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일기2

잡동사니 2008. 11. 25. 14:48


백수일기 2탄으로 백수 얘기는 끝내려고 합니다. 예전에 썼던 원문을 옮기며 다시한번 읽어봤는데 우울해지네요. 위 사진은 백수들의 주식 라면입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신 분들 힘내십시오.


1

 99세까지 아둥바둥 살려는 백수(白壽)도 아니고 손이 하얗게 된 백수(白手)도 아니다. 진짜로 놀고 먹는 백수(白手乾達)다. 너무도 간단한 행정절차를 밟고서. 수백만장의 텍스트를 읽고 또 읽었던 직업이었는데 달랑 A4지 한장으로 수속을 마쳤다. 그래도 알량한 자존심 하나를 끝까지 지켜준 것은 동료였다. 말리고 또 말려주었다. 그러나 그러한 이별의식도 기쁘지 않았다. 이미 내 마음은 그들의 정반대쪽 나라, 아르헨티나나 파라과이쯤에 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서운 괴리감 속에 울며불며 떠났다. 떠나는 자와 남는 자, 어느 쪽도 승리자가 될 수 없었던 절박한 시점에서 내가 선택한 대책없는 베팅이었다. 그러나 믿는다. 남아있는 자가 승리할 것임을. 나이 사십줄을 바라보는 나이에 철없이 선택한 이 길이 정녕 패배자임을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2

흰손을 부여잡고...
은 사람들의 눈물을 포개어 호주머니에 달랑 넣고 술잔을 비웠다. 서대문에서, 당산에서 그리고 내마음속에서 아프게 흘러들었다. 백수가 된 첫 날, 시름시름 앓았다. 까마득한 전설처럼 아프게 돋아나는 신병(身病)과 술병 때문에 끙끙 배를 잡고 앓았다. 다음날 노조 간부와 대의원들이 찾아왔다. 왜 비는 꼭 이런 때만 등장하는 것인지. 아픔을 더 아픈 것처럼 꾸미기 위해 내리는 가식적인 비처럼.....비가 내리는 오후의 번잡한 도로를 지나 뼈다귀 해장국집으로 갔다. 뼛속 깊이 잦아든 신병을 위로하기라도 하듯 뼈다귀집으로....그리고 독주를 마셨다.


3

 백수 첫날
 전화가 수십통 오고 문자 메시지는 덤으로 끼여 오고.....싸이월드의 미니홈피는 남은 자들의 아쉬움으로 도배가 됐다. 텍스트가 너무 많아 홈피가 폭발하려 했다.
 백수 둘째날
 전화가 슬슬 끊기고 문자메시지는 광고나 퉁퉁 날라오고....싸이월드의 소식란은 휑한 만주벌판으로 바람소리만이 삐걱댔다.
 백수 셋째날
 전화는 무슨? 핸드폰을 버려 버릴까 했다. 내가 남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날리고 있었다. 싸이월드엔 흔적만 있지 글 한쪼가리 하나 없었다.
 백수 넷째날
 몸살이 났다. 내가 먼저 사람들에게 핸펀을 치고 문짤 날리고 싸이월드를 돌아다녔다. 젠장, 상대편에서는 이미 <내 이름>을 잊어가고 있었다.
 백수 다섯째날
 누군가가 찾는다. 반가워서 또 술을 빨았다. 너무 신나게 빨다가 술병을 얻었다. 백수가 술에 쩔으면 그 다음날은 OFF다. 밤에 잤는데 일어나보면 또 밤이다.
 백수 여섯째날
 의료보험이 끊겼다. 전기세 고지가 날러왔다. 아들이 놀이터에서 놀다가 머리를 다쳐왔다. 엄청난 혹을 달고서...당혹스러웠다.
 백수 일곱째날
 실업급여를 신청하기 위해 고용안정센터를 찾았다. 예전에 양천고용센터를 알아뒀는데 알고보니 강서고용센터다. 나보다 이미 40여 명이 빨리 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번호표를 뺐다.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숫자들이다. 42번....1시간동안 VTR을 보며 교육을 받았다. 열라 슬프고 졸라 졸렸다.
 백수 여덟째날
 회사 얘기가 들려온다. 어제는 회생의 얘기가, 오늘은 절망의 얘기가 들려온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왜이리 시시각각 바뀌는지...잘됐으면.
백수 아홉째날
 동료들에게 문자를 해도 답이 없다. 쿵야! 전화를 해도 바로 받지 않고 핑계를 댄다. 그래, 쪽팔리다. 안 만난다. 세상에 어디 너만 있냐? 쨔슥아!
백수 열째날
 좀이 쑤셨다. 그러나 전화 할 곳이 없다. 동네 뒷산에 올라가 할아버지들 배드민턴 치는 거 구경하는데 눈물이 났다.(아니 그냥 콧물이겠지). 할아버지들이 막걸리에 김치를 돌돌 말아먹는데 졸라 먹고 싶었다.
 
