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원안 추진 의사를 밝히며 세종시 문제가 새로운 국면으로 다가선 가운데 25일 유한식 연기군수를 비롯한 군의회의원들이 군청 현관앞 임시천막에서 세종시 원안추진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연기=김상용 기자 ksy21@cctoday.co.kr


▶요즘도 일부에서는 대통령을 ‘각하(閣下)’라 부른다. 물론 공식 호칭은 ‘대통령님’이고 사석에서는 대통령의 영문 이니셜을 딴 ‘MB’나 VIP로 불린다. ‘각하’는 원래 ‘전각(殿閣) 아래서 뵙는다’라는 뜻으로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붙이는 존칭이다. 과거엔 국무총리, 장관, 군 장성도 각하라 했는데 박정희 정부부터 대통령에게만 붙이는 존칭이 됐다. 김영삼(YS) 전 대통령까지도 각하로 불리다가 권위적이라는 이유로 DJ정부 때부터 '대통령님'으로 바뀌었다. 여기에 '대통령 각하님'이라며 존칭에 극존칭을 더해 굽실거리는 자들도 있다. 하기야 ‘각하’라 부르면 어떻고 ‘대통령님’이라 부르면 어떠랴만, 그 저의가 순수하지 못하다는 얘기다. 대통령에게 ‘사바사바’ 하면서 고언하고 직언할 사람들이 너무 적은 것은 한국정치의 불행이다.

▶박정희 정권 이전의 한국인은 게으르고 의타적이었다. 때문에 스스로를 ‘엽전’,  ‘짚신’이라고 폄훼했다. 깨어있는 지식인 장준하·함석헌도 국민성을 개조해야 한다고 말했을 정도다. 박정희 정권의 피해자인 재야운동가 백기완도 “박정희는 정치적 반대자 3만 명을 못살게 했지만, 다른 정치인들은 국민 3000만 명을 못살게 했다”고 회고했다.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고 ‘새벽종’이 울리자 국민들은 싫어했다. 그러나 초가집이 헐리고 새마을이 되는 걸 보면서 사고방식이 ‘해도 안 된다’에서 ‘하면 된다’로 바뀌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서민 속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이제 서민을 위해 현장에서 직접 챙길 것”이라며 입버릇처럼 되뇌였다. 요즘 ‘박정희 재평가’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현장정치’를 했던 박정희는 욕하면서 전두환에게는 ‘관대한’ 한국사회의 이중적 잣대, 이것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표는 부모를 총탄으로 잃었다. 1974년엔 문세광의 총탄에 어머니를 잃었고, 5년 뒤엔 김재규가 쏜 ‘배신의 총탄’에 아버지를 잃었다. 그녀는 22세에 퍼스트레이디가 돼 5년을 권력의 정점에 있었다. 박 전 대표는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에서 “사람이 사람을 배신하는 일만큼 슬프고 흉한 일도 없다”고 토로했다. 요즘 박 전 대표가 정치적 생명을 걸만한 ‘세종시’ 살리기에 나섰다. 주변의 정적(政敵)들과 중앙언론, 당정이 나서 세종시 백지화를 주장할 때 ‘약속’을 외치는 것이다. 권력의 배후에서 간신배처럼 밑이나 닦는 정치현실을 벗어난 박 전 대표의 행보는 강력한 결사(決死)다. 그것이 설령 정치적 계산일지라도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려는 마음은 남자의 그 어떤 가벼움보다도 낫다.


▶세종시를 놓고 충청도 사람들이 분통 터지는 것은 ‘충청도는 어찌해도 괜찮다’라는 태도 때문이다. 세종시가 경상도나 전라도의 문제였다면 이러지 않았을 것이다. MB는 ‘현장의 달인’이었다. 서울시장 때 모두가 반대했던 청계천 복원사업을 위해 ‘책상’을 박차고 몸으로 뛰었다. 저돌성을 넘어 무모하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는 특별대책반을 1년 동안 4300여 회나 출동시켜 청계천 상인들을 만나게 했고, 스스로도 현장을 찾아 설득했다. 그 밑거름으로 대통령까지 했다. 그런 MB가 세종시 문제엔 유독 ‘말’과 ‘발’을 아끼고 있다. 더구나 정책당사자들은 현장에 가지 않고 책상머리에 앉아 탁상공론만 하고 있다. 눈에 쌍심지를 켜고 수정론을 외치는 의원들이 자기 지역구였더라도 그렇게 당당했을까. 야비한 정치다. 이제 필요한 것은 대통령이 ‘세종시’ 현장에 서서 '청계천'때처럼 살피고 답하는 일이다.

Posted by 나재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