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끝의 지독한 장마였다. 비바람은 세차고, 개울은 한껏 몸을 불렸다. 지금보다 30년 젊었던 '청춘의 어머니'는 똬리에 쌀 동이를 얹고 1m폭의 징검다리를 위태롭게 건너고 있었다. 이때 성난 물살이 어머니를 덮쳤다. 중심을 잃은 어머니는 푸른 필터를 끼운 것처럼 파리한 빛깔의 물속에 빠졌다. 순간 머리 위의 쌀이 백화(白花)처럼 흩어졌다. 창졸간에 '심봉사' 신세가 된 어머니는 물속을 유영하고 있는 쌀을 한줌이라도 건지려는 듯 손을 허우적댔다. 손등이 터지고 발등이 깨졌다. 이 광경을 우연히 본 동네어른이 꼬챙이를 들고 달려와 어머니를 건져 올렸다. 집으로 돌아온 어머니는 강파른 얼굴로 밥 대신 호박죽을 끓였다. 저녁을 먹을 즈음 문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어머니를 구해준 어른이 와 있었다. 그의 손에는 어머니가 이고 있던 쌀보다 더 많은 양의 쌀이 들려 있었다.


▶다음 글은 64세 때 어머니가 쓴 일기를 몰래 베껴놓은 것이다. “세월의 징검다리를 건너가는 시간의 발자국 소리. 성큼성큼 딛고 가는 이 한줄기 길 위에서 우리네 삶은 가련하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다 가기 전에 알찬 일들을 해야 할 텐데. 한없이 푸른 잎새처럼 너울거리고 싶다. 아지랑이 숨결 속에 새 숨이 돋아나듯 나의 생명력도 그러할 수만 있다면 좋을텐데…. 자식들의 등불이 되고프다. 단단하고 강인한 땅을 뚫고 뾰족이 솟아나고 있는 새싹들이여 푸름을 뽐내지 마라. 나에게도 내 무거운 짐을 덜어주는 새싹 같은 자식이 있다. 1997년 1월 1일. 35년 만에 노동을 끝냈다. 몸에 병이 들어 농사는 실패했지만 자식농사는 잘 지었다고 생각한다. 자식 때문에 울고 웃었지만 오로지 자식 때문에 살아왔다. 내 몸에는 오로지 자식 밖에 없다.”


▶영화 '친정엄마'가 국민을 울리고 있다. 영화 속 엄마는 '무식하고 시끄럽고 촌스럽고 그래도 나만 보면 웃는' 엄마다. 그래서 '친정엄마'는 '엄마'보다 짠하다. 결혼한 여자들에게 '친정엄마'는 거리상으로는 떨어져 있지만 항상 의지할 수 있는 그림자 같은 존재다. 영화 속 딸은 아빠가 숨지자 혼자 살 엄마를 걱정해 ‘서울 와서 함께 살자’고 한다. 그때 엄마는 “너랑 같이 살면 네가 힘들 때 갈 데가 없잖아. 엄마는 여기 있을 테니까 힘들면 언제든지 찾아와"라고 한다. 500원어치의 콩나물을 사면서 단돈 100원을 아끼기 위해 극성을 부리는 친정엄마의 모습은 우리들의 어머니와 닮았다. 나 또한 영화를 보는 내내 열 번 넘게 울었다. 구멍이 뚫린 곳이라면 그 틈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남자에게도 엄마는 친정엄마다.


▶눈물은 후회다. 뭐든지 후회하기 때문에 눈물이 나는 것이다. 어머니라는 단어만 나와도 온 몸이 우는데, 자식 때문에 수없이 울었을 어머니 때문에 운다. 소리내어 운다. 남몰래 울기에는 어머니의 아득한 깊이를 헤아리지 못했기에 소리 내어 운다. '천금같은 내 새끼'로 살아 온 뻔뻔함 때문에 운다. 어머니는 나를 향해 외롭다고 비명을 질렀지만 나는 듣지 못했다. 콩나물 값을 깎는 엄마를 부끄러워하며 살았다. 배앓이를 할 때마다 어머니 손길을 기억하는 우리는 소중한 사람들을 너무도 가벼이 여기며 살았다. 지난해 5월 암으로 세상을 뜬 고(故) 장영희 교수는 어머니에게 마지막 편지를 썼다. ‘엄마 미안해. 이렇게 엄마보다 먼저 떠나게 돼서. 내가 먼저 가 아버지 찾아서 기다리고 있을게. 엄마 딸로 태어나서 지지리 속도 썩였는데. 그래도 난 엄마 딸이라서 참 좋았어.”