 그 이후....
 서울 화곡동 한백빌라(내 집) 옆 슈퍼 아저씨를 잡고 막걸리를 열라 마셨다. 졸라 맛있었다. 다리에 힘이 쭉 빠질 정도로 신나게 마셨는데, 슈퍼 아저씨가 중간에 뻗었다.
 

4

 가슴속에 이상한 병이 자라고 있다.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래서 '탈주'를 계획했다. 하나는 백두대간 종주. 두번째는 자전거 여행...봇짐 하나 달랑 메고 자전거 페달을 비비면서 전국을 떠돌고 싶었다. 아무 곳에서나 자고, 아무 것이나 먹고, 아무하고나 어울리고, 그러면서 미친 제 정신을 찾고 싶었다. 그런데 실업급여 신청한다고 하루, 뭐 한다고 하루, 부질없는 하루살이로 하루...그러다가 백두대간은 둘째치고 서울 변두리만 맴돌고 말았다.
그러나 As Soon As....떠날 것이다.....바람 부는대로 발길 닿는대로 정말 떠날 것이다. 이번이 아니면 정말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여행이란 뿌옇게 흐려진 안경알을 닦는거라 했다. 나를 닦기로 했다.

5

 3년만에 처음 입어본 양복, 10년전에 단종된 물방울 네꼬다시를 매고 나의 친구한테로 갔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울어/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웃으면서 달려보자 푸른들을/푸른 하늘 바라보며 노래하자/ 그래....캔디처럼 그렇게 갔다. 가면서 지하철 대형거울에 모습을 비쳐봤더니....젠장! 구두를 안닦았다. 기막힌 언밸런스. 그래도 씩씩하게 갔다. 오랫만에 못봤던 사람들을 보기 위해서. 그런데 백수외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담배를 두대씩이나 빨고 화장실에 가서 네꼬다시 한번 고쳐맸더니 그제서야 맘씨 좋아보이는 친구 녀석이 돌을 맞은 아이를 안고 나타났다.
"축하한다.....넘 이쁘다" 캔디처럼 힘이 되어주는 공주가 되렴!

 지폐 몇장 달랑 넣은 부조금을 주는데 넘 미안했다. 이건 아닌데!...
다음에 아찌가 돈 많이 벌면 그땐 잘할 게.....넉살좋게 뷔페를 먹고 사람들을 만나고 또 그렇게 이별했다. 그것도 먹던 밥숟가락 집어던지고 갑작스럽게 이별했다. 더 있다간 이상한(?) 눈물을 보일 것 같아서. 그대여 사랑을 탓하지 마라. 사랑을 팔면 매춘이 된다. 그냥 그렇게 사랑은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것이다. 팔초하게 시들어가는 백수의 하루. 왜 이리 해는 짧은지 이벤트 하나 치르면 다시 밤이 된다. 밥이 되지 않는 밤. 그 밤이 두렵지만 내일을 위해 다시 씩씩하게 밤을 맞는다.

