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과 아버지

충청로 2009.12.10 13:28
충청투데이 자료사진

 ▶작가 이외수를 보면 ‘앙상한’ 겨울이 연상될 정도로 말라깽이다. 그는 청년시절 자신의 몸을 모질게 연소시켰다. 됫병 소주 2개를 들이켰고, 담배는 하루 예닐곱 갑씩 태웠다. 3일 정도는 우습게 굶었고, 라면 한 개로도 일주일을 버텼다. 1970년대 이외수의 퀴퀴한 자취방은 작가 지망생들의 아지트였다. 손님들은 소주와 라면, 시래기나 비지를 사왔다. 겨울엔 돈이 없어 연탄의 ‘뜨거운 사랑’을 받지 못하고, 체온으로 데운 이불로 버텼다. 애인에게 차인 어느 추운 겨울날 그는 차디찬 자취방에서 세상을 향해 외쳤다. “아! 쓰발, 외로워….” 45㎏의 깡마른 몸으로 쓴 그의 글들이 차디찬 골방처럼 저며 오는 것은 바로 ‘겨울처럼’ 살았던 인생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 아버지도 ‘겨울’을 닮았다. 얼굴엔 세월의 깊디깊은 밭고랑이 생겼고, 앙상한 뼈마디엔 찬바람이 몰아친다. 화가 나면 두 눈에 불꽃이 튀던 아버지. 너무나 무서워 반항할 수도 없었던 아들이었기에 그 속절없는 꺾임에 눈물이 난다. 내 눈물을 내 아들은 모를 것이다. 그러나 내 나이가 되면 아들도 내 눈물을 이해하게 될 것이고 그도 울 것이다. 또한 아버지는 자전거를 잘 고쳤다. 10여 년을 통학하면서 자전거포에 갔던 기억이 없다. 지금 내게도 아들 자전거 두 대가 있다. 그 자전거를 이제 내가 고치고 있다. 편식을 탓하던 아버지처럼 나도 아들의 편식을 나무라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부성(父性)의 운명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계절, 사부곡(思父曲)이 절절해지는 이유는 이 시대 아버지들이 겨울을 닮았기 때문이다.


 ▶겨울이 따뜻해지고 있다. 최근 110개국이 모여 유엔기후변화협약 총회를 가졌다. 이들의 회동 목적은 지구 온도를 2도 내리자는 것이다. 2도쯤이야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하겠지만 과학자들은 2도를 지구환경이 위험에 빠질 수 있는 ‘문턱’으로 본다. 지금까지 온난화로 인해 지구 온도는 0.6도쯤 올라갔다. 1도가 오르면 만년빙이 사라지며 가뭄과 산사태가 일어난다. 지금보다 2도가 상승하면 이산화탄소의 절반이 바다에 흡수되면서 바다생물들이 소멸된다. 3도 오르면 우림지대와 정글이 무너진다. ‘떡방아 찧는 토끼’가 사는 달(月)도 매년 3.8㎝꼴로 지구서 멀어지고 있다. 달이 처음 생성될 때만 해도 약 2만 2530㎞ 지점에 있었지만 지금은 37만 149㎞나 떨어져 있다. 달의 낮·밤의 기온 차는 섭씨 200도 이상이다. 달이 지구 곁을 떠나고 있는 것은 ‘봄 같은 겨울’이 오고 있는 징조인지도 모른다.


 ▶2009년 겨울은 어둡고 무기력하고 우울하다. 이 겨울의 우울은 시대의 불통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이 한 해를 노추(老醜)로 장식하지 않으려면 버려야 하고 비워야 한다. 겨울의 아름다움은 다 버림으로써 살아난다. 오래된 찻집, 창 곁에 바싹 붙어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찻잔의 커피보다 그들의 모습이 더 따뜻하다. 사람들이 움직일 때마다 따뜻한 입김이 불어온다. 겨울도 마주하니 따듯한 것이다. 겨울은 헐벗기에 서정시를 낳는다. 개인적으론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말을 금기시한다. 어디 다사다난하지 않은 해가 있었던가. 해마다 다사다난이니, 다사다난이란 말은 아무짝에도 못 쓸 명사다. 이제 한 줌밖에 남지 않은 한 해를 후회 없도록 매조지해야 한다. 누군가가 ‘오늘 이 시간은 내 남은 생애의 첫날이며, 어제 죽어간 어떤 사람이 그토록 살고 싶어 하던 내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Posted by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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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폴펠릭스 2009.12.10 15: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버지... 아버지... 항상 자식은 어머니 편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된 지금, 아버지란 그 호칭이 참 낯설기만 합니다. 그리운 아버지를 속으로 되뇌어 봅니다. 눈물이 주르르 흐릅니다.

    • ㅠㅠ 2009.12.10 15:19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전엔 '어머니'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짠했는데 요즘 들어선 '아버지'란 말에도 울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