Posted by 나재필
29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고 천안함 46용사 합동안장식이 열린 가운데 유가족이 헌하를 하고 고인의 영정사진을 오열하고 있다. 김호열 기자 kimhy@cctoday.co.kr

칠흑의 수전(水戰)에서 죽어간 넋이여
미안합니다.
그리고 또 미안합니다.
이제 46인의 이름을 조국의 가슴에 묻습니다.
충정의 천안함 전사를, 충혼의 땅 대전에 묻습니다.
그대들은 우리의 아들이었고,
우리들의 용사였습니다.

해전의 굉음은 멎었지만,
전장의 울음은 멎었지만,
그대들의 이름을 가슴으로 안고
그 숭고한 뜻을 충혼의 맥으로 잇고
그대들이 남긴 살신보국의 정신을 각인합니다.

푸른 서해를 가슴에 품고 잠든 46용사들이여!
이 땅의 안전과 번영의 밀알이 된 그대들이여!
이제 사랑하는 국민들은 그대들을 놓아주려 합니다.
바다에서 산화한 꿈이여,
하늘에서나마 국민의 안위를 굽어 살피소서.
영령들이시여! 편안히 영면하소서.
마지막 명령입니다!
Posted by 나재필
사진=KBS캡처

▶이상산(1909~34)은 아비 손에 이끌려 열여덟 나이에 홍등가(紅燈街) 기생이 됐다. 이후 자신을 차버리고 떠난 애인을 행여 볼까 상하이로 간 상산은 되레 독일 남성과 사귄다. ‘될 대로 되라. 내 운명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구경이나 해보자'는 심사였다. 그러나 독일인 처(妻)로부터 모욕을 겪은 뒤 영국인과 다시 동거를 시작한다. 그러나 둘은 빗나간 질투심에 사로잡혀 권총자살로 끝을 맺는다. 1926년 8월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 가수 윤심덕은 일본 유학생 문인 김우진과 현해탄에 투신(投身)한다. 둘은 정사(情死)할만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각자의 고뇌 때문에 저승길에 동행했다. 윤심덕은 평소 '세상 남자들은 모두 악마 같다. 나는 언젠가 한 놈은 죽이고 죽는다'고 말하곤 했다. 여자들의 사랑은 때론 치명적이다. 오로지 한쪽 방향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천재시인 이상은 금홍과 헤어진 뒤 일종의 도피처로 신여성 지식인 변동림을 선택했다. 소설 ‘실화(失花)’에서 이상은 변동림이 사귄 남자의 수(數)를 캐묻는다. “몇 번?” “한번” “정말?” “정말 하나예요” “말 마라” “아뇨 둘” “잘 헌다” “셋” “잘 헌다, 잘 헌다” “넷” “잘 헌다, 잘 헌다, 다섯 번 속았다.” 이상은 아내가 간음했다면 절대 용납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정조관념에 엄격한 도덕의 잣대를 들이댄 것이다. 둘은 햇빛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셋방에서 신접살이를 시작했다. 변동림은 이상의 폐결핵 약값을 벌기 위해 일본인이 운영하는 술집에 나갔다. 그러나 결혼생활 불과 넉 달만에 둘은 갈라섰다. 사별(死別)이었다. 변동림은 얼마 뒤 화가 김환기와 재혼했다. 그토록 정조를 원하던 이상의 사랑은 끝내 ‘관능’으로 무너졌다.

▶여자들이 화장(化粧)을 하는 것은 수준 높은 지적활동이다. 그것은 자신을 위한 꾸밈이기도 하지만 타인을 위한 배려이기도 하다. 거울은 나를 비추지만 결국 타인을 향한 시선이다. 사랑이 거울에 비쳐지면 여자들은 꽃으로 피어난다. 그 꽃은 남자의 사랑에 의해 만개한다. 꽃을 꺾는 것은 아름다움을 꺾는 일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부부 중 12만 4000쌍이 남남으로 갈라섰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고은의 시구(詩句)는 사랑의 시선을 얘기한다. 마음은 있으나 눈이 멀었고, 눈은 있지만 마음이 없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거다. 상처와 고통을 이겨낸 여자의 DNA를 아는 남자라면 지금 당장 그녀를 사랑하라.