6

 또 하루를 연다. 또 하루의 시작은 라면이다. 꼭 '흰손' 티를 내야만 하는 걸까. 하지만 맛있는 걸 어떡하나. 학창시절에도 라면을 꽤 좋아했었다. 고등학교 때는 어머님이 아침 식탁에 라면 한 그릇, 밥 반그릇을 약속이라도 한 듯이 놓아주셨다. 요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너무 좋아해서. 이제 질릴만도 한데 아직도 '물리게' 먹고 있다. 그 덕분에 나잇살에 뱃살까지 얻었지만 라면은 여전히 사랑스런 요기다. 아직까지도 음식에 관한 한 컨추리보이다. 육해공 반찬에서 좋아하는 것은 고추장, 된장류다. 고추? 고추? 실한 고추류를 좋아한다. '해공'은 아직도 숙제로 남아있다. 아무리 나머지공부를 해서 벼락치기를 해도 날라다니는 어종과 네발로 다니는 육종은 별로다. 고급 뷔페에 가도 김밥을 찾는다. 남들 베이컨에 횟감을 사냥하는데 여전히 난 똥국에 김밥을 사냥한다.

7

 불현듯 자취할 때가 떠오른다. 요리를 좋아하는 내 자취방엔 항상 '굶주린' 애들이 들끓었다. 공짜로 먹는 것도 그랬지만 찌개류를 하면 제법 '엄니 맛'을 흉내낸 이유도 있었다. 어떨 때에는 내가 집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신발장 어딘가서 내 열쇠를 찾아다가 녀석들이 주인행세을 하며 앉아 있기도 했다. 그렇게 2년이 흐르자 슬퍼지기 시작했다. 학교를 다니는 것인지, '먹고 대학생'이라는 말을 실행하려는 것인지 분간이 서질 않았다. 혼자 있고 싶었다. 외로움을 못참는 성격이지만 어쩔수없이 독립선언을 했다. 말잘듣는(?) 녀석들은 그 날 이후로 날 혼자있게 해주었다. 혼자서 누워있고 혼자서 책보고 혼자서 TV를 봤다. 외로움도 잘근잘근 씹다보면 껌처럼 단맛이 나는 법.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혼자 고독을 씹는 것 까지는 괜찮았는데 점점 사람들과 멀어졌다. 사람들과 만나서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먹고 마시는 일이 싫어진 것이다. 그냥 혼자인 게 좋았고 외로운 게 좋았다. 그 당시 차고 있던 삐삐도 충전하지 않을 만큼 단절의 키는 점점 자랐다. 병이었다. 병이라는 생각이 들자 두려워졌다. 급히 서둘러 다시 참치찌개를 끓이고 떡볶이를 하고 닭도리탕을 해서 녀석들을 불러모았다.

8

 요즘의 내가 그렇다. 핸펀소리가 조용히 들리지 않는다. 핸펀 소리가 소음으로 들리기 시작하면 대인기피증의 초기 증상이라고 보면 된다. 벌써부터 피로감이 느껴지고 있는 것인가. 피로는 죽음의 전이물질이다. 또 두렵기 시작한다. 
지금 시각 새벽 3시36분. 술 한잔도 안 빨고 맨 정신으로 지금까지 버티고 있다. 아니, 버티는 게 아니라 눈이 '군인처럼' 살아있다. 무서울 정도로 말똥말똥하다(물론 낮잠도 안잤다). 저녁 뉴스를 보니 대관령엔 눈이 왔고 내일부터는 졸라 추워진단다. 아, 꽁꽁 얼어붙은 세상, 벌써부터 열라 겁난다. 오늘은 하루종일 컴 앞에서 헛짓거리를 했다. 쓰고 고치고....

9

 13일 만에 회사를 찾았다. 모두들 이별주를 마시고 이별사진을 찍고 이별의 짐을 꾸리고 있었다. 회사가 망한 것이다. 회사는 나보다 13일 더 살아있었던 셈이다.신새벽까지 술을 펐다. 눈물이 났다. 술잔을 들며 울고, 걸으면서 울고, 심지어 귀가하는 택시 안에서도 미친 놈처럼 미쳐서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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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사가 망하고 난 시를 썼다. 편집기자협회보에 실린 글이다.
.......................

