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투데이 자료사진

▶아줌마 손에는 시금털털한 김치냄새가 배어있다. 흥정의 달인으로 물건값 깎는데도 도사다. 바겐세일이라도 있으면 밤을 꼬박 새워 마트 앞에 제일 먼저 줄을 선다. 몸뻬(일바지)를 입고도 당당하고, 벤치에 앉아 젖을 물려도 당당하다. 그것은 부끄러움을 넘어선 아름다움이다. 돈에 원수라도 진 것처럼 바락바락 생청을 쓰며 치열하게 살기에 삶 또한 에누리가 없다. 젊었을 때 보송보송하던 피부와 날씬한 몸매는 주름과 함께 잔설 쌓인 골짜기로 퇴락한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해주겠다고 떵떵거린 남편은 갱년기 너머에서 망을 보고 있다. 더구나 마나님 샤워소리가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하지만 오만한 남자보다 ‘애덕(愛德)과 사랑’으로 똘똘 뭉친 억척녀, 아줌마가 진정으로 더 멋있다.


▶산악인 오은선이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여성 최초)을 목전에 두고 꿈을 미뤘다. 그녀는 처음 에베레스트봉 여성원정대에 선발됐을 때 3년간 다니던 공무원직을 그만 뒀고, 학습지 교사를 할 때도 미련없이 짐을 꾸렸다. 설산에 텐트를 치고 몸속의 체온으로 몸 밖의 추위를 덥히던 그녀. 희박한 공기 속에서 헐떡거리고, 음식물을 토하며, 외로움에 떨었지만 그녀는 도전했다. 등산인구 1000만 명인 한국에서 안나푸르나는 신(神)의 영역이자 로망이다. 그곳에서 숨진 한국 산악인만 자그마치 16명. 모두들 안 된다고 했지만 그녀는 13좌를 발로, 여자의 이름으로 걸어서 올랐다. 산과 ‘결혼’한 그녀의 악바리 근성은 역시나 토종 아줌마를 닮았다.


▶식당아줌마는 12시간 일하고 시급을 받는다. 손님 시중을 들고 음식을 나르고, 화장실 청소까지 혼자 한다. 직원들의 텃세에 사장의 구박, 손님들 타박까지 겹쳐 눈물·콧물 빼는 하루다. 그러나 만신창이가 된 후 손에 쥐는 돈은 삼겹살 불판보다도 차갑다. 1만 2000원짜리 간장 게장을 먹으려면 2시간 40분, 1만 8000원짜리 소갈비 1인분을 먹으려면 4시간을 더 일해야 한다. 1000원짜리 공깃밥을 추가하면 1시간 노동 추가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번 돈으로 간장게장과 소갈비를 뜯지 않는다. 식당일이 끝나면 곧바로 집안일이다. 아내로, 엄마로, 딸로 다시 복귀하는 것이다. 그들은 1인다역을 하는 만능슈퍼우먼이다. 아줌마로 산다는 것은 ‘도전’이다.


▶전업주부의 노동가치(14시간 기준)를 돈으로 환산하면 월 300만 원이 넘는다고 한다. 이는 2006년의 전체 직종 시간당 평균임금 1만 172원을 적용한 수치다. 전업주부들의 예상 연봉은 캐나다가 1억 2000만 원, 미국 1억 1000만 원 가량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2500만 원이라니 참으로 박복하다. 여성들은 일생 중 287일이라는 시간을 옷 고르는데 고민한다는 통계가 있다. 그러나 아줌마들은 자신의 화장품값과 옷값을 줄여 아이들에게 투자한다. 자식을 기르고 가정을 지키는 데 아줌마는 언제라도 앞장설 준비가 돼있다. 그래서 그녀들은 가족과 사회의 건강한 '주류'(主流)다. 남자들이 아내를, 아줌마를 '이효리'처럼 되라고 강요하는 것은 억지다. 장동건, 배용준 같지도 않은 ‘수컷’들이 몸뻬바지, S라인을 따지는 것은 코미디다. 여자는 파도와 같다. 사랑 받는다고 느낄 때 여자의 자부심은 최고조에 이른다. 아줌마는 스태미나 타령보다 손을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한다. 남편과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아줌마는 그래서 '여자'보다 예쁘다. '남자'보다 강하다. 아줌마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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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뽀글 2009.10.22 13: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줌마는 여자보다 이쁘다.. 남자보다 강하다..
    잘보고가요^^

충청투데이 자료사진

▶촛불=미국산 쇠고기를 마구잡이로 가져오려 하자 촛불이 켜졌다. 촛불은 무동 탄 아이들, 여중생, 유모차 부대, 하이힐 신은 처녀, 지팡이
짚은 노인을 광장으로 불러냈다. MB정부의 비정(秕政)을 개탄하는 촛불은 그렇게 점화됐다. 그 촛불은 안전한 식탁주권을 찾기 위한 ‘신선한’ 항쟁이었다. 촛불은 민주주의 제도가 작동하지 않고, 정당이 제 기능을 못할 때 피어오른다. 수없이 모인 촛불은 횃불보다 밝았다. 촛불은 비폭력을 외칠 때 춤과 노래가 된다. 촛불은 아무리 공권력을 투입해도 ‘불나방’이 되지 않는다. 자식의 안위가 걱정될 때 어머니들은 개다리소반과 정화수 한 그릇을 놓고 촛불 앞에서 빌고 또 빌었다. 촛불은 자신을 태워 남을 밝히는 기도이기에 ‘흰 그늘’이다. 컴컴함 속에서도 하얗게 빛나기 때문이다.

▶횃불=시인 김지하가 반골이 된 것은 대학생 때다. 그는 굴욕적인 한·일회담 반대운동을 하다 수배를 당해 숨어 지내야만 했다. 그때 중앙정보부가 자신의 아버지를 잡아다가 반신불구로 만들었다. 김지하는 새벽녘 산에 올라 떠오르는 태양 앞에서 눈물로 맹세했다. 이 세상에서 일체의 압제와 거짓이 사라질 때까지 목숨을 바쳐 싸우겠다고. 이후 그의 시는 만인의 ‘타는 목마름’을 해갈하는 ‘횃불’이 됐다. 횃불은 민심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때 타오르는 시뻘건 불이다. 올해 집회는 9400건이나 열렸다. 시위에 참가한 221만 8710명 가운데 3624명이 입건됐다. 전국에서 하루 평균 39.2건의 집회·시위가 열리고 15명이 사법처리 됐다는 얘기다. ‘대한민국=시위 공화국’이란 등식이 나올 법하다. 왜 집회가 늘어날까. 왜 횃불을 들까. 횃불은 참을 수 없는 분노이기 때문이다.