Posted by 나재필
▶베트남은 모계사회다. 기나긴 전쟁으로 많은 남자들이 죽자 이에 대한 ‘보상’으로 여자들이 일을 도맡아하는 암묵적 합의가 존재한다. 농촌의 남자들은 게으른 편이라 거의 놀고먹는다. 농사의 시조, 신농씨께서 온화한 날씨를 주어 1년에 3모작을 한다. 사시사철 논을 놀리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노동의 강도도 세다. 넌라(non·베트남 삿갓모자)는 여자의 경우 16바퀴의 테가 둘러져 있다. 이는 여자나이 16세면 결혼해도 된다는 의미다. 이 넌라의 용도는 더위와 비를 피하는 데 사용하지만, 특히 일을 하는 여자들이 논밭에서 용변을 볼 때 가리기 위한 용도로도 쓴다. 화장실 갈 틈도 없이 농사일에 전념해야 하는 ‘슬픈 앞가림’이다. 이처럼 노동현장에 내던져진 여자들은 평균 몸무게가 45㎏으로 빼빼하다. 노는 남자와 열심히 일하는 여자. 이 묘한 공존이 베트남을 울리고 있다.


▶식모(食母)는 남의 집에 고용돼 주로 부엌일을 맡아 해주는 여자를 말한다. 식모는 급격한 이농(離農)사태가 낳은 여성 잉여 노동력을 도시가 저비용으로 흡수한 경우다. 웬만큼 먹고살만한 집에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시집갈 때 장롱을 사주는 조건으로 그녀들을 고용했다. 하지만 식모는 주인에게 도벽을 의심받고, 술주정에 시달려야 했으며, 주인집 자식들에게 무시를 당하기 일쑤였다. 가난했기에 찬밥때기를 먹어야 했던 중산층의 눈물인 셈이다. 식모자리마저 없으면 방직공장·전자공장의 '여공'이 됐다. 얼마 전 끝난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의 주인공이 전형적인 70년대식 식모다. 하지만 이제 능력 있는 주부들은 더 이상 밥을 하지 않는다. ‘밥’보다는 ‘밥벌이’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노래와 웃음을 팔지 않고 백년낭군과 해로함이 소원일세. 차라리 실오라기 같은 삶을 스스로 끊어서 근심을 잊으리로다.' 나이 일곱에 기생이 된 산골 출신 강명화는 '오입쟁이 놀음판 최고 명기(名妓)'라 불렸다. 그러나 그의 단심(丹心)은 오직 장병천에게 있었다. 장병천은 백만장자 아버지와 훗날 총리까지 지낸 삼촌(장택상)을 둔 명문의 자식이다. 평양·서울 화류계를 석권한 그녀는 병천의 한없는 구애에 무너졌다. 그녀는 병천과 함께 도쿄로 도피해 단지(斷指)까지 결행하며 사랑을 바치지만, 지체 높은 장 씨 집안의 반대로 끝내 죽음을 택한다. 명화는 병천과의 마지막 여행지 온양온천에서 쥐약을 먹고 고통에 몸부림치다 죽는다. 물론 병천도 독약을 먹고 임을 따라 박행(薄幸)한 생을 마친다. 치명적인 사랑이었다.


▶천안함이 물속에서 어둠의 나날을 보낼 때 '여자'들은 눈물로 지샜다. 그 눈물은 강물이 되어, 공포에 휩싸인 바다를 울렸다. 아내로 살아온, 엄마로 살아온, 여자로 살아온 나날들이 그토록 슬픈 적은 없었다. 오매불망 남편의 안위를 걱정하는 여자는 이미 ‘꽃’이 아니었다. 전쟁터에 나가 목숨을 기꺼이 버린 '남자'에 대한 한(恨)이자 그리움이었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가 아니다. 고목(남자)은 바람에 쉽게 부러지지만 갈대(여자)는 흔들흔들 거리면서 꺾이지 않는 법이다. 변절자는 남성일 수도 있다. 바람처럼, 구름처럼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의 마음은 머무르지 못하는 습성이 있다. 지금 대한민국의 여자들은 속으로 울고 있다. 봄꽃을 즐길 여력도, 춘심(春心)도 없다. 여자는 한 송이의 '꽃'으로 태어났지만 그 꽃에 '향기'를 머물게 하는 것은 남자의 의무다. 여자의 눈물은 남자에게 유죄다. 여자를 위무하라.

Posted by 나재필
▶아버지 주름 틈에서 막걸리가 뽕짝이 되어 흐른다. 어머니 작은 손에 박힌 옹이에선 구수한 신파명조의 술이 발효된다.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 ‘인생의 삼합(三合)’은 가난과 노동과 눈물이었다. 이 때 슬픈 넋두리를 위로하는 시(詩)가 막걸리였고, 젓가락 두드리며 희망을 노래하던 흥타령이 막걸리였다. 코흘리개 시절, 막걸리 심부름을 하며 한 모금 한 모금 도둑 술을 마셨던 기억은 여린 취기(醉氣)다. 시치미 뚝 떼고 술 주전자를 내밀면 아버지는 벌건 볼과 풀린 눈을 모른 체 하며 가벼워진 주전자를 기꺼이 받았다. 술의 양은 줄었지만, 아이가 술의 발효만큼 쑥쑥 자라고 있다는 ‘귀여운 일탈’로 본 것이다. 질긴 풀과 억센 밥을 먹는 식구들 사이에서 향긋한 이야기로 익어가던 우리네 술 ‘막걸리’가 요즘 뜨고 있다.