좋은 신문 좋은 날을 향하여….
뜨거운 가슴으로 뜨겁게 시작한 에이치오티(점)씨오(점)케이알.
hot으로 시작해 cool하게 이별을 고합니다.
3년2개월, 38개월, 1125일, 2만7000시간….
너무나 짧은 여행이었습니다.
그러나 좋은 사람들과 만나 좋은 신문을 만들었습니다.
봇도랑 하나 달랑 메고 떠나온 그 여정에는
피와 땀과 눈물과 환희가 가득했습니다.
함께 스텝을 밟고 함께 고락하고 함께 나누던 작은 기억입니다.

goodday
내 몸 하나 아파도 눈물이 나는 법인데
수많은 몸들이 쓰러져 그것이 더 눈물나게 합니다.
솔가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 그게 더 마음 아픕니다.
아직 할 일이 많은데, 아직도 못다 한 얘기가 많은데
그것을 접자니 그게 더 눈물나게 합니다.
그러나 따뜻한 마음 하나 안고 떠납니다.

goodday
과람한 의욕에 과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한바탕 치른 '행복한 몸살'이었습니다.
낯익은 길이 아닌 낯선 곳에서 일어서고 싶었습니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통해 남에게로 가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다섯 번째 스포츠신문이 아니라
새로운 대중매체 1호가 되기를 희망했습니다.
그러나 세상 밖은 너무나 척박했습니다.
이 시대의 '미숙한 박해'라고 자문합니다.
하심(下心), 마음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아직 우리에게는 넘치는 에너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제히 그 꽃을 틔어 말라죽는 대나무처럼.

goodday
정말 견디기 힘든 것은 망각입니다.
세상 잡는 법을 일깨워주신 동지들이여.
길을 걷다 지치면 그 옛날의 영욕을 기억하겠습니다.
길을 가다 외로우면 그 옛날의 동지를 기억하겠습니다.
시간이 지워간 빈자리에 그리움을 두고 가겠습니다.
그 그리움의 여백에 못다 한 사랑을 그려주십시오.
울음잠긴 가슴에서 그 이름을 기억하고
맹렬하게 살다간 한 신문을 기억해 주십시오.
다만 굴종의 핀잔은 주지 마십시오.
다만 익명의 야유는 하지 마십시오.

goodday
중앙언론사 초유의 사태, 부끄럽습니다.
신문은 죽었다는 아우성,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죽지 않았음을 우리는 너무 잘 압니다.
죽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산 자들의 몫입니다.
남은 이들의 의무입니다.
우리네 장도가 그 끝이 외롭고 슬픈 마감이지만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 귀거래사입니다.
안락함을 도모하지 않으렵니다.
이 자리에 안주하지 않으려 합니다.
가는 길이 좁아진다고 해서
생각의 길이 좁아지는 것은 아닐 겁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goodday가 바로 goodday입니다.

