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잡동사니 2010.12.21 15:23

▶"내가 그 기집애와 동거를 시작한 방은 우물보다 낮은 방이었다." 최인호 중편소설 '두레박을 올려라'는 가출한 남자 대학생이 소매치기 여자와 지하 단칸방서 동거하는 얘기다. 사랑을 갖고 놀던 탕아(蕩兒)는 결국 집으로 돌아간다. 셰익스피어는 8살 연상의 아내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았다. 그는 유언장에서 친구와 이웃에게는 온정을 베풀면서도 '집사람에겐 두 번째로 좋은 침대만 주라'고 했다. 가야금 명인 황병기의 아내이자 소설가인 한말숙은 가상 유언장에서 '남편의 재혼은 안 된다'고 못 박았다. 수필가 육상구는 '세상에 두 번 태어나서 행복하게 살다가 떠나오. 어머님으로부터 태어나 반평생을 살고, 당신을 만나 반평생 동안 복락을 누렸소'라고 읊었고, 시인 정호승은 '미안하다.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이처럼 사랑의 종류는 하나이나, 표현방법은 수만 가지가 넘는다.

▶젊은 시절 상투적인 호기를 부리던 때가 있었다. 이십대에 '블루'라는 애칭의 중고자동차를 샀다. 어느 날 이 차를 몰고 무작정 동해를 향해 액셀을 밟았다. 댓바람에 달린 시속 80㎞는 청춘의 속도였다. 첫사랑 여자는 행방도 모르고 동행했다. 한적한 바닷가, 모딜리아니의 그림을 닮은 길쭉하고 신비한 그녀와 소주를 불고 밤바다를 유희했다. 그녀는 온전히 마음을 열지 않았지만 그 때 보았던 그 별빛만큼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첫사랑은 덧없이 사라지는 ‘찰나’다. 마치 낙인처럼 가슴속에 담아두려는 첫사랑은 실은 잊어야 할 목록이다. 배우자와 애인 몰래 추억을 보관하는 '첫사랑 표본실'이야말로 위험한 기억인자로 남아 훗날 사랑을 잡고, 사람을 잡는다. 긴 세월 동안 숱한 필부필부(匹夫匹婦)들 가슴에 불을 댕기는 첫사랑이지만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깨끗이 지워야한다.

▶연애시절, 지갑을 잃어버려 ‘병팔이’가 된 적이 있었다. 지금의 아내와 사귀고 있었을 때인데 자취방을 쥐 잡듯이 뒤져봐도 동전하나 없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빈병을 팔아 소주 한 병과 라면을 샀다. 우린 팅팅 불어터진 라면을 먹으며 겉으론 웃고 속으론 울었다. 이후 월세 5만 원짜리 단칸방에서 시작한 예비 결혼생활은 행복했다. 헛기침 소리로 사용 유무를 알리는 뒷간, 푸성귀를 길러 먹을 수 있는 텃밭이 있었다. 영화관에 가는 대신 홈비디오를 보고, 커피숍 대신 커피믹스를 먹는 2인분의 삶, 포플린 이불 위에서 쪽잠을 자더라도 좋았다. 빤히 들여다보이는 가난, 슬픔이 가득했는데도 좋았다. 하루에 한 번 샤워해야 하는 여자의 자존심을 채워주지 못한 것을 빼고는.

▶인생 마라톤 42.195㎞에서 다시 오르막을 가고 있다. 정확히 보면 체력이 빠지는 25㎞ 지점인 듯하다. 속도가 떨어져 내내 가쁜 숨을 내뱉는다. 이 무거운 삶의 레이스에서 가족(핏줄)이 없었다면 어찌됐을까. 언제부터인가 내천(川)자로 자고 있는 아내와 아이들을 보면 괜스레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해준 것이 없고, 해줄 것이 없어서가 아니다. ‘인연’을 맺어 ‘연인’이 되었고 ‘장가’를 가서 ‘가장’이 되었지만 좀 더 멋지지 못해서다. 고작 새벽녘 이불을 걷어차고 자는 식솔의 배를 덮어주는 일종의 면책행위를 할 뿐이다. 다행인 것은 아직까진 ‘아빠, 나빠'라는 말을 듣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글자를 떼어내 조합하면 ‘살아가는’ 것이 된다. ‘인생 42.195㎞’는 혼자 뛸 수 있지만, 함께 뛰는 사람이 있다면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다. 지금 옆자리를 확인해보라. 누가 함께 뛰고 있는지.

Posted by 나재필


 고향은 어머니 품이다. 바람 한 점, 풀꽃 하나 정겹지 않은 것이 없고 산과 물 또한 넉넉한 가슴으로 받아준다. 타향살이에 잠시 고향을 잊는다 해도 내치지 않고, 지친 몸을 이끌고 낙향해도 그동안의 부재(不在)를 캐묻지 않고 품어준다. 마치 자식의 따뜻한 끼니를 위해 아랫목에 묻어놓은 ‘밥(마음)’같은 존재다. 영동군 황간면 월류봉을 품은 솔티마을(원촌리)이 바로 그런 고향의 원류(源流)다. 이곳에 가면 정겨운 인심과 풍경이 있다. 봄, 여름을 지나며 알알이 씨알을 키우고 있는 포도밭과 감나무들도 반긴다. 솔티마을은 이미 TV속 연예프로그램이나 드라마를 통해 알려진 곳이다. KBS 해피선데이 '1박2일'팀의 강호동과 은지원, 이수근, 지상렬 등이 천방지축으로 돌아다니며 천렵과 복불복(福不福) 게임을 하던 곳이고, '해신'의 검객들이 월류정 백사장 앞에서 검술을 겨루던 곳이다. 드라마 '포도밭 그 사나이'에서는 윤은혜와 오만석이 시골 처녀총각으로 나와 풋풋한 사랑얘기를 들려줬다. 특히 '1박2일' 팀의 경우 2007년 8월 5일 첫 회를 이곳에서 촬영했고, 1년 후 다시 찾을 만큼 마음의 고향이 된 곳이다. 여름 휴가지로 산과 바다 못지않게 즐겨 찾는 곳이 강(江)이다. 강폭 가득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바라보노라면 한여름 무더위는 간데없이 씻겨지는 법이다.