▶1970년대 대물림된 궁핍과 빈곤에 익숙해진 우리는 내일이 없는 삶을 살았다. 그 동네에 초록색 새마을운동 깃발이 내걸렸다. 진입로를 새로 닦고, 초가집을 헐고 우물을 새로 팠다. 집집마다 형광등이 들어와 광명이 비췄다. 불 때던 아궁이는 전기밥솥으로 바뀌고, 부채 대신 선풍기가 여름햇살을 막았다. 바보상자 TV도 노동의 피로를 달래주는 ‘신기한 광대’였다. 이런 새마을운동의 중심에는 자급자족을 가능케 한 ‘통일벼’가 있었다. 소출(所出)이 늘어 곳간이 넘쳤고 쌀 막걸리가 등장했다. 1977년 12월 8일 ‘1호 쌀 막걸리’가 세상에 나오자 대폿집에 술꾼들이 몰려 단시간에 술독이 동났다. 당시 쌀 막걸리의 등장은 의료보험 실시, 수출 100억 달러 달성과 함께 10대뉴스에 포함될 만큼 화제였다.


▶당시만 해도 막걸리는 옥수수나 밀가루로만 만들었다. 정부는 1년 묵은 고미(古米)로는 막걸리를 빚지 못하게 하고, 2년 묵은 고고미(古古米)나 3년 묵은 고고고미로만 술을 빚게 했다. 그러나 요즘 막걸리의 90% 이상은 국산 쌀이 아닌 수입쌀을 쓰고 있다. 여기에 덕지덕지 붙는 세금은 ‘막걸리’에게 더욱 야박하다. 맥주 500㎖ 1병의 세금을 뺀 매출 단가는 478원, 소주 360㎖ 1병은 394원인데 막걸리 750㎖ 1병은 693원이다. 오히려 막걸리가 더 비싸다. 전국 750곳의 양조장에서 빚는 2000종의 막걸리는 숱한 규제와 ‘싸구려 농탁(農濁)’이라는 설움 속에서 오늘도 술등을 적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좋아했다는 오곡막걸리(충북 단양), 박정희 전 대통령이 즐겼다는 배다리 쌀막걸리(경기 고양), 76년 전통의 연꽃 생막걸리(충남 당진), 등록문화재인 덕산 막걸리(충북 진천)…. 세월이 빚은 명주(銘酒)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꽃 피는 계절이면 술도 익는다. 대청마루서 햇살을 안주삼아 한잔 기울이는 것도, 논두렁에 둘러앉아 막걸리와 짠지 하나로 노동의 고단함을 잊는 것도, 앞마당 무화과나무 앞에서 여흥을 즐기는 것도 모두가 막걸리가 있어 가능하다. 이런 막걸리는 찌그러진 주전자로 마셔야 제 맛이다. 완벽하지 않은 것처럼 마음 편한 것도 없다. 사람도 막걸리처럼 조금은 찌그러지고 빈구석이 있어야 그윽하다. 사람이 막걸리처럼 익는다. 봄처럼 익는다. ‘골 때리는’ 술이라며 천대받던 막걸리가 인기를 누리는 것은 좋아진 제조법 때문만이 아니다. 사람냄새 나고, 사는 맛 나는 세상을 갈구하는 모두의 갈증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다. 비 오는 처마 밑에서 술마당을 열고, 젓가락 두드리며 막걸리 한 잔 하는 것도 봄이라서 가능하다. 꺼억~.

Posted by 나재필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가지'란 책이 있습니다. 죽음 앞에 선 1000명의 말기 환자들이 남기는 마지막 후회들을 모은 것입니다. 인간이 죽음이라는 커다란 마침표에 섰을 때 하게 되는 후회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그것에 대한 물음이자 '해답'입니다. 호스피스 전문의인 저자는 약으로도 처방할 수 없는 환자들의 마음에 귀를 기울입니다.
말기 암 환자들의 고통을 완화시켜주는 호스피스 전문의인 저자는 어느 순간 삶의 마지막 순간에 느끼는 후회에는 커다란 공통분모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또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에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환자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가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다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순간순간 스쳐가는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작은 일이라도 흘려버리지 말고 하고 싶다면 지금 하라"고 권고하는 것도 이런 경험에서 나온 금언입니다.
"내게 단 하루밖에 남아있지 않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어떤 후회를 할까요?

