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투데이 6월11일 1면>


아래 글은 한국편집기자협회보에 게재했던 칼럼이다. 언제 썼는지 까마득하게 잊었는데 우연하게 인터넷서핑을 하다가 찾았다. 단순한 따옴표(돼지발톱) 하나에도 진정한 가치가 숨어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생각하고, 생각하며 '느낌표'처럼 사는 인생사에서 '따옴표'는 하나의 진실찾기다.


신문은 느낌표여야 한다.
독자들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줄 수 있어야 한다. 보고 읽으면서 느끼게 해야 한다. 그런데 느낌(feel)을 주어야 할 신문들이 따옴표로 물들고 있다. 따옴말이나 문장에서 특별히 드러내는 말의 앞뒤에 쓰는 큰따옴표 (“ ”)·작은따옴표(‘ ’)가 남발하고 있는 것이다. 큰따옴표는 사람의 말을 인용하거나 문장에서 따올 때 쓰이고 작은 따옴표는 따옴표 안에 다시 따온 말을 나타낼 때나 마음속으로 한 말의 내용을 나타낼 때, 또는 문장에서 특별히 드러내는 말의 앞뒤에 쓰인다. 일명 돼지발톱, 69(육구)라고도 불린다.
그런데 마땅히 쓰여야 할 용도 외에 편법으로 애용되고 있다. 편리한 자기방어다. "밤새 안녕"을 위한 자구책이다. 신상의 발병이 두려워 작은따옴표로 단단히 묶은 뒤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놓는 것이다. 작은따옴표에 묶인 상대편에서 뭐라고 항의하면 돼지발톱을 사용했는데 왜 그러느냐고 되레 항변한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웬만하면 (‘ ’)고 모호하면 (‘ ’)다. 지면들은 서너 개의 (‘ ’)돼지발톱들이 산만하게 찍혀있다. 그 것들은 책임회피의 슬픈 흔적이고 면피용 자국이다. 작은따옴표는 큰 상처다. 일단 쓰고 보자는 식의 폭로 저널리즘, 확인 없이 그대로 베끼는 저널리즘의 폐해다. 때문에 이런 저간의 상황들을 아는 사람들은 따옴표 신문, 따옴표 편집을 질타한다.


 어느 老선배는 이랬다. "편집은 연날리기와 같다. 팩트(fact)에 줄을 매고 가장 높이 날리는 것이다. 단, 줄이 끊어져 연이 날아가 버리면 그건 제목이 아니라고."

 다른 怒선배는 이랬다. "자고로 편집은 병 속의 새를 꺼내는 것이고 지면 속에는 자신의 몸뚱이가 들어가 있어야 한다"고.

팩트를 강조하고 책임을 강조하는 말들이다.
사실을 곡해하는 기사와 편집은 종이매체의 위상을 뒤흔드는 작은 요소다. NO를 NO라고 하는 것은 편집자의 자존이다. 책임에 대해서 NO하는 것은 ON을 끄는 것이다. 깨어있음을 포기하는 것이다. 작은따옴표(‘ ’)로 묶는 것은 결국 스스로를 포박하는 것과 같다. 편집은 뉴스 핵심의 포착-압축, 그것의 표현-전개라고 한다. 편집 사활의 관건은 환경보다 내부에 있다. 한 줄의 제목일지라도 쉽사리 생각하지 않고 책임과 의무를 다할 때 지면은 빛난다. 돼지발톱(‘ ’)이 없는 지면이 깨끗하고 곧아 보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적확하게 쓰고 남발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Posted by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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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Angella 2009.07.01 17: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문은 느낌표여야 한다"는 글귀가 인상적입니다.
    멋진 편집 기대하고 있습니다.

  2. 감사 2009.07.01 18: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합니다. Angella님!!!
    신문에 대한 글은 참 재미없는데 읽어주셨군요....
    복습이라고 생각해서 쓴 글입니다. 거듭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