goodday
마침표가 아닌 큰 쉼표입니다.
바닷물의 소금정신, 썩지 않는 그 정신으로
보무도 당당하게 앞서 그 길을 걸어가렵니다.
눅진하고 친밀한 회포는 그 다음으로 미루겠습니다.
비겁한 즐거움을 위해 굴종하지 않겠습니다.
goodday를 기억하는 모든 이들에게
'좋은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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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삼등삼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오오오~
 떠나려고 한다. 무거운 짐 다 내려놓고 가볍게 떠나려고 한다. 먹고 살기 바빠서 망설였던 겨울여행을 홀연히 떠난다. 목적지는 바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버리고 싶을 때 바다를 찾는다.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받고 싶을 때 바다를 찾는다. 그 바다에 가서 상처난 시간들을 버리고 올까 한다. 제주도에서 동해로 바뀐 것은 또 시간탓. 처음엔 자전거를 타고 서해를 따라 광주, 나주를 거쳐 고흥에 도착, 배를 타고 제주도로 갈까 생각했었다. 다시한번 '살아보겠다는 에너지'를 충전하고 귀살스런 삶으로 돌아올 것이다. 바다를 보고, 바다에서 느끼고, 바다에 모든 것을 던지고 오면 좀 나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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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를 타고 영동고속도로를 거쳐 주문진에 갔다. 여행의 출발은 항상 흥분과 떨림의 연속이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낯익은 풍광들은 마치 내 것이 아닌 타인의 것처럼 낯설음, 그 자체였다. 파도가 코앞에서 넘실대고 살짝 익은 바다 비린내가 코끝을 남실대는 포구에서 소주 한 잔을 걸쳤다. 그다지 즐기지 않는 회도 고추장에 잔뜩 발라 맛있게 삼켰다. 아, 잊을 수 있겠구나! 아, 이대로 멈추었으면...생각이 멈추면 돌이 된다는 말처럼 시간이 멈추길 빌었다. 갯바위에 걸터앉아 또 한잔 했다. 호떡 모양의 달이 38만4400km 밖에서 날 비췄다. 바다 바깥은 사나운 겨울인데 갯바위는 안온한 여름이었다. 그리고 민박집에서 또 한잔, 나홀로 나와서 또 한잔....미치기 위해 마셨는데 정말 미쳤다. "마저 마셔. 왜 빨리 안마시고 꿈지럭거려? 술은 취하기 위해서 마시는 거야. 취하려고 마시는 게 아니라면 차라리 콜라나 마시라구" 논조는 그런데 숙취는 여지없이 내 빈머리와 빈 속을 집요하게 괴롭혔다. 아침에 식탁에 올라온 복어탕과 물곰탕을 앞에 두고 아멘만 외쳤다. 결국 건데기는 못먹고 국물에 고춧가루를 듬뿍 타서 후루룩 마셨다. 일명 고춧가루탕....무식한 韓食의 탄식. 똥구멍과 콧구멍, 문이 열린 곳이라면 어디서든지 활활 탔다. 눈에서도 화기가 끓었다. 나와 흥정을 했다. 남들 앞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보이지 말자. 그러나 차에 올라타 춘천을 가면서 내내 죽어가는 모습만 보였다. 중독자들은 외친다. 숙취도 재미라고.(지랄들 해요)
 눈보라가 몰아치는 대관령을 지나 춘천에 도착했다. Rush, Rush.
 명물을 안먹을쏘냐. 닭갈비를 먹고 '소맥' 폭탄주를 마셨다. 그리고 회사가 팔팔할 때 MT를 갔었던 강촌에 숙소를 정했다. 전 날의 폭음으로 몸이 술을 토해내는데도 꾸역꾸역 구겨넣었다. 노래방에 가서 몸을 흔들고, 숙소에 와서 화투를 흔들고, 한 밤의 코고는 소리때문에 고개를 흔들었다. 고~스톱.

 다음 날

 시골 청국장으로 해장을 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그러나 비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비워지지 않았다. 여전히 내 가슴에는 번민의 아픔들이 가득했다. 언제쯤 '흰손'이 無心한 빈 손이 될 수 있을까. 잊을 수 있겠다고 떠난 여행에서 잊을 수 없었으니 또 내가 나를 속인 것이다.
"나를 한 번 속이면 네 잘못이다. 나를 두 번 속이면 내 잘못이다. 나를 세 번 속이면 우리 둘 다 잘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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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쪼다처럼 산다.
'쪼다'는 맨날 세상을 쪼다가 만다. 그래서 얼간이 소리를 듣는다.
그렇게 살다보면 아우구스티누스처럼 된다. 그는 돈과 여자를 쫓아다녔다. 개종한 뒤에도 성욕에 시달렸는데 그가 썼다는 <탕자의 기도>가 걸작이다.
"오, 주여 저를 순결하게 해주소서...그러나 당장은 아니옵고"