   
자동차는 황간 IC서 나와 우회전한다. 여기서 백화산 반야사 쪽으로 접어들면 곧바로 한 폭의 풍경화가 펼쳐진다. 기암절벽과 봉긋 솟은 봉우리가 물과 산을 휘감아 돈다. 마치 중국의 계림(桂林)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이런 목가적인 풍경은 논둑길로 이어진다. 감나무와 벽오동 나무가 돌담길 곁으로 고즈넉이 자리하고 누군가가 살았을 빈집의 흔적은 호젓하다. 유년의 땅따먹기, 말 타기, 고무줄, 자치기, 비석치기, 구슬치기로 고샅을 점령했던 그 돌담길이다. 모든 추억들이 낙엽처럼 복사돼 눈앞에 쏟아진다.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가 청신하다. 마을 어귀를 돌아 조금 걸으면 월류봉이 보인다. 금강이 휘돌고 소백산이 병풍처럼 서 있는 땅이다. 도마령의 굽이치는 산줄기와 월류봉의 돌아드는 물줄기가 만난다. 이 초강천은 절대 거칠지 않다. 큰 바위에 떼를 입혀놓은 듯한 절벽 아래로 흐르지만 햇살에 비춘 물여울은 부드럽다.

한천팔경은 우암 송시열 선생이 머물던 한천정사(寒泉精舍)에서 이름을 따왔다. 조선 후기 노론의 영수이자 주자학의 대가였던 송시열은 봉림대군의 사부로, 우의정까지 지냈지만 잦은 모략과 밀고로 세 번 넘게 낙향했다. 이때 청주와 영동에 내려와 은거생활을 했는데 특히 병자호란 직후인 32세 되던 해에는 월류봉 앞에 은둔하면서 강학을 했다.

월류봉 정자는 한천팔경의 화룡점정이다. 달님도 쉬어간다는 월류봉은 절벽이 공중에 솟아 높고(400.7m) 수려하며 그 봉우리에 달이 걸려있는 정취는 진실로 아름답다. 봉우리를 올라서면 한반도 형상을 닮았다는 원촌리의 풍광을 볼 수 있다.(등산은 월류정~월류봉 산신당~청학굴~전망바위~월류5봉~월류 4,3,2,1봉~삼거리 갈림길, 초강천 건넘(감나무 식당앞)~송시열 유허비~기미정~주차장:2시간 30분 소요).

   
봄에 진달래와 철쭉으로 산이 붉어지면 홍조를 띤다하여 화헌악(花軒岳)이라 했고, 용연동(龍淵洞)은 월류봉 아래의 깊은 소를, 산양벽(山羊壁)은 월류봉의 깎아지른 절벽을 가리킨다. 이 기묘한 모양의 산봉우리는 동서로 능선이 뻗어 있어 6개의 봉우리가 어깨동무를 한듯한 자세를 하고 있다. 북쪽은 냇물을 따라 깎아 세운 듯한 절벽을 이루고 남쪽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월류봉 아래 백사장은 드라마 '해신'으로 알려졌지만 오랜 세월 부서지고 용화된 백사장은 넓고 아늑하다. 이 물은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를 가르는 덕유산 줄기인 삼도봉과 민주지산에서 발원한 물줄기다. 초강천은 물이 맑고 차기로 유명한 물한계곡을 이루고 다시 추풍령 계곡물과 만나 월류봉으로 흘러든다.

월류봉을 곁으로 자그마한 신작로가 나 있는데 솔티마을(원촌리)가는 길이다. 길옆으로 포도밭이 엉겨있고, 시골풍경이 예스럽게 펼쳐져있다. 다랑이(논배미)는 낙폭을 두고 가지런히 정돈돼 있다. 이미 벼는 한 뼘을 지나 어린아이 티를 벗었다. 길은 지루하지 않을 정도이니 짐작으로 500m 길이일 듯싶다. 그 길을 걷는 동안 추억의 시골길이 생각난다. 추억속의 시골길은 천렵이나 군입정하기에 좋았다. 길 가다가도 아카시아, 진달래꽃, 무, 찔레줄기 등을 따먹고, 더덕이나 도라지, 머루나 달래도 먹었다. 으름, 깨금(개암) 등도 별미였다. 나무 마다 친친 감고 올라선 으름은 석류처럼 쩌억 벌리고 익어 바나나맛이었
   
다. 겨울 끝자락엔 개밥나무(버들강아지) 열매를 따서 껌처럼 씹었다. 처녀종아리처럼 통통하게 익은 무도 군입질에 좋았다. 입안에서 서걱거리는 달짝지근한 맛은 복분자(산딸기)나, 뽕나무 오디 맛에 버금갔다. 잠시 여름날의 추억이 패잔병처럼 길게 드리운다.

길 옆 포도밭에서는 아낙들이 포도 솎아내기를 하고 있다. 캠벨포도인데 9월 중순경에 포도 따기 체험행사도 하고 구입도 가능하다. 아낙들의 말씨엔 경상도와 충청도의 방언이 녹아있다. 이는 충북 영동과 경북 김천·상주가 접경인 탓이다. 타지인이 와서 귀찮게 물어봐도 싫은 내색이 없다. 후박한 인심과 넉넉한 입심이 더해 푸근하다. 50대가 젊은 사람에 속한다고 할 만큼 노동의 대부분은 나이 드신 분들의 몫이다. 가는 길은 수십 굽잇길이 있는 게 아니다. 숲 전체에 그늘을 겹겹이 쌓아 뜨거운 햇볕이 뚫을 틈이 없다.

원촌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앞에 보이는 것이 기룡대(起龍臺)라는 정자와 느티나무다. 이곳이 바로 '1박2일'팀이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짓궂은 게임을 하던 장소다. 옹기종기 팔짱을 끼고 있는 마을 곳곳에 감나무가 보인다. 영동은 감나무로도 유명한 고을이다. 영동 읍내의 가로수가 온통 감나무로 가꾸어져 있기 때문에 가을이면 감이 주렁주렁 달린 이색적인 경관이 펼쳐진다. 영동 감은 일명 ‘먹감’이라고도 하는 둥시와 영동월하시가 있다. 2~3개의 씨가 들어 있는 담홍색의 감은 18.5도 정도로 당도가 높아 연시로도 곶감으로도 맛이 좋다.

느티나무 아래로 바람이 분다. 본디 영동은 바람 또한 많은 고을이다. 그런 까닭인지 이곳에는 바람의 신(神)인 영동할미에게 제사를 올리는 풍습이 오래 전부터 전해져왔다. 음력 2월 초순에 바람이 세게 불면 나이 든 노인들은 '영동할미가 온다'고 말한다. 마음 착한 관리의 넋이 바람으로 변해 원을 풀려고 한다는 영동할미 이야기는 부패한 현실을 꾸짖는 이야기다.
   