▶숯불=대폿집에 쭈그리고 앉아 힐끗힐끗 여염집 규수의 종아리를 훔쳐보며 삼겹살을 굽는 게 ‘숯불’이다. 배때기가 부르면 숯불이 되지 않는다. 숯불엔 이 땅을 힘겹게 살아가는 노동자·서민의 상처와 고통이 오롯이 배어 있다. 요즘 화두가 된 ‘죄악세’는 ‘세금덩어리’인 술·담배에 세금을 더 얹겠다는 것이다. 먹고 살기 힘든 판국에 술 한 잔, 담배 한 개비 사줄 요량은 없으면서 죄악으로 간주한다니 서민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발상이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4대강 사업비를 13조 9000억 원으로 잡았다. 그러나 반년 만에 22조 2000억 원으로 불었다. 불도저로 강산을 파헤치며 사업 앞에다 ‘녹색’과 ‘뉴딜’을 붙인다. MB정부의 ‘부자감세’ 정책으로 고소득층의 1인당 감세액이 중산·서민층의 33배에 이르고, 대기업에 혜택이 돌아가는 감세액도 중소기업의 11배에 달한다. 신용불량 1000만 명, 비정규직 1000만 명인 시대에 수심에 잠긴 민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부는 ‘물타령’만 하고 있다.

▶등불=등불은 움직이지 않는 촛불인데, 성난 촛불이 켜졌다면 당연히 그 이유를 밝혀서 해명해야 된다. G20 정상회의를 유치한 뒤 국격(國格)이 높아졌다고 만세삼창을 부를 일이 아니라 나라꼴을 돌아봐야 한다. 국회선 싸움질이나 하고, 어린이를 성폭행해도 ‘그저 그런’ 처벌을 하는 나라에서 국격을 논하는 것은 사치다.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앞서 ‘세종시 문제는 질문하지 말아 달라’며 골치 아픈 문제는 피해가는 것은 민주주의 등불, 즉 국격을 훼손하는 일이다. 이럴 땐 촛불을 들어야 하나, 횃불을 들어야 하나. 촛불이 화나면 횃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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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비싸지는 않지만 그래도 메이커(나이키)라 믿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찢어졌습니다. 그것도 아주 중요한 시합 도중에.
이키가 이래도 되는거야
렇게 중요한 시합에 발가락이 고개를 내밀고 
득거리잖아


토요일에 청주 용정축구공원에서 전국기자협회 축구대회가 열렸습니다. 전국 각 시도에서 축구깨나 한다는 사람들이 선발돼 자웅을 겨룬 것입니다. 경기는 살벌했습니다. 주심의 심판내용이 탕탕평평하지 않다고 주먹질을 하기도 했습니다. (지나친 승부욕에 공인의 본분을 잊고 발광을 한 것)
저 또한 우리 팀의 승리를 위해 용을 쓰며 뛰었습니다. 문제는 시합도중 왼쪽 발가락이 툭 튀어나왔다는 사실입니다. 에구머니나! 아직도 남은 게임이 서너 차례 있는데 1차전에서 존엄하신 발가락이 축구화 사이로 돌출한 것입니다. 결국 깨금발 뛰듯이 하며 경기를 계속했고, 우리 팀은 승리했습니다. 여분의 축구화가 없었던 탓에 2번째 게임도, 3번째 게임도 발가락을 돌출한 채 죽어라고 뛰었습니다. 경기 중간중간에 발가락이 신발 밖으로 삐죽거려 다리가 뒤틀린 듯 아파왔습니다.

이런 와중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작렬시킨 것입니다. 분명히 기적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찢어진 왼쪽 축구화 발로 넣은 것이었습니다. 결국 우리 팀은 전국을 제패하며 우승기를 높히 들었습니다. 발가락의 승리였습니다.



P.S)다음 날 저녁 아내가 르카프 축구화(왼쪽 사진)를 사왔습니다. 뭐하러 사왔냐고 핀잔을 줬지만 저는 그날밤 (아이처럼) 축구화를 머리맡에 놓고 잤습니다.

..................

학교 때는 밥보다도 축구를 더 좋아했습니다. 도시락 먹는 시간도 아까워 점심시간에 혼자 운동장에 나와 드리블 연습을 하곤 했습니다. 매일 시합을 했고 주말에는 빅게임을 했습니다. 비가 온다고 해서 게임을 연기하는 일도 없었습니다. 농사일을 거들다가도 게임시간이 되면 삽을 집어던지고 운동장으로 달려갔습니다. 때문에 아버지께 여러차례 혼쭐(매 타작)이 나기도 했습니다. 돈이 걸린 게임엔 죽자하고 뛰었습니다. 종아리에 쥐가 나면 사금파리로 종아리를 베어 피를 냈습니다. 속설인지는 모르지만 대부분 그런 방법으로 쥐를 풀었습니다. 고등학교 땐 자그마한 풋볼클럽에도 가입했습니다. 제천은 소규모 클럽이 전국에서 가장 많을 정도로 축구마니아 도시입니다. 포지션은 라이트윙. 키는 작아도 몸놀림이 빨라 '리틀 마라도나'라는 별칭도 있었습니다. '아마추어 시절 1000골'은 그렇게 해서 탄생했습니다.

▲ 10일 충북 청주용정축구공원에서 열린 '제4회 한국기자협회 전국시·도협회 축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대전충남기협 선수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기자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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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sketch 2009.10.11 2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축구시합이 있었군요. 전국적인 대회에 결승골 넣으신 것 정말 축하드립니다. 더군다나 찢어진 축구화로 그런 의미있는 골을 넣으신 것이 더 놀랍습니다. 열심히 뛰시는 모습에 따르는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해도 될 듯 싶습니다. ^^

    저도 아마추어 축구 무지 좋아합니다. ^^

  2. ㄱ ㅅ 2009.10.12 09: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맙습니다. 열심히 뛰긴 했지만 발가락이 제일 고생많았죠.ㅋㅋ

  3. BlogIcon 에이레네/김광모 2009.10.12 10: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
    골게터이시군요. 그것도 전국대회에서~~~
    축하드립니다.

