 지낸 노론 벽파의 거물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첩(御札帖)을 발굴했다고 발표했다. 개인이 소장해오던 이 어찰첩은 모두가 정조의 친필이다.

정조대왕(왼쪽)과 심환지. 사진=연합뉴스

 정조는 욕쟁이였다?
 편지에 의하면 정조는 각종 현안이 있을 때마다 심환지에게 비밀 편지를 보내 상의했으며, 때로는 서로 각본을 짜고 정책을 추진할 정도로 고단수 정객이었다. 정조는 심환지의 큰아들을 과거시험에서 "300등 안에만 들면 합격시키려고 했으나 (아들이 그러지 못해) 심히 안타깝다"고 위로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최측근인 노론계 서영보를 “호로자식(胡種子)”이라고 했고, 촉망받던 젊은 학자 김매순에게 “젖비린내 나고 사람 꼴을 갖추지 못한 놈”이라 혹평했다. 늙고 힘없는 서매수, 어둡고 졸렬한 김의순, 약하고 물러터진 이노춘이라며 신하들을 평했다. 일부 유생에겐 “오장에 숨이 반도 차지 않았고, 도처에 동전 구린내를 풍겨 사람들이 모두 코를 막는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도 “놈들이 한 짓에 화가 나서 밤에 이 편지를 쓰느라 거의 5경이 지났다. 내 성품도 별나다고 하겠으니 우스운 일이다”라고 자신의 품성을 자평하기도 했다. 심환지에게도 “갈수록 입을 조심하지 않는다. 생각 없는 늙은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그는 ‘껄껄’ 등의 의성어와 ‘개에 물린 꿩 신세’ ‘볼기까고 주먹 맞기’ 등의 속담을 구사하기도 했다.

 정조의 편지는 드라마와 소설 등에서 준수한 외모의 성군으로 묘사됐던 것과 달리 전혀 다른 그의 이면적 성향을 드러내준다. 성격이 불같은데다, 입이 걸어 욕설과 비속어 섞인 악평을 퍼붓는 ‘다혈질’ 성깔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심환지 부인의 병환을 염려하며 삼뿌리를 보내고, 전복과 조청을 선물하는 등 속깊은 인정을 보여주는 대목도 등장한다.

 정조는 독살되지 않았다?
 정조의 건강과 관련된 편지도 있다. 정조는 죽기 13일 전에 "뱃속의 화기(火氣)가 올라가기만 하고 내려가지는 않는다. 여름 들어서는 더욱 심해져 그동안 차가운 약제를 몇 첩이나 먹었는지 모르겠다. 항상 얼음물을 마시거나 차가운 온돌의 장판에 등을 붙인 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는 일이 모두 고생스럽다"고 병세를 호소하기도 했다.
 
단국대 사학과 김문식 교수는 "이 어찰들로 볼 때 독살설은 사실이 아님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는 '심환지로 대표되는 수구보수파인 노론 벽파에 의해 독살됨으로써 좌절되고 말았다는 이른바 정조 독살설이 허구일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다. 정조 독살설은 "멀쩡하던 정조가 왜 갑자기 죽었느냐"는 의문에서 시작됐는데 병환이 깊었음을 나타내는 글귀가 상당수 드러나 사실상 근거를 상실한 셈이다. 이에 대해 소설 '영원한 제국'에서 정조독살설을 주장했던 이인화 교수는 "정조는 하루에 10~20통씩 편지를 주고 받았기 때문에 18년 간 300통은 결코 많은 양이 아니다"며 반박하고 있다

 심환지는?

 심환지는 노론 벽파의 수장이다. 영조 때 정계에 들어와 정조 때 이조판서와 우·좌의정을 지냈다. 순조 등극 뒤 영의정에 올라 정조가 만든 왕실 친위군 장용영을 없애고, 서학(천주교) 일소를 내세워 시파와 남인 세력을 몰아내는 정변(신유사옥)을 주도했다. 죽은 뒤 시파가 정권을 잡으면서 관작이 삭탈됐다. 심환지는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와 함께 정조 독살설의 배후인물로 지목돼온 인물이다.

Posted by 나재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