수십 갈래로 뻗은 느티나무. 줄기는 바람을 따라, 햇볕을 따라 뻗어있다. 마치 곡예사의 흰 밧줄 같다. 나무를 비켜간 바람은 논두렁 쪽으로 튕기듯이 간다. 솔숲이 짙고 솔향이 깊다. 뭐 하나 버릴 것 없다는 '괴목' 느티나무는 냉풍기다. 솔풍이 불어 시원하다. 바람이 맛있다는 것을 깨우친다. 더구나 춥지도, 덥지도 않다. 적당히 서늘한 바람이다. 당일 온도가 30도를 웃돌았는데 정자 아래 체감온도는 20도다. 한여름에 10도면 꽤 큰 차이다. 그만큼 여름에 가기 좋다는 말이다.

정자 아래서 고기를 구워먹고 하룻밤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다. 사람이 사는 동네인데도 인간의 때를 타지 않은 자연을 닮아 좋다.

솔티마을엔 2개의 마을공동 민박집이 있다. 지자체에서 2억 원을 지원받아 최신식 2층으로 지었다. 층당 20~30명 숙박은 거뜬할 듯싶다. 이 민박집은 부녀회에서 관리·운영하고 수익금은 마을회비로 쓴다. 1층은 평소에 마을회관 및 경로당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 마을 부녀회장 송삼순 씨(010-6557-2578)에게 연락하면 숙박 일체에 대해 알려준다. 솔티마을은 녹색체험마을로 지정돼 매년 들국화축제가 열린다.

솔티마을을 나와 다시 초강천에 접어든다. 개울은 물길이 완만하고 얕은 곳이 많아 물놀이하기에 좋다. 천렵을 해도 좋으나 물고기는 많아 보이지 않는다. 처음 솔티마을 여행을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이 천렵이었다. 개울가에서 빠가사리, 동자개, 메자, 꺽지, 꾸구리 등 물고기들을 잡을 생각에 들뜬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 파, 깻잎 매운 고추 등을 넣고 매운탕을 끓여먹을 요량이었다. 봄에는 껍죽이와 뚜거리, 여름은 빠가사리, 가을은 모래마주, 왕눈이, 메기, 모래무지 아니던가. 그러나 오른손으로 돌멩이를 들추며 젓가락 휘젓듯 해봐도 물고기는 보이지 않는다. 자꾸 물속이 자욱하게 흐려질 뿐이다.(그러나 물고기가 아예 없는 건 아닐 게다)

결국 천렵을 포기하고 강호동과 은지원 등이 매운탕을 먹던 월류정 앞 식당에 들렀다. 이곳서 빠가사리(동자개) 매운탕을 시켰다. 물에서 잡아 올릴 때 '빠각빠각' 소리를 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일명 '자개미'로도 불리는데 물 흐림이 느린 강바닥에 주로 살기 때문이다. 어른 손가락 굵기에 길이는 20㎝ 남짓. 얼핏 큰 미꾸라지 크기지만 주둥이가 넓적한 게 다르다. 매운탕으로 끓이면 시원한 국물 맛에 야들야들한 육질이 별미다. 가격도 여느 매운탕집보다 비싸지 않다.

여행의 피날레로 초강천에서 물수제비 내기를 했다. 게임에서 진 사람이 입수하는 조건이었는데 결국 졌고 입수했다. 아련한 추억들이 몸속에서 유영한다. 젖은 몸으로 다시 강가에 앉는다. 거울처럼 투명한 강 위로 햇살이 반짝이고 각기 다른 녹(綠)의 농담으로 이어진 여울의 흐름이 한가롭다. 물고기를 잡지 못해 안달 난 마음은 이내 수그러든다. 그 한가한 풍경에 몸을 녹인다. 달 밝은 밤에 망탑(기룡대)에 오르면 천지의 기운이 온 가슴을 적신다 하니, 언젠가는 달이 휘영청 밝은 밤에 월류봉에 오르리라는 결심도 한다. 사람은 '잃어버린 고향을 찾기 위해 타향으로 간다'고 했다. 고향으로 온 여정은 타향생활을 잠시 잊게 했다. 동시에 타향을 그립게도 했다. 고향을 보며 귀향을 생각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여정을 끝내며 또 한번 술에 취할 수밖에 없었다.
Posted by 나재필
29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고 천안함 46용사 합동안장식이 열린 가운데 유가족이 헌하를 하고 고인의 영정사진을 오열하고 있다. 김호열 기자 kimhy@cctoday.co.kr

칠흑의 수전(水戰)에서 죽어간 넋이여
미안합니다.
그리고 또 미안합니다.
이제 46인의 이름을 조국의 가슴에 묻습니다.
충정의 천안함 전사를, 충혼의 땅 대전에 묻습니다.
그대들은 우리의 아들이었고,
우리들의 용사였습니다.

해전의 굉음은 멎었지만,
전장의 울음은 멎었지만,
그대들의 이름을 가슴으로 안고
그 숭고한 뜻을 충혼의 맥으로 잇고
그대들이 남긴 살신보국의 정신을 각인합니다.

푸른 서해를 가슴에 품고 잠든 46용사들이여!
이 땅의 안전과 번영의 밀알이 된 그대들이여!
이제 사랑하는 국민들은 그대들을 놓아주려 합니다.
바다에서 산화한 꿈이여,
하늘에서나마 국민의 안위를 굽어 살피소서.
영령들이시여! 편안히 영면하소서.
마지막 명령입니다!
Posted by 나재필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가지'란 책이 있습니다. 죽음 앞에 선 1000명의 말기 환자들이 남기는 마지막 후회들을 모은 것입니다. 인간이 죽음이라는 커다란 마침표에 섰을 때 하게 되는 후회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그것에 대한 물음이자 '해답'입니다. 호스피스 전문의인 저자는 약으로도 처방할 수 없는 환자들의 마음에 귀를 기울입니다.
말기 암 환자들의 고통을 완화시켜주는 호스피스 전문의인 저자는 어느 순간 삶의 마지막 순간에 느끼는 후회에는 커다란 공통분모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또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에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환자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가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다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순간순간 스쳐가는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작은 일이라도 흘려버리지 말고 하고 싶다면 지금 하라"고 권고하는 것도 이런 경험에서 나온 금언입니다.
"내게 단 하루밖에 남아있지 않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어떤 후회를 할까요?