[죽을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 -오츠슈이치-

1.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했더라면
2.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했더라면
3. 조금만 더 겸손했더라면
4. 친절을 배풀었더라면
5.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6.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려고 노력했더라면
7.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더라면
8.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났더라면
9. 기억에 남는 연애를 했더라면
10. 죽도록 일만 하지 않았더라면
11. 가고 싶은 곳으로 여행을 떠났더라면
12. 고향을 찾아가보았더라면
13. 맛있는 음식을 많이 맛보았더라면
14. 결혼을 했더라면
15. 자식이 있었더라면
16. 자식을 혼인시켰더라면
17. 유산을 미리 염두에 두었더라면
18. 내 장례식을 생각했더라면
19. 내가 살아온 증거를 남겨두었더라면
20. 삶과 죽음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했더라면
21. 건강을 소중히 여겼더라면
22. 좀 더 일찍 담배를 끊었더라면
23. 건강할 때 마지막 의사를 밝혔더라면
24. 치료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했더라면
25. 신의 가르침을 알았더라면

........................................

법정 스님 유언
"절대로 다비식 같은 것을 하지 말라. 이 몸뚱아리 하나를 처리하기 위해 소중한 나무들을 베지 말라. 내가 죽으면 강원도 오두막 앞에 내가 늘 좌선하던 커다란 넙적바위가 있으니 남아 있는 땔감 가져다가 그 위에 얹어 놓고 화장해 달라. 수의는 절대 만들지 말고, 내가 입던 옷을 입혀서 태워 달라. 그리고 타고 남은 재는 봄마다 나에게 아름다운 꽃공양을 바치던 오두막 뜰의 철쭉나무 아래 뿌려달라. 그것이 내가 꽃에게 보답하는 길이다. 어떤 거창한 의식도 하지 말고, 세상에 떠들썩하게 알리지 말라"
그리고
"나는 죽을 때 농담을 하며 죽을 것이다. 만약 내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내 몸에 매단다면 벌떡 일어나 발로 차 버릴 것이다" 

Posted by 나재필

▶우리나라 국민은 34억 원은 있어야 부자(富者)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40%밖에 되지 않는다. 10명중 2명은 부자를 존경하지도 않는다. 부자가 되기 위해 뭔가 ‘투기(投機)’한다는 선입관 때문이다. 하지만 34억 원의 꿈은 둘째 치고 34만 원도 없어 빚잔치 하는 게 국민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734조 원이었다. 1인당 1500만 원의 빚을 짊어진 셈이다. ‘돈 없이’ 집을 샀기에 그렇고 ‘돈 꿔서’ 가르치다보니 그렇다. 최근 국회의원들의 재산이 공개됐다. 이들중 절반 이상이 부(富)를 늘렸고 1인당 평균재산은 30억이 넘었다. 김세연 의원의 경우 주식으로 634억 원이나 불렸다. '불만·불신·불안'을 떠안고 사는 3불(三不) 계층인 서민 중산층은 그들이 부럽고 부럽기만 하다.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지고 있다.


▶부자나라일수록 국민들은 불행하다고 한다. 상대적 박탈감이 커 행복 총합이 감소하기에 그렇다. 돈을 벌수록 사람들은 부유층을 흉내 낸다. 하지만 진짜 부자는 '있는 척'을 안하는 법이다. 미국 내 백만장자들은 머리 손질에 16달러를 지불하고, 열 명 중 네 명은 10달러 미만의 와인을 즐기는 짠돌이다. 여성 백만장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구두는 명품이 아닌 대중적 브랜드 '나인웨스트'고, 가장 좋아하는 의류 역시 중저가의 '앤테일러'다. 성경 잠언에도 '부자인 척 행동하는 사람은 가진 것이 없고 가난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부자다'라는 말이 있다. 진정한 부자들은 으리으리한 집과 고가의 자동차에 관심이 없다. 금융위기 이후 수많은 가정이 집을 잃고 파산한 이유도 '부자인 척 하는' 습관 때문이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함께 점심을 먹는다면 누가 밥값을 낼까? 정답은 가난한 사람이다.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만나 밥을 같이 먹어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은 부자에게 밥을 사면서 노하우를 배운다. '철강왕'이 된 앤드루 카네기는 공장 노동자였다. 그는 일주일치 급료를 모아 부자들이 가는 레스토랑에서 그들이 어떤 말을 하는지 엿들었다. 그는 적극적으로 '수업료'를 지불하고 그들의 습관과 행동을 배워 부자가 된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런가하면 인도에 사는 1200만 명의 아이들은 노예처럼 산다. 그들은 사창가에 팔려가지 않기 위해 하녀로, 막노동꾼으로 일한다. 노예처럼 일한 대가는 한 달에 2500원이다. 장난감 대신 삽·괭이를 들고, 놀이대신 구걸을 한다. 이들에게 가난은 처절한 비명이다.


