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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9.15 시나리오작가를 꿈꾸다

  독신이기 싫었다. 절뚝이더라도 혼자이긴 싫었다.

 ‘결혼을 해서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철학자뿐이다'던 쇼펜하우어. 니체도 칸트도 독신이었지만 동행하고 싶지 않았다. 사랑은 불같은 것이다. 타오르다가 식고, 식다가 온기를 띠는 것이다. 그런 사랑은 끼니처럼 배고픈 것이다. 보고픔에 배고프고 만남에 배부른 것. 獨이 毒이 되면 아프다. 혼자 먹는 밥, 혼자 자는 방, 혼자 걷는 길, 혼자 마시는 술, 혼자 떠나는 여행, 혼자 앓는 신열, 혼자 보는 영화, 혼자 부르는 노래, 혼자 겪는 성애(性愛)는 슬프다. 때로는 너무 슬퍼 온 몸에 멍이 든다. 그래서 하나 더하기 하나, 둘을 생각한다. 둘이 먹는 밥, 둘이 자는 방, 둘이 걷는 길, 둘이 마시는 술, 둘이 떠나는 여행은 달콤하다. 나에게 결혼은 필요가 아니라 필수였다. 고독의 해방구, 척박한 삶의 비상구였다. 그러나 결혼을 위해선 '돈'이 필요했고 그 돈을 위해선 밥벌이가 필요했다. 달랑 수저 하나, 이불 한 채 더 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데이트 하던 시절 이른 그녀의 귀가가 싫어 선택한 것이 결혼이었다. 함께 밤을 새우고 함께 아침을 맞는 동질감을 원했다. 떼를 쓰고 잔머리를 굴려가며 그녀의 귀가를 늦추고 그녀의 외박을 부추기는 불한당 같은 욕심이 싫었다. 거리의 여관간판 불빛에 낯붉히고 추문(醜聞)이라도 날까봐 전전긍긍하는 비열함이 싫었다.

 당시 난 시나리오 공부를 하고 있는 백수였다. 서울 충무로 필동의 시나리오 작가 교육원에 다니며 영화판을 곁눈질하고 있었던 때였다. 시나리오만이 유일한 밥벌이처럼 느껴졌고 그런 나만의 '시나리오'는 적중하는 듯 했다. 그러나 영화동네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당장 ‘밥’이 되지 않았고 그들만의 ‘법’이 있었다. ‘은행나무 침대’와 비슷한 판타지물을 써 교수로부터 한때 칭찬도 들었지만 6개월 만에 그 일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돈' 때문이었다. 결혼 때문이었다. 그리고 '밥벌이'를 위해 직장을 찾아나섰다. 그 '밥'이 내가 원하는 밥은 아니었지만 결혼을 위해선 그 '밥'이 필요했다. 기자가 된 것은 순전히 밥벌이 때문이었다. 이제는 굶지 않을 만큼의 '밥'을 먹고 산다. 때문에 가끔은 그 옛날 영화판 열정이 소름처럼 돋곤 한다. 지금도 영화를 보면 온 몸이 쑤신다. 목구멍 공명통에서 메가폰 소리가 난다. 귓구멍 나팔관에서 배우의 구성진 대사가 떠오른다. 몸에 난 구멍마다 소리가 난다. 그 열병이, 나를 언젠가는 그토록 하고 싶었던 시나리오를 쓰게 할런지 모른다. 충무로 어느 뒷골목을 기웃거리며 한물 간 감독에게 한물 간 시나리오를 보여주며 소줏잔을 기울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교육원시절로부터 2년 뒤 내가 썼던 비슷한 소재의 '은행나무 침대'는 강제규 감독에 의해 영화화됐다. 독특한 시선으로 그만의 영화세계를 구축한 김기덕 감독은 같은 교육원 출신이다. 그는 ‘사마리아’와 ‘빈집’으로 베를린과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돈을 갖고 튀어라, 깡패수업, 투캅스3, 행복한 장의사, 반칙왕, 조폭마누라,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수취인불명, 여고괴담, 파란대문, 섬, 단적비연수 등도 이 교육원에서 배출한 인재들의 작품이다. 부럽다.

1993년 4월

Posted by 나재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