난 외쳤다.
"오, 주여 저를 버려주시옵소서....이따 말고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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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하루는 뿌듯했다. 새벽밥 먹고 고용안정센터에 가서 실업급여를 신청했기 때문이다. 나 말고 수 십여 명의 실직자, 실업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실업자, 그들은 나와 동업자들이다. 같은 업자끼리 다투지 않고 번호표 순에 따라서 공평하게 '쩐의 전쟁'을 치른다. 눈물이 핑 돌았다. 되도록이면 아주 비굴한 표정으로, 아주 정직한 표정으로, 아주 검소한 표정으로 면접했다. 그리고 내 몸값을 받아냈다. "일당 3만5000원입니다"
 그렇게나 많이? 새벽 인력시장에서 모닥불 피워놓고 내 몸을 팔기 위해 줄을 서던...뭐! 그런 파리한 느낌. 힘깨나 쓰게 생긴 사람들만 봉고에 태워서 휑하니 가버리고 피죽도 못먹은 듯한 말라깽이만 동이 트도록 안팔려가던....뭐! 그런 초라한 느낌. 매춘만 매춘이 아님을 절감하던 그 때가 떠올라 눈물이 핑 돌았다. 담배를 꼬나물었다. 그리고 늘 담배와 앙상블을 이루던 커피를 찾았다. 폐부를 깊숙히 찌르는 니코틴과 카페인의 절묘한 조화. 그러나 단돈 10원이 모자랐다. 250원짜리 싸구려 커피. 쥐새끼가 밤새 들어앉아 온기를 쬐었을지도 모르는 그 자판기의 커피는 단돈 250원이었다. 호주머니를 털었더니(에구머니나) 240원이 나왔다. 젠장. 10원짜리 하나가 모자라 시내버스를 타지 못했던 그 가엾은 시절의 동전이 머릿속을 강타했다.(나중에 버스비가 모자라면 동전을 운전기사가 모르도록 힘차게 돈통에 뿌렸다. 얼마인지 모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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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일 후 실업급여를 타면 두번째 첫 월급이 된다. 강산이 한 번 바뀌기 전(청춘일 때) 받았던 월급이 처음이요, 이번이 두번째다. 그 때는 44만 원을 받았고 이번엔 24만 5000원을 받게 된다. 그 때는 일을 했으나 이번엔 일을 안하는데도 '고마운' 나라가 돈을 준다(물론 우리가 낸 세금을 그저 돌려받는 것 뿐이지만). 무노동 유임금이다. 마치 생활보호대상자에게 밀가루 포대를 나눠주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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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계장 닭은 일년내내 알을 쉬지 않고 낳는다. 육계는 더 혹독하게 잠을 안재운다. 사 십여 일 동안 잠 한 숨 못자게 하고 사료를 먹인다. 그리고 잡아먹는다. 인간이 잡아먹는다. 내가 잡아먹는다. 난 프라이를 좋아한다. 어렸을 적엔 계란 하나 먹기가 하늘의 별따기라 특별한 날이 아니고는 입에 대지도 못했다. 오늘 아침 계란 프라이를 두 개먹고 점심엔 신라면에 계란을 동동 띄워먹었으며 저녁엔 知友를 만나 계란탕과 계란말이를 먹었다. 닭똥냄새 나는 하루가 너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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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낮에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였다.
"내려오지 마라. 생일이 뭐 대수냐! 네 직장이나 잘 알아봐라. 그게 효도다. 길바닥에 돈 깔면서 내려와봤자 그게 더 마음 아프다"
 내일은 아버지의 생신이다. 세월의 주름이 이제 예순하고도 여섯개나 더해졌다. 그 주름을 펴게 하지 못하고 하나 더 늘리는 것 같아 가슴 아프다. 돈은 드리지 못해도, 음식은 장만해 드리지 못해도, 미역국이라도 함께 나누기 위해 고향가는 차에 올랐다. 서른 일곱이 되도록 여전히 말썽꾸러기 자식일 뿐이다. 어제 직장의료보험카드에서 부모님 이름이(나에게 올려놓았던)소리없이 빠져나갔다.
 하지만 "아버지, 생신 축하드려요. 오래오래 사세요. 제가 잘살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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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복을 입고 점잖게 네꼬다시를 매고 아버지를 뵀다. 그리고 이틀간 얼빠진 놈처럼 지냈다. 아버지는 가급적 취업에 관한 얘기를 안하셨다. 그것이 자식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라고 생각하신 듯 했고, 알아서 할 거라는 무언의 믿음 같기도 했다. 그러나 난 베개 밑 어둠속에서 밤새도록 슬픔을 물컹거리도록 어루만졌다. 그리고 거짓말을 했다. "면접을 봅니다. 서울에 일찍 올라가야 할 것 같아요"
 어머니는 새벽에 일어나 못난 자식의 끼니를 위해 반찬을 만드셨고 아버지는 빈 박스에 먹을 것, 입을 것을 바리바리 챙기셨다. 아버지 생신에 '빈손'으로 내려간 '흰손'. 상경할 때는 '차떼기'를 해서 올라왔다. 면접을 본다는 거짓말 때문에 부득불 새벽밥을 먹었다. 서울에 도착하니 오전 10시30분. 구색은 맞춰야겠기에 바쁜 척 하며 '아내의 집'에서도 나왔다. 그러나 없는 면접을, 그것도 '일요일'에 면접을 어디서 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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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날이 밝았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을 해야 할까.
 가방 둘러메고 씩씩하게 학교가는 첫째보다(오전 8시)
 벤또 짊어메고 굳세게 유치원가는 둘째보다(오전 9시)
 
오늘도 늦게 일어났다.(오전 9시10분)
 배웅은 둘째치고 이불속에서 꼼지락거렸다.
 이것이 그 잘난 아버지의 아침풍경이다. 
 오늘은 광화문에 나가려고 한다. 사람 구경하러. 덕수궁 돌담길 보러
(콧노래를 부르며....)

