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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4.15 꺼억~막걸리의 계절, 봄이 왔네 (3)
▶아버지 주름 틈에서 막걸리가 뽕짝이 되어 흐른다. 어머니 작은 손에 박힌 옹이에선 구수한 신파명조의 술이 발효된다.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 ‘인생의 삼합(三合)’은 가난과 노동과 눈물이었다. 이 때 슬픈 넋두리를 위로하는 시(詩)가 막걸리였고, 젓가락 두드리며 희망을 노래하던 흥타령이 막걸리였다. 코흘리개 시절, 막걸리 심부름을 하며 한 모금 한 모금 도둑 술을 마셨던 기억은 여린 취기(醉氣)다. 시치미 뚝 떼고 술 주전자를 내밀면 아버지는 벌건 볼과 풀린 눈을 모른 체 하며 가벼워진 주전자를 기꺼이 받았다. 술의 양은 줄었지만, 아이가 술의 발효만큼 쑥쑥 자라고 있다는 ‘귀여운 일탈’로 본 것이다. 질긴 풀과 억센 밥을 먹는 식구들 사이에서 향긋한 이야기로 익어가던 우리네 술 ‘막걸리’가 요즘 뜨고 있다.


▶1970년대 대물림된 궁핍과 빈곤에 익숙해진 우리는 내일이 없는 삶을 살았다. 그 동네에 초록색 새마을운동 깃발이 내걸렸다. 진입로를 새로 닦고, 초가집을 헐고 우물을 새로 팠다. 집집마다 형광등이 들어와 광명이 비췄다. 불 때던 아궁이는 전기밥솥으로 바뀌고, 부채 대신 선풍기가 여름햇살을 막았다. 바보상자 TV도 노동의 피로를 달래주는 ‘신기한 광대’였다. 이런 새마을운동의 중심에는 자급자족을 가능케 한 ‘통일벼’가 있었다. 소출(所出)이 늘어 곳간이 넘쳤고 쌀 막걸리가 등장했다. 1977년 12월 8일 ‘1호 쌀 막걸리’가 세상에 나오자 대폿집에 술꾼들이 몰려 단시간에 술독이 동났다. 당시 쌀 막걸리의 등장은 의료보험 실시, 수출 100억 달러 달성과 함께 10대뉴스에 포함될 만큼 화제였다.


▶당시만 해도 막걸리는 옥수수나 밀가루로만 만들었다. 정부는 1년 묵은 고미(古米)로는 막걸리를 빚지 못하게 하고, 2년 묵은 고고미(古古米)나 3년 묵은 고고고미로만 술을 빚게 했다. 그러나 요즘 막걸리의 90% 이상은 국산 쌀이 아닌 수입쌀을 쓰고 있다. 여기에 덕지덕지 붙는 세금은 ‘막걸리’에게 더욱 야박하다. 맥주 500㎖ 1병의 세금을 뺀 매출 단가는 478원, 소주 360㎖ 1병은 394원인데 막걸리 750㎖ 1병은 693원이다. 오히려 막걸리가 더 비싸다. 전국 750곳의 양조장에서 빚는 2000종의 막걸리는 숱한 규제와 ‘싸구려 농탁(農濁)’이라는 설움 속에서 오늘도 술등을 적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좋아했다는 오곡막걸리(충북 단양), 박정희 전 대통령이 즐겼다는 배다리 쌀막걸리(경기 고양), 76년 전통의 연꽃 생막걸리(충남 당진), 등록문화재인 덕산 막걸리(충북 진천)…. 세월이 빚은 명주(銘酒)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꽃 피는 계절이면 술도 익는다. 대청마루서 햇살을 안주삼아 한잔 기울이는 것도, 논두렁에 둘러앉아 막걸리와 짠지 하나로 노동의 고단함을 잊는 것도, 앞마당 무화과나무 앞에서 여흥을 즐기는 것도 모두가 막걸리가 있어 가능하다. 이런 막걸리는 찌그러진 주전자로 마셔야 제 맛이다. 완벽하지 않은 것처럼 마음 편한 것도 없다. 사람도 막걸리처럼 조금은 찌그러지고 빈구석이 있어야 그윽하다. 사람이 막걸리처럼 익는다. 봄처럼 익는다. ‘골 때리는’ 술이라며 천대받던 막걸리가 인기를 누리는 것은 좋아진 제조법 때문만이 아니다. 사람냄새 나고, 사는 맛 나는 세상을 갈구하는 모두의 갈증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다. 비 오는 처마 밑에서 술마당을 열고, 젓가락 두드리며 막걸리 한 잔 하는 것도 봄이라서 가능하다. 꺼억~.

Posted by 나재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