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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13 장난치는 정치, 건방떠는 정치
  2. 2009.02.18 전두환씨, 추기경 뒷짐조문 결례
청주시 분평네거리에서 한 관계자가 굵은 빗줄기속에 오송 유치를 환영하는 플래카드를 걸고 있다. 사진 위는 오송생명과학단지 전경. 사진=충청투데이 이성희 기자 lsh77@cctoday.co.kr

첨단의료복합단지 입지가 충북 오송으로 결정됐습니다. 축하할 일입니다. 그들은 10년간 황금알 의료메카 유치에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냥 얻어진 게 아닙니다. 문제는 정부의 국책사업 배정의 찝찝함입니다. 첨단의료복합단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세종시 건설 원안 추진 등 대형 국책사업을 두고 '장난'치는 기분이 들기 때문입니다. 결국 첨단의료복합단지도, 첨단의료따로단지가 돼버렸습니다. 1년 전만 해도 생판 거론되지도 않던 대구가 복수 선정된 것도 '정치적 입김'이란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세종시 건설도 앞날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고, 국제과학벨트사업도 지지부진입니다. 제 생각엔 국제과학벨트사업 입지도 빠른 시일내에 결정되기 어려울 듯 싶습니다. 내년 6.2지방선거 이전에 '당근용'으로 표와 바꾸려는 심산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과학벨트를 줄테니 노다지 '표 벨트'를 달라고 말입니다.

 ▶클린턴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북한에 억류됐던 미국 여기자 2명을 ‘집으로’ 데려왔기 때문이다. 그는 ‘전직 대통령’이 아닌 평범한 ‘미국 국민’으로 특사임무를 수행했다. 아내 힐러리도 막후에서 남편을 지원했다. 1992년 미국 대통령에 도전했던 클린턴은 유권자의 표심을 얻기 위해 ‘하나 값에 두 개’라는 구호를 외쳤다. 자신이 당선되면 똑똑한 변호사 아내 힐러리까지 덤으로 얻게 된다는 뜻이었다. 결국 '빌러리(빌 클린턴+힐러리)' 패키지는 성공했고 그는 두 번의 백악관 주인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 ‘빌러리’의 주인공은 조용한 '들러리'로 백악관시절보다 더 드라마틱한 '정치 로맨스'를 써가고 있다.


 ▶“미국 대통령은 한 명뿐이다. 내가 한 일은 전직 대통령으로서가 아니라 미국인으로서, 아버지로서 매우 영예로운 일이었다.” 달변인 클린턴은 짧은 소회를 밝히고 195분간의 회담내용에 대해선 노코멘트 했다. 또한 오바마 대통령에게 ‘정중하게’ 방북보고를 하는 것으로 임무를 마쳤다. 자신의 ‘업적’을 홍보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도 자중한 것이다. 이처럼 미국의 전직 대통령은 과도하게 나서거나 ‘훈수’를 두지 않는다. 민주당 대선 경선 당시 오바마를 ‘경험 없는 애송이’로 깔봤던 클린턴. 그가 찬사를 받고 있는 것은 특사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진정 뻐기지 않고 겸손한 ‘전직’의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최근 DJ(김대중 전 대통령)와 YS(김영삼 전 대통령)가 화해했다. 이들은 60년 정치 동지로 민주화의 산증인이지만 피 튀기는 경쟁자이기도 했다. 1987년 대선을 앞두고 둘은 갈라섰고 20여 년간 서로를 등지고 살았다. 양 김(金)은 대통령 퇴임 후 지역감정을 악용하면서 서로를 헐뜯었다. 노회한 독설과 훈수는 국민들로 하여금 반감을 샀고, 나라의 ‘큰 어른’이 사사건건 이래라저래라 나선다는 비판도 받았다. DJ와 YS의 화해는 어쩌면 구질구질한 현 정치를 나무라던 ‘1세대 정치인’의 퇴역이자, 마지막 선물일지도 모른다. 예수님은 성서에서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365번 했다고 한다. 실제 걱정의 80%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민심은 정치를 걱정한다. 정치가 민심을 걱정하지 않으니 민심이 정치를 걱정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열 받는 이유다.