▶이명박 정부는 저소득층에게 1인당 9만 3000원을 감세했고, 고소득층에겐 437만 원을 감세했다. 5년간 88조 원의 부자감세로 인해 세수는 10조 원이나 줄었다. 그런데도 지난해 한국 부자들 3만 6000명이 지방세를 내지 않았다. 10억 원 이상 재산가의 체납액이 5530억 원이었다. 누구는 한 끼를 때우기 위해 ‘풀’을 뜯고 누구는 한 끼를 누리기 위해 ‘고기’를 뜯는다. 그러나 인생의 성공은 통장잔고가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숫자라고 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사람이 없으면 가난하다. 가난한 사람은 희망을 꿈꾸며 살고, 부자는 절망하지 않기 위해 산다. 내일을 담보로 한 자신들의 인위적인 생존법이다. 가난은 인생의 담금질이다. 매달 월급통장에 찍히는 숫자를 보며 희망의 풀무질을 하는 것은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Posted by 나재필
▶대한민국에 사는 200만 명이 인터넷 중독이라고 한다. 이들 중독자는 하루 4시간 이상 인터넷과 동거한다.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만 한 해 7조~10조 원에 이른다. 인터넷은 영화, 게임, 음악, 성(性) 등 없는 게 없는 오락상자다. 게임에 빠져 생후 3개월 된 딸이 굶어 죽어도 모르고, 게임을 그만하라는 부모를 '게임처럼' 죽이는 일도 있었다. 악성댓글로도 여러 사람이 죽었다. 인터넷 시야는 20인치 안에 갇혀있다. 그늘도 없다. 체온도 없다. 익명으로 자신을 숨기고 현실의 통제와 구속을 벗어나는 자유공간만 있을 뿐이다. 술을 마시거나, 친구와 수다를 했다면 이제는 사이버 친구가 술이고 안주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트위터(twitter)에 들어가 '화장실 다녀왔다', '배가 고프다'고 보고한다. 물론 이 같은 중독의 뿌리에는 '하지 말라'는 것뿐인 세상과 현실의 고단함이 묻어있다.


▶휴대전화는 애인 너머에 있는 애인이다. 아이폰 등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휴대전화 중독은 더 심해졌다. 이들은 하루 평균 367분을 통화한다. 틈날 때마다 엄지로 꾹꾹 누르며 교신하는 재미는 '간첩'도 못 말린다. 휴대전화에서 울리는 알람으로 아침을 열고, 취침모드로 저녁을 재운다. 한마디로 애인보다도 더 애인 같은 폰(phone)이다. 전화기가 없으면 불안하고, 전화가 오지 않아도 벨소리 환청을 듣거나 문자메시지를 습관적으로 확인한다. 그러나 휴대전화로 인해 우리는 많은 걸 잃기도 했다. 보고 싶을 때 달려가는 애틋한 사랑의 발품이 줄었고, 얼굴을 맞대고 정직한 대화를 해야 할 횟수가 줄었다. 그야말로 사랑과 대화는 발신음에서 시작해 전자음으로 끝난다.


▶직장인의 절반 이상은 자신을 일중독자로 생각한다. 아버지가 그랬듯이 아들도 가족을 위해 '일중독'이 되어간다. 자식을 가르쳐야 하고, 집을 사야하고, 맛있는 음식과 멋있는 옷을 입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버지답지 못하다는 자기검열 때문에 약하지도, 살갑지도 않다. 일에 묻혀 사는 '일벌레 남성'의 65%는 자녀와 친밀하지 못하고, 부부관계에도 소홀하다는 통계가 있다. 물론 쉰 살을 훌쩍 넘긴 마돈나가 젊은 남자들을 '섹스 먹잇감'으로 사냥하는 거나,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섹스 황제'가 되는 것이나, 왜소 음경 콤플렉스로 네 명의 여인과 결혼했지만 자살한 미국의 소설가 헤밍웨이나 성(性)중독에 빠져있는 사람도 있긴 하다. 자고로 건강한 사랑은 삶의 에너지원이다. 사랑도 때때로 유통기한을 확인해야 한다. 너무 집착해 변질되지 않았는지. 한쪽만 바라보는 중독 증세는 없는지 말이다.


