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소설, 어느 구절엔가 이런 대목이 있다.
#1. 전장으로 떠나는 남자와 이별하는 여자의 마지막 밤.
#2. 안타깝게 찾아든 낡고 혼잡한 여관.
#3. 침대맡에 앉은 여자(침통하게)가 말한다
 “여기선 안되겠어. 난 꼭 뭘 팔러온 여자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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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가 내린다. 현악기의 울림처럼 빗발이 부서진다.
가을날 마른 풀밭을 걷고 있는 여자는 섹스를 떠올리게 한다.
누르시오. 힘껏 누르시오. 컴퓨터 자판의 ᄂᄃᄐ이 움직인다.
키보드의 sex는 한글의 ᄂᄃᄐ.
숨죽인 정충들이 체위를 바꿔가며 오디푸스 타락으로 射精.
지붕을 두들기는 빗소리는 소리를 웅크리게 한다. 쉿! 조용히.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라트라비아타의 황홀경.
온몸의 피가 아주 느리게 완행열차처럼 몸 속을 흐른다.
농밀한 욕망이 새처럼 펄럭인다.
리비도에 중독된 새 두마리
여자 한 마리, 남자 한 마리.

☞여관은 꽃숲이다. 꽃무늬 이부자리, 찌그러진 자리끼, 낡은 벽지와 벽지에 새겨진 XXX 전화번호, 두루마리 화장지. 서랍 안 콘돔하나. 뜨악한 섹스 소품들이 처량하다. 누렁이와 꿀 붙는 것을 보았을 때의 쇼크처럼 여관은 충격적인 데코레이션이었다.

사랑도 인스턴트 시대다. 햄버거에 낀 야채토막처럼 사랑도 인스턴트로 가고 있다. 여자는 무드, 남자는 ‘무데뽀’다. 여자의 옷고름은 분위기에 취해야 춤을 추지만 남자는 신호만 주면 지퍼를 푼다. 여자는 노을지는 해변의 테라스에서 문을 열지만, 남자는 냄새나는 여인숙의 골방에서도 오버한다. 여자는 촉각과 후각과 청각에 귀기울이지만 남자는 시각만 충족해도 시시각각 딴 맘을 먹는다. 자동차안에서의 불안한 사랑을 남자는 스릴 있다고 하고, 여자는 누가 볼까봐 겁이 난다고 한다. 구조가 다르고 생각이 다르니 때려죽여도 어쩔 수 없다. 여자는 완행열차고 남자는 급행열차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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