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忙中日記 2008.09.11 14:21
  어머니는 철녀였다. 그린의 소렌스탐 보다도, 트라이애슬론의 로라 리백 보다도, 코트의 나브라틸로바 보다도 강했다. 지치지 않았으며 쓰러지지 않았다. 촌살림이 그렇듯 아궁이에 군불을 지펴야 밥을 짓고, 우물을 길어야 부엌일이 되는 저급한 생활에서 한번도 힘든 내색을 안했다. 낮에는 농사를, 밤에는 허드렛일을 해야만 하는 ‘고된 2모작’을 쉼 없이 해냈다. 뻐걱거리는 퇴행성관절염을 앓게 만든, 돈은 안 되고 힘만 부치는 농사일, 고무줄 같은 취침시간에 새벽 5시 기상. (자식들 도시락을 싸기 위해, 밭으로의 출타를 맞추기 위해). 때로는 셈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사계절 불침번을 서는 문지기로, 약손이 되어준 간호사로, 아버지의 완고함을 제어하는 컨트롤 아티스트로, 때로는 별 헤이는 밤 따뜻한 얘기로 자식의 흔들림을 막던 별밤지기로 1인 10역을 했다. 가정의 테두리 안에서 한번도 ‘탈영’하지 않은 위대한 모성애. 이 시대 모든 어머니가 그렇듯 내 안의 어머니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도 그렇게 모진 ‘아픔의 나이테'를 가졌다.


 어머니는 30여 년간 ‘배웅의 삶'을 살고 계시다. 배웅의 절차는 의외로 간단하다. 어머니는 내가 당신의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신다. 산모퉁이를 돌 때나 동네어귀를 돌 때나 내 모습이 안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며 동상처럼 서 계시는 것이다.
그 간단한 의식이 나에게는 항상 무언(無言)의 가르침이었다. 샛길이 보여도 홀가분하게 딴 길로 빠질 수가 없었다. 하루를 여는 배웅이요, 무사평안을 비는 치성 같은 것이었기에. 깡마른 얼굴, 앙상한 두 손, 點처럼 멀어져 가는 어머니의 ‘흰 모습'을 보며 내 존재에 대한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숙수지환(菽水之歡:콩죽과 물로 생활을 영위하지만 부모에게 효도함)을 하지 못하는 ‘절름발이 자식'에게 변함없는 나무로 서 계시는 어머니, 고맙습니다.


 아래 글은 68세의 어머니가 쓴 일기중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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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의 징검다리를 건너가는 시간의 발자국 소리. 성큼성큼 딛고 가는 이 한줄기 길 위에서 우리네 삶은 가련하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다 가기 전에 알찬 일들을 해야 할 텐데. 한없이 푸른 잎새 처럼 너울거리고 싶다. 싱싱한 생명력을 지니고 싶다. 아지랑이 숨결 속에 새움이 돋아나듯 나의 생명력도 그러할 수만 있다면, 때로는 바람맞고 눈비에 지친 날에도 최선을 다할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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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식들의 등불이 되고프다. 단단하고 강인한 땅을 뚫고 뾰족이 솟아나고 있는 새싹들이여 푸름을 뽐내지 말게나. 나에게도 내 무거운 짐을 덜어주는 새싹 같은 자식이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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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목받고 싶다. 恨많고 설움 많은 세월을 흘러가는 강물에, 돛단배 실어 이 하늘 끝까지 한들한들 띄어 보내고 싶다. 나는 스스로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다. 세월은 흘러 어느덧 백발이 되어 몸은 비록 노쇠해졌지만 마음은 청춘이다. 봄이 오면 강인한 풀잎들이 땅을 뚫고 나와 작고 푸른 꽃들을 피우듯이 나 또한 끈질기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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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때문에 운다. 어머니라는 단어만 나와도 온 몸이 운다. 세포 하나하나가 따로 운다. 자식 때문에 수없이 울었을 어머니 때문에 운다. 그동안 그런 마음을 내색하지 못하고 살아 온 어리석음 때문에 운다. 소리 내어 운다. 남몰래 울기에는 어머니의 아득한 깊이를 헤아리지 못하기에 소리 내어 운다. ‘천금같은 내 새끼’로 살아 온 나의 뻔뻔함 때문에 운다. 자식이 무언데 그리도 주름 많게 살아온 걸까. 이제야 안다. 프랑스 사람들이 바다(la mer)를 어머니(la mere)로 부르는 이유를. 어머니는 바다다. 아, 나의 사랑스러운 바다여 영원히 그 흐름 멈추지 마소서.

Posted by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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