▶소크라테스는 술꾼이었다. 그러나 술을 많이, 자주 마시는데도 취한 모습을 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주당(酒黨)이었다. 마르크스는 수업을 빼먹고 취할 때까지, 주머니의 돈이 바닥날 때까지 마셨다. 그들이 술을 마신 이유는 알코올 중독이었기 때문이다. 중독자들은 외친다. 숙취(宿醉)도 재미고 고통도 재미라고. 몸에 나쁜 걸 즐기는 것도 중독이고 약이란 약은 모조리 찾아서 입에 넣으려 드는 것도 중독이다. 폭력적인 음식으로 창자를 가득채운 몸뚱이와 그 몸뚱이로 인해 무거워진 머리와 가슴도 중독증세다. 창자를 비워본 적이 없는 사람은 마음을 비우지도 못한다. 결론은 '적당히 살라'다. 바다가 호통을 쳐도 집착하지 말고, 바람이 욕을 한들 아등바등 살지 말라는 거다. 피지 말라고 해도 꽃은 일 년 열두 달 피고진다.

Posted by 나재필
                   남북 이산가족들이  떠나는 버스 창문 사이로  손을 잡고 있다

▶소설가 정도상은 고비사막을 여행하면서 아들을 떠올렸다. 중학교 2학년이던 정 씨 아들은 화가를 꿈꾸고 있었다. 그는 귀국하자마자 아들에게 고비사막 동반여행을 약속했다. 그러나 부자(父子)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1주일 뒤 아들이 스스로 세상을 등졌기 때문이다. 그날의 충격 이후 정씨는 글을 눈물로 찍어내며 쓰고 있다. 어째서 그런 비극적인 선택을 했는지 소설가는 아직도 모른다. 아들이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 생전엔 묻지도, 듣지도 않았다. 아들 앞에서 아버지는 '옳은 말'만 되풀이했다. 이제 자신의 곁에 잠시 머물렀다 떠난 아들의 기억은 사막처럼 황량하다. 영원한 이별을 택하기 전에, 절뚝거리는 삶이 오기 전에 아들과 교유하지 못해 365일 울고 있는 것이다.


▶“슬프다, 연약한 여식이여! 내 기도가 모자라서인가? 네 목소리, 얼굴은 눈에 어른거리건만 넋은 어디로 갔는가!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어 가슴을 치며 슬퍼하노라.” 1424년 봄, 어린 딸이 홀연히 세상을 떠나자 28세의 세종대왕은 한없는 슬픔을 이렇게 읊었다. 열다섯 나이에 얻은 어여쁜 딸이 혼인해 가정을 이루기를 소망했던 젊은 아비. 세종의 이별사(離別史)는 잔혹했다. 즉위 여섯 달 전에는 동생 성녕대군이 죽었고, 그 해 12월에는 장인이 정치적 죽임을 당했다. 그 1년 후에는 큰아버지인 정종이, 그 다음 해에는 어머니, 그리고 그 두 해 뒤에는 아버지 태종이 세상을 떠났다. 세종은 즉위 후 십여 년 동안 상중(喪中)이었다. 세종의 치세(治世)는 어쩌면 이별로 다져진 강건한 의식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에 가장 허망한 결심이자 어려운 결단이 바로 금연이다. 애송이 취급을 받지 않으려고 신문지에 풀잎을 말아 붕어담배(뻐끔담배)를 피우면서 길들여진 담배. 대한민국 사람들은 반년에 22억만 갑이나 물며 빨며 애호한다. 하루에 8.4㎝ 20여 개비를 태우면 120분의 수명이 줄어든다. 하지만 “자기 증조할아버지는 하루에 담배 두 갑을 피우고도 100살을 살았다”며 스스로 면죄부를 준다. '슬픈 일이 있을 때마다 담배에 불을 붙였더니 이제는 담배에 불을 붙이면 슬픈 일이 날아와 앉는다'는 어느 시인의 노래는 '자기변명'의 결정타다. 수명이 준다고 반 협박을 해도 끽연과의 이별은 쉽지 않다. 그렇다면 담배가 가해자인가, 피는 '놈'이 가해자인가. 교통사고 현장처럼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있는 게 담배다. '작심3일'과 이별하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안녕'을 고해야 할 목록이 담배라는 걸 담배는 안다.


