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편집기자협회보에 실었던 글이다.

스페인=2008년도 한국편집대상 수상자와 가족들

'피는 못 속인다' 코드 함께 하며 '業'대물림
 부전자전(父傳子傳), 부전여전(父傳女傳), 왈형왈제(曰兄曰弟)라.

 그 아버지에 그 아들, 딸, 형제가 있다. 이들은 피를 나눈 ‘피로 한’ 사이로 절대 ‘필요한’ 관계이기도 하다. 부모는 자식을 기르면서 수많은 삶의 ‘생몰(生沒)’을 가르친다. 때로는 대장간의 ‘장이’로, 때로는 문화예술계의 ‘쟁이’로, 때로는 생업의 진정한 ‘꾼’으로 키우기도 한다. 자식에게 업(業)을 대물림하기도 하고 재(財)를 남기기도 한다. 농사든, 공사든, 회사든 인생을 공유한다. 그러나 재물의 대물림은 가통에 큰 ‘업적’이 되지 않는다. 때문에 재(財)보다는 평판이 좋은 업(業)을 대물림하는 것을 ‘가문의 영광’으로 여긴다.

 지는 않지만 편집기자 중에도 부자·부녀지간, 형제지간에 대 이은 사람들이 있다. 아직까지는 그 수가 적어 발굴하기조차 힘든 게 사실이지만 업(業)을 이은 편집기자라는 데 그 희소가치가 있다. 이는 ‘훌륭한 선배 밑에 우수한 편집기자가 나온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이배영-이대영, 구자익-구자건 兄弟, 노기창-노수옥(현재 일간스포츠) 父女, 임현태-임훈구(현재 스포츠투데이)·김창규-김진성(스포츠투데이)·오양동-오필승 父子 등이 있는데 이들은 대 이은 장인정신으로 롱런한 사람들이다. 아버지가 국장이고 사부이고, 형제가 대부(代父)이고 데스크인 셈이다. 이들의 장점은 농사꾼이 아들 농사꾼에게 진정한 ‘꾼’이 되는 길을 가르치듯 업무에 있어서도 좋은 반려자가 된다는 점이다. 물론 ‘피는 못 속여’ 한쪽이 이름을 날리면 다른 한쪽도 자연스럽게 명편집의 정도를 걷기도 한다. 편집은 숙련과 정련의 고도화된 지식을 필요로 하기에 적당한 ‘훈수’에 깨우침을 얻는 경우도 많다. 이들은 이런 자연스런 ‘혜택’을 받아 명편집자의 길을 좀더 ‘여유롭게’ 가기도 한다. 구자익-구자건, 이대영-이배영은 대표적인 편집 형제다.(천상기 씨의 ‘한국편집기자열전’ 참조)

 구자익 씨는 경향, 조선일보, 신아일보 편집기자, 중앙일보, 한국일보, 일간스포츠 편집부장을 지냈다. ‘쟁이’이기를 자원하고 그 길로 가려는 이들에게 좋은 안내자였다. 훗날 ‘구자익 편집캠프’라는 말까지 나왔다. 편집에 혼을 쏟아 부었던 외곬의 편집장인이었다. 이런 형을 둔 구자건 씨는 1971년 서울신문 수습16기로 언론계에 첫발을 내딛었는데 독특한 편집스타일로 이름을 날리던 친형의 영향을 받아 발 빠른 성장을 보였다. 편집가정교사를 한지붕 아래 모시고 있는 셈인지라 탄탄한 편집기초를 다질 수 있었다. 그는 경향신문 편집부장, 민주일보 편집국장 등을 지냈으며 현재는 문화일보 편집위원으로 근무중이다. 형제가 편집외길을 걸어온 경우는 흔치 않으나 두 사람 모두 같은 신문에서 편집데스크로 지면개혁을 선도한 점은 특기할만하다. 

 또 다른 편집형제인 이대영-이배영 형제는 편집 외길 4반세기를 보낸 이들이다. 이대영 씨는 취재기자로 활약 하던 중 편집기자로 뛰고 있던 친형 이배영 씨의 영향으로 편집기자쪽으로 전향했다는 설이 있다. 이들은 70년대 경향과 대한일보에서 진취적인 편집스타일로 경쟁을 펼쳤다. 이들의 편집 명작들은 형제지간 대화를 통해 편집의 이론과 실무를 공유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형 이배영 씨는 경남일보, 대한일보, 중앙일보, 세계일보 편집부장, 제일경제 편집국장 1976년 한국편집기자협회 부회장을 지냈으며, 동생 이대영 씨는 경향신문, 국민일보 편집부장, 편집부국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는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심의실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임현태-임훈구 스포츠투데이 기자는 편집父子다. 임현태 씨는 신아일보, 경향신문의 편집 배구스타였다. 대회 때마다 맹활약을 펼쳐 몇 번의 우승을 차지했고 MVP도 독차지했다. 편집도 수준급에 이르고 배구도 잘하는 기자로 알려져 스카우트 대상이 되기도 했다. 경향신문, 주간경향 등에서 26년여간 언론계에 투신했다.

 또 다른 편집父子로는 김창규-김진성 스포츠투데이 기자. 김창규 씨는 수도권 지방지 창간의 대부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다. 서울신문, 조선일보, 한국일보 등에서 그만의 독특한 편집스타일을 구축했다. 24년간에 걸쳐 3개 일간지에서 편집 외길을 걸었다.

