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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法)대로 해라

충청로 2010.01.28 13:07

▶대한민국 법(法)이 난타당하고 있다. 국회에서 ‘거침없이 하이킥’을 했던 강기갑 의원 무죄, ‘미친 소’로 대한민국 식탁을 ‘돌아버리게’ 만들었던 PD수첩도 무죄. 이 두 판결로 인한 ‘법리공방’에다 세종시까지 겹쳐 그야말로 ‘무법천지’다. 의원님이 ‘공중부양’을 하고, 방송사가 ‘채식 경기부양’을 했다고 해서 산 사람이 죽기야 하겠는가. 하지만 사법부가 ‘기교사법’(技巧司法·미리 무죄·유죄를 정해놓고 법조문을 짜 맞추는 것)을 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있어 문제다. 일각에서는 ‘이용훈 사법부’ 출범 이후 무죄선고가 2배나 늘었다며 ‘공판 중심주의’를 비판한다. 공판중심주의는 검찰의 수사기록 대신 법정에서 나오는 증거와 진술에 비중을 둬서 유·무죄를 가리는 것이다. 아무튼 법(法)을 놓고 검(檢)을 휘두르는 쪽이나, 판(判)을 뒤흔드는 쪽이나 어느 쪽이 맞는지 국민들은 혼란스러울 뿐이다.


▶스님들은 회의를 하거나 의논할 일이 있으면 ‘법대로(여법·如法)’ 한다. 이는 효봉 스님 때부터 전해 내려온 것이다. 효봉은 약속을 10분이라도 어기면 “오늘은 공양없이 단식이다. 수행자가 시간관념이 없어 되겠느냐”며 경을 쳤다. 밥알 하나만 흘려도 불호령이 떨어졌고, 초 심지가 다 내려앉기 전에 새 초를 갈아 끼워도 혼을 냈다. 또한 울력(공동 노동)을 해도 ‘열외’가 없었다. 울력은 여름 장마 때 한방에 모여 석달간 수도하는 하안거(夏安居)에 들기 위한 사전작업이었다. 이처럼 ‘법대로’를 외친 효봉이 바로 와세다 법대 출신이자 한국인 최초의 판사였던 이찬형(속명·俗名)이다. 그는 2남 1녀를 둔 가장으로 판사생활 10년째인 36세 때 출가했다.


▶효봉이 판사에서 스님으로 간 까닭은 왜일까. 평양 고등법원에 있던 어느 날 그는 처음으로 피고인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 그는 ‘신(神)도 아닌 인간이, 인간을 벌하고 죽일 수 있는가’라는 회의에 빠져 법복을 벗었다. 그 후 홀연히 집을 떠나 3년간 전국 엿장수로 떠돌다 스님이 됐다. 그는 엉덩이 살이 헐고 진물이 날 정도로 꼼짝도 안해 ‘절구통 수좌’로 불렸다. 그로부터 80년이 흐른 지금, 사시(司試) 합격은 출세와 신분상승의 지름길로 변했다. 법대생들은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절(寺)이나 쪽방에 처박혀 육법전서(六法全書)를 달달 꿴다. 그러나 법학지식은 깊을지언정 ‘인간적인’ 소양은 종종 장삼이사들의 ‘심판대’에 오른다. ‘국·영·수만 잘하면 출세가도를 밟듯’ 대한민국은 공부가 법이니 그렇다. 경찰대학이나 사관학교를 나오면 그 바닥에서 뼈가 굵은 베테랑의 상전(上典)으로 수직상승하는 이치와 같다. 나라꼴이든 사람꼴이든 효봉의 ‘깊은 번뇌’와 ‘도량’이 아쉽다.


▶진짜 ‘신(神)의 직장’은 대한민국 국회다. 국회는 무소불위의 입법기관이다. 그들은 면책특권의 보호막 뒤에 숨어 위풍당당하게 ‘법’을 주무른다. 대통령도 잘못하면 탄핵 대상이 되고, 대법관 등 헌법 독립기관도 징계 대상이다. 하지만 국민의 세금을 먹는 공복(公僕) 중의 한 부류인 국회의원은 국회 내에서 법을 어겨도 처벌받지 않는다. 지난 30년간 104건의 징계사유 가운데 가결(可決)된 것은 한 건도 없다. 세종시 입법전쟁이 시작됐다. 이는 법을 만든 당사자들이 ‘입맛에 맞게’ 법을 뜯어고치는 반칙행위다. 법에도 ‘눈물’이 있다지만 ‘피눈물’ 나는 이는 정작 국민이다. 어떻게 ‘법’은 힘없는 국민에게만 무서운가.

Posted by 나재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