▶지금 내 곁에 돌아누워 있는 아내는 지구 한 바퀴를 돌아야 만날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사람이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면서 결혼을 갈구하는 게 인간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만 한 해 11만 쌍이 이혼한다. 홧김 이혼을 줄이기 위한 이혼숙려제를 시행해도 100쌍에 0.97쌍 꼴로 헤어진다. 그러나 어제 차갑게 안녕을 고한 사람은 39억 9999만 년을 기다려 만난 사람이다. 그 장구한 시간의 터널을 통과해 만난 사람인데 한순간 참지 못해 이별한다. 그래서 이별도 연습이 필요하다. 버릴 줄, 잃을 줄, 놓을 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온당한 이별'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어제 헤어진 동료와 어제 헤어진 이유가 정당해야 한다. 가장 행복한 순간이 가장 슬프다고 했다. 가장 행복한 순간이 정점(頂點)이기 때문이다. 그 이후론 온통 내리막길이다. 이별이 아름다워야 하는 이유다.
Posted by 나재필

▶평생 ‘무소유(無所有)’의 정신으로 산 법정스님이 ‘연꽃’이 됐다. 편백나무의 헛헛한 바람 곁에 피어난 ‘무소유’의 불길은 아름다운 향기를 남겼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게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이다. 법정스님이 '무소유'를 강조한 것은 '가난'을 강조한 거와 같다. 절이나 교회에서 호사스러운 장례를 치르는 것에 죽비를 내리친 것도 가난한 도량이 되기를 소망했기 때문이다. 스님은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데 사용해 달라”고 했다.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겠다”고도 했다. 스님이 가지고 간 것은 일체의 번뇌와 육신이 아닌 바람 한 점, 가르침 한 줄이었다. 소유를 하지 못해 안달하는 중생들의 가슴을 ‘무소유’로 깨우친 것이다.


▶대한민국 인구의 18%인 300만 가구가 빈곤층이다. 이들은 가난해서 운다. 가난하기 때문에 울 일도 많다. ‘사회의 허리’인 중산층이 빈곤층으로 몰락하며 범죄도 증가했다. 형법범(刑法犯)의 경우 상류층이 0.6%, 중류층이 21.4%인데 비해 하류층은 43.9%나 된다. 소년 범죄자의 경우 하류층 자녀가 62%를 차지한다. 가난한 사람은 '소유'하지 못해 가난을 저주한다. 그들은 정신적으로도 가난하다. 10대에는 사교육, 20대에는 취업, 30, 40대에는 내 집 마련, 50대와 60대는 노후 불안에 시달린다. 이 모든 것에는 '소유'의 욕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아프고 시린 것이다.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말이 있다. 내가 못사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남이 잘사는 것은 차마 두 눈 뜨고 못 보는 게 사람이다. 그래서 가난한 자가 갈구하는 ‘희망’은 가난하다. 가난과 고난이 병립(竝立)하기 때문이다. 법정스님의 무소유는 그래서 중생들에게 '죽비'이자 ‘단비’인 것이다.


▶진시황과 측천무후는 권력을 소유하기 위해 피를 뿌렸다. 중국 황실은 성(性)을 소유하기 위해 여인을 농락했다. '누가 황제와 잤느냐'는 성의 문제만이 아닌, 권력에 대한 담론이었다. 황제는 어린 시절부터 성교육을 받았고 명 희종처럼 유모와 성관계를 가진 경우도 있었다. 황후는 스스로 예쁜 여성을 골라 황제에게 바쳐야했으며, 당 현종 때는 후궁이 4만 명에 달했다. 수양제는 사람 하나 들어갈 수 있는 칸막이 방을 만들고, 그 방에 거울을 붙여 성관계를 가졌고 결국 자신의 나라를 멸망케 했다. 중국 최초의 여황제인 측천무후는 후궁 시절 자신의 딸을 죽이고 그 죄를 황후에게 뒤집어씌워 폐위시켰다. 그녀는 황제가 좋아하는 궁녀의 손발을 잘랐고, 후궁을 빛 한 줄기 없는 독방에 가둔 후, 백 대씩 치고 술독에 넣었다. 이처럼 성(性)은 권력과 육신을 갖기 위한 ‘음란한 역사’이자 소유욕이었다.


▶사람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 또한 무소유로 왔다가 무소유로 간다. 한 걸음, 한 걸음 죽음을 향해 발을 내딛지만 발자국은 남지 않는다. 그러나 흔적도 없는 삶을 살면서도 '소유'를 위해 전쟁을 치른다. 여자를 소유하기 위해 악을 쓰고, 돈과 권력을 소유하기 위해 발버둥 친다. 보다 많은 자기 몫을 위해 끊임없이 싸운다. 그래서 인간의 역사는 ‘소유사(所有史)’다. 법정은 우리에게 '무소유'의 가르침을 주었다. 그러나 스님만큼 많은 걸 ‘소유’한 사람도 드물다. 남아있는 사람들의 소중한 마음을 ‘소유’했으니 말이다.

Posted by 나재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