[죽을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 -오츠슈이치-

1.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했더라면
2.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했더라면
3. 조금만 더 겸손했더라면
4. 친절을 배풀었더라면
5.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6.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려고 노력했더라면
7.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더라면
8.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났더라면
9. 기억에 남는 연애를 했더라면
10. 죽도록 일만 하지 않았더라면
11. 가고 싶은 곳으로 여행을 떠났더라면
12. 고향을 찾아가보았더라면
13. 맛있는 음식을 많이 맛보았더라면
14. 결혼을 했더라면
15. 자식이 있었더라면
16. 자식을 혼인시켰더라면
17. 유산을 미리 염두에 두었더라면
18. 내 장례식을 생각했더라면
19. 내가 살아온 증거를 남겨두었더라면
20. 삶과 죽음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했더라면
21. 건강을 소중히 여겼더라면
22. 좀 더 일찍 담배를 끊었더라면
23. 건강할 때 마지막 의사를 밝혔더라면
24. 치료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했더라면
25. 신의 가르침을 알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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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 유언
"절대로 다비식 같은 것을 하지 말라. 이 몸뚱아리 하나를 처리하기 위해 소중한 나무들을 베지 말라. 내가 죽으면 강원도 오두막 앞에 내가 늘 좌선하던 커다란 넙적바위가 있으니 남아 있는 땔감 가져다가 그 위에 얹어 놓고 화장해 달라. 수의는 절대 만들지 말고, 내가 입던 옷을 입혀서 태워 달라. 그리고 타고 남은 재는 봄마다 나에게 아름다운 꽃공양을 바치던 오두막 뜰의 철쭉나무 아래 뿌려달라. 그것이 내가 꽃에게 보답하는 길이다. 어떤 거창한 의식도 하지 말고, 세상에 떠들썩하게 알리지 말라"
그리고
"나는 죽을 때 농담을 하며 죽을 것이다. 만약 내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내 몸에 매단다면 벌떡 일어나 발로 차 버릴 것이다" 

Posted by 나재필


 꽃과 여인…그 생명력 넘치는 몸부림.

 새하얀 캔버스 위에 생명이 피어오릅니다. 여자의 몸이 꽃으로 보이기도 하고, 꽃이 여자의 몸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여체가 꽃이 되는 풍경입니다. 음과 양의 조화가 바탕을 이루는 동양철학에 따라 생명의 탄생과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을 표현해낸 것입니다. 꽃이 된 여성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걸까요. 여자는 지금 아름다운 한떨기 꽃으로 태어나고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작품을 그린 사람은 청주대학교 회화학과를 졸업한 이현숙 작가입니다. 대학교 시절 술과 음악과 예술과 인생을 교류했던 친구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머나먼 미국 땅에서 살고 있습니다. 잠깐 고국에 들른 그녀가 서울에서 개인전을 연다고 합니다. 학창시절에 그녀의 작품을 본 기억이 없는데 제가 봐도 다분히 철학적이고 오묘하고 신비로운 작품입니다. 그녀의 그림을 감상하려면 서울 종로구 평창동 AW컨벤션센터(4월 6일~5월 5일)로 가시면 됩니다. 그곳에 가면 아름다운 '에로스'의 향연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한광숙 조형예술학 박사는 “이 작가의 그림을 보면 기억의 이미지가 떠오른다”며 “이는 “보편성을 띠는 소재를 택하지만 과거 기억의 이미지가 꽃과 여성의 몸으로 변화되고, 생명성을 감상자에게 전달해주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작품에 나타나는 장미, 수선화, 안개꽃 등의 이미지는 꽃잎 한 장 한장이 이어져 생겨난 의인화된 생명. 그림 속에서 꽃은 여성이 되고, 여성은 꽃이 됩니다. 어느새 꽃의 정원은 아름다운 꽃 숲을 이루고 원시림은 ‘꽃의 에로스’로 가득 채워집니다.
 “우리 인생에서 삶과 예술의 의미를 주는 단 하나의 색은 바로 사랑의 색깔”입니다. 그녀는 환상과 꿈의 색으로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그것은 붉고 강렬한 태양처럼 열정적으로 보입니다. 가장 새롭고 귀한 것을 만들어 내기 위한 예술가의 강하고 거대한 예술적 몸짓이 몸으로 느껴집니다.

 ‘꽃과 여성의 몸’

 보통의 화가들은 보편성을 띄는 소재(Motive)를 택하지만 그녀의 선택은 과거 해왔던 보수관념들을 털어냅니다. 과거 기억의 이미지가 꽃과 여성의 몸으로 변화되고 생명력을 감상자에게 전달해주기 때문입니다. 꽃(장미, 수선화, 안개꽃)들은 아크릴과 유화물감, 알루미늄, 말린 꽃들을 통해 한 떨기 아름다운 이미지로 다시 태어납니다. 사랑하고 싶어지게 만듭니다. 사랑받고 싶어지게 만듭니다. 감상자에게 자연과 인간의 합일점을 찾게 하며 판타지를 불러일으킵니다. 마치 피카소의 그림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모성애와 생명을 잉태하는 무한한 상상력을 피어나게 합니다. 어쩌면 캔버스는 남성일지도 모릅니다. 그 위에 피어난 한 송이의 꽃은 여성입니다. 그녀가 캔버스 위에 붙이는(Collage) 꽃은 정원을 이루고 원시림 속에 피어나는 '에로스 Eros'로 가득 채워집니다. 그녀의 그림이 무척 사랑스럽습니다.


이현숙 Lee, Hyun Suk
2005~2006 Instructor, School of Art and Deign at MontgomeryCollege
2004 Bachelor of Arts (Studio Art) at
UniversityofColoradoatColoradoSprings,USA
991 청주대학교 미술대학 회화학과 졸업

개인전
2009.10 갤러리 A&S
2009. 6 갤러리 A&S
2008. 6 갤러리 라메르

단체전
2009 한국미술인협회 안성지부 회원전(안성시민회관, 안성)
2008 경기여류작가전(A&S Gallery)
2008 한국미술인협회 안성지부 회원전(안성시민회관, 안성)
2007 미국 Leavenworth Kansas Artist association group exhibition
(River Front Center, Kansas)
2005 미국 Montgomery College, Faculty Staff Exhibition
(Gudelsky Gallery / AuxiliaryGallery,Maryland)
2003~2004 미국 Annual 2003 / 2004 Group Art Exhibition
(Contemporary Gallery, Colorado)
2000 제3회 한국미술협회 안성지부 회원전(안성시민회관, 안성)
1999 제2회 한국미술협회 안성지부 회원전(안성시민회관, 안성)
1999 장애인을 위한 회원전(안성문예회관, 안성)
1998 사이·꼴 전(청학대미술관, 안성)
1998 삶의향기전(송탄문예회관, 평택)
1998 한국미술협회 안성지부 창립전(안성문예회관, 안성)
1997 동아리전(무신화랑, 청주)
1996 2인전(학천화랑, 청주)
1995 4인전(학천화랑, 청주)
1994 3인전(나무화랑, 서울)
1994 4인전(송산화랑, 청주)
1993 들숨과 날숨전(송산화랑, 청주)
주소: 서울 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동 63-4 제 1호 2층(화실)
Tel 02) 795-4745