 오필승 씨는 매일경제신문, 스포츠서울, 스포츠조선, 스포츠투데이. 스포츠신문 전문 편집자로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았다. 빛깔 다른 화려한 테크닉 잔치를 지면에 반영했다는 평가도 듣고 있다. 그의 부친은 오양동 씨다. 노수옥 기자(일간스포츠)의 부친인 노기창 씨는 1973년 한국일보에 입사해서 1978년까지 5년 간 편집부에 근무하다가 사회부로 발령난 뒤 편집에 소질이 있다는 이유로 2년 뒤에 다시 편집부로 복귀, 총 8년 6개월 정도 생활했다. 노수옥 기자는 “신문사 공채의 교과서는 신문이다. 신문을 1면부터 끝면까지 꼼꼼히 보고 그 중에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메모했다 나중에 찾아보라는 가르침에 신문을 정독하는 버릇이 생겼고 지금의 나를 만들게 된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됐다”고 술회했다.

  언론계 원로인 K씨는 “부모와 자식의 세대는 보수와 진보, 아날로그와 디지털, 비문화와 문화, 좌익과 우익, 민주와 반민주, 호남과 영남과 같은 갈등으로 양분되는 듯하지만 그 괘는 항상 같이한다”며 “코드가 같다는 것, 삶의 지향점이 같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남들이 돌아갈 때 단걸음에 뛸 수 있는 탄력성이 장점”이라고 父子·兄弟 편집기자 예찬론을 펼친다.

  父子 편집기자는 富者다. 兄弟 편집기자는 용감하다. ‘핏줄의 힘’을 공유해 큰 힘으로 부활시키는 대물림, 형제에게 있는 끼를 나누어 120% 발휘하는 ‘나눔의 힘’이야말로 멋진 편집, 멋진 편집기자가 되는 일타이득의 효과가 있다. 아직까지는 편집사에 미미하게 남아있는 ‘편집형제, 편집부자, 편집부녀’의 기록이 앞으로 더더욱 많아지기를 기대해본다. 

Posted by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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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투데이 6월11일 1면>


아래 글은 한국편집기자협회보에 게재했던 칼럼이다. 언제 썼는지 까마득하게 잊었는데 우연하게 인터넷서핑을 하다가 찾았다. 단순한 따옴표(돼지발톱) 하나에도 진정한 가치가 숨어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생각하고, 생각하며 '느낌표'처럼 사는 인생사에서 '따옴표'는 하나의 진실찾기다.


신문은 느낌표여야 한다.
독자들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줄 수 있어야 한다. 보고 읽으면서 느끼게 해야 한다. 그런데 느낌(feel)을 주어야 할 신문들이 따옴표로 물들고 있다. 따옴말이나 문장에서 특별히 드러내는 말의 앞뒤에 쓰는 큰따옴표 (“ ”)·작은따옴표(‘ ’)가 남발하고 있는 것이다. 큰따옴표는 사람의 말을 인용하거나 문장에서 따올 때 쓰이고 작은 따옴표는 따옴표 안에 다시 따온 말을 나타낼 때나 마음속으로 한 말의 내용을 나타낼 때, 또는 문장에서 특별히 드러내는 말의 앞뒤에 쓰인다. 일명 돼지발톱, 69(육구)라고도 불린다.
그런데 마땅히 쓰여야 할 용도 외에 편법으로 애용되고 있다. 편리한 자기방어다. "밤새 안녕"을 위한 자구책이다. 신상의 발병이 두려워 작은따옴표로 단단히 묶은 뒤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놓는 것이다. 작은따옴표에 묶인 상대편에서 뭐라고 항의하면 돼지발톱을 사용했는데 왜 그러느냐고 되레 항변한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웬만하면 (‘ ’)고 모호하면 (‘ ’)다. 지면들은 서너 개의 (‘ ’)돼지발톱들이 산만하게 찍혀있다. 그 것들은 책임회피의 슬픈 흔적이고 면피용 자국이다. 작은따옴표는 큰 상처다. 일단 쓰고 보자는 식의 폭로 저널리즘, 확인 없이 그대로 베끼는 저널리즘의 폐해다. 때문에 이런 저간의 상황들을 아는 사람들은 따옴표 신문, 따옴표 편집을 질타한다.


 어느 老선배는 이랬다. "편집은 연날리기와 같다. 팩트(fact)에 줄을 매고 가장 높이 날리는 것이다. 단, 줄이 끊어져 연이 날아가 버리면 그건 제목이 아니라고."

 다른 怒선배는 이랬다. "자고로 편집은 병 속의 새를 꺼내는 것이고 지면 속에는 자신의 몸뚱이가 들어가 있어야 한다"고.

팩트를 강조하고 책임을 강조하는 말들이다.
사실을 곡해하는 기사와 편집은 종이매체의 위상을 뒤흔드는 작은 요소다. NO를 NO라고 하는 것은 편집자의 자존이다. 책임에 대해서 NO하는 것은 ON을 끄는 것이다. 깨어있음을 포기하는 것이다. 작은따옴표(‘ ’)로 묶는 것은 결국 스스로를 포박하는 것과 같다. 편집은 뉴스 핵심의 포착-압축, 그것의 표현-전개라고 한다. 편집 사활의 관건은 환경보다 내부에 있다. 한 줄의 제목일지라도 쉽사리 생각하지 않고 책임과 의무를 다할 때 지면은 빛난다. 돼지발톱(‘ ’)이 없는 지면이 깨끗하고 곧아 보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적확하게 쓰고 남발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Posted by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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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Angella 2009.07.01 17: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문은 느낌표여야 한다"는 글귀가 인상적입니다.
    멋진 편집 기대하고 있습니다.

  2. 감사 2009.07.01 18: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합니다. Angella님!!!
    신문에 대한 글은 참 재미없는데 읽어주셨군요....
    복습이라고 생각해서 쓴 글입니다. 거듭 감사합니다.

몇병을 마셨을까!! 몇병을 마셨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동공으로 봐서는 참 행복하게 술을 마셨다고 단정할 수 있다. 모처럼, 아니 1년만에 대선배님들을 만나서 회포를 풀었다. 한국언론재단 교육을 끝내고 뒷풀이 현장에서. 왼쪽부터 한인섭 전 굿데이 편집국장, 이상국 전 중앙일보 편집데스크. 가장 '빛나는' 머리를 보이고 있는 자가 필자다.