    기회되면 저도 끼워 주세요.
    새로산 나이키 축구화가 잠 자고 있어요!!!

  4. ㄱ ㅅ 2009.10.12 1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게터는 아니고요... 운이 좋았죠...아니면 빵구난 신발 신고 헝그리 정신을 발휘한 것일수도.....전 일주일에 한번 직장동호회 축구에 나가고 있답니다....

  5. 쏘옹 2009.10.13 14: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ㅋㅋㅋㅋ 선배님 너므 재미써요.. 글읽다가 계속 키득키득
    나이키 삼행시 대박이에요..캬캬

  6. 쏘옹 2009.10.13 14: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참! 결승골 추카드려요..마닐라로 고고씽~

  7. ㄱ ㅅ 2009.10.13 15: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업무 노동상 마닐라는 안될 것 같고.....
    암튼 감사 감사 꾸벅~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세종은 덕이 높고 높아 '해동의 요순(堯舜)'이라 불렸다. 요순시대란 동양에서 최고의 정치를 이룬 시대를 뜻한다. 32년 재위기간에 보여준 실용적 애민정신은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까지도 추종을 불허한다. 그는 단순히 한글을 창제하고 용비어천가를 지은 언어지도자에 그치지 않았다. 육진 개척과 사군 설치로 국방을 키웠고 토지와 세제개혁, 과학기술 육성 등으로 국태민안의 위상을 높였다. 나아가 뛰어난 '문화대왕'이기도 했다. 사역원의 외국어과목에 여진족어를 추가하고, 신하들을 중국에 보내 남방언어를 연구하게 할 만큼 실용적이고 개방적이었다. 만백성에 성은을 베푼 세종, 그가 남긴 불후의 명작 '한글'이 563세를 맞았다.

▶"어제 급벙했는데 깜놀했잖아. 미자들만 잔뜩 있더라." 이는 '어제 갑자기 모임을 가졌는데 깜짝 놀랐다. 미성년자들만 잔뜩 있더라'는 뜻이다. 알타이어도, 구라파 언어도 아닌 것이 국적불명, 해독불가 상태로 대한민국을 떠돌고 있다. 누리꾼이나 '엄지족'들은 버카(버스카드), 참김(참치 김밥), 미자(미성년자), 열폭(열등감 폭발), ㄱㅅㄱㅅ(굽신굽신), ㅎㄷㄷ(후덜덜)이라며 말줄임말을 습관처럼 사용한다. 어른이 알아듣지 못하는 은어를 사용하는 것이 마치 '신세대'의 표상인양 당당하다. 그러나 이같은 '언어 파괴'는 급기야 10대들의 욕으로까지 '번식'했다. 비속어 ‘존나’는 말과 말을 연결해주는 하나의 접사가 된지 그 오래다. 1시간 대화에 50번 이상 사용한다는 통계도 있다.

▶현존하는 6900개 언어 가운데 6600개가 문자가 없는 언어이며, 이 중 5800개가 소멸될 위기다. '무형의 말을 담는 그릇' 언어는 문자 없이는 결코 살아남기 어렵다. 작가 펄 벅은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하고 단순한 글자이며 자모음을 조합하면 어떤 언어와 음성도 표기할 수 있다"고 했다. 얼마 전 인도네시아의 소수민족 찌아찌아족이 토착어를 표기할 공식 문자로 한글을 채택했다. 인구 6만 명인 찌아찌아족은 고유어를 갖고 있지만 그것을 표기할 문자가 없어 언어가 소멸될 위기에 처해있었다. 그들은 한국 전래동화인 ‘토끼전’을 포함한 교과서도 발행했다. 한국서 3500마일이나 떨어진 소수민족이 한글을 배우고, 문자를 쓰면서 한국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위대한 한글의 힘이다.

▶500년 전 문맹의 백성들을 위해 창제한 훈민정음은 한국의 자존이다. 영어가 만국공용어가 되어 세상을 지배하는 와중에 러시아는 영어단어를 무절제하게 끼어 넣는 러스글러시(Russglish)를 근절하기 위해 언어순화법안을 마련했다. 프랑스는 자국어 보호를 위해 정부주도의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청나라를 세워 중국 대륙을 250여년 간 통치한 만주족 후예들은 요즘 모국어 학습열기가 거세다. 청년층을 중심으로 민족 정체성을 되찾으려는 움직임이다. 그러나 한국에선 '문자 붕괴'를 말리는 사람도 없고, 위기의식을 느끼는 사람도 없다. 100년 전 일본이 한국을 도륙했을 때 제일 먼저 자행한 것이 언어말살정책이었다. 이는 정신의 약탈을 위한 폭력이었다. 우리의 언어 3할은 이미 문화 사생아처럼 내팽개쳐져 있다. 몸에서 가출한 혼들은 제자리로 돌아오기 힘들다. 주소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심약한 영혼을 가진 자가 고약한 언어를 쓴다. 지구상 6900개의 언어 가운데 가장 찬란한 문자 한글, 지금부터라도 '문안인사'를 여쭈며 그 위대한 유산을 받들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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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문화초등학교는 1958년도에 개교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학교다. 축구부와 정구부가 있는데 축구는 전국서도 알아준다. 2억5천만원을 지원받아 잔디운동장을 조성 중이다. 강복순 교장선생님의 학교사랑이 남다르다.  단상 앞에 보이는 마이크 앞에서 1시간 모라자게 '원맨쇼'를 했다.

초등학교 땐 ‘무작정’ 선생님이 되는 게 로망이었고, 커서는 ‘안정적인 직업’ 선호도 1위라 선생님이 로망이었다. 한 때는 초등학교 교사가 되고 싶었고, 언론사 짬밥을 먹으면서는 교사가 아닌, 교수가 되고 싶었다. 이론만 가지고 떠드는 강의가 아닌, 실전을 겸비한 강의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막연히 '선생님'을 동경하던 어느 날, 아니 43세를 바라보는 어느 초가을(10월 7일 바로 오늘) 기회가 찾아왔다. 일일교사였다.