Posted by 나재필



 "일개 배우 나부랭이라고 저 자신을 소개하고 싶어요. 60명 정도되는 스태프(staff)들이 차려놓은 밥상을 저는 그냥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는 거거든요. 그리고 항상 제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저를 설레이게 하고 현장에서 열심히 할 수 있게 해 준 전도연씨에게 감사드립니다. 너랑 같이 연기하게 된 건 정말 기적같은 일이었어. 고마워. 마지막으로 ‘황정민의 운명’인 집사람에게 이 상을 바치겠습니다."
 2005년 11월 28일 청룡영화대상에서 '너는 내운명'으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황정민의 소감입니다. 그의 이색적인 수상소감에 네티즌들은 열광했고 칭송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자신의 영광을 스태프에게 돌린 '겸손함'에 먼저 박수를 보낸 것이고, 두번째로는 '뻔할 뻔'자인 수상소감을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한 데 대한 갈채였습니다.
 연말이 되면 각종 공중파에서는 가요와 드라마, 연예 대상자를 가리는 프로그램들이 천편일률적으로 쏟아집니다. 이는 한 해를 결산하는 중요한 시상식이기도 하지만, 해마다 반복되기에 식상한 느낌마저 줍니다. 더구나 심사의 공정성이 다소 어긋날 때가 많아 말도 많고 탈도 많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지랄같은' 풍경이 바로 수상소감 발표입니다.
 잘났든 못났든 연예인들은 하나같이 붕어빵 소감을 밝힙니다.
 "고맙습니다. 제가 탈 줄은 꿈에도 몰랐고요.....저 말고 쟁쟁했던 다른 후보님이 받았으면 좋았을텐데 죄송합니다. 앞으로 더욱더 잘하라는 채찍으로 알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여기까진 그런대로 봐줄만 합니다.
 "00기획사 대표 000님 고맙습니다. 000 이사님, 000 실장님....너무 너무 고맙습니다. 그리고 저를 후원해주신 000사장님, 000 대표님..."
 이런 멘트들은 시청자들을 모독하고 우롱하는 것들입니다. 시청자는 누가 상을 받았고, 무슨 작품 때문에 받았는지만 알면 됩니다. 어떤 개똥이 대표가 시청자에게 무슨 연관이 있습니까? 게다가 수십 명의 수상자가 천편일률적으로 '저 따위' 소감을 밝힙니다.
 연예인들도 공부좀 하십시오. 자기가 수상자가 됐을 때를 생각해서 좀더 색다른, 좀더 압축된 수상소감을 연구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황정민의 '밥상멘트'가 빛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강호동이 '연예대상'을 탔을 때 혼자 잘해서 상을 받은 건가요? 옆에서 꿀밤맞고 물에 빠지면서 도운 동료가 진짜 상을 받아야 할 주인공입니다.
 올해는 제발 멘트좀 준비해 주세요. 그리고 '대표' 얘기는 하지 말고.
 가증스럽고 밥맛 떨어집니다.



2009 KBS 연예대상

강호동 2년 연속 KBS 연예대상(1박2일)
-2007 SBS 방송연예대상
-2008 MBC 방송연예대상
-2008 KBS 연예대상
*시청자가 뽑은 최고의 프로그램상’- ‘해피선데이’
*베스트  팀워크상-
‘천하무적야구단
*코미디 여자 부문 우수상-
분장실의 강유미, 안영미(공동수상)
*남자 부문 우수상-윤형빈
*최우수상-박성호
*쇼오락 MC 부문 우수상-신봉선(女) 이수근(男)
*최우수상-박미선
Posted by 나재필



 한 권의 책이 회사로 왔습니다. 시대의 중립을 선언한 정관용의 소통 제안 ‘나는 당신의 말할 권리를 지지한다’라는 책입니다. 일전에 기자협회보에 '소통과 불통'이라는 글을 기고한 적이 있는데 출판사 '위즈덤하우스'가 정관용 씨의 책을 펴내며 저에게도 한 권 보내온 것입니다.

'소통하는 사회를 꿈꾸다'

 정관용 씨는 이름을 대면 잘 모르지만 얼굴을 보면 누구나 압니다. 그는 TV와 라디오 토론프로에서 말많고 탈많은 논객들의 따따부따를 평정하고 정리정돈시켰는 토론쟁이입니다.12년째 매일 생방송을 진행하며 ‘대한민국에서 토론 진행(2000여회)을 가장 많이 한 사람’이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토론 프로그램의 ‘교과서적 진행자’란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1년 전 이맘때쯤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갑자기 사라졌던 그가 소통과 불통이라는 화두를 들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의 화두는 매체에서 보여준 중간자적 입장을 벗어나 시끌벅적한 세상의 이야기를 디테일하게 끄집어내고 있습니다.

“소통 아닌 ‘소탕’ 분위기 토론 안타깝다”

“토론 현장에 있을 때 소통하지 않고 싸움으로만 치닫는 모습이 답답했습니다. 각을 세워 싸움을 부채질하는 방송토론의 속성을 감안하더라도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상대 헐뜯기가 안타까웠어요. 지금 우리 현실은 서로 ‘소통’하기는커녕 상대방을 ‘소탕’하려는 분위기입니다.”
 그는 말로만 소통하자고 하는 것이 불통(不通)의 원인이라고 지적합니다. 내 탓은 없고, 남 탓만 하니 소통이 될리 없다는 것이죠. ‘한 번만 더’ ‘한 발만 뒤로’라고 생각하는 것이 소통의 토양이라고 역설합니다.  
 그는 폭넓은 소통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변혁기를 맞았다고 진단합니다. '30-20-40 인생(30년 배우고 20년 일한 뒤 40년 노후가 기다리고 있다는 뜻)’ 때문이라는데요.서른 살까지 배우고 쉰 살까지 일하다가 아흔에 죽는 인생이라는 겁니다.

