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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7.30 전부 다 도둑놈들입니다
미디어법 통과 원천무효 대전시민 촛불문화제가 대전역에서 비가 내리는데도 열렸다.
충청투데이 홍성후 기자 hippo@cctoday.co.kr

"우리 모두 광장으로 뛰쳐나갑시다. 그리고 정권의 오만을 깨부십시다"
"어서들 국회안으로 들어오세요. 그게 뭡니까. 뭔일만 있으면 집밖으로 나가는 그런 퍼포먼스도 이제 질립니다. 레퍼토리좀 바꾸세요"

 ▶광장은 소통의 장소다. ‘어울림’이 춤추는 대의정치의 표상이다. 2002월드컵에서 보았듯이 광장은 다수를 리드미컬한 공동체로 만든다. 같은 밥을 먹지 않았어도, 같은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하나가 되는 통로다.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가 똑같이 굿판을 벌이는 드넓은 마당이기도 하다. 그러나 광장이 죽어가고 있다. 광장에 나부끼던 정의의 횃불은 사라지고, 구호와 시뻘건 깃발만이 펄럭이고 있다. 관심과 무관심의 공허한 촛불을 켠채 광장은 뙤약볕에 그을리고 있을 뿐이다. 민주당이 100일 장외투쟁을 선언했다. 그러나 그 힘겨운 ‘100일 전쟁’을 바라보는 시선은 냉정하다. ‘백일몽(白日夢)’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와, 광장이 ‘선동의 장소’로 이용되는 것 아니냐는 눈총도 있기 때문이다. 정치는 광장이 아닌, 국회 안마당에서 해야 한다.


 ▶옛 자유당 시절 영국의 더 타임스는 ‘쓰레기통에서는 장미가 피지 않는다’며 한국 민주주의 가능성을 폄훼했다. 군사정부에서는 결코 민주주의를 일궈낼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광장에 뜬 검은 깃발은 핏빛으로 물들며 민주주의를 탄생시켰다. 정권 고위층에 대한 로비와 부정부패가 만연했던 1980년대에 ‘전부 도둑놈들’이란 말이 유행했다. 탐욕과 탐관의 시대에 어느 놈 하나 제대로 된 놈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치만 있고, 민심을 챙기지 않았으니 당연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정치는 진화하지 않고 있다. ‘반대 목소리를 듣지 않는’ 여당이나, ‘반대를 위한 반대’만 외치는 야당이나 오십보백보다. 기득권의 야만을 즐기며 독불장군처럼 구는 여당이나, 뒷북치며 광장으로 뛰쳐나온 야당이나 거기서 거기다.


 ▶“나도 나카소네가 싫지만 오야붕이 오른쪽이라면 오른쪽, 왼쪽이라면 왼쪽이다. 그게 싫으면 떠나라.” 1982년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의원 총회서 나온 말이다. 일본의 뿌리깊은 ‘오야붕(親分·보스)·꼬붕(子分·계보원) 정치’의 대표적 사건이다. 대한민국 정치도 예외는 아니어서 오야붕·꼬붕정치가 버젓이 판치고 있다. 친박계와 친이(親李)계, 주류와 비주류, 계보와 철새. 이들에게 있어서 보스의 뜻을 거스르는 발언은 별로 없다. ‘꼬붕’만 있고 진정한 ‘보스’도 없다. 얼마 전 미국 연방 하원의원 5명이 인권탄압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체포됐다. 경찰은 의원들이 폴리스라인을 넘자 가차없이 수갑을 채웠고 의원들은 이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원내 서열 10위 안에 드는 여당 실세도 포함돼 있었다. 법을 지켜야 할 사람들이 법을 어기면 그 누구도 예외가 아니라는 본보기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법을 만드는 ‘입법자’가 민생법안을 방기하고 국회와 광장에서 따로 노는 것은 ‘무법자’의 행보다.


 ▶밑동이 잘린 나무는 이듬해 잘린 그루터기에서 많은 곁가지들이 나온다. 그러나 그 곁가지는 다시 나무가 되지 않는다. 그냥 곁가지 일뿐이다. 곁가지는 눈엣가시여서 싹을 잘라줘야 가지가 더 굵고 튼튼하게 자란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도 눈엣가시다. 미디어법을 가지고 죽을둥 살둥 피터지게 싸우지만 그건 ‘민생법안’이 아니다. 정권들의 전리품이었던 ‘공룡 방송’을 국민에게 돌려주려는 의도는 알지만 민생을 방기하니 곁가지일 뿐이다. 요즘 우울증약(藥)의 소비가 5년 새 50% 이상 늘었다고 한다. 먹고 살기 힘든 국민들은 정치와 경제 스트레스 때문에 돌아버릴 지경이다. 480일간 단 하루도 바람 잘날 없이 싸워대는 18대 국회를 보면 그들보다 국민들이 광장으로 뛰쳐나가고 싶을 것이다.
Posted by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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