아뿔싸, 막상 기회가 오자 박차고 싶은 게 사람인가보다.

초등학교 5학년에게 ‘신문활용교육(NIE)’ 수업을 하라니. 알고 있는 것을 주저리주저리 하면 될 것 같기도 했지만 교단에 처음 서는 나로서는 긴장되는 게 사실이었다. 열흘 전부터 자료조사와 정리에 들어갔다. 그리고 한글 워드작업도 끝냈다. 나름, PDF파일도 만들었다. 신문 150부와 신문필름도 준비했다. 초등생 아들에게 어떤 얘기가 관심거리인지 사전조사도 했다. 게임과 연예인 얘기가 먹힌다는 답변!!!


2009년 10월 7일
아침 9시 40분.
대전 문화초등학교를 향했다. 가는 와중에도 ‘잘할 수 있을까’ 두려움이 앞섰다. 마치 예방주사 맞으러 가는 '놈팡이' 같았다. 맞기 직전의 찌릿한 두려움. 소강당에 자료를 미리 비치하고 화면설치를 지켜봤다. 그리곤 교장선생님을 만나 10분간 담소하고, 다시 ‘주검의 사형장’을 가듯 소강당으로 돌아왔다. 150명의 아이들은 낯선 이방인을 ‘MC몽’ 보듯이 쳐다봤다.

드디어 수업이 시작됐다. “주저리주저리…, 이러쿵저러쿵…” 기자란 무엇인가, 신문이란 무엇인가, 신문 제작과정은 어떻게 되나. 50분간을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사실 ‘첫경험’의 두려움은 컸지만 막상 교단에 서니 전혀 두렵지 않았다. 떨릴 줄 알았는데 떨리지 않았다. 아이들이 야유를 보낼 줄 알았는데 (감사하게도) 그러지 않았다. 아이들이 가끔 지겨워하면 연예인 만난 얘기를 해주었다. 다시 떠들고, 다시 연예인 얘기 해주고. 그러면서 할 것은 다 했다. 그리고 '악몽 같았지만 너무나 새로웠던' 일일교사 체험을 끝냈다. 아이들은 순수한 눈빛으로, 땀 뻘뻘 흘리며 '고생하는' 나에게 박수를 보내 주었다.
P.S)아이들아,  고맙다. 그리고 고윤옥 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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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찡찡 2009.10.07 15: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느새 사진까지 쫘악~~~~
    좋았구나 선배~~~ㅋㅋㅋㅋㅋ

  2. ㅠㅠ 2009.10.07 15: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업전에 미리 찍어놨지...내가 처음으로 가르친 아이들...ㅋㅋ

  3. 쏘옹 2009.10.07 16: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소가 절로 나오는 글.^^ 선배님 오늘 멋지세요.ㅋ

  4. ㄱ ㅅ 2009.10.07 17: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방주사 맞았으니 속이 후련....하하하

  5. 몽이 2009.10.07 17: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머 멋쪄요 멋쪄~ 재필슨상님 언제 후배들 데리고 특강함 해주세용. 연예인 만난 이야기도 좋아요 ㅋㄷㅋㄷ

  6. ㅁ ㅇ 2009.10.07 18: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누구신지???
    MC몽???

  7. BlogIcon 꼬치 2009.10.07 19: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MC몽’ 보듯이 쳐다봤는건 굉장히 대단히 인기있었다는 뜻?
    아마도 요즘 5학년들이 가장좋아하는 연예인중 한사람이지 않을까 싶은뎅... 왕 멋지삼~

  8. MC몽 2009.10.07 20: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힘들게 했는데 기억에 남네용~~~

  9. BlogIcon 모과 2009.10.07 23: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큰 아들 중3이었을 때 스승의 날에 아들 학급에서 일일 교사를 했습니다.
    부산의 동래의 제일 좋다는 중학교에서 ,
    전교 1등 부터 150등 까지 가능성이 똑같다는 교사의 말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10. 맞아요 2009.10.08 0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에 그런거 느꼈습니다. 해보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말자고. 막상 해보면별것도 아닌데....


아래 글은 한국언론재단 '신문과 방송' 책자 10월호에 실린 저의 기고입니다. 언제나 낙향다운 낙향을 그리는 한 인간의 씁쓸한  여정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
괴나리봇짐을 꾸렸다. 8년간의 서울생활, 13년간의 편집기자 생활을 정리하는 의미였다. 김삿갓은 하나의 로망이었고 그 방랑벽을 고스란히 떠안고 낙향을 결심한 것이다.
수 백 만장의 텍스트를 읽고 또 읽었던 직업이었는데 달랑 A4용지 한 장으로 수속을 마쳤다.

신문기자로 산다는 것은 고행이었다. 샛길로 빠질 여유조차 없이 앞만 보고 달리다보니 이직의 꿈이 항상 보푸라기처럼 일었다. 술과 일과 피로 속에서 하루하루 근심의 나이테만 켜켜이 쌓여갔다. 매년 쭉쭉 오르는 연봉에 신바람이 났지만 시시때때로 배반의 장미에 찔려 눈물 흘리는 나약한 인간 군상을 느끼며 몸 안에 찬바람이 불었다.

그러다보니 직장을 7번이나 옮기는 콤플렉스가 생겼다. 성실성이 부족하다거나, 충성도가 떨어져 이직을 반복한 것은 아니다. 직장의 제1조건이 ‘돈’이 아님을 알았을 때, 능력을 인정해주지 않고 ‘정(情)’을 방관할 때 직장은 ‘머슴’에 준하는 인력시장일 뿐이었다.

연간 휴일 140일, 하루 8시간 근무, 전 직원 해외여행, 전 직원 정규직, 육아휴직 최대 9년, 60세 정년보장은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신의와 비전을 바랬다. 신(神)의 직장을 원한 것이 아닌데 회사는 ‘신(辛)의 직장’으로 칼날을 곧추세웠다. 가로 39.4㎝ 세로 54.5㎝의 지면에 바친 청춘은 중년의 비포장도로로 접어들면서 스러져갔다. 가끔은 빗물에 눈물을 감추며 달렸다. 낙향은 그래서 탈출구이자 비상구였다.