 ▶우리는 1등과 승자만 주목한다. 조력하고 힘을 주는 2등엔 눈길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2등은 주목받지 못할 뿐이지,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다. 나대는 1등보다 겸손한 2등이 낫다. 앨빈 토플러는 기업은 100마일, NGO는 90마일, 노조는 30마일, 정부는 25마일, 학교는 10마일, 정치권은 3마일로 달린다고 했다. 정치는 예나 지금이나 ‘3등 완행열차’ 삼류(三流)다. 어느 철학자는 말했다. 지상에서 자기가 가장 좋아하던 곳은 언제나 뒷간이었다고. 위로는 별들이 쏟아지고 아래엔 거름이 있으니 아늑한 곳이라고. 뒷간은 겸손의 장소다. 자신이 아무 것도 소유할 수 없는 한낱 인간에 지나지 않음을 느끼게 한다. 가벼움이 때론 무거움을 지배한다. 깡통을 차고 있는 사람의 겸손은 겸손이 아니다. 거짓말과 허풍이 판치는 정치판엔 깡통소리만 요란하다. 그들은 겸손하지 않고 자만에 차 있으며 경솔하다. 국책사업 몇 개를 들고 ‘당근’ 주듯 질질 끌며 정략에 악용한다. 내 편에 유리한대로 나눠주니 일종의 장사치다. 표를 얻기 위해 뻥을 치니 야바위꾼이다. 거짓말에도 자국이 남는다. 언제까지 민심을 우롱할 것인가.
Posted by 나재필
 큰어른 vs 어른의 차이  

 #1. 2009년 명동성당
 한국의 정신적 큰어른이자, 시대의 양심이었던 김수환 추기경을 애도하기 위해 18일 전두환 씨가 명동성당을 찾았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김운회 주교의 안내를 받으며 조문하던 전두환 씨가 ‘뒷짐’을 진 채 유리관을 주시했기 때문이었다. 분명한 결례였다. 김 추기경이 선종한 뒤 20만 명에 가까운 조문객이 명동성당에 조문을 했지만 '뒷짐'을 진 추도객은 없었다. 지금 추기경을 애도하는 대한민국은 '뒷짐조문'에 대해 한심하다는듯 끌탕을 하고 있다.


 #2. 1980년 명동성당
 30년 전으로 거슬러가보자. 1980년 쿠데타에 성공한 전두환 당시 육군 소장은 명동성당의 김 추기경을 알현했다. 이 때 추기경은 전두환 소장에게 '서부총잡이'를 빗대어 뼈있는 조언을 했다.

 "서부 활극을 보는 것 같습니다. 서부 영화를 보면 총을 먼저 빼든 사람이 이기지 않습니까"라고 말했다. 전두환 소장에게는 뼈아픈 비유였을 것이다. 이후 명동성당은 군사정권 내내 민주화운동의 성역이 됐고 추기경은 군사정권에 굽히지 않고 당당하게 '큰어른'의 자세를 견지했다. '뒷짐 조문'은 30년 전의 악연이 떠올라 자동반사적으로 나온 행동이었을까. 아니면 종교의 차이였을까. 조문을 마치고 나온 전두환 씨에게 기자들이 "30년 악연이라는데, 서운한 감정은 없느냐"며 꼬치꼬치 물었지만 그는 개인적으로 찾아오라며 바람처럼 사라졌다.

 "오호! 통재라,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하나 더....
 #3. 다시 2009년 명동성당
 이날 조문을 왔던 김영삼 전 대통령도 추기경에 대해 "
이 양반"이라는 표현을 썼다가 구설수에 올랐다. "이 양반의 힘이 우리가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와 싸우는데 큰 힘이 되었다"고 말한 것이다. 국민애도의 분위기에서 '이 양반, 저 양반'이 어디 할소린가.

 "나라의 어른들 행동하나, 말씀하나 가관들이다"
Posted by 나재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