안경 세 개, 그리고 얼굴가득 번진 미소. 행복했다. 1년만에 유성서 다시 만나 술자리를 했다. 한인섭 국장은 편집을 알게 해주고, 편집을 사랑하게 만들어준 은사다. 이상국 국장은 2~3번 술을 마신 사이지만 누구보다도 편집을 사랑하고, 편집을 사랑하도록 만드는 사람이다. 이 둘을 동시에 만나 어깨동무를 하고, 쓴 소주를 달콤하게 마실 수 있는 것은 행운이자 고마움이다. 두사람, 특히 한인섭 국장을 만나며 내 인생은 여러번 업그레이드 됐다.(마음속의 멘토). 이날 우리는 수백번 '편집' 얘기를 했고, 미래를 얘기했고, 그 미래속에서 희망을 찾았다.

"집필하신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책은 나왔나요?"
"벌써 나왔지. 그런데 비매품이야. 후배 통해서 책을 전달하마"
한인섭 국장은 얼마전 한국언론재단과 한국언론교육원이 발행한 '신문편집 DNA'를 발간했다. 이틀 뒤 회사에 출근해보니 자필사인이 들어있는 책자가 와 있었다. 편집에 대한 무한사랑으로 가득한 님의 텍스트를 보며 가슴이 멍멍해졌다.
책자에 나와있는 한 국장에 대한 소개글.
한인섭 국장은 강원일보, 매일경제, 국민일보, 경향신문,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굿데이신문 대표이사, 언론재단 겸임교수. 사진을 좋아하고 영화와 개그프로를 즐겨본다. 사진은 프레임 속에 새로운 공간과 질서가 탄생되는 경이로움을 체험하게 해준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만 보면 무릎을 꿇고 싶고, 앤셀 아담스의 흑백사진엔 늘 현기증을 느낀다. 고기잡이(낚시, 천렵)를 좋아한다. 불교신자였던 어머니가 방생한 물고기는 다시 다 잡아들인듯하다. 고기 기르기도 좋아한다. 한때 아마존강에만 서식하는 환상적인 물고기인 ‘디스커스폐인’을 사랑했다. 그들의 우아한 몸놀림과 그윽한 눈빛을 읽다보면 새벽동이 트곤 했다. 게임도 가끔은 내게 새벽을 맞게 했다. 손은 느리지만 스타크래프트로 우주를 지키고 스페셜포스로 나라를 지켰다. woodworking(목공)은 내게 아주 오래된 취미인데 다양한 질감의 나이테로 공간을 창조해내는 작업과정은 편집처럼 설레임에 들뜨게 한다. 모두 그 나름대로의 소중한 쓰임새를 갖고 있는 목공구들은 만져보는 것만으로도 그 솔직함에 행복하다. 편집 때문에 담배를 끊었다가(편집 스트레스로 인한 ‘지나친’ 흡연 때문에) 편집 때문에 다시 피워(‘지나친’ 편집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지금까지 끊지 못하고 있다.
........................

 이 시대 가장 대표적인 신문편집의 대가 함정훈 님(전 국민일보 편집국장․현 한국홍보포럼이사장)이 말하는 '편집愛人' 한인섭이다.
“신문 100년은 편집 100년이다… 그는 편집의 비극은 신문의 비극이라고 외친다. 그는 90년대 젊은 신문 국민일보에서 새 신문 다듬기에 함께 울력다짐하다 스포츠신문으로 갔다. 2002년 월드컵 편집상 시상식장에서 만났다. 4강신화의 필드에 히딩크가 있었고 편집마당엔 그가 있었다. 그의 편집은 위트 넘치는 아나그램 등 다양한 조어 구사로 월드컵 환호에 장외 치어리더로 활약했다”
 
........
한인섭 국장은 말한다.
"이것이 편집이다라고 단정짓는 순간 그것은 이미 편집이 아니다. 편집은 지식으로 정복할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편집은 신문의 시작이자 끝이다. 편집이 쇠락하면 신문이 쇠락한다. 이 두 개의 일치하는 하향곡선에 우리는 이미 접어들었는지도 모른다. 취재기자만 키우는 데 급급하고 편집기자를 키우는데는 소홀히 해온 CEO들도 반성할 일이다."

대선배들을 재회한 그 날 난 무한의 에너지를 다시 얻었다. 나태해진 삶의 끈을 다시 조였다. 사랑해야만 했던 편집, 사랑하게 된 편집, 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 편집, 사랑을 계속해야만 할 편집을 기억의 뒤켠에서 다시 끄집어낸 것이다. 나로 말미암아 세상이 변하진 않지만, 나는 거기에 서 있고, 또 그것을 향해 뛴다. '편집'이 글을 쓰도록 가르치고, '편집'을 게슴츠레 하지 않도록 가르친 한 국장이 없었다면 '일과 인생'이라는 그 어떤 부문에서도 '하등한 삶'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라 단언한다. 감사함을 전한다. 
<두 분의 허락을 받지 않고 글과 사진을 무단게재하게 됨을 용서바라며>

Posted by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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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머리보다배 2009.06.09 17: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재필 차장님, 배가 섹시하시게 나왔네요. 진짜 진심임!

  2. 2009.06.09 19: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헉~

  3. 찡찡 2009.06.10 12: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알지 못하는 분이지만..
    그냥 내맘대로 좋아하는분..ㅋㅋㅋㅋ
    그날 상태만 꼬제제 안했더라만..ㅜㅜ
    나도 선배따라 갔을텐데...^^

  4. 빛나리 2009.06.10 12: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꼬제제 안했는데 왜그러셔요....
    빛나리 보고도 그런 소릴....