세상살이에 구토하고 비토하고, 아파한 기억들이 고향 땅에 내려앉았다. 봄이면 매화꽃과 살구꽃이 흐북하게 피어나던 고향. 적당한 욕망이 있고, 청승맞은 밤에게 술잔을 건넬 수 있는 고향. 고향에선 토악질도 편하고 배설도 편했다. 내가 아프고 힘들고 ‘술이 필요할 만큼’ 외로울 때 달려와 술이 되고 말이 되고 어깨동무가 되어주는 고향.

그러나 낙향한지 얼마 후 난 다시 고향의 신문사를 기웃거리게 됐다. 활어시장 같은 편집국이 생각났던 것이다. 펄떡펄떡 뛰는 생선의 오르가슴을 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잉크냄새 폴폴 풍기며 윤전기가 돌아가는 그 전쟁터를 떠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싱싱함을 잊을 수 없어서 수 일 동안 술독에 빠져 살다가 지방 신문사에 다시 들어갔다.

신문사는 여전히 정글의 전사를 키우고 있었다. 특별하다는 오만 속에 맨주먹 정신을 가르치고, 술 냄새와 인간의 냄새가 오묘하게 합쳐진 그로테스크한 곳. 콘크리트 세상을 벗어나 맨발로 뛰고 싶었지만 다시 콘크리트였다. 늘 마음이 뻥 뚫려 있었는데 고향에서도 천공(穿孔)이 났다. 본래 있었어야 할 작은 파편이 제대로 와 박힌 듯이. 그러나 편해졌다. 분노와 미움으로 점철된 치열한 ‘삶의 체험현장’이 끝나서인지 편해졌다. 맹수의 살기가 사라져 편해졌다. 샹그릴라(shangri-la)는 아니지만 여전히 ‘잃어버린 지평선’을 찾아 헤매는 꿈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열애한 신문편집을 다시 하게 돼 행복했다.

고액연봉자로 꽤 산듯한데 지금도 빚 빼면 서까래 하나 남는다. 여전히 가난하다. 그러나 척박한 환경이더라도 마음속에 나무 몇 그루 심어놓고 산다. 달콤한 수액을 주는 대신 다른 벌레들이 꼬이는 것을 막는 벚나무, 모기가 들끓지 않도록 해주는 산초나무, 우물가에 심었다가 그 잎을 물위에 띄워 나그네의 물갈이를 막아준 버드나무, 먼 길을 떠나는 나그네를 위해 오리(2㎞)마다 심은 오리나무, 옛 시골집 길손에게 뒷간 가는 길을 알려주었다는 감나무, 일을 돕기 위해 처가에 온 사위의 지게를 가볍게 하기 위해 약한 덩굴로 질빵을 매줬다는데서 이름 붙은 사위질빵나무 등을 키우면서 말이다.

그리고 염원한다. 16년차를 향해 내달리고 있는 ‘지금’을 떠나 낙향다운 낙향을 언젠가는 하리라고. 텃밭에 고추며 오이며 토마토 등 채소들을 기르고, 사계절동안 여러가지 입성을 갈아입는 초록을 즐기며, 도시서 놀러온 지우(知友)들에게 햇살 같은 자연을 선물할 수 있는 그곳으로 가리라고. 비루먹을 상념이 폐선의 갑판처럼 삐걱대더라도 ‘나’를 내려놓을 수 있는 진정한 고향으로 가겠노라고.

해바라기는 태양의 궤적을 따라 동에서 서로 꽃을 움직인다. 더 놀라운 것은 암실에서도 해바라기는 빛이 있는 곳에서 그랬던 것처럼 동에서 서로 꽃을 움직인다. 빛을 쫓는 습성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습성’대로 살았다. 세상이 다 그런 줄 알고 ‘버릇’처럼 살았다. 그러나 이제 나를 감싸고 있었던 ‘무거운 갑옷’을 벗어놓는다. 세상이 아무리 날 흔들어대도 무소의 뿔처럼 내 길을 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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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아라누리 2009.10.06 12: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멋진 꿈을 꾸고 계시군요.

  2. ㄱ ㅅ 2009.10.06 13: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합니다. 꿈을 갖고 있지만 그 꿈이 빨리 오지 않네요. ㅠㅠ

  3. BlogIcon 꼬치 2009.10.06 17: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돌아갈 고향을 꿈꿀수 있다는 것 또한
    부러운 이가 있다는 사실 잊지마세요.

    인생이란 녀석이 본디 달콤쌉싸름과잖아요
    달콤했던 순간이 언제인지 싶기도 하지만
    그 순간에 대한 기막힌 추억때문에
    쌉싸름을 견디게 만드는....

    황지우 싯귀처럼 '늙어서 편해진 가죽부대'에
    덧없는 세월만큼의 나이테가 자연스러워질수록
    흙냄새와 나무향기에 대한 꿈이 쌓여갈수록
    마음이 둥글둥글해지는것 같아요.
    무뎌지는것 같기도 하고....

  4. ㅠㅠ 2009.10.06 19: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늙어서 편해진 가죽부대...
    참으로 멋진 말이네요..
    더 늙기 전에....용기가 더 사라지기 전에....
    꿈을 이루었으면....

▲ 민족 고유의 명절인 추석을 맞아 짧은 연휴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고향으로 향하는 민족 대이동이 예상된다. 경기불황으로 힘든 하루를 보내는 우리에게 고향은 항상 넉넉한 인심으로 반겨준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한 가족이 밝은 표정으로 고향집으로 향하고 있다.
홍성후 기자 hippo@cctoday.co.kr

▶산 너머에 보름달이 휘영청 걸렸다. 바람은 고요를 차고 고향 뜰 멍석을 배회한다. 노랗게 익은 달무리는 햇곡식과 햇과일을 넉넉하게 비추고, 마을 사람들은 노래하고 춤추며 밤(乙夜)까지 흥타령에 젖는다. 옛날에는 보름 전 3일 동안 반달일 때보다 달빛이 12배 정도 강해 여느 때보다 열심히 쟁기질을 하고 농작물을 돌봤다. 달은 달력(月曆)의 주체로 씨 뿌리는 봄부터 가을까지 농사 절기를 정확하게 알려준다. 한 달은 달님이 쉬지 않고 29.5일 동안을 열심히 돌아서 제 자리로 온 시간이다. ‘이태백이 놀던 달’, ‘해님이 살다 버린 쪽박’은 한가윗날 베일을 벗고 보름달로 차오른다. 그 달님은 진짜 고향의 얼굴을 빼다 닮았다.