 그가 말하는 요즘의 토론은 이렇습니다.
 패널들은 토론에 임하기 전부터 내 생각보다는 상대방부터 당장 바꾸려고 들고, 노사와 여야는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절충안을 입 밖에 꺼내지조차 않는다는 겁니다. 결과만을 중시하는 사고방식, 극단적 딱지 붙이기에 여념 없는 정치문화, 일방적으로 듣고 쓰고 외우는 교육 방식이 모두 '토론 부재(不在)'의 공범이라고 합니다. 또한 볼테르의 말을 인용하면서 저자는 "토론은 싸움이나 전쟁이 아니며 서로 얻고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담담하게 정의합니다.

 방송토론은 ‘본질적으로 하나의 쇼’다
 저자의 경험담도 나옵니다. “심야토론이 끝나 뒤 술자리 때 노사건, 여야건 방송 중 절충안에 대해 절대 안 된다고 버티던 사람들이 ‘그 정도면 됐다’고 흔쾌히 동의하는 모습을 자주 봤다고 합니다. 저자는
 ‘중립’과 ‘회색’을 선언합니다. “회색은 검은색, 흰색 둘 다 가진 당당한 하나의 색깔이다. 경우·사안에 따라 검은색과 흰색의 장점만을 가려내고 적절히 섞어서 우리 공동체 전체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만들어 내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사색하는 사람들이 바로 회색인이다”라고 말입니다.

 “토론을 싸움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 이기고 지는 관계로 규정하는 것, 상대방을 꺾어 눌러야 토론을 잘하는 것이라고 여기게 만드는 것, 가시 돋친 독설이 난무할수록 활기찬 토론이었다고 평가하게 만드는 것, 그래서 토론할 때 상대방 생각을 바꿔 놓겠다는 마음가짐으로 해야 한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방송토론이 가진 해악이다.”
 ‘배운 양반들이 나와서 싸움만 하니까 보지 않는다’, ‘하나마나 한 소리들만 한다’, ‘결론도 못 내리고 제 할 말만 한다’고들 평한다. 그야말로 불통의 현장인 셈이다.

  토론현장의 불통도 책에 담았습니다.
 "생방송 토론현장에서 출연자 두 사람을 각각 ‘교수’와 ‘박사’라고 불렀다가 곤혹을 치른 일이 있다. 대학 강의를 하지만 정식으로 교수 임용이 되지 않은 출연자를 ‘박사’라고 불렀던 것인데 ‘교수’ 측에서 ‘나도 박사인데 왜 저 사람만 박사라고 부르냐’며 항의한 것이다." (본문 73p~74p 참고)

 <추천사>
 정관용, 많은 사람이 그리워하는 이름이다. 심야에 잠들지 않고 서 있던 사람. 대결과 논쟁이 극한으로 치닫는 속에서도 끝까지 소통의 길을 모색하고자 애쓰던 사람. 생각하면 그가 고민해 온 대화와 소통의 문화가 곧 민주주의의 실체라 해도 좋다. 소통의 부재를 우려하는 지금이야말로 이제 그가 이야기할 차례이다. 최대한으로 자제했던 그의 목소리를 우리가 경청할 때이다. -신영복(성공회대 석좌교수)

 회색은 또 하나의 다른 색이 아니라 흰색과 검은 색이 같이 있는 색이라고 하며 스스로를 회색인이라 칭하는 저자가, 파편적이고 단편적이어서 불통되고 불화한 우리 사회에, 다르지만 조화롭게 사는 방법을 간곡히 권유하는 책이다. 저자가 불통의 현장에서 쓴 글이니 그 권유가 구체적이고 사실적이어서 호소력이 짙다. 그래서인가, 누구보다도 내가 불통하는 존재인 것을 알았다. -승효상(건축가)

 소통이 아니라 소탕을 하려 든다-이것이 심야토론의 사회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정관용 의 관전평이다. 어느 새인가부터 이 사회에는 좌우, 노사, 지역, 세대 간 갈등과 대립이 심각해졌다. 도저히 중간지대, 회색지대는 없다. 이런 대결과 갈등의 사회에서 미래는 없다. 로마도 외적보다는 내부의 갈등으로 멸망하지 않았던가. 정관용의 이 책을 통해 소통과 화해, 상생의 방법, 그 단초를 찾아보자. -박원순(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압축성장과 급속한 현대화, 산업화의 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무수한 토론의 논제를 만들어 왔다. 각계각층에서 각자의 입장을 만들기만 했을 뿐, 정당한 토론으로 갈등을 해소하지 못했다. 그렇게 동맥경화에 걸린 것처럼 가슴과 머리가 답답한 상태로 울화를 쌓아 왔다. 토론을 통해 우리 스스로의 됨됨이를 알고 갈등을 해소하며 타협책을 모색했어야 한다. 공동체의 건강한 진보를 위한 최선의 진로를 찾아내려면 당장 토론의 기술을 배워야 한다. 이 책 속에 길이 보인다. 환하다. -성석제(소설가)

 내 시사 스승은 정관용, 손석희 씨다. 두 사람이 나를 제자라고 인정하든 안하든 나는 내 맘대로 제자다. 이게 지상파 공영방송의 매력 아니겠는가? 비용 한 푼 안 드는 공짜 수업! 토론을 하는 패널들은 상대방의 얼굴을 보고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 설득하고 싶은 시청자와 청취자를 향해 자기 말만 한다. 구경하는 우리들은, 오늘은 누가 누구를 잘 두드려 패나, 누가 누구를 말 펀치로 시원하게 때려눕히나 격투기 구경하듯 한다. 토론, 소통의 답답함! 그 중심에서 내 스승들은 매순간 중심을 잡아 주기 위해 부단히 바쁘다. -김미화(방송인)

 저자는 소통을 담당해야 할 주체들, 즉 정치, 언론 그리고 보수와 진보진영 등에 대한 문제 제기와 함께, 결국 우리가 왜 소통하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는가를 역설하고 있다. 아마도 정치나 언론, 진보와 보수진영에 대한 문제 제기는 그가 방송토론의 장에서 내려와 있기 때문에 그래도 조금은 자유로운 입장에서 개진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이른바 ‘회색지대론’은 어찌 보면 그이기 때문에 거리낌 없이 제안할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저자만큼 오랜 시간 동안 극과 극의 논쟁의 가운데에 서있던 사람도 드물기 때문이다. -손석희(성신여대 교수)

