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4.23 착한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
  2. 2008.09.11 탈옥을 꿈꾸는 감옥살이는 행복했다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시 10141번지에 한 부부가 이사를 왔다. 이들은 여느 이웃과 똑같이 마켓에서 장을 보고, 추리닝 차림으로 산책을 한다. 때로는 닭요리를 싸가지고 이웃집에 ‘마실’을 가기도 한다. 이들은 두 번이나 미국 대통령을 지낸 조지 부시 부부다. 퇴임 후 고향 텍사스에 정착한 뒤 미국 시민으로써 평범하게 살고 있다. 그는 인기나 여론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아침마다 자신의 과거 정책을 비판하는 신문을 읽으면서도 ‘안보 보고서를 읽는 것보다 낫다’며 너털웃음을 친다. 재임 중 ‘조지고 부시는’ 전쟁광 대통령이라며 욕을 먹었지만 백악관 특권으로 국민의 세금을 기만하거나 ‘거짓말을 위한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다.

 ▶클린턴은 강연으로 1만 달러를 벌어 세금으로 3400달러를 냈다. 미국의 전직 대통령들은 자신의 정책 때문에 비판은 받지만 본인과 측근들의 비리로 문제가 된 적은 거의 없다. 재임기간에는 청빈하게 일하고 퇴임 후에는 강연과 저술을 통해 합법적으로 돈을 번다. 부시 행정부의 백악관 대변인 토니 스노가 2007년 사표를 내며 ‘자신의 연봉만으론 세 자녀를 부양하기 어려웠다’고 호소할 만큼 청렴하다. 이에 반해 대한민국 대통령과 측근들은 퇴임 후 항상 스캔들에 휘말린다. 전두환·노태우 씨나, 14년 만에 청와대 뒤안길에서 돌아와 검(檢)의 서슬 앞에 선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우리가 낳은 대통령들이다. 그들은 ‘검은 손’이었다. 만약 그들이 정직한 ‘빈손’이었다면 역사의 뒤안길에서 ‘발목’ 잡히는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시대 뇌물을 받은 관리는 중죄로 다스렸다. 수뢰액수가 1관(貫·엽전 1000문)이면 곤장 70대, 80관 이상이면 교수형에 처했다. 한번 걸리면 죽을 때까지 벼슬에서 배제됐고, 자손들의 벼슬길까지 막아 집안이 거덜났다. 성종 25년 하양현감 김 지는 백성들로부터 면포 66필과 종이 1150권을 걷은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성종은 ‘이를 용서하면 백성이 해를 입어도 구할 수 없을 것’이라며 사형을 허락했다. 성종 때 탄핵된 고위층만 2702명에 달하고, 한명회는 혼자서 107번의 탄핵을 당했다. 박정희 정권의 쇄신운동, 전두환 정권의 사회정화운동, 노태우 정권의 새질서운동, 김영삼 정권의 윗물맑기운동, 김대중 정부의 제2건국운동은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거였지만 본인들이 부패의 대상이 됐다. 그럼에도 국민들에겐 ‘납세의 의무’를 강요할 정도로 그들은 뻔뻔했다.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안뜰을 돌려주세요’라는 글을 썼다. 언론의 감시를 원망하는 글이다. ‘집이 감옥’ 같다며 집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음을 한탄했다.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나올 사진이 두렵다고도 했다. 창문을 열어 놓을 수 있는 자유, 마당을 걸을 수 있는 자유를 누리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하늘과 산을 바라볼 자유를 빼앗은 것은 우리가 아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지 못한’ 본인의 탓으로 하늘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2008년 한국의 부패지수는 5.6으로 180개 나라 중 40위였다. 부패지수 ‘5’는 썩는 냄새가 나는 수치다. ‘뇌물 스캔들’은 5년이란 정권교체 주기와 맞물려 거듭되는 병이다. 언제쯤 대한민국 국민은 털어도 먼지나지 않는 ‘착한 대통령’을 만나게 될까. 언제까지 감옥 가는 대통령과 ‘감옥 같은 집’을 원망하는 대통령을 봐야 하는가. 이런 꼬락서니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심정도 ‘지옥’ 같아서 하는 말이다.

Posted by 나재필



세월은 흘러가더라

그렇게 흘러가더라

종이만큼의 질량으로 버텨온 펜의 노래.

공백을 메우는 것이 여백임을 알았을 때

바람처럼, 뜬구름처럼 살아온 지난 날이 미워

저당 잡힌 밤을 안주삼아

만원어치의 울홧술을 마시고 천원어치의 비애를 배설했다.

그 젊은 날의 객기(編輯症)로 얻은 것은

24개의 주름과 10kg의 살과

9490개의 술병과 플라시보 같은 중병.

30만 5005개의 탈모, 0번의 연애이력, 780번의 야근,

427050장의 종이(gera), 16235장의 신문 쪼가리였다.

지독한 출산을 위한 표독한 합궁.

그렇게 봄여름가을겨울은 가더라.

그렇게 겨울가을여름봄은 오더라.



여백위에 핀 꽃은 저승꽃이 되었다가도

가끔은 행간 속에서 웃음꽃으로 피고 졌다.

가로 39.4cm 세로 54.5cm, 가로 7단에 세로 15단.

미추한 헤드라인은 데드라인을 거치며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경쟁 속에 미아처럼 버려졌다.

규격화된 방안(지면)에서 배식(밸류 측정)을 하고

요리(레이아웃)을 하고

메뉴판(제목)을 거는 지루하고도 달콤한 옥살이.

그게 바로 (편집쟁이의 체온) 36.5도로 만든 365일의 일상이었다.



세상은 보기보다 참혹하더라.

지면은 생각보다 참혹하더라.

울화통 나는 세상에서 울화병을 얻었고

천식 나는 지면에서 고뿔을 앓았다.

나라는 이름으로, 羅라는 이름으로

너의 이야기를, 너의 언어를 읊조리며

7번의 이직과 2번의 폐간을 당했다.

그렇게 윤회한 삶은 슬프지 않았다.

그렇게 변덕스러운 삶은 아프지 않았다.

業으로 하지 않고 樂으로 일했으니 하늘이 도왔다.



첫새벽은 아침을 깨우고 아침은 낮을 향해 질주한다.

나도 질주한다. 한낮의 허허벌판 지면속으로 질주한다.

걷고 또 걷고 청춘의 고개를 넘어 중년의 비포장도로로 달려간다.

가끔은 눈물로, 가끔은 빗물에 눈물을 감추며 달린다.

내 심장의 박동을 요동치게 하는 편집.

그 정교하고도 무서운 삶의 감옥.

하루에도 수십 번 알카트라즈의 탈옥을 꿈꾸지만

한번도 쇠창살 너머 햇살을 만져보지도, 훔쳐보지도 못한

그 감옥.

밤바다 굿바이를 외치면서도 새벽에 맨발로 뛰어나가 배달신문을 보는

밤마다 탈옥을 외치면서도 아침엔 굿모닝을 외치는 미련한 에디터.



저 창살 너머 펄럭이는 햇살의 마력을 난 안다.

저 햇살 너머 숨어있는 희망의 창살을 난 믿는다.

나의 사랑스러운 감옥

나의 곤혹스러운 감옥,

아, 찬란한 슬픔의 수인(囚人)이여!

지금은 몰라도, 아직은 몰라도

나중에, 백발이 성성한 나이가 되었을 때

그 작은 감옥이, 큰 행복이었노라고 말하고 싶다.

정녕 후회없는 행복한 감옥이었노라고 말하고 싶다.

<편집기자협회보 게재>

Posted by 나재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