▶니체가 말한 대로 20세기 초에 ‘신(神)이 죽었다’면 21세기는 ‘아버지’들이 죽었다. 세상이 요구하는 아버지로 산다는 것은 힘에 겹다. 남자는 약해선 안 되고 어떠한 고통이라도 참고 이겨내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남성다움의 고통을 강요받기에 눈물도 흘릴 수 없고, 민주적이거나 다정다감한 아버지로의 ‘전향’도 꿈꾸지 못한다. 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못하기에 ‘친구’ 같은 부자관계도 아니다. 엄하지도 친하지도 못한 이 ‘어정쩡한’ 아버지들의 슬픈 독백은 아프기까지 하다. 경기불황기의 3대 기호식품은 소주와 라면, 담배다. 남자들은 눈물로 끓인 라면에 소주와 담배를 몸 가득 쓸어 넣는다. 세상에 대한 토악질이 날 때까지 그렇게 진부한 ‘쳇바퀴의 삶’을 산다. 한 해 동안 소주 34억 병, 946억 대의 담배를 피우는 대한민국 남자들. 술잔은 남자의 무기력함을 감추기 위한 뜨거운 증류고, 담배 한 개비는 시름을 태우는 무서운 연소(燃燒)다.

▶명절 때 친정에 갈 수 없는 며느리들을 위해 한가위 전후에 ‘반보기(中路相逢)’라는 풍습이 있었다. 시집과 친정의 중간쯤에 있는 산이나 골짜기에서 어머니와 딸이 만나 음식을 나누며 안부를 묻는 눈물겨운 상면이었다. 지금은 ‘반보기’가 사라졌지만 음식노동에 던져진 주부들을 바라보는 눈은 여전히 ‘졸보기’다. 더더욱 슬픈 현실은 현대판 이산가족인 원(遠)거리 가족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귀향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불구의 명절’을 보낸다. 취업, 가난, 돈벌이 등의 이유로 떨어져 사는 원거리 가족은 270여만 가구다. 처자식 유학 보내고 혼자 사는 ‘기러기 아빠’부터 경제적으로 여의치 않아 홀로 떨어진 펭귄 아빠, 경제적으로 풍족한 ‘깍짓동’ 독수리 아빠, 홀로 지방에서 근무하는 갈매기 아빠, 아내와 아이를 외국에 보낼 재력이 없는 참새 아빠 등이 있다. 가족과 함께 명절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행복의 그릇은 넘친다.

▶‘늙어가는’ 대한민국에서 독거노인은 118만 명이다. 도박중독에 걸린 사람은 359만 명에 이르고, 올 들어 8만 명이 개인파산 신청을 냈다. 대학을 졸업한 청년 두 명 중 한 명은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성인 10명 중 2명은 불면증을 앓는다. 미취업자, 생계 곤란자, 결혼적령기를 넘겨 아직도 미혼인 사람들에게 한가위는 한(恨)이다. 이들은 고향이 있어도 고향에 가길 꺼린다. 남이 추석이라 하니 그냥 추석인 것이고, 때때옷 입은 아이들이 추석이라 하니 그냥 웃는 것이다. 마을 뒷동산 솔버덩 위에 뜬 보름달은 누구나 볼 수 있지만, 누구나 품을 수 없는 것은 저마다 느끼는 ‘달(月)’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사랑 한가득한 한가위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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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날씨를 보인 가운데 대전 중구 문창초 가을운동회에서 어린이들이 힘차게 달리기 시합을 하고 있다. 어른들의 거짓말 세상, 이 맑은 동심들이 몰랐으면 좋겠다.
사진=충청투데이 전우용 기자
yongdsc@cctoday.co.kr

▶정치적 거짓말의 역사는 40년에 가깝다. 박정희 정권의 3선 개헌에서 시작된 ‘거짓말’은 현재까지 진행형이다. 노태우 씨는 대선 때 약속한 ‘중간평가’를 하지 않았고, 김영삼(YS) 씨는 3당 통합 때 합의한 내각제개헌을 까먹었다. ‘역사의 심판에 맡기겠다’던 전두환·노태우 씨도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지난 92년 김대중(DJ) 씨는 정계은퇴를 선언한 뒤 ‘약속 파기’라는 눈총을 무릅쓰고 복귀해 대통령까지 지냈다. 정몽준(MJ) 씨는 2002년 노무현 지지선언을 한 후 하루 만에 번복해 ‘말 바꾸는 정치인’이라는 닉네임을 얻었다. 법과 원칙을 고수해 ‘대쪽’으로 불린 이회창 씨도 은퇴와 복귀를 반복, ‘제2의 DJ, 제2의 이인제’라는 비난을 받았다. 목표를 쟁취하기 위해 공약을 ‘밥’ 먹듯 하고 대권을 잡고선 ‘입’을 싹 닦는 파렴치한의 정치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괴짜’ 허경영 민주공화당 총재가 최근 디지털 싱글 ‘콜미’를 발표하며 가수 전업을 선언했다. 단독 콘서트도 열었다. ‘환갑’의 나이에 아이돌 가수처럼 랩을 불렀다. 그는 “내 뒤에 선녀 12명이 있다. 2012년 지구와 행성의 충돌을 막기 위해 왔다. 눈빛으로 병을 고친다. 잠들기 전에 허경영을 부르면 젊어진다. 암도, 신종플루도 자신 때문에 못 들어온다. 내 아이큐는 430이다. 축지법·공중부양을 한다”고 허구한 날 허풍을 치고 있다. 자신을 아시아연방의 대통령, 돌아온 광개토대왕이라고 떠들며 거의 ‘사이비 종교’ 수준의 발언도 한다. ‘허풍’ 허경영의 허무맹랑한 공약과 언동을 보며 대한민국의 ‘뻥짜’ 공약이 오버랩 되는 것은 왜일까. 거짓말의 강도는 확연히 다르지만 다 같은 ‘구라’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빙빙 맴돈다.