 인간 정관용은
 
 정관용은 충남 천안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국민대 대학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한양대 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그의 얼굴과 목소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토론 진행자로서 친숙하다. SBS 라디오 ‘뉴스대행진’, EBS라디오 ‘정보광장’, KBS라디오 ‘안녕하십니까 정관용입니다’, KBS TV ‘일요진단’, KBS 라디오 ‘열린 토론’과 KBS TV ‘생방송 심야토론’ 등의 시사, 토론 프로그램을 맡아 진행했다. 2000회에 달하는 그의 토론 프로그램 진행 능력은 한국에서 단연 최다기록이지만 무엇보다도 토론진행의 교과서라고 불릴 만큼 공정하고 간결한 사회로 정평이 나 있다. 34회 한국방송대상 진행자상, 19회 한국프로듀서상 라디오진행자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정관용 지음|위즈덤하우스|256쪽|

Posted by 나재필
충청투데이 홍성후 기자

 이완구 충남지사가 금주 중 ‘지사직’을 사퇴하는 초강수를 둘 전망입니다. 세종시 원안을 전면 수정하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충청여론의 심각성을 전달하기 위한 암묵적인 행보입니다.
한 도의 행정을 맡은 최고 책임자인 지사(知事)가 국가·사회를 위해 몸을 바치려는 지사(志士)가 되기로 결의한 겁니다. 어찌됐든 이완구 지사의 그 고매한 뜻을 지지합니다.
 이 지사는 "국가경영에 있어 철학과 가치가 다를 수 있고, 국가 구성원 상호 간의 이해관계와 시각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자유민주국가에서 이 것을 조정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서 합의한 ‘법’과 사회적 자본인 ‘신뢰’라는 두 축에 기초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지사는 ‘그래도 지사직을 갖고 투쟁해야 한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200만 도민을 받드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좌고우면해선 안되고, 충청민의를 대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충청의 영혼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충청투데이 11월 30일자 1면 기사 발췌>
 
이완구 지사는 충남 홍성 사람으로 제15회 행시에 합격해 국회의원, 충남북경찰청장을 역임했습니다. 국제최고경영자상, 한국 최고의 경영자대상(광역지방자치단체부문), 대한민국 혁신경영인 대상, 한국언론인연합회 '올해의 정치인상'을 수상했습니다.
 한 도의 행정을 책임지는 도백(道伯)이 자신의 명예로운 직을 버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만히 앉아있으면 손해볼 것도, 아쉬울 것도 없는 자리입니다. 그가 도지사직을 과감히 던질 수 있는 그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누구처럼' 자리에 연연해 아부와 아첨, 시류에 편승하는 그런 '정치'보다 수백번 낫습니다. 그의 결단이 충청인의 멍울 진 아픔을 대변하고, 충청인이 대동단결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속보>이완구지사 12월 3일 전격 사퇴

이완구 충남지사가 3일 정부의 세종시수정 방침에 반발, 지사직을 전격 사퇴했다. 이 지사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그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세종시 원안추진에 도지사직을 걸겠다는 약속을 해 왔다"며 지사직 사퇴를 선언했다.
 지난 95년 민선자치제도 시행 이후 현직 지사가 중도에 사퇴한 것은 2003년 김혁규 전 경남지사가 한나라당을 탈당하면서 사직한 이후 사상 두번째다.
 이 지사의 사퇴는 세종시 문제를 둘러싸고 여야간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여권 내부의 세종시 갈등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고, 또 여권의 정국운영에도 적잖은 부담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정부의 세종시 수정방침에 반발해 3일 이완구 충남지사가 사퇴 기자회견을 하기위해 도청으로 들어서다 도의원들과 지지자들의 애절한 사퇴철회 권유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전우용 기자 yongdsc@cctoday.co.kr
Posted by 나재필
계룡대 연병장에서 특전용사들이 특공무술 및 격파시범을 선보이고 있다. 전우용 기자 yongdsc@cctoday.co.kr


 저는 21세 팔팔한 나이에 군대를 다녀왔습니다. 그것도 햇수로 4년에 걸쳐서 말입니다. 88년에 들어갔는데 91년에 제대했죠. 군대영장이 떨어지기 전에 들어가고 싶어 공군에 자원입대했기 때문입니다.
 공군은 이층침대서 잠을 자고, 젠틀하게 근무하며, 참새나 쫓으면 된다는 얘기를 들은 후라 사실 안심도 됐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다 놓치고 그렇게 군바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보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국방부 시계는 육해공군 따지지 않고 느려터지게 돌아갔습니다.
 구타 사라졌다고 했지만 맞았습니다.
 대충 버티면 시간 잘간다고 했지만 졸라 길었습니다.
(육군 1.5명 제대할 기간동안 그 곳에 짱 박혀 살았습죠)
 군대 갔다오면 사람된다고 했지만 안 그런 사람도 많습니다.
 (어차피 군대 갔다오면 철들 나이입니다. 군대가 사람만든 것은 아니고요. 팔팔할 나이에 갔다가 빌빌할 나이에 나옵니다. 군인 폄훼는 아님)

 이제는 저도 아들 둘을 키웁니다. 평발도 없고 건강체질이라 안봐도 '1급'은 떼논 당상입니다. 나중에 아이들이 군대를 가게 된다면 애비 되는 심정으로 '짧게' 갔다왔으면 합니다. 아무리 군대가 좋다지만 사회만큼 하겠습니까. 육해공군 따지지도, 묻지도 않고 짧게 보낼 생각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길어봤자 2년'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4년에 걸쳐 '뺑이' 튼 사람으로서 2년은 '좀 낫지 않냐'는 겁니다. 더구나 노무현 정부 때 발표한 군 복무기간을 보면 2년도 되지 않습니다. 육군 복무기간을 24개월에서 18개월로, 해군은 26개월에서 20개월로, 공군은 28개월에서 22개월로 각각 6개월씩 줄이는 방안 말입니다. 옛날로 치면 (막말로) 방위 복무기간입니다.

 당시엔 방위병을 KGB(코리아XX방위), UDT(우리동네 특공대), 아르바이트 솔저, 도시락부대로 불렀습니다. 병역면제는 신의 아들, 6개월 방위나18개월 방위는 장군의 아들, 현역은 어둠의 자식들이라고 했습니다. 방위병을 풍자한, 비꼬는, 비트는 그래서 아픈 유머도 한동안 유행했습니다.

