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숭숭 새는 초겨울 이부자리를 걷어차고, 새벽녘 타다 남은 구공탄의 시뻘건 절망을 보며 맨밥에 물 말아 먹는 서민들. 그들은 오늘도 철전(鐵錢)까지 받아야 하는 박봉을 위해 일터로 나간다. 눈물로 밤을 삼켜도 겨우내 아랫목을 달굴 십구공탄 360개는 거저 생기지 않는다. 겨울은 그렇게 빈사상태로 만주벌판 삭풍을 가득 품고 남진하고 있다. 때문에 대한민국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돈벼락'을 꿈꾼다. 지금까지 로또(복권)는 311회를 넘기며 1648명의 1등 당첨자를 냈다. 그들은 벼락 맞을 확률을 뚫고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이다. 6년여간 1등 당첨금을 찾아가지 않은 사람도 자그마치 17명에 총액은 439억 원에 이른다. 요즘같이 먹고 살기 빠듯할 때 복권 한 장은 희망의 승차권이다. 그 희망은 일주일간의 행복창고다. 지갑 속에 넣은 천원어치 복권 한 장은 만 원, 1억 원의 희망으로 자란다. 복권은 허접한 삶을 갈음할 수 있는 장밋빛 인생의 매개이기 때문이다.

 ▶IMF 외환위기 때의 암울한 초상화가 재현되는 양상이다. 그때 우리는 하루아침에 수천~수만 명이 짐을 싸서 나가는 감원태풍을 목도했다. 한쪽에선 넥타이 맨 노숙자들이 거리에 나앉아 라면박스로 이불을 삼았고, 한쪽에선 13평짜리 아파트(서울)가 7억 원을 웃돌았다. 부자들은 구들장에 방석을 놓는 순간 돈방석에 앉았다. 이때 불기 시작한 것이 바로 복권 열풍이었다. 많은 서민들이 복권 불나방이 돼 쌈짓돈을 털어 복권에 올인했다. 그야말로 행운의 색칠하기 6/45는 무명씨들이 꿈꾸는 희망의 숫자였다. 로또 1등 당첨확률은 814만 분의 1. 벼락을 연속 두 번 맞을 확률이고, 매주 20만 원씩 3200년을 사야 한 번 당첨될까 말까할 확률이다. 복권 사는 68%는 중하층 서민들이다. 인생역전을 위한 허황된 한탕주의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복권은 사회상을 대변하는 바로미터다. 실업과 불황, 구조조정 칼바람이 판을 치는 세상에 복권은 벼랑 끝에서 붙잡는 희망이다. 인생역전, 아니 '인생여전'이 될지라도 그들은 천 원어치의 꿈을 산다. 천 원어치의 희망을 산다. 행여 그 꿈이 100배, 1000배로 뻥튀기 되지 않을지라도 천 원어치의 운수대통을 꿈꾸는 것이다.

 ▶셋방에 살면서도 10년간 45억 원을 기부한 가수 김장훈. 6년간 8억 원을 쾌척한 배우 문근영. 500억 원을 KAIST에 기부한 한의학 박사, 서울대에 130억 원을 기부한 익명의 노인, 포목점을 하며 모은 돈 1억 원을 이웃돕기에 쾌척한 80대 할머니. 어떤 여성 환자는 어머니가 물려준 400억 원대의 땅을 대학에 기증했다. 워렌 버핏과 빌 게이츠는 각각 62조 2000억 원과 18조 5000억 원을 사회에 기부, 가장 아낌없이 베푸는 부자 1, 2위에 올랐다. 이들이야말로 각박한 세상의 소금 같은 존재다. 기부는 선행이 아니라 습관이라 했다. 더불어 살기 위한 나눔이고, 아름다운 동행이다.
 내일모레면 소설(小雪)이다. 겨울바람은 삼십 촉 백열등도 얼게 한다. 옷깃을 여미어도 바람은 가슴 속에 쓸쓸한 상흔을 남긴다. 바람이 스치고 간 낙엽은 누추한 나무의 주검이 아니라, 온 몸을 태워 기쁨을 주고 산화(散花)한 가을의 희생이다. 모든 게 얼어붙은 대한민국, 온 몸을 태워 서민의 등을 데우는 구공탄처럼 서민들의 아랫목을 걱정해 주는 따뜻한 마음의 불씨 하나 켜기를 소망한다. 
Posted by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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