▶역대 대선을 보면 ‘중원(충청)’을 장악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DJ, 노무현, 이명박(MB) 당선은 ‘캐스팅보트’라는 충청권 표심이 이뤄낸 결과물이다. MB는 지난 2007년 3월 한나라당 대선주자로 지지율이 기대이상으로 높자 “국민들이 나를 보면서 약속을 하면 꼭 지킬 사람이라고 기대하는 것 같다”면서 “말보다는 실천으로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2009년 9월 충청도는 7번 이상 ‘세종시’ 공언을 했던 MB에게 뒤통수를 맞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여기에 정운찬 총리후보자의 헤아릴 수 없는 깜냥에 또 한번 놀라고 있다. 그는 충청도 출신이라는 것을 항상 자랑스럽게 여기며 살았다고 공언했지만, 충청도를 대하는 말본새도 그렇고, 세종시를 다루는 품새도 영 마뜩찮다. 천재지변이 없는 한 그는 ‘여당의 배후’ 아래 총리가 될 것이다. 그러나 충청인은 암울하다. 그가 총리로 내정되자 북 치고 장구 치며 좋아했던 충청인은 이제 세종시가 ‘동네북’이 되지 않을까 개탄스럽다.


▶충청권은 세종시를 요구한 적이 없다. 두 차례의 대선과정에서 대통령 공약으로 제시됐고 '그들만' 재미를 보았을 뿐이다. 대통령의 공약만 믿고 따라온 500만 충청인, 고향의 상처를 바라보며 이제나저제나 애타게 원안추진을 기다리는 700만 출향인들은 참담한 심경을 지울 길이 없다. 그래서인지 요즘엔 ‘수박’보다 ‘호박’에 더 끌린다. 왜냐하면 달콤하지 않아도 솔직담백하기 때문이다. 세종시 건설은 국익의 논란을 떠나 민심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더더욱 지켜야 한다. 그저 표심을 얻기 위해 대수롭지 않게 던진 ‘공수표’였다면 차라리 고개 숙여 속죄하라. 그리고 ‘다시는 뻥치지 않겠다’고 각서를 쓸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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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이글스 송진우 선수가 23일 대전 한밭야구장에서 21년 선수생활을 마치는 은퇴식에서 동료 선수들에게 축하 헹가래를 받고 있다. 사진아래는 펜들에게 절하는 모습.
사진=충청투데이 홍성후 기자 hippo@cctoday.co.kr

 2009년 9월 23일. 송진우가 은퇴했다.
 28년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서 20년이 넘는 기간 그 누구보다도 성실한 관리로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하며 최다승을 기록한 송진우가 오픈카를 타고 '전설속으로' 떠난 것이다. 그는 한화이글스의 보배이기도 했지만 한국야구의 불세출 영웅이기도 하다.

 최다승(210승) 최다 탈삼진(2048) 최다이닝 투구(3003이닝)
 
 1979년 충북 증평초등학교에서 야구를 시작한 그는 고교 야구명문 세광고를 거쳐 빙그레 이글스(한화)에 입단했다. 그는 21년간 선수로 뛰며 어느 누구도 감히 깨기 힘든 대기록들을 그라운드에 심어놓았다. 1989년 4월12일 롯데와 경기에서 완봉승을 거두며 프로에 데뷔한 송진우는 672경기에 출전해 210승 153패, 103세이브, 17홀드와 탈삼진 2048개를 기록했다. 모두 3003이닝을 투구하면서 1만 2708타자를 상대했고, 볼 4만 9024개를 던진 것이다. 100세이브, 평균자책점 3.51. 여기에 최고령 등판기록(43세 7개월 7일)기록도 세웠다. 21년간 프로생활을 한 그의 등번호 21번은 프로야구 통산 여덟 번째로 영구결번됐다. 한화 선수로는 장종훈(2005년), 정민철(2009년)에 이어 세번째다.

 "한국야구의 전설로 떠나다"

 독수리군단의' 송골매', 한국프로야구 선수들의 영원한 '회장님'이라는 닉네임으로 그는 펜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남게 됐다. 그는 고별사에서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증평초등학교때 조중협 선생님을 만나 야구를 시작하게 됐고, 오늘 김인식 감독님과 마지막 경기를 했다. 그 동안 운이 좋았다. 좋은 지도자들을 많이 만났고, 좋은 선수, 코치들을 만나 21년간 선수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너무 감사드리고 선수로서는 마지막이지만 더 좋은 모습으로 찾아뵐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조중협 선생님은 현 충북야구협회 고문으로 송진우를 야구에 입문시킬 당시 충북 지역 6개 초등학교에 야구부를 창단 한 분이다. 나의 초등학교 은사님이시기도 하다. ㅋㅋ)

 한화엔 또 한명의 전설이 있다. 장.종.훈


 장종훈 이글스 야구코치. 그 또한 야구명문 세광고 출신으로 1987년 빙그레 이글스서 선수생활을 시작해 한화 이글스서 명예롭게 은퇴한 한국 프로야구 타자의 전설이다. 장종훈은 소속 프로팀에 스카우된 선수가 아니다. 청주 세광고를 졸업하고 프로팀도 대학팀도 오라는 곳이 없어 빙그레 이글스(현 한화 이글스) 배성서 감독에게 눈물로 하소연했다.
 “선생님, 저를 거두어 주십시오”
 배 감독은 연봉 600만 원, 한달 월급 50만 원의 '주전자 당번'으로 그를 채용했다. 주전자는 주전들이 훈련할 때 물을 떠다주고 볼을 날라준다. 그는 남들이 쉴때 몸을 만들었고, 남들이 잘 때 배트를 휘둘렀다. 거기서부터 연습생 신화는 시작된다.
그러나 이듬해 퇴출대상으로 분류됐고, 배성서 감독과 이재환 수석코치등이 구단 고위층에게 사정하여 팀에 잔류한다. 그는 프로야구 원년부터 한시즌에 30홈런을 넘긴 선수도 3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극소수였던 92년에 마의 벽으로 생각되던 40홈런을 프로야구 최초로 넘겼다. 91년과 92년에 연속으로 최우수선수(MVP), 골든글러브도 5차례. 최다안타 1회. 홈런왕 3회. 타점왕 3회. 득점왕 2회, 장타율 4회. 출루왕 1회 등 무수한 타이틀을 차지했다. 또한 장종훈은 개인통산 최다인 1949경기에 출장해서 6290타수 1771안타로 통산 타율 0.282, 340홈런, 1145타점을 기록했고, 홈런과 타점, 득점, 경기, 타수, 안타, 4사구에서 심지어 삼진까지 타격의 각종 기록에서 통산 1위에 올라 있는 말 그대로 '기록의 사나이'다.

