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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8.09.09 우정

청어의 꿈

忙中日記 2008.10.01 13:23

비늘이 꿈틀거리고 심장박동소리가 둥둥둥.

고삐 풀린 어죽처럼 서성대는 발걸음.

생선가게 들러 청어(靑魚) 한 마리 사다.

청어는 문병 가는 사람 마냥 힘이 없다.

황인종에 잡힌 등 푸른 魚선생.

36.5도의 인간을 위해 희생한 365일의 여정.

집어등에 잡혀 내내 눈물만 흘렸으리.

희망보다 더 큰 꿈의 지느러미 파닥거리며

미지의 대양을 헤엄쳐 온 수고가 물거품 되었으리.

해풍 잔뜩 머금은 생선 한 마리 세상의 입안에서 파닥거린다.

부러진 돛은 절망으로 나풀대고 물컹한 살집은 피비린내로 그득하다.
물 고 기….

인간의 아가미서 살육된다.

그물코에 까무러친 바다의 꿈.

해풍이 그리울 청어.

그 청어의 바다를 생각하니

혈관 속에서 파도가 일렁인다.

멀미가 난다.


동물인 인간은 말한다. “우리는 양떼를 미워하지 않고 사랑한다. 양고기는 무지하게 맛있다”고. 요즘 사람들은 다 잘 먹고 잘산다. 예전에는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해 못 먹고 못살았다. 아니 쌀이 없어 시래기나 풀을 많이 먹으니 똥구멍이 찢어질 수밖에.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해 변비가 걸렸지만 지금은 기름진 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 똥구멍이 찢어진다.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이제 못 먹고 못사는 것만큼이나 아프다. 화려한 가난, 화려한 문명이다.


인천 월미도에서 영종도로 가는 유람선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 있다. 바로 괭이갈매기의 새우깡 받아먹기 서커스. 괭
이갈매기는 부역을 하지 않는다. 고기 잡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에 그들은 앵벌이를 한다. 새우깡과 건빵이 그들의 먹이다. 그들의 입은 철저히 인스턴트에 길들여져 있다. 그들의 어미와 아비도 여객선 뱃머리서 던져주는 건빵과 새우깡으로 배를 채운다. 때문에 어린 새에게 고기를 잡는 방법을 전수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 자식들은 배꼬리를 따라 날며 앵벌이를 한다. 몇 번을 찾아 유람했는데 그들은 늘 앵벌이를 했다. 배고픈 아이에게 물고기를 주지 말고 낚시하는 법을 가르치라는 탈무드의 근로지침은 그 곳에 없었다. 고기를 잡으면 투망을 잊는다. 한 두 번 볼 때는 상당한 개인기라고 생각했는데 보면 볼수록 슬펐다. 그들은 왜 어미에게서 고기 잡는 법을 배우지 않았을까. 대대손손 그들은 새우깡 받아먹는 법, 건빵을 놓치지 않고 낚아채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새우깡도 먹어보니 새우 맛이 난다던 어미의 가르침을 배웠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물고기는 바지런하다. 물고기는 잠을 자면서도 눈을 뜨고 있다. 풍경(風磬)은 부지런한 그 물고기 형상을 단순화 한 것이다. 물고기처럼 언제나 깨어있으라는 ‘소리 없는 법문’이다.

Posted by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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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

충청로 2008.09.09 21:45
 

 ▶간만에 자동차 운전대를 떨치고 자유인이 되어 고속버스에 올랐다. 그동안 110㎞의 속도감에서 만나지 못했던 풍경과 바람소리를 느꼈다. '문명의 핸들'을 버린 후의 달콤한 졸음도 좋았다. 고속도로를 내달려 간 광주에서 20년지기를 10년 만에 만났다. 눈가에 패인 잔주름과 빠진 터럭을 제외하곤 말본새와 입성은 여전했다. 대낮부터 소줏집에 눌러앉아 나라 꼴 얘기도 하고 숨이 턱턱 막히는 인생의 굴곡도 이야기했다. 마치 20년 전 캠퍼스 모퉁이서 막걸리를 놓고 못난 세상을 비토(veto)하던 때로 돌아간 듯 했다. 기인 소설가 이외수가 잠을 포기한 채 꼬박 3일 동안 술을 마셨다는 얘기를 몸이 기억하고 있었던 것일까. 우리는 소주 반 짝과 맥주 한 짝을 마시고서야 빛고을서 잠들 수 있었다. 1박2일 '진국같은 회포'는 그렇게 몸 안의 세포들을 이완시키며 중년의 세월을 '청년'으로 되돌렸다.


 ▶이해인 수녀는 사랑은 술을 찾게 하고 우정은 같이 마셔 주는 것이며, 우정은 같이 걸어가는 것이고 사랑은 같이 걸어가는 걸 꿈꾸는 것이라 했다. 잘났든 못났든, 잘살든 못살든 인간은 행불행(幸不幸)의 부침 속에서 산다. 저마다 '십자가' 하나씩은 짊어지고 산다. 그것은 세월의 무게가 잔뜩 실린 고통의 등짐이다. 오늘 이 시간이 내일의 과거가 되듯, 어제는 돌아오지 않고 내일은 여지없이 온다. 그렇게 시계추는 늙어간다. 그런 삶 속에서 우정은 같이 걷고 함께 하는 것이다. 이득을 따지지 않고 타박하지 않으며 돌변하지 않는 것이다. 실리외교가 아니라 실용외교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뒤통수를 치는 '배반의 세상'에서 남몰래 눈물 흘리는 사람들이여. 너무 일찍 절망하고 너무 빨리 불행하다고 외치는 사람들이여. 그럴 때 친구를 만나라. 그럴듯하게 늙어가는 내 나이의 우정을 만날 수 있다.


 ▶일본 강점기 때 얘기다. 한 일본인이 고등어 두 마리를 싸들고 가자 조선인이 웬일인지 물었다. 일본인은 관청에 일을 부탁하러 사바(고등어의 일본말)를 사가지고 가는 길이라고 했다. 이 말이 와전되면서 두 마리의 고등어, 즉 '사바사바'는 뒷구멍으로 일을 처리하는 떳떳치 못한 교섭행위란 의미로 쓰인다. 최근 일본이 또 한번의 '만행'을 저질렀다. 외무성 인터넷 홈페이지에 '다케시마(竹島·일본명)는 일본의 영토'라는 게시물을 내건 것이다. 마치 20일로 예정된 MB의 1박2일 방일에 즈음한 도발처럼 여겨진다. 고이즈미 총리 때도 셔틀외교를 하겠다고 밝힌 뒤 독도를 두고 갈등을 일으켰던 일본이다. 하물며 그들이 낳은 인기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마저 '일본인들은 아직도 전쟁에서 한 짓들을 진정으로 반성하지 않는다'고 말했을 정도니 두 말하면 무엇 하랴. 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 건실한 사람이었다가도 한 순간 잔인하게 돌변하는 다혈질의 민족성과, 남의 주권을 그악스럽게 밀어내는 야쿠자(Yakuja)식 생떼를 보면 그들의 우정이야말로 두 얼굴의 닌자(ninja·둔갑술) 같다. 사바사바하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우정을 언약하고 동반자로 가자는 게 정녕 대한민국의 지나친 욕심일까.

Posted by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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