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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충청로 2008.09.09 21:49
  ▶아, 백일몽(白日夢)이었나. 10년만에 정권교체를 이룬 MB정부 100일. 그러나 100일이 마치 100년 같았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은 거리로 '퇴근'한다. 그 거리에서 민심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말'로 속을 썩인 정부를 비토한다. 국민을 섬기겠다며 머리 조아리던 '머슴'은 어디로 갔는가. 수십 년간 지속해온 교육정책이 뒤틀리고, 따뜻한 시장경제주의는 얼음판 위를 걷고 있으며 공직사회는 변화는커녕 복지부동 상태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과 '경제'를 외쳐댔지만 경제는 되레 곤두박질치고 있다. 그런가하면 국민에게 묻지도 않고 덜컥 쇠고기를 끊어와서는 쇠귀에 경읽듯 딴전을 피우고 있다. 유가급등, 물가상승, 내수경기 악화, 고용불안 등 4대 악재가 겹치면서 서민들은 '인내심의 끝'으로 몰리고 있다. 한나절 트럭 행상을 하고 기름 값을 빼면 1만 원도 안 남는 게 현실이다. 지갑 얇은 주부는 할인 쿠폰을 모아 장보기에 나서고 마트의 시식코너는 이쑤시개를 든 남녀노소가 체면을 접은 지 오래다. AI(조류 인플루엔자)에 쇠고기까지 겹치면서 자영업자도 울상이다. 오죽 답답하면 허리띠를 졸라매야 살 수 있다는 '졸라맨 신드롬'이 뜨고 있을까.


 ▶조선시대 장관(6조 판서)의 평균 임기는 169일이었다. 삼정승의 평균 임기는 390일. 관찰사(도지사)의 평균 재임기간은 355일이었고 호조판서는 250일, 병조판서는 237일이었다. 조선 중기 조정의 '입'이었던 이조전랑의 경우 109일 재직했는데 당쟁이 극심했던 숙종 때는 44일, 경종 때는 고작 27일을 버텼다. 영의정은 458일로 좌의정(357일), 우의정(355일)보다 길었다. 반면 업무 부담이 큰 이조와 형조판서는 170일, 87일에 불과했다. 이는 국민대 한국학연구소가 조사한 결과다. 정부는 쇠고기 파문 등으로 흐트러진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장관과 청와대 수석 가운데 서너명을 정리한다고 한다. 여기에는 '쇠고기 홍보대사' 농림장관도 끼여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 벼슬아치들에 비견할만한 단명(短命)이다. 그러나 그들을 자른다고 달라질 게 뭐가 있나. '할일'을 못하고 '일'만 강조하며 서두른 '머슴 코드'가 문제인데 헛다리를 짚는 건 아닌지 자문해볼 일이다. 인디언은 사냥감을 쫓다가도 어느 순간 추격을 멈추고 잠시 뒤를 돌아본다. 너무 빨리 달리면 자신의 영혼이 미처 '나'를 쫓아오지 못하고 길 위에서 헤맬 수도 있기 때문이란다. 시속 6㎞는 인간이 좀 더 여유로워지고 행복해지는 걸음이다. 부디 정부는 냉정과 열정사이에서 조금은 늦을 수 있지만 뒤를 돌아보라. 민심이 그 길로 따라오고 있는지.


 ▶촛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그것은 분노한 민심이 점화된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촛불을 끄려고 물대포만 쏜다. 그것은 '눈물 없는 최루탄'이다. 촛불은 불꽃이 아니라 불같은 분노다. 공권력에도 스러지지 않고, 어떠한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것이 순정의 저항이든 배후가 있는 항거든 중요한 게 아니다. 자신의 몸을 태워 세상을 밝히는 촛불은 희생을 감수한 분노의 외침이다. 정부여, 정녕 민심의 등불이 되지 못할망정 그 촛불마저 곡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일찍이 미군 전차에 깔려죽은 여학생을 위로하기 위해 시작됐던 그 아픈 촛불이 대한민국 재도약의 불씨가 되었으면 한다. MB(Mobile Bulldozer:불도저)가 진정한 MB(Master Blue House :청와대 주인)가 되려면 그 촛불을 감싸 안아야 한다. 그 촛불의 노래를 들어주어야 한다.

Posted by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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