 빙그레 이글스 시절부터 투타의 핵이였던 장종훈과 송진우. 이제 둘은 선수로서가 아니라 그라운드의 지도자로 제2인생을 살게 된다. 이제 이들은 전설이 됐다. 송진우도 전설이고 장종훈도 전설이다. 더더구나 감격에 찬 것은 당대 최고의 투수와 최고의 타자가 '충청인'(투타 최고의 간판이 세광고서 나왔다는 점도 의미심장한 얘기)이라는 것이다. 요즘 가뜩이나 '세종시' 문제 등으로 충청인 심경이 암울할 때 이 두 영웅의 존재감은 큰 위안이자, 큰 힘이 된다. 송진우, 장종훈 파이팅.


<속보>=프로야구 한화 이글스는 계약이 만료된 김인식(62) 감독을 고문으로 위촉하고 신임 사령탑에 한대화(49) 삼성 라이온즈 수석코치를 내정했다. 한대화는 대전 출신으로 대전고와 동국대를 졸업했고 1983년 OB를 시작으로 해태(1986년), LG(1994년), 쌍방울(1997년)을 거치며 화려한 선수 생활을 보냈다. 통산 15시즌 동안 1331경기에 출전해 타율 0.279와 1190안타, 163홈런, 712타점을 남겼고 8차례 골든글러브를 차지했다.

Posted by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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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날씨와 어려운 경제로 서민들이 이중고를 겪고 있는 가운데 23일 한 상인이 거리의 가판대에서 추위와 싸우며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충투 이성희 기자 lsh77@cctoday.co.kr  


▶왜 가난하면 ‘X구멍’이 찢어지는가. X구멍은 눈물과 콧물을 배설하는 통로가 아니라, 가난과 부자의 끼니가 ‘양극화’를 거쳐 빠지는 수채통이기 때문이다. 쌀이 없어 시래기나 거친 풀을 많이 먹으니 찢어지는 것이다. 풀떼기와 한숨으로 버무린 피죽이기에 피가 나는 것이다. 가난은 속살을 들킨 양 부끄러워 남들 모르게 땀 흘리는 세상의 ‘겨드랑이’ 같은 것이다. 가난한 자가 부자 되기도 어려운 세상이고, 부자가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빈자(貧者)를 위로한다 해도 감질 나는 세상이다. 희망은 내일을 담보로 한 작위적인 화해법이다. 오늘은 빌어먹을지언정 내일이 오면 달라질 거라는 자기 위로다. 그러나 희망이란 씹으면 씹을수록 점점 더 삶에서 멀어지는 게 이치다. 아름다운 꿈일수록 흙탕물을 뒤집어쓰는 법이니까.

▶대통령(MB)이 변했다. 친(親)서민, 중도실용이 곳곳에서 발현되고 있는 것이다. 113년 만에 최고지도자로는 처음으로 강원도 홍천을 방문했고 이곳에서 고추도 땄다. 마을사람들은 다슬기와 고랭지 배추로 국을 끓이고, 찰옥수수와 단호박 튀김, 식혜, 막걸리를 내놓으며 대통령을 환대했다. 남대문시장에 가서는 손녀에게 줄 한복, 무화과, 꿀타래를 사고 상인들과 설렁탕도 먹었다. 이제 재래시장은 기본 투어가 됐고, 농촌과 군부대는 민생행보의 코스가 됐다. 그런데 ‘서민과 복지’는 노무현 정권이 원조다. 입만 열면 서민, 눈만 뜨면 복지를 외친 그 때와 닮아있다. 그러나 진정성 없이 ‘서민’을 부르짖은 결과는 어땠을까. 서민을 챙겨 지지도는 올라갔지만 ‘살만 했던’ 중산층만 몰락하는 역조현상이 벌어졌다.


▶일본의 수탈로 조선의 식량난이 극에 달하자 총독부는 쌀밥을 많이 먹으면 머리가 나빠지고 건강을 해친다고 헛소문을 냈다. 이승만 정부는 1950년 쌀 파동 때 밀수출범을 사형시키기까지 했다. 어머니들은 밥밑에 물에 불린 통보리와 감자를 깔고 그 위에 흰 쌀을 얹은 ‘삼층밥’을 지었다. 이에 박정희 정부는 1976년 통일벼를 개발해 지긋지긋한 보릿고개의 고통을 걷어냈다. MB와 정운찬 총리 후보자는 학창 시절 끼니 굶기를 밥 먹듯 했던 극빈체험자로 빈곤의 통증을 온몸의 DNA로 각인시킨 사람이다. 그러나 서민정치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모두들 부자다. 이런 ‘부자 정치인’들이 서민들을 챙긴들, 폐부 깊숙이 저며 오는 슬픔까지 알 턱이 없다.


▶가난한 1인가구가 늘고 있다. 다섯 집 중 한 집 꼴, 341만여 가구가 혼자 살림을 꾸리고 있다. 두 평(6.6㎡)이 채 안 되는 단칸방에서 라면과 간장 종지를 놓고 끼니를 때운다. 이들 중 절반은 한 달 수입이 100만 원에 못 미치는 저소득층인데 싱글벙글 웃을 일 없는 싱글들이다. 청년 실업자, 알바근로자, 영세자영업자 등 고용보험에서 소외돼 있는 '신빈곤층'만 823만 명. 1인당 빚 1679만 원, 국가채무 366조 원인 세상에 ‘서민 위로’는 특효약이 아니다.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빈곤에서 구제한다’는 경세제민(經世濟民)은 서민을 진정으로 품을 때 비로소 열린다. MB는 “상황이 너무 딱하면 거절 못한다”며 서민행보를 하고, 참모들은 “대통령 만나는 게 로또 잡는다”는 말이 있다며 “민원인들에게 약속을 너무 쉽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뜯어말린다. 북 치고 장구 치는 것은 여기까지다. 대선 때 공언한 ‘세종시 약속’을 20개월 넘도록 방치하는 것은 해도 해도 너무한 민심이반이다. 세종시도 국가적 ‘민원’이기에 하는 말이다.
Posted by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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