 누군가가 나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면 난 질겁한다. 화를 내지는 않지만 '도망' 다니기 바쁠 만큼 피사체가 되길 거부한다. 누군가의 파인더에 내 모습이 찍히는 게 그냥 싫다. 아마도 세월의 바람소리에 머리숱이 한 올 한 올 날아가기 시작한 뒤부터였을 것이다. 그런데 사진 찍는 것, 사진 찍히는 것을 싫어하다보니 안좋은 게 있다. 가장 큰 단점은 '추억의 저장고'가 없다는 것이다. 아주 아름다웠던 추억도 머리속에 글 몇 줄짜리 풍경밖에 남아있지 않게 된다. 오늘 입수한 이 사진들도 편집기자들이 중국 북경 유람을 하던 때인데 나에겐 '머리속의 지우개'처럼 새하얗기만 했던 노정(路程)들이다. 왜냐하면 5일간 단 한 장의 사진도 찍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오며가며 몇 장 찍혔을 뿐이다. 오늘 우연히 그 '추억'을 찾았고 다시 그 때로 돌아가 전국 팔도에서 모인 그리운 얼굴들을 다시 보게 됐다.

 사진 찍히는 게 싫다해도 야구선수 김병현 정도는 아니다. 몇년 전 모 신문사에 있을 때 같은 회사 사진부 기자가 김병현에게 맞아 1면에 대서특필된 적이 있다. 이유는 '왜 사진을 맘대로 찍냐'는 거였다. 코뼈가 주저앉는 폭행이었는데 참 황당하고 괘씸했다. 모두가 김병현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노라고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사진 찍히는 게 싫어도 폭력을 휘두를 정도면 '돌+아이'다.


동영상=naver편집기자 꽃다방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사진 보는 것은 즐긴다. 물론 나름, 사진 보는 안목도 있다고 자조한다. 남이 찍어놓은 사진은 커다란 인생공부다. 찍는 이의 생각, 찍고자하는 상황이 필름 속에 고스란히 배어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역사일 수도 있고, 사랑일 수도 있고, 흔적일 수도 있다. 잊혀진 추억의 일기장을 들추어보는 듯한 애틋함이 있어 좋고, 항상 그 시간 그 때로 돌아가서 보는 '늙지 않는 정물화'가 있어 좋다. 그 흑백의 공간은 영원히 늙지 않는 피사체다. 아무리 색이 바래도 그 젊었던 표정과 미소는 늙지 않는다.


.................


 중국의 다양한 얼굴, 그리고 한국기자들의 다양한 얼굴. 다시보니 새롭다. 그런데 문제는 또 있다. 오며가며 찍혔는데 사진 속의 장소가 어딘지 헷갈린다. 기억의 프리즘을 온통 뒤져봐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기록하지 않은 탓이다. 피사체를 직접 찍고 마음 속에 넣어 복기하지 않은 탓이다. 북경의 짝퉁빌딩 앞 노천(모자 쓴 놈팡이가 나)에서 찍은 것만은 분명하다. 비루먹을! 사진을 직접 찍지않으니 추억도 뒤엉켜 내가 서 있던 주소를 잃어버린다. 기억에도 '고장'이 생기는 법이다.


 사진의 출처는 편집기자들 사이에서 유명한 '꽃다방'이다. 무단으로 퍼왔음을 고백하며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더불어 감사드린다. 잊혀져가는 추억을 다시 찾아줘서. 사진은 여행의 동반자다. 넓게 말해서는 '인생노트'다. 그것이 있기에 늙지 않는 시간을 만날 수 있고 탱탱한 젊음을 기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나간 시간을 복기하며 후회하지 않을 삶을 준비할 수 있다. '사진'에게 감사한다.
P.S 본의아니게 초상권도 침해했다. 이 또한 너그러운 마음으로^_^
 
 사진 잘 찍는 방법
 사진을 잘 찍는 방법은 인터넷과 책자에 다 나와 있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것은 상식적인 것들이다. 사진을 찍을 때 가장 중시해야 할 것은 첫째도, 둘째도 포커스(FOCUS.초점)인 듯하다. 풍경을 찍을 것인지 디테일한 표정을 찍을 것인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 파인더에 들어온 피사체를 조각조각내어 찍고자 하는 '마음'을 선택해야 한다. 풍경이든지, 표정이든지 두가지 모두 욕심을 내기 보다는 한 쪽에 무게중심을 둬야 한다. 둘 다 살리려다 둘 다 망친다. 표정을 짓도록 강요해선 안된다. 연출된 사진은 보는 이도 부담스럽다. 웃어줘야 할지, 뒤돌아서서 비웃어야 할지...노출과 촬영모드 등은 똑딱이 카메라도 잘 나오니 초보자에겐 포커스, 포커스가 가장 중요한 듯싶다. 이상은 선무당의 말씀^-^
Posted by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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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까칠녀 2009.02.03 13: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은 자고로... 엽기 ...
    그래야 나중에 다시 볼때.. 웃음이 나오죠..ㅋㅋㅋ
    선밴..
    저한테 특별 과외 받으세요..ㅋㅋㅋㅋ

힘내시라

편집 2008.11.11 16:09



*이 글은 조병철 님이 편집기자들을 위로하는 글입니다.
편집기자협회보에 실린 詩인데 잘 읽다보면 낯익은 이름이 나옵니다. 찾아보세요.
..................

