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단상

충청로 2008.11.26 22:20


 ▶유난히 겨울이 길게 느껴졌던 시골집 한풍은 매서웠다. 겨울 난방은 아궁이로부터 출발했는데 불을 땔 때 아궁이속에선 칼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타는 소리인지, 나무가 타는 소리인지 모를 공명관(共鳴管) 떠는 소리가 들렸다. 불을 땔 때는 전날 태운 재를 고무래로 쓸어 담은 뒤 불쏘시개 관솔을 나무 밑에다 넣었다. 잘 건조된 고주박(썩은 나뭇가지 밑동)이나 솔가지는 좋은 쏘시개였다. 마른풀 같은 검불도 불을 피우기에 좋은 재료였는데 폐오일로 불을 지피기도 했다.
 아궁이는 용광로처럼 시뻘건 온기를 뿜어냈고 온돌방은 가족의 안온한 겨울밤을 위해 36.5도 이상으로 달궈졌다. 솥 안은 머리 감을 온수가 끓었고 때로는 옥수수와 고구마도 삶아졌다. 가을부터 늦봄까지 아궁이는 쉴 틈이 없었고 타지로 나간 자식들이 귀휴(歸休) 할 때면 아궁이는 더욱 바빠졌다. 검댕을 묻혀가며 온돌을 미리 데워놓는 것은 부모의 치성이었다. 따스한 등불아래서 함께 소곤거리며 저녁식사를 하고 싶다는 소망이기도 했고 사련(思戀)을 불태우는 사랑이기도 했다. 지금 그런 아궁이와 온돌방이 그리운 것은 겨우살이가 너무도 혹독하기 때문일 것이다.

 ▶감원 칼바람이 세계를 휘감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가 심화되면서 미국 기업들은 5일 동안 8만 명을, 영국은 2주 동안 3만 명을 감원했다. 중국에서는 농민공(農民工)들의 귀거래가 줄을 잇고 있다. 돈벌이를 좇아 도회지로 떠났던 사람들이 경기침체에 다시 낙향하는 것이다. 지난해만 2억 2600만 명이 출향했는데 요즘 들어 500만 명 정도가 귀환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들이 고향서 창업 붐을 일으키며 농촌 개혁과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을 가리켜 ‘봉황의 귀환(鳳還巢)’이라고 부를 정도다. 한국은 내년에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는 비관론이 나오고 있다. 주택 건설은 59년 통계 작성 이후 최저치고 부도업체 수도 3년 7개월 만에 최대치다. 주요 공기업·준정부기관의 신규 채용 인원도 지난해보다 66.7%나 줄었다.
‘ 대통령과 대통령의 사람들’이 해외순방 중 “지금은 한국이 13대 경제대국이지만 머지않아 7대 경제대국으로 올라갈 것”이라며 교민들을 위로하는 것은 억지다. 4~7% 성장률이 어쩌고 저쩌고 하던 정부의 눈엔 아직도 한국경제가 용광로처럼 뜨겁단 말인가.

 ▶살아서는 절망했으나 죽어서는 신화가 된 천재화가 이중섭. 그림에 대한 그의 천착은 세상의 벽을 뛰어넘는 집착에 가까웠다. 6·25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그는 붓을 들었다. 판잣집 골방에서도 그렸고, 대폿집 목로판이나 막노동 중에도 그렸다. 캔버스나 스케치북이 없으면 못이나 연필로 그렸다. 한 평짜리 서귀포 흙집에서 살던 때는 먹을 양식이 없어 매일 아이를 업고 게를 잡으면서도 그렸다. 피난시절에만 500여 점의 수작을 남겼다. 그러나 가난을 견디지 못한 일본인 아내가 아들을 데리고 본국으로 돌아가자 그는 절망했다. 가난보다 무서운 것은 고독과 그리움이었다. 그러나 그는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차디찬 병실 귀퉁이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나이 41세였다. 지금 그가 그린 ‘흰 소’가 생각나는 것은 가난 때문도, 절망 때문도 아니다. 그는 무소의 뿔처럼 삶에 저항했던 사람이다. 이 혹독한 겨울, 그의 맹렬한 ‘흰 소’처럼 경제한파를 뚫어야 한다. 겨울 추위를 이겨내야만 아름다운 봄꽃을 틔울 수 있기에 그렇다.
Posted by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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