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돌담길은 추억을 쌓는 곳입니다.
 짝사랑을 떠올리고 풋사랑을 그리며 내 옆의 사랑을 보듬는 그리움의 길입니다. 우연히 발에 채인 낙엽을 보며 눈물 살짝 흘리는 것도 그 곳의 낭만입니다. 지난 2004년 어느 여름 날, 그 정동길에서 김장훈 씨를 보았죠. 꺽다리처럼 키가 컸는데 약간은 언밸런스해 보일 정도였습니다. 더구나 그 큰 키에 나팔바지인지 배바지인지 모를 정도로 바지 폭이 지나치게 넓어보였던 게 생각납니다. 마치 거리의 '춤추는 풍선인형' 같았죠. 그는 '발레를 하는 삐에로(pierrot)'였는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기부천사로 이름이 알려졌지만 그 때는 ‘딴따라’ 잘하는 그저 그런 연예인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물론 ‘얼굴 없는 천사’였는지는 더더욱 몰랐었죠.
<10년간 40억 원, 장난 아닙니다>
  그는 “10원이든 만원이든 일억이든 차이가 없다”며 “내가 얼마를 낸다고 전부를 구할 수 있겠는가. 많은 사람들 사랑을 모아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2003년 그는 더 나은 음악을 찾기 위해 미국으로 떠납니다.
 그러나 그 곳에서 바닥까지 내던지는 상황에 빠지며 공황증에 걸립니다. 공황장애는 곧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은 불안한 심리상태를 말합니다. 위험대상이 없는 데도 죽거나, 미치거나, 자제력을 잃을 것 같은 공포감이 동반되는 병입니다. 심할 경우 사회적 기능 장애, 자살 등 극단적인 상황까지 치달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는 공황증 치료법으로 ‘사랑’을 권합니다.
 세상을 향한 두려움 때문에 생긴 병이기에 누군가 곁에 있어준다면 치료가 된다는 거죠. 편모슬하 외아들로 자라 고등학교 때부터 결혼에 대한 꿈을 키웠고 결혼도 빨리 하고 싶었답니다. 하지만 그에겐 돈을 기부하는 것보다 사람의 마음을 여는 게 더 힘들었나 봅니다. 우스갯소리로 여자 귀신과의 사랑도 생각해 본 적이 있다고 고백했으니 말입니다. 서해안 콘서트 도중 쓰러진 뒤로 결혼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더 사무쳤을 겁니다. 아무튼 멋진 김장훈 씨에게 하루빨리 아름다운 사랑이 찾아오길 바랍니다. 펜의 한사람으로서 간절히 소망합니다. 남에게 그렇게 베풀기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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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붙이는 말>
 그는 대한민국 정부도 뜨뜻미지근하게 하고 있는 독도 살리기 운동에 앞장서고 있고, 미국 신문에 '독도사랑' 광고를 낼 정도로  정치인보다 나은 사람입니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도 뜨뜻미지근하게 했던 서해안(태안)  살리기 운동에 앞장서고 있고 성룡도 그의 뜻에 부합해 1만달러를 기부할 정도로 이 시대 공복보다 나은 사람입니다. 이도 아시죠??

Posted by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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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flypo 2008.12.09 17: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장훈 존경합니다.^^ 저도 좋은 많이하면서 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