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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1.01 너무 뻥이 심한 드라마 선덕여왕 (7)


 선덕여왕(재위 632~647)이 TV에서 부활해 방방 뜨고 있습니다. 시청률 40%대를 가볍게 넘어서 남녀노소에게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저기 문제가 많은 게 사실입니다. 드라마상으로는 갖은 계략과 배신, 음모를 헤쳐나가 어렵게 여왕에 오르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화랑세기, 삼국유사 등에서 그의 등극과정은 간단하고 명료합니다. 진평왕에게 남자가 없었기 때문에 '자동빵'으로 왕이 될 수 있었다는 거죠. 더구나 성골로는 유일한 직계였으며, 언니 천명공주가 사랑 때문에 왕위를 포기함으로써 즉위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천명의 유일한 자식, 김춘추 또한 진골이었기에 진덕여왕 후에 29대에 가서야 왕(태종 무열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선덕여왕은 재위하는 동안 선
정을 베풀어 민생을 향상시켰고 구휼사업에 힘썼으며 불법 등 당나라의 문화를 수입했습니다. 또한 첨성대·황룡사 구층탑을 건립하는 등 삼국통일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그는 남자만이 왕을 이어야 한다는 당시 남성들의 상식을 깼으며 그런 도전이 있었기에 전무후무한 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선덕여왕은 세 명의 남편을 둘 수 있게하는 ‘삼서지제(三婿之制)’ 때문에 풍월 용춘(언니가 진짜 사랑했던 남자) 외에도 흠반과 을제를 남편으로 삼았습니다. 물론 아무리 성골이라지만 최초의 여성 임금에 대한 반발은 적지 않았습니다. 특히 당태종은 선덕을 노골적으로 조롱했습니다.
'암탉이 새벽에 우니 어찌 나라가 제대로 되겠는가'라면서요.
 때문에 백제는 호시탐탐 신라를 노렸고, 그 때마다 신라는 대패했습니다. 선덕여왕
재위 10년에 백제 의자왕이 즉위하며 신라 40개성을 빼앗았습니다. 의자왕은 선덕이 여왕인 것을 낮춰보고 고의적으로 군사공격을 감행한 것이죠. 더구나 그녀의 등극을 도운 것으로 표현된 비담(김남길 분)은 훗날 여왕의 무능을 이유삼아 반란을 일으킵니다.

 드라마상 문제는 미실(美室)의 존재입니다.

 미실은 뇌쇄(惱殺)란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여자입니다. 여자가 그 아름다움으로 남자를 매혹시켜 괴로운 상태로 만든다는 말이 뇌쇄죠.
 15세때 사다함이란 남자와 사랑에 빠진 후 미실은 음사(陰事)를 잘했기 때문에 진흥왕의 총애가 깊었습니다. 그녀는 왕실과 화랑제도의 원화들을 두루 휘하에 두고 임금 이상의 권력으로 신라를 지휘했던 미모와 학식을 겸비한 진골 귀족입니다. 진흥왕과 세종(진흥왕의 의붓동생), 화랑 사다함과 모두 내연의 관계에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몸'바쳐 '권력'을 얻은 중국의 '측천무후'와 비슷합니다.

 
선덕여왕의 즉위년이 632년.
 화랑세기 필사본에 선덕이 왕이 된 뒤 후사를 얻기 위해 삼서제를 행했다는 내용이 있으므로, 적어도 출산이 가능한 연령이었다는 말이 되므로 선덕여왕의 나이를 30대 후반으로 가정해 보더라도 632년 미실의 나이는 이미 80살에 이릅니다. 결국
미실은 590년대 중반 쯤에 태어난 것이 되므로 미실과는 최소 40년의 나이 차가 나는 것입니다. 드라마에서 표현되듯 서로 권력암투를 벌일 나이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대장금’ ‘서동요’를 쓴 베스트 극작가 김영현이 아무리 '재미'에 초점을 맞췄다하더라도 너무 비약시킨 구조입니다. 
 물론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오해하지 말자"라고 한다면 할말이 없습니다. 다만 드라마를 액면 그대로 믿는 아이들에겐 그릇된 역사인식을 갖게 할 수 있습니다. 저도 선덕여왕을 재미있게 보고 있지만, 선덕과 미실에 맞춰져있는 극의 흐름상 '너무 뻥이 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Posted by 나재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