- 편집기자협회 40주년에 부쳐
조병철 <시인, 전 스포츠조선 전무>

<1>

바람아/아침마다 나를 눈 뜨게 하는 건, 바람아 네가 아니더라/
한때는 바람이더라/

바람이 나를 눈 뜨게 하더라/노래를 했지만/오늘 아침 나를 흔들어 깨우는 건/바람이 아니더라/일어 나라/일어 나라/나를 눈 뜨게 하는 건/바람이 아니더라/편집기자여/그대, 나를 눈 뜨게 하더라/그대, 꽃이 되어/나를 깨어 있게 하더라/꽃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황량한 벌판에서/(마감시간 다가오고)/그대/홀로/울다 울다 지쳐 쓰러질 때면/아아, 이것이다. 땀에 젖은 꽃나무들이 보이고/(제목이 떠오르고)/그렇게 태어난 꽃들이/아침마다 찾아 와/나를 흔들어 깨우더라/오오, 눈부신 그대, 꽃이 되어/오더라/그대/어찌하여 고난의 길 선택했는가/편집기자의 길 끝없이 험난한데/지나 가는 바람도 몸을 흔들며 싫다 싫다 하는데/그대/어찌하여 고뇌의 길을 걸어가는가/

<2>

바람아/40년 전에 부르지 못한 노래, 아느냐/30년 전에 부르지 못한 노래, 아느냐/20년 전에 부르지 못한 노래, 아느냐/그때/우리들은 바람을 바람이라 부르지 못했지/나무를 나무라고 부르지 못했지/그때/최루탄에 흘린 눈물 보며/바람아/너도 울었지/

<3>

오늘은 축배를 들자/가을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우리들 축제의 날은 밝았는데, 바람아/함께 노래하자/그대/편집이 흔들린다 (※) 비탄에 젖지 말아라/이제는 바람을 바람이라 부르는데/이제는 나무를 나무라고 부르는데/그대/하늘 보아라/나재필 기자여, 태풍이 지나 간 하늘을 보아라/편집은 하늘/하늘이 푸르지 않느냐/바람아 오늘은 축제의 날/나무 가지 흔들지 말아라/오늘 하루 만이라도 나무잎들 웃게 해다오/바람아/오늘은 나무 위에서 내려 와/축배를 들자/우리 함께/뛰자/날자/노래하자/바람아

.................
*제 이름이 저명한 시인이자, 얼굴도 한 번 뵌적 없는 편집 대선배님의 싯귀에 실린 것을 보고 깜짝 놀랐었죠. '편집이 흔들린다'라는 제 기고문을 아프게 보셨는가 봅니다. 편집기자 생활에 불안을 느끼고 염증을 느껴 영원히 하산(下山)할까 망설이던, 아주 힘겨운 시기였는데 이 시를 보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이런 편집 선배님들이 계시기에 우리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 외로운 길을 오늘도 뚜벅뚜벅 걸어갑니다. 아무도 모르게 눈물 흘리며 떠나는 그 여백의 길을 홀로 채워갑니다. 우리 인생을 편집하지 못하면서도, 비우호적인 눈길을 마주대하면서도 '편집' 그 고독한 이름표를 달고 오늘도 하루 해를 넘깁니다.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를 응원하고 지켜보는 편집선배님들이 많습니다. 그 분들은 우리들의 영웅입니다.
참으로 고마운 분들입니다.

Posted by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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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까칠녀 2008.11.12 16: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디서나 인기쟁이 나선배...ㅋㅋㅋㅋ
    멋져부려~~~


 


"알바트로스가 얼마나 힘들게 비행을 하는지 아니? 바람이 불지 않으면 날수 없는 새.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날자...살자...."
(2005년 1월 12일 23시32분....한인섭 국장)


한인섭 국장이 나의 싸이월드 방에 들어와 남긴 말이다.
2005년 1월 굿데이신문은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퇴로에 섰다.
난 힘들었고 하루빨리 날개를 접고 떠나고 싶었다. 그러나 회생의 길을 찾아 동분서주하던 한인섭 당시 굿데이신문사장은 끝까지 힘내자며 동행을 요청했다.
그가 누구인가. 춘천 태생으로 강원일보와 매일경제신문, 국민일보와 경향신문에서 지천명(知天命)이 넘도록 편집쟁이로 산 사람 아닌가. 경향신문 매거진X를 만들었고 굿데이신문이 월드컵편집상을 휩쓸게 한 사람 아닌가.
(현재 한국언론재단 교수)

스스로 목수라고 자칭할 정도로 손재주가 남다른 사람. 인자한 얼굴과는 달리 편집만큼은 카리스마가 철철 넘치던 사람. 사람을 좋아해 후배와도 이른 새벽까지 술자리를 내달릴 줄 알던 주성(酒聖). 그는 '편집의 거성' 함빠꾸(함정훈 국장)의 수제자이기도 하다. 후배들이 제목과 레이아웃을 달아오면 여지없이 '빠꾸'를 시킨다고 해 붙은 함빠꾸 선생의 애제자였던 것. 그는 편집의 달인이었다. 그는 헤드라인 공장장이었고 사진 에디터였으며, 디자이너였다. 제목을 다는 기술과, 사진을 보는 안목과, 신문을 만드는 방법을 꿰고 있었다. 신문을 만들 때면 무서우리만큼 천착했고, 일등을 향한 끝없는 도전정신을 보여주었다. 그러한 노력은 2002 월드컵에서 빛나는 저력으로 나타났고 후배들로하여금 편집을 사랑하게 만들었다. 광화문 광장으로 뛰어나가 호외를 뿌리던 편집기자들을 행복하게 했다.

언젠가 퇴사를 결심한 나를 찾아온 적이 있다.
영화처럼 비가 내렸다. 눈물처럼 비가 내렸다.
후배 몇몇이서 선술집에 모여 들었고 우리는 빗소리에 울음을 감추고 소나기처럼 마셔댔다. 그는 나의 통장 잔고를 걱정했고 나의 아내와 자식을 걱정했다. 그는 편집의 대선배였고, 회사의 CEO였지만 뜨거운 눈물로 가족애를 보여주었다.
나는 다시 그의 품으로 돌아갔다. 그는 회사에 간이 목제침대를 만들어놓고 기거하면서 일을 했다. 그는 내 인생에서 알바트로스의 희망을 안겨준 사람이다.