"방위는 전쟁 때 포로가 돼 적의 식량을 축내고 철제 도시락을 흔들어 적의 레이더를 교란시키는 임무를 한다. 전시에도 오후 5시면 칼같이 퇴근하며 특공대인 것처럼 하다가 생포되었을 때 방위임을 떳떳이 밝혀 적의 사기를 떨어뜨린다. 때로는 방위 10명 1개조로 적군 1명에게 달려들어 가벼운 찰과상을 입히고 장렬히 전사한다. 행동이 민첩한 대원은 아군의 진격 장소로 먼저 달려가 응원준비를 하고 적의 여군과 싸워 비긴다"

 "잘 키운 방위 하나 열 공수 안 부럽다"
 "애지중지 키운 내 딸 방위사위 웬말이냐"
 "단란한 옆집 가족 알고 보니 방위가족"이라는 얄궂은 표어성 야유도 보냈습니다. '동사무소 방위는 불쌍해서 패지도 않는다'며 그들을 '동방불패'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요즘 국방부가 현재보다 6개월 줄이도록 돼 있는 군 복무 단축 기간을 2~3개월로 축소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국회에 제출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국방부는 “복무기간을 2~3개월만 단축할 경우 전투력 저하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고, 2021년 이후 병역 자원 부족을 완화할 수 있다”고 밝혔죠. 6개월 단축안을 계속 적용하면 2021년에는 2000여명, 2045년까지 매년 최대 9만여명의 병력 자원이 부족할 것으로 보는 겁니다.
 야당은 “이번 시도는 축소된 국방 예산을 결국 인력으로 채우겠다는 발상"이라며 ”21세기에 와서 다시 인해전술을 보는 것 같다“고 혹평했습니다. 또한 “4대강 사업 예산 때문에 정부의 모든 예산이 많게는 80%까지 삭감되고 있다”며 “국방예산이 축소된 것도 결국은 4대강 사업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가속화 되고 있습니다. 
 
한쪽에선 ”군 복무기간 6개월 단축은 국민과의 약속“이라며 ”국민의 동의를 먼저 구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군 복무는 젊은이들의 인생이 걸린 문제"라며 ”매년 정부예산에 따라 수십만의 인생이 왔다 갔다 하는 셈"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다른 한쪽에선 "군 복무기간 6개월 축소는 대선 직전에 급조된 포퓰리즘 정책"이라며 "출산율 감소로 병력 자원이 부족해 질 것이라는 반론이 많았지만 여당이 밀어 붙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군대 제대한 후 몇년이 지난 뒤 쓴 글을 찾았습니다(아래 글)
 ▲기억 속으로〓군대란 한국 남자들이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입니다. 눈 앞에 보이는 거라곤
온통 쑥색인 그 익명의 공간. 저울과 불빛이 없어도 정확히 배식할 수 있고 시계가 없어도 밥 때를 알 수 있는 곳. 군대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전지전능한 공간이었습니다. 사계절이 '얼어붙어' 마치 겨울 같았고 고역스러운 사역을 피하기 위해 비오는 날을 기다렸습니다. 졸면서도 달릴 수 있음을 알았고 상사병보다 헌병이 무서웠습니다.연기력보다 글래머 배우를 좋아하는 속물로 변했고, 화려한 상장보다 초라한 병장을 더 달고 싶었습니다. 낮은 지긋지긋했지만 밤은 너무도 짧아 눕자마자 기상나팔이 울리는 듯 했죠. 칭찬에 인색했으며 얼차려가 사라지지 않았음을 몸으로 느꼈습니다.


Posted by 나재필


 저는 키가 작아 20년 넘게 '난쟁이 똥자루'라고 놀림을 받았고, 한창 미팅할 땐 '퇴짜 1순위'로 남들 피크닉 갈 때 집에서 빨래를 빨았습니다.
 "키가 뭣이세요?"
 "........."
 "당신 폭탄이야, 미팅장에서 나가셈"

 결혼할 때도 키가 작아 구두에 깔창을 깔고 부자연스럽게 입장했습니다. 그래도 아내는 키가 작은 저를 나무라지 않았고, 키 얘기를 꺼내든 적도 없었습니다. 키 작은 사람들은 말은 안해도 항상 '콤플렉스'처럼 거인증에 시달립니다. 최근 방송된 KBS 2TV '미녀들의 수다'(이하 '미수다')에서 한 여대생이 '키 작은 남자는 루저"라는 발언이 구설수에 오르고 있습니다.

 그녀는 
 "외모가 중요해진 시대에 키는 경쟁력이다. 키 작은 남자는 루저(loser·패배자)라고 생각한다. 키 작은 사람과 결혼하느니...."
 “내가 170cm이다보니 남자 키는 최소 180cm가 돼야 한다.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도 영부인 브루니에 비해 키가 작아 비하되는 것이 많더라. 키 작은 남자가 놀림감이 되는 것은 만국 공통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대본에 있는 그대로 말한 저도 잘못이 있겠지만 작가님들은 대본을 따라주길 원하셨고, 그 대본에는 ‘루저’라는 단어와 함께 제가 방송에서 이야기 했던 그대로의 이야기가 적혀있었다"고 해명했습니다.

 네티즌들은 “도가 지나치다” “방송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자제했으면 한다” “방송인만큼 단어 선택에 신중했어야 했다”라는 등의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또한 인신공격성 악플이 많아 일각에서는 이 여대생이 제2의 개똥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하기야 남자들도 '외모'에 관한 얘기에서는 떳떳하지 않습니다. 남자들도 '수다'를 떨 때 대부분 '쭉쭉빵빵'을 얘기합니다. 그 사람의 됨됨이, 속내를 보지 않고 오로지 섹시하고 늘씬한 것만 눈높이를 맞춥니다. 먼저 남자들도 이 점에 대해선 반성합니다.

 이번에 터진 '루저맨' 얘기는 웃기지만 '비열한' 이야기입니다. 키 작은 사람은 이 세상의 보잘 것 없는 '팔푼이'로 비하하는 것은 정말 잘못된 관점입니다. 물론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죠. 그러나 단순히 키가 작다고 해서 결혼대상에서 낙오자가 되고, 놀림감이 된다는 것은 너무 무식한 발언입니다. 그녀가 말했든, 멍청한 작가가 그랬든 둘다 똑같이 웃기는 여자들입니다. 그런일이야 없겠지만 저도 그런 여자들 그냥 줘도 안만납니다.
 골빈녀들을 만나 정신건강 해치기 싫거든요.

 부디 그녀가 모든 악플에서 벗어나 건강한 정신을 되찾길 바랍니다.
 부디 키 큰 남자 만나셔서 '키만 바라보며'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부디 키는 졸라 큰데 '때리고 지랄하는' 남자가 배필이 아니길 바랍니다.

Posted by 나재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