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충청로 2008. 9. 11. 07:16
  ▶얼마 전 '섬진강 시인' 김용택(60) 교사는 마지막 수업을 했다. 38년 교직생활을 마감하는 자리였다. 전북 임실 덕치초등학교 교사인 그는 임실서 나고 자라 모교의 선생님이 됐다. 제자들의 아버지도 그의 손에서 'ㄱㄴㄷㄹ'을 배웠다. 그가 입학할 때 심어놓은 어린 살구나무는 이젠 어른이 돼 울울창창한 가지를 뻗고 있다. 그는 고향사랑을 시로, 몸으로 가르친 '인간 상록수'다. 피난 갔을 때와 방황할 때 두 번을 빼고는 고향을 떠난 적이 없는 골수 '촌맹'이다. 그의 몸은 고향의 후덕한 산과 물을 닮았다. 그의 언어는 구수한 사투리를 품으며 시가 됐다. 많은 아이들이 '영어 뺑뺑이'를 돌아야 하는 도회지로 '유학'을 떠나 전교생이 달랑 45명 뿐이지만, 그는 여전히 촌동(村童)들을 불러모아 천렵을 하고 다슬기를 잡으며 시를 쓸 것이다. 무진장(무주·진안·장수) 팔공산 자락에서 발원해 고향 임실로 굽이치는 섬진강을 품에 안고 살 것이다. 교단은 떠났지만 고향은 떠나지 않겠다는 섬진강 시인, 고향의 사표(師表)인 그를 생각하니 한없이 푸근한 고향 뜨락 너머의 저녁놀이 생각난다.


 ▶내 고향 수안보는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무대이기도 하다. 시골악사로 밤무대를 전전하며 사는 삼류인생들의 노랫가락이 절절한 영화다. 지금 수안보는 영화속 와이키키도, 다이아몬드헤드가 있는 하와이 와이키키도 아닌 시골의 범상한 휴양지일 뿐이다. 수안보 초등학교 시절 등굣길은 고행길이었다. 신작로는 먼지깨나 흩날렸으며 비가 오면 신발에 천근만근의 흙딱지가 붙었다. 안내양이 있던 버스는 하루에 고작 3번 운행했다. 때문에 등·하굣길 왕복 12㎞는 걷는 게 빨랐다. 하굣길엔 동무들과 천렵을 하고 아카시아, 창꽃, 찔레줄기 등으로 군입정을 했다. 더덕이나 도라지, 머루, 달래, 깨금(개암) 등도 좋은 군것질이었다. 고욤나무, 떡갈나무 등을 친친 감고 올라선 으름은 바나나 맛과 흡사했다. 겨울 끝자락엔 개밥나무(버들강아지) 열매를 따서 껌처럼 씹었다. 처녀종아리처럼 통통하게 익은 무를, 흙도 털지 않고 입으로 까서 먹기도 했다. 산딸기도, 뽕나무 오디도 계절의 입맛을 달랬다. 요즘엔 웰빙식으로 찾아먹지만 그땐 배고파서 먹었다. 고마운 줄 모르고 먹었다. 봄·여름·가을·겨울이 십 수회 윤회하는 동안, 아직도 나의 세 치 미각은 그 때의 맛을 철저히 기억해내고 있다. 요즘같은 때엔 더더욱 그 때의 들녘이 떠오른다. 베풀지 않아도 아낌없이 주던 고향 산야(山野)가 그리워진다.


 ▶글피면 한가위다. 그러나 햇곡식과 햇과일로 풍성해야 할 한가위가 한숨으로 가득하다. 가구당 평균 4000만 원의 빚을 안고 있는 민초들의 귀향길이 즐거울 리 만무하다. 특히 올해는 5명 중 1명꼴로 귀향을 포기했고 대학생들의 80%는 법정 최저임금(일당 3만 160원)만 줘도 추석에 일할 생각이 있다고 한다. 시인 천상병이 여비가 없어 고향에 못 간다고 했던 시구(詩句)가 현실이 돼 버렸다. 시집간 딸이 친정어머니와 중간지점에서 만나 반나절간 회포를 푼다는 '반보기'가 유행할 판국이다. 시간도, 돈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향은 마음으로 찾는 곳이다. 옛말에 추수할 때까지 농사꾼의 발소리를 천 번은 들어야 쌀이 된다고 했다. 고생을 업으로 산 부모를 만나야 하는 이유다. 손에 바리바리 쥔 선물꾸러미보다 아버지, 어머니에게 얼굴을 보여주는 게 최고의 선물이다. 그게 효도다.
 


Posted by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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