...........................
2008년 12월5일 서울의 한 PC방....
9월 29일에 썼던 이 글을 보고 난 다시 눈물을 흘린다.
어제 한국편집상 시상식장에서 많은 선후배들을 만났다.
마치 '오늘'처럼 지나간 '어제'가 다시 생생하게 돋아났다.
그리고 또 또 또 생각했다. 한인섭 국장을...
세상은 왜 곧은 길을 투벅투벅 걸어가는 사람을 외면하는가.
잘 살아야 하는 사람에게, 잘 살아도 될 사람에게 시련을 안겨주나.
그분에게 알바트로스의 날개를 달아주고 싶은데 나에겐 제우스의 손이 없다.
그러나 희망은 있지 않은가. 깃털처럼 하나 하나 몸속에서 웅비의 날들이 자라고 있지 않은가. 그 날을 위해 선배여, 대선배여 파이팅!

<알바트로스.....>

알바트로스는 봉황이나 불사조 같은 새와는 달리 실재하는 새. 어떤 독수리, 어떤 갈매기보다도 멀리 그리고 높게 나는 새이다. 알바트로스는 알에서 깨자마자 바닷물에 떠다닌다. 당연히 비행법을 채 익히지 못한 알바트로스의 새끼들은 흉포한 표범상어들의 표적이 된다. 그러므로 알바트로스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상어의 이빨에서 벗어나려고 필사의 날갯짓을 하게 된다.

대부분은 파도 위에서 퍼덕이다가 비행에 성공하지 못하고 상어의 먹이로 짧은 생을 마치게 되지만 구사일생으로 날갯짓에 성공을 하여 하늘로 떠오르는 녀석들이 있다. 이 최초의, 죽음의 비행에 성공한 알바트로스의 새끼들만이 강한 날개와 그 날쌘 비행술을 타고난 천재들만이 비로소 왕양한 하늘과 바다의 자유를 허락받게 되는 것이다.

생명과 함께 치열한 비행의 모험을 동시에 타고난 이 알바트로스들의 드라마는 조나단의 그 미지근한 <갈매기의 꿈>과 비길 것이 못된다. 그렇기 때문에 보들레르가 시인의 운명을 발견했던 것은 갈매기가 아니라 알바트로스였다.(이어령의 '말속의 말')


 

나는 날고 싶어졌다.
어릴 적 꿈에 자주 날았던 그 창공을 다시 기억해냈다. 부러졌던 마음속의 날개를 다시 찾았다. 날개는 퇴화한 것이 아니라 진작부터 날개가 없었던 것이다.
...........

Albatros

골퍼들의 꿈은 홀인원이지만 그것보다도 더한 것이 알바트로스. 600m 가량의 필드에서 단 두 번만에(규정타는 다섯 번) 맥주 컵만한 홀 안으로 공을 집어 넣어야 비로소 알바트로스가 된다.(골프는 양떼를 몰고 다니는 목동들의 놀이에서 유래된 것이라나...목동의 지팡이가 골프채가 되고 돌이 골프공으로 변하고 토끼굴과 같은 것이 홀컵이 된 셈). 한 개를 적게 치면 버디(birdy)가 되고 두 개를 더 적게 치면 이글(eagle)이 된다. 그리고 마지막 한계라고 할 수 있는 세 개를 더 적게 치면 드디어 그 알바트로스라는 것이 등장하게 된다.

Posted by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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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회 전국 일간신문 편집 배구,족구대회에서 충청투데이가 3위의 성적을 거두었다. 이는 2004년, 2005년, 2006년에 이은 네 번째 3위 기록이다.

Posted by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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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yy 2008.10.02 14: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 3위.. 1등좀 해봐야 할텐데.. ㅋ

  2. 까칠녀 2008.11.06 14: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 편집식구들이 언제 이렇게 줄었대..ㅡ.ㅡ;;
    단촐하다 단촐해....
    그래도.. 올핸 상큼이들도 들어왔으니..
    내년엔 반드시 1등!!!!!!!!!!!!!!
    다 죽었어~~~ㅋㅋ

편집의 시작

편집 2008.09.24 13:02
본사 나재필 차장 한국편집상 수상
이달의 편집상 5회·사진편집상 이어 본상 영예… 그랜드슬램 달성
충청투데이 편집부 나재필(40) 차장이 올 한 해 최고의 신문편집기자를
가리는 '제14회 한국편집상' 심사에서 레이아웃 부문 본상 수상자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한국편집기자협회가 28일 발표한
제14회 한국편집상 심사 결과, 지난해 10월 18일자 본보에 게재된
나 차장의 '포토르포 사진으로 보는 이야기-희망의 높이 꿈의 높이'가
레이아웃 부문 수상작으로 결정됐다.
제73회 이달의 편집상 수상작인 '희망의 높이…'는
하늘에서 카메라에 포착된 다양한 풍경을 초현실주의 화가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의 수직과 수평선에 의한
조형법과 색채를 응용해 편집, 심사위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나 차장은 그간 '이달의 편집상' 5회 수상,
한국편집기자협회와 한국사진기자협회가 공동 주관하는
'제10회 사진편집상' 수상에 이어 한국편집상까지 거머쥐며
편집기자계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시상식은 오는 12월 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리는 '
한국편집기자협회 제45차 정기총회 및 편집 기자의 밤' 행사에
맞춰 거행될 예정이며 부상으로 해외시찰 기회가 주어진다.
 
최 일 기자 orial@cctoday.co.kr

80회 이달의 편집상

한국편집기자협회(회장 김윤곤)는 제80회 이달의 편집상 수상작으로 모두 4편을 선정했다고 26일 밝혔다. 제목 부문에서 충청투데이 나재필 차장의 "AI오리 발병경로 '오리무중'"이, 레이아웃 부문에서 중앙일보 전승우 기자의 '스타일 섹션'을 비롯해 강원일보 이왕란 기자의 '향긋한 외출', 경인일보 이송 기자의 '유전자 조작식품' 등이 뽑혔다.



