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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03 사랑의 매? 빠따?

▶스승은 냉온류(冷溫流)였다. 온탕이거나 냉탕이거나. 혹은 존엄하거나 엄하거나. 제자의 딱한 처지를 본 선생은 셋방에 살면서도 공납금을 대신 내주었다. 굶기를 밥 먹듯이 하는 학생에겐 자신의 도시락을 내밀고, 사랑의 매를 들었다가도 안티푸라민을 발라주며 울었다. 한편으론 죄와 벌, 권선징악이 뚜렷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에게 맞은 사매질은 아직까지도 상처로 남아 있다. 세월이 흘러도 그 상처는 지워지지 않고 가슴 밑 외진 들녘에서 웃자랐다. 당시 무엇을 잘못했는지 맞으면서도 몰랐지만 스승에 항거하지 않았다. 매 맞고 온 자식을 부모도 두둔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매’로 사람을 다스리기엔 시대가 너무 ‘우매’하고 경박해졌다. 뺨맞는 교권도 있고 뺨맞는 학부모도 있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낡은 필름처럼 먼지가 뽀얗게 앉아 매를 맞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에는 ‘눈에는 눈, 이(齒)에는 이’라는 율법이 있다. 다른 사람의 이를 부러뜨린 가해자는 공공장소에서 이를 뽑힌다. 도둑에겐 손 잘리는 형벌이 가해지고 강도·강간범은 돌로 쳐 죽인다. 소말리아의 한 이혼녀는 총각과 관계를 가졌다는 이유로 돌팔매질 처형을 당했다. 또 여성들이 브래지어를 착용하면 ‘가슴을 억압한다’는 이유로 매질을 당한다. 말레이시아의 한 무슬림 여성은 공공장소에서 술을 마셨다는 혐의로 태형 6대를 맞았다. 태형은 야자수로 만든 얇은 회초리로 태형 전문 교도관에 의해 집행된다. 싱가포르의 한 청년은 주차된 자동차에 낙서를 하고 계란을 던졌다는 이유로 죽지 않을 만큼의 ‘빠따’를 맞았다. ‘한 손엔 코란, 한 손엔 칼’이 들려있는 이슬람문화는 아직도 전근대사회의 형틀에 갇혀있다.


▶‘우라질 놈’은 죄인을 묶던 오랏줄에서 유래된 욕이다. 치도곤(治盜棍)은 회초리가 아니라 초주검이 될 정도로 곤장을 치는 것이다. ‘저런 치도곤 놓을 놈’은 ‘패 죽일 놈’이다. 난장(亂杖)은 여러 명이 난타하는 고문이다. ‘젠장할’이 바로 이 난장에서 유래했다. ‘경을 치다’도 조선시대 형벌에서 나온 욕이다. 도둑의 팔뚝에 '도(盜)'자를 새기고, 큰 도적에겐 얼굴에 ‘도’자를 새겼다. 오살(五殺)은 팔, 다리 등을 차례로 베어내는 방법인데, 욕으로 ‘오살할 놈’이다. 갈가리 찢어 죽이는 육시(戮屍)에서 ‘육시랄 놈’이 나왔다. 말도 폭력이고 거짓말도 폭력이다. 공약을 남발하는 정치도, 공약을 못 지키는 정치도 민심을 향한 폭력이다. 매 맞은 자국은 시간이 흐르면 제 색깔의 온기를 되찾지만, 험악한 말이나 거짓말은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다. 말로도 때리지 마라.


▶최근 대구의 한 여고생이 반 친구 30명에게 회초리로 엉덩이를 맞았다. 이유는 종례 없이 먼저 집에 갔다는 것이고, 체벌을 지시한 사람은 다름 아닌 담임교사였다. 이 여고생은 아픔보다 수치감에 죽고 싶다고 했다. 동급생끼리 뺨을 때리는 것은 일제 잔재다. 그것은 이미 ‘사랑의 매’가 아니다. 뭇매다. 몸에 난 상처보다 마음에 남은 상처가 더 깊은 것이다. 상처는 자국 같은 것이기에 때리는 사람이나, 맞는 사람이나 흉터가 남는다. 그래서 인간은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천격스러운 하치 짓도 서슴지 않는다. 누구라도 상처는 두려운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때리고 나서 자식의 상처를 어루만질 때 그것이 어디 자식의 상처를 닦는 것일까. 제 가슴의 상처를 닦기 위해서 자식의 상처를 만지는 것이다.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

Posted by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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