 
이제 모두 세월따라 흔적도 없이 변해갔지만..
 덕수궁 돌담길에 아직 남아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저 눈길에 아직 남아 있어요 눈 덮힌 조그만 교회가..
 향긋한 오월에 꽃향기는 가슴깊이 그리워지면..
 눈 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곳에 이렇게 다시 찾아와요..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저 눈길에 아직 남아 있어요 눈 덮힌 조그만 교회가..
 향긋한 오월에 꽃향기가 가슴 깊이 그리워지면.
 눈 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곳에 이렇게 다시 찾아와요..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저 눈길에 아직 남아 있어요 눈 덮힌 조그만 교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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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을 했다. 북한산 종주 코스인데 장장 6시간이나 발품을 팔았다. 산이란 가기까지가 힘든 것이고 막상 오르기 시작하면 마구 오르고 싶어지는 것이다. 다리 힘이 풀려 소피 볼 힘도 없는데 마구 마구 마적떼 처럼 기어올라갔다. 정상에서 바라본 서울.....넓디 넓은 땅에서 내가 갈 곳은 아무 곳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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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엔 찜질방을 갔다. 파주땅 어느 사우나에서 장장 6시간이나 지지고 볶았다. 고문실 같은 토굴 안에서 수건을 뒤집어쓰고 뜨거운 입김을 토해내며 '삼겹살'을 구었다. 그러나 아무리 땀을 빼고 몸을 녹여도 내 안의 묵직한 상심은 지워지지 않았다. 때 빼고 광낸 후 찾아 온 두통처럼 한마리 '찜닭'은 그렇게 죽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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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을 것은 다 잃었고 이제 남은 것은 말라비틀어진 병뿐이다. 술병이 돋아 다래끼(70년말 사라진 원시적인 병)가 났다. 술기운이 뻗치다 나갈 구멍이 없으면 약한 '지반'에서 탈이 난다고 한다. 그게 종기다. 입구멍은 찢어졌고 눈구멍은 튀어나왔고 똥구멍도 이상증세를 일으킨다(치질 아님). 입을 잘못 놀린 탓일까? 왜 자꾸 구멍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것인가! 어디 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 에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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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손이 '마른 손'이 돼가고 있다. 여러 곳에서 러브콜이 왔지만 모두 거절했다. 거절은 곧 항복이다. 비겁하게 이긴 것은 이건 것이 아니다. 간만에 젊은 친구들과 신촌에 모여 술을 마셨다. 그리고 많이 취했다. 주저리 주저리, 횡설수설, 미주알 고주알, 뿡야뿡야~. 몸은 술을 안받는데 술은 자꾸 구멍속으로 들어갔다. 구멍이 아닌 곳에서도 자꾸 술을 달라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눈에서 자꾸 술이 줄줄 흘렀다. 그날 신촌에는 진눈깨비가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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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겨울이면 임진각에 가게 되는 걸까? 어제도 55km를 달려 임진각에 갔다. 북한이 지척인 동토의 땅... 넘을 수 없는 미증유의 땅.... 조악한(다른 놀이공원과는 비교가 안될) 놀이기구 몇 개 타고 오뎅 꼬치 몇개 먹고 추위에 덜덜 떨다가 왔다. 돌아오는 길에 <예술마을 헤이리>에 들렀다. 시인 고은이 찬양한 아름다운 지적 공간 <헤이리>.
백수와 임진각, 백수와 헤이리....
헤일 것도 많지 않은 백수가 당면한 헤이리엔 지적인 나약함속에 외로움만 컹컹대고 있었다. 새벽녘에 편도선이 퉁퉁 부어 고생했다. 침을 삼킬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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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생활은 그렇게 끝이 났다.

Posted by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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