올해의 사진편집상

한국사진기자협회(회장 김낙중)와 한국편집기자협회(회장 김윤곤)가 24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사진기자가 뽑은 올해의 사진편집상'과 '편집기자가 뽑은 올해의 사진상' 시상식을 갖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윤곤 한국편집기자협회 김윤곤 회장, 충청투데이 나재필 기자, 세계일보 이지혁 기자, 조선일보 채승우 기자, 한국일보 최흥수 기자, 한국사진기자협회 김낙중회장.



77회 이달의 편집상

한국편집기자협회(회장 김윤곤)는 제77회 ‘이달의 편집상’ 수상작으로 경향신문 임소정 기자(사진)의 “반성을 ‘쌓는’ 나라” 등 제목 부문에서 4편, 레이아웃 부문에서 1편 등 모두 5편을 선정했다고 25일 밝혔다. 다음은 부문별 수상작. △제목 부문=경향신문 임소정 기자 “반성을 ‘쌓는’ 나라”, 중앙일보 편집J팀 ‘국보1호도 못지킨 대한민국’, 머니투데이 강경창 기자 “인수위 ‘향응 먼저 인수’ 파문”, 충청투데이 나재필 차장 ‘법정 가는 로스쿨’ △레이아웃 부문=중도일보 김숙자 기자 ‘당신의 힘입니다’



73회 이달의 편집상

한국편집기자협회(회장 김윤곤)는 제73회 이달의 편집상 수상작으로 제목 부문에 경향신문 구예리 기자의 ‘포구, 배는 과거에 정박했다. 거리, 박제된 과거는 화려했다’ 등 3편과 레이아웃 부문 2편 등 모두 5편을 선정했다. 이외 제목 부문에서는 조선일보 전근영 기자의 ‘力士, 역사를 들다’, 중도일보 김숙자 기자의 ‘아파트 몸값 창밖을 보라’가, 레이아웃 부문에서는 인천일보 심동열 기자의 ‘남과북 다시 맞잡다’, 충청투데이 나재필 차장의 ‘희망의 높이 꿈의 높이’가 선정됐다.



60회 이달의 편집상

한국편집기자협회(회장 김윤곤)는 제60회 이달의 편집상 수상작으로 제목부문에 머니투데이 박은수 기자의 '소주 순한맛에 전통주 죽을맛'과 레이아웃 부문에 서울신문 강동삼 기자의 '너를 잃은 뉴욕,난 널 찾아 여길 헤맨다'와 충청투데이 나재필 차장의 '멸종위기 동물을 찾아서 -인간에게 告함'이 각각 선정됐다.

Posted by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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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까칠녀 2008.11.06 14: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제나 열정적인 필선배..
    선배를 보며 나도 언젠가는...
    다짐만 한다는..ㅋㅋㅋㅋ
    하지만..
    요즘.. 의욕상실이다..
    항상 멍~~때리는 나...싫다 싫어..
    결론은.. 필 선배는멋지다는거..^^

  2. 둔탁남 2012.03.25 23: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멋있으시다능~~

쟁이

편집 2008.09.17 13:34

黑과 白, 깨알같이 박힌 마음의 행간.

텍스트는 도망가지 못하는 생각의 박제라네.

터럭 빠진 여백의 이랑에 흐르는 흑백의 발자국.

분단시대 지병 앓듯 지면은 고독한 유배지.

화톳불처럼 튀는 희로애락 담고

톡톡 튀는 사람들 천의 얼굴 싣고

때로는 치다꺼리, 때로는 푸닥거리

열 손가락 자수에 담아야 하는 고독한 수학자.

마치 외로움의 봇짐을 풀어놓듯

미완의 여백에 써내려 가는 외경의 작업일지.

재단사처럼 자르고 붙이고

작명소처럼 짓고 따지고

족집게처럼 뽑고 갸름하고

설계사처럼 나누고 쪼개고

헤드라인 공작실은 불온한 응급실.

허구한 날 앉아서 생인손 앓도록 마름질하고

그러다가 생각의 굳은살들이 찢겨

시장통 생선같이 널브러지면 그것이 데드라인.

오이디푸스도, 엘렉트라도 막지 못하는 고집스러운 콤플렉스.

그래도,

거마비 받고 악기 부는 악사는 아냐.

꺼지는 한이 있어도 드러눕지 않는 불꽃처럼

외설스럽더라도 발정하지 않은 만다라처럼

때로는 비뚜름해도, 때로는 고루해도

옹이 같은 아픔을 지우듯 딸깍발이 생은 간다.

그렇다고 덧칠하지 마. 그렇다고 자기네 생까지 편집하진 마.

잡티 묻은 채로 그냥 사는 거야.

쑥부쟁이 꽃대같이.

호화판 모꼬지는 없어도 비럭질하는 떨거지는 안 되게.

도돌이표 아침 해가 오늘도 하염없이 밝았으니.


☞“신문은 편집이다.” 편집기자 15년 동안 1000번은 들었다. 그 1000번의 되새김은 ‘존심’이었다. 외골수 같은, 스스로를 외통수에 놓는 느낌이었지만 그 외고집, 편집증(paranoid)적인 편집이 좋았다. 편집자는 연기와 불꽃이다. 서명이 남지 않는다. 한번 손을 대고 그 손을 놓는 순간 끝이다. 편집 대선배 한인섭 국장이 강조하던 긴장과 이완의 연속이다. 수많은 기사와 수많은 사건을 대하면서 인생을 배우고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그러나 편집을 하면서 1000명의 사람을 만난 것을 더 행복하게 생각한다. 그 1000명은 편집기자로 1만여 판을 짜면서 사귄 자산이다.  그 중 서로의 팬으로써 지지하고 아껴주는 사람은 50여 명. 산에서, 직장에서, 술집에서, 운동장에서 우정을 나눈 참벗이다. 옷깃만 스쳐도 다쇼(多生), 전생의 인연이다. 그러나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보다 사람으로 사는 것이 더 어렵다. 더구나 사람답게 사는 것이 더 어렵다. 뜻이 맞지 않는 사람을 피해가기가 먼저 어려운 일이고, 그 사람과 악연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기가 또 어려우며 결국 잘못된 인연으로 후회하지 않기가 제일 어렵다. 그들은 후회하지 않게 만든다. ‘현재까지는’이라는 전제가 필요치 않다. 내가 아프고 힘들고 ‘술이 필요할 만큼’ 외로울 때 그들은 달려와 술이 되고 말이 되고 어깨동무가 된다. 세상 돌아가는 흐름 속에서 그 흐름을 꿰뚫는 방법을 배웠으며 읽는 자와의 호흡을 또한 배웠다. 편집을 사랑하기 시작하면서, 편집에 대해 열병을 앓게 되면서 매일 매일이 두근두근거렸다. 지적 호기심이 일었다. 그 호기심은 영혼의 비타민 같은 거였다. 하루하루를 여백에 채우고 그 여백에 장식과 장치와 눈물과 감동을 버무렸다. 아침 식탁위에서 읽는 이로 하여금 하루를 여는 비타민이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신문사 편집국은 활어회 시장 같은 곳이다. 생선처럼 펄떡펄떡 뛴다. 싱싱하다. 그 싱싱함은 정신에서 오는 거라고 단언한다. 1면서부터 마지막 면에 이르기까지 숱한 정신이 ‘+ -’ 전극의 충돌로 살아난다. 그 생선은 팔딱거리면서, 독자를 향해 내달린다. 그 전쟁터에서 살다보니, 그 우정은 전우애와 닮아서 더욱 진하고 아름답다. 잉크냄새 폴폴 풍기며 윤전기가 돌아가면 그 뒤는 술이다. 회포다. 그리고 다음 날도, 그 다음 다음 날도 똑같은 수명을 소진한다. 뛰며 펄떡이며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살아간다. 그 전우들이 함께 한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Posted by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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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흘러가더라

그렇게 흘러가더라

종이만큼의 질량으로 버텨온 펜의 노래.

공백을 메우는 것이 여백임을 알았을 때

바람처럼, 뜬구름처럼 살아온 지난 날이 미워

저당 잡힌 밤을 안주삼아

만원어치의 울홧술을 마시고 천원어치의 비애를 배설했다.

그 젊은 날의 객기(編輯症)로 얻은 것은

24개의 주름과 10kg의 살과

9490개의 술병과 플라시보 같은 중병.

30만 5005개의 탈모, 0번의 연애이력, 780번의 야근,

427050장의 종이(gera), 16235장의 신문 쪼가리였다.

지독한 출산을 위한 표독한 합궁.

그렇게 봄여름가을겨울은 가더라.

그렇게 겨울가을여름봄은 오더라.



여백위에 핀 꽃은 저승꽃이 되었다가도

가끔은 행간 속에서 웃음꽃으로 피고 졌다.

가로 39.4cm 세로 54.5cm, 가로 7단에 세로 15단.

미추한 헤드라인은 데드라인을 거치며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경쟁 속에 미아처럼 버려졌다.

규격화된 방안(지면)에서 배식(밸류 측정)을 하고

요리(레이아웃)을 하고

메뉴판(제목)을 거는 지루하고도 달콤한 옥살이.

그게 바로 (편집쟁이의 체온) 36.5도로 만든 365일의 일상이었다.



세상은 보기보다 참혹하더라.

지면은 생각보다 참혹하더라.

울화통 나는 세상에서 울화병을 얻었고

천식 나는 지면에서 고뿔을 앓았다.

나라는 이름으로, 羅라는 이름으로

너의 이야기를, 너의 언어를 읊조리며

7번의 이직과 2번의 폐간을 당했다.

그렇게 윤회한 삶은 슬프지 않았다.

그렇게 변덕스러운 삶은 아프지 않았다.

業으로 하지 않고 樂으로 일했으니 하늘이 도왔다.



첫새벽은 아침을 깨우고 아침은 낮을 향해 질주한다.

나도 질주한다. 한낮의 허허벌판 지면속으로 질주한다.

걷고 또 걷고 청춘의 고개를 넘어 중년의 비포장도로로 달려간다.

가끔은 눈물로, 가끔은 빗물에 눈물을 감추며 달린다.

내 심장의 박동을 요동치게 하는 편집.

그 정교하고도 무서운 삶의 감옥.

하루에도 수십 번 알카트라즈의 탈옥을 꿈꾸지만

한번도 쇠창살 너머 햇살을 만져보지도, 훔쳐보지도 못한

그 감옥.

밤바다 굿바이를 외치면서도 새벽에 맨발로 뛰어나가 배달신문을 보는

밤마다 탈옥을 외치면서도 아침엔 굿모닝을 외치는 미련한 에디터.



저 창살 너머 펄럭이는 햇살의 마력을 난 안다.

저 햇살 너머 숨어있는 희망의 창살을 난 믿는다.

나의 사랑스러운 감옥

나의 곤혹스러운 감옥,

아, 찬란한 슬픔의 수인(囚人)이여!

지금은 몰라도, 아직은 몰라도

나중에, 백발이 성성한 나이가 되었을 때

그 작은 감옥이, 큰 행복이었노라고 말하고 싶다.

정녕 후회없는 행복한 감옥이었노라고 말하고 싶다.

<편